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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신질서의 황혼]]
'''在日支那人'''<small>일본어</small>
'''在日支那人'''<small>일본어</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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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개요 ==
[[일본국 (신질서의 황혼)|일본]]이 중국의 광동성과 산동성을 식민 통치하던 시기에, 일본으로 도항하여 현재도 잔류 중인 일본의 중국인 특별영주권자들을 의미한다.
'''재일 지나인(在日支那人)'''은 [[일본 (신질서의 황혼)|일본]]에서, [[냉전 (신질서의 황혼)|냉전]] 시대 대개 노동 목적으로 [[난징 정권]]에서 일본에 넘어와, [[정령 제747호]]의 부속정령 지나인특별등록령에 의거해 현재까지 특별영주권을 가지고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의미한다.
 
== 상세 ==
일본에서는 '''자이니치 지나인(在日支那人)'''으로 부르는 재일 중국인 집단이다. 이들은 일본에 거류하는 재일 외국인 중 대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재일 말레이인, 재일 미국인 등 구 일본이 통치했던 식민 지역에서 이주해온 많은 재일 집단이 있으나, 60%에 달하는 다수가 이들 중국인이라 사실상 자이니치 하면 중국인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재일중국인의 기원은 대체로 1910년 일본이 조센을 병합한 뒤 조센으로 도래했던 만주와 화북 지역의 중국인들이 그 시초이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사실상 조센반도에서 일본인으로 동화된 상태고, 크게 쏟아져 들어온건 1947년 일본이 중국을 정복하면서 부터이다.
 
특히 광동과 산동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이들은 일본 국적을 얻어 도항허가증만 받으면 일본에 갈수가 있었으며, 대부분은 중국보다 화폐 가치가 매우 높은 일본으로 경제활동에 종사하러 도항했고, 일부는 일본 제국대학 등에 유학을 갔다.
 
물론 중국 본토에서도 일본영주권과 재류증을 얻어 이주하는 중국인들이 생겨났고, 1985년에는 일본 전역에 중국인이 1000만 명에 달했다.
 
이들은 당시 일본이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대체로 빈민으로 살았다. 당 일도 사업을 해 자수성가한 일부를 뺀다면 대부분 막노동이나 하위 서비스업에 종사했다. 여성의 경우 일본에서는 합법인 성매매에 종사하기도 했다. 현재도 재일중국인은 소득 하위 20%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일 중국인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이들은 일본에서 어느정도 경제적 기반을 구축한 경우가 많았으며, 일본인과 결혼을 하기도 하는 등 본토계든 산동/광동계든 나름대로 하루하루 삶을 영위하며 살아갔다.
 
이런 생활은 80년대 대아대전으로 일본 제국이 무너지고 공영권이 붕괴하며 본국인 중국이 일본을 몰아내고 독립해버리자 무너져버렸다. 일본경제가 불황을 맞으면서 자국민을 신경 쓸 겨를도 없어지자 일본은 일단 본토계 중국인들은 재류권을 박탈해 추방하고 광동/산동 중국인들도 국적을 박탈하여 운신의 폭을 크게 제한시켰다.
 
그렇기에, 현재 남아있는 재일 중국인은 전원 광동성, 산동성, 하이난성(일본 행정분류상 광동에 포함) 출신들이다. 사실 1992년 기준 1,070만명의 중국인이 있었고, 그중 본토계는 60만 명에 불과했다. 애초에 중국 본토민은 영주권이나 재류증을 얻어야 했기에 오기가 매우 어려웠다. 즉
 
1992년의 재일 중국인은 총 1,010만 명이었다.
 
이들은 1996년까지 상당수가 본국인 중국으로 돌아갔다. 대아대전 패전으로 중국에 앙심을 품은 일본인들로 인해 일본 사회에서의 핍박이 더욱 심해지자 경제 기반도 최소한만 챙기고 떠나는 중국인들이 많았다. 이때 돌아간 중국인을 반산(半山)이라고 한다.
 
하지만 귀환동포(반산)들이 준 한간으로 취급받고 있고 재산도 대부분 몰수당해 일본에서보다 매우 빈곤하게 생활하고 있는데다, 중국 자체가 너무 못 살아 차라리 일본이 낫다는 소문이 재일 중국인 사회에 퍼지면서<ref>당시 일본이 경제 불황이라 살기 팍팍하긴 했고 특히 재일들의 경우는 일본국민보다 더했으나, 중국은 살기 팍팍한 수준이 아니라 아사자가 속출하는 지경이었다. 그랬기에 어차피 일본에서는 지나인으로, 중국에서는 예비 한간으로 핍박받으니 차라리 더 잘사는 쪽에 남기로 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ref>, 1996년 이후로는 재일 중국인의 중국 귀환 발길이 사실상 끊겼다. 물론 이후에 돌아간 경우도 있긴 하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남은 중국인들이 바로 현재의 재일 중국인이며, 4,652,932명이 있다. 물론 이는 특별영주권을 가진 중국인만 해당하며, 자이니치 신분이었다가 일본에 귀화한 [[중국계 일본인]]은 포함하지 않는 수치라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 귀화로 인해 그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기 때문이다.
 
행정 분류상으로는 광동계와 산동계가 나눠져 있으나, 사실상 그냥 재일 중국인으로 퉁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정부도 굳이 "재일 광동인", "재일 산동인"으로 나눠부르지 않는다.
 
이들의 국적은 원칙상 무국적이다. 중국에서도 이들의 권리자체에는 관심을 가져도 국적은 주지 않는데, 중국은 이들이 중국에 돌아와야만 중화민국 공민권 부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해외 동포로서 중국에 무비자로 입경할 수 있으며,<ref>일본과 중국은 서로 무비자입국이 안된다.</ref> 일본을 떠나 중국에 이주 신고할 경우 중국 국적이 부여된다. 다만 그 즉시 일본의 특별영주권이 박탈되기 때문에 일본에는 완전한 외국인 신분이 된다.
 
다만 이들이 무국적임에도 일본에 거주할수 있는 근거는 1992년 국적 박탈과 함께 부여된 특별영주권이며, 이는 1998년 일중기본조약을 통해 재일중국인의 일본내 지위를 다시 확인했다. 이것으로서 참정권과 공무담임권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권리를  누릴수 있는 준 일본인 취급이다.
 
또한 1940년대부터 이주가 시작됨에 따라 현재는 사실상 3-4세대를 거쳤기에 일본어만 구사하고 중국어는 못하거나 서툰 경우가 많다.
 
교육의 경우 일본 학교에 진학하기도 하나 따로 각처에 [[중국학교]]가 있어 그곳에서 중국식을 유지한 채 교육을 받기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중국학교를 부정적으로 봐서 그 수를 제한하고 있기에 대부분은 일본의 공교육을 받는다.<ref>원래 일본국적자가 아니면 일본 공교육을 못 받지만 특별영주권자라 다르다.</ref>
 
2010년대 들어 일중관계 악화로 이들이 급격히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는 중이다. 2020년 11월 극우 활동가 [[사쿠라이 마코토]]가 시부야에서 재일중국인에게 폭언 욕설을 퍼부은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하였다.
 
2021년부터 재일 중국인의 일본 귀화가 급증하는 추세라고 하는데, 이는 일본 전역의 자이니치 차이니즈 혐오 분위기에 따라 스스로 민족 정체성을 포기하고 일본인화 하려는 시도이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일본은 재일중국인 귀화에 있어 상당히 엄격한데, 사실상 외국계 영주권자보다도 더 어려운 수준이다. 먼저 중국학교가 아닌 일본 학교를 졸업해야만 요건을 준다. 여기까지는 상관없으나, 부수조건에 "일본국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입증"하라는 다소 모호한 조건을 걸고 있다.
 
이는 정해진 양식이 없고 딱 이렇게만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사상검증 절차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중국인으로서는 거부감이 들 사상검증 때문에 귀화를 꺼려하는 경우도 많다.
== 일본 사회에서의 인식 ==
매우 나쁜 편이다. 중국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하층민 정도로 여기며 멸시하고 깔보는 정도였으나, 대아대전 이후 일중관계가 시종일관 험악하며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일본 사회에서는 이들이 잠재적 적성외국인이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또한 이들 재일중국인들이 어쨌거나 8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일본에 살면서 여러 경제적 기반을 구축했으며, 개중에는 사업을 크게 하는 중국인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출발하여 일부는 이른바 "화교자본"에 의해 일본경제가 잠식되고 있으며 그 배후에 남경(중국정부)이 일본을 아래에서부터 장악하기 위한 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음모론도 난무하다.([[화교자본론]])
 
게다가 상대적으로 빈곤한 이들이 [[야쿠자]]에 합류하거나 일본인에게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기에 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마저 있다.  


이 때문에 재일중국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1920년대부터 화교가 유입되었고 냉전시대 많은 중국인들이 도항지로 택한 조센 반도에서의 경우 열도보다도 더욱 심하다.  
규모는 약 400만 명 정도로 사료되고 있으며, 이는 귀화자(지나계 일본인)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로서 실제로는 더 많을수 있다.


2019년 게이조의 한 호텔 직원인 [[와타나베 다이코]](渡辺大皞)가 재일 중국인 관광객과 시비가 붙자 살해하고 간가와에 토막낸 시신을 유기한 사건([[간가와 몸통시신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와타나베 다이코가 경찰에 "일본어가 서툴길래 지나인 같아 놈에게 자이니치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답하여 더 죽일 결심을 하게 됐다."라고 진술한 것이 알려지며 재일중국인 혐오 범죄의 대표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 역사 ==
 
== 일본에서의 인식 ==
심지어 이들의 영주권을 뺏고 모두 추방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도 있다. 대표적으로 차세대당 당수 [[사쿠라이 마코토]]가 이끄는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이다. 이들은 재일 중국인들을 린치하거나, 심지어 중국학교로 등교하는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폭언을 하는 등의 행각을 보이고 있다. 사쿠라이는 "정부가 지나인 특별영주권 박탈에 동의할 때까지 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류:신질서의 황혼]]

2024년 4월 23일 (화) 10:38 기준 최신판

在日支那人일본어

旅日中國人중국어

개요

재일 지나인(在日支那人)일본에서, 냉전 시대 대개 노동 목적으로 난징 정권에서 일본에 넘어와, 정령 제747호의 부속정령 지나인특별등록령에 의거해 현재까지 특별영주권을 가지고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의미한다.

규모는 약 400만 명 정도로 사료되고 있으며, 이는 귀화자(지나계 일본인)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로서 실제로는 더 많을수 있다.

역사

일본에서의 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