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고등학교: First Children/줄거리/과거의 파편: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7번째 줄: 17번째 줄:
{{소설/버튼|id=memory-1|style=default-btn|{{ff|Noto Serif KR|{{반전2|[[파일:좌클릭.png|20px|link=]]}} {{bold|과거의 파편 - 김영희}}}}}}
{{소설/버튼|id=memory-1|style=default-btn|{{ff|Noto Serif KR|{{반전2|[[파일:좌클릭.png|20px|link=]]}} {{bold|과거의 파편 - 김영희}}}}}}


{{소설/시작|folding=on|id=memory-1}}<!--
{{소설/시작|folding=on|id=memory-1}}
-->가짜 이름을 지어내 쓰기 시작했다.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이유가 없진 않았지만,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다 정신차리고 보니 그렇게 돼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기억이라는 것은 본디 오래 된 것일 수록 자취가 깊어져서. 돌이켜보자면.{{brbr|18}}<!--
:가짜 이름을 지어내 쓰기 시작했다.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이유가 없진 않았지만,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다 정신차리고 보니 그렇게 돼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기억이라는 것은 본디 오래 된 것일 수록 자취가 깊어져서. 돌이켜보자면.
 
:
-->“밖을 나돌아다니기나 하더니, 기어코 저런 애X끼를 싸지르고 와?”{{brbr|18}}<!--
:“밖을 나돌아다니기나 하더니, 기어코 저런 애X끼를 싸지르고 와?”
 
:
-->이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조각이고,{{brbr|18}}<!--
:이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조각이고,
 
:
-->“그땐 실수였다고 했잖아, 내가.”<br><!--
:“그땐 실수였다고 했잖아, 내가.”
-->“당신은 그게 지금 할 말이야?”<br><!--
:“당신은 그게 지금 할 말이야?”
-->“그러는 당신도 내가 지워달랄 땐 안된다면서? 난 그래도 낳을 생각까진 없었어.”{{brbr|18}}<!--
:“그러는 당신도 내가 지워달랄 땐 안된다면서? 난 그래도 낳을 생각까진 없었어.”
 
:
-->나는 엄마나 아빠 따위의 두 글자를 입으로 부르기 전에 사생아라는 세 글자의 의미부터 익혀야 했다.{{brbr|18}}<!--
:나는 엄마나 아빠 따위의 두 글자를 입으로 부르기 전에 사생아라는 세 글자의 의미부터 익혀야 했다.
 
:
-->“안그래도 회사 애들 구설수 때문에 기자들이 하나라도 더 물어뜯으려고 눈에 불을 키고 뛰어다니던 땐데. 거기서 아내가 외도해서 이름 모를 X끼 애 뱄다고 광고해?”{{brbr|18}}<!--
:“안그래도 회사 애들 구설수 때문에 기자들이 하나라도 더 물어뜯으려고 눈에 불을 키고 뛰어다니던 땐데. 거기서 아내가 외도해서 이름 모를 X끼 애 뱄다고 광고해?”
 
:
-->내 이름은 석자도 아닌 한 글자였고, 선생들이 더러 아이들에게 내미는 자기소개카드 따위의 것들에 나는 성을 적어낼 란을 단 한 번도 채우지 못할 것이리라는 것. 사생아라는 세 글자가 내 이름 한 글자보다 더 많은 칸수를 차지했고, 고작 성조차 허락 받지 못한 이름따위보다 나를 자세히 피력하는 어휘였다. 그정도 의미였다.{{brbr|18}}<!--
:내 이름은 석자도 아닌 한 글자였고, 선생들이 더러 아이들에게 내미는 자기소개카드 따위의 것들에 나는 성을 적어낼 란을 단 한 번도 채우지 못할 것이리라는 것. 사생아라는 세 글자가 내 이름 한 글자보다 더 많은 칸수를 차지했고, 고작 성조차 허락 받지 못한 이름따위보다 나를 자세히 피력하는 어휘였다. 그정도 의미였다.
 
:
-->“나라고 아무 생각 없이 지우자고 한 줄 알아? 이미지로 먹고사는 건 나야. 나도 각오하고 한 말이었다고. 애초에 그거 덮는 게 원래 당신 역할 아니었어?”{{brbr|18}}<!--
:“나라고 아무 생각 없이 지우자고 한 줄 알아? 이미지로 먹고사는 건 나야. 나도 각오하고 한 말이었다고. 애초에 그거 덮는 게 원래 당신 역할 아니었어?”
 
:
-->다행히 나는 날 때부터 더럽게도 약아빠졌었다. 그 시절의 나는 더하면 더했지 덜한 놈은 아니었어서. 나 자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제법 소질이 있었다. 물론 아직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충분치가 않아 실수도 적잖이 했다.{{brbr|18}}<!--
:다행히 나는 날 때부터 더럽게도 약아빠졌었다. 그 시절의 나는 더하면 더했지 덜한 놈은 아니었어서. 나 자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제법 소질이 있었다. 물론 아직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충분치가 않아 실수도 적잖이 했다.
 
:
-->“그래서 내 아들인 양 임신 소식만 밝히고 조용히 잘 키웠잖아. 내가 이 정도로 참고 수습해준 것만 해도 당신은 감사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 뭐, 이젠 이능력? 하다 못해 그냥 애도 아니고 괴물 X끼야?”{{brbr|18}}<!--
:“그래서 내 아들인 양 임신 소식만 밝히고 조용히 잘 키웠잖아. 내가 이 정도로 참고 수습해준 것만 해도 당신은 감사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 뭐, 이젠 이능력? 하다 못해 그냥 애도 아니고 괴물 X끼야?”
 
:
-->어렸을 땐 바람이 손에 잡히는 그 느낌을 모두가 아는 줄 알았거든. 뭐든간 잘하는 걸 보여드리면 어필이 될 줄 알았다. 이러면 나를 사랑해주실 거야. 이러면 조금이라도 날 좋아해주실 거야. 그게 외려 더 안좋은 수였던 것도 모르고.{{brbr|18}}<!--
:어렸을 땐 바람이 손에 잡히는 그 느낌을 모두가 아는 줄 알았거든. 뭐든간 잘하는 걸 보여드리면 어필이 될 줄 알았다. 이러면 나를 사랑해주실 거야. 이러면 조금이라도 날 좋아해주실 거야. 그게 외려 더 안좋은 수였던 것도 모르고.
 
: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결국은 내가 하자는대로 지우게 해줬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던 거 아냐? 저런 이상한 능력 같은 게 딸려있으니 내 아들이라고 어디 내놓을 수도 없어, 이제.”{{brbr|18}}<!--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결국은 내가 하자는대로 지우게 해줬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던 거 아냐? 저런 이상한 능력 같은 게 딸려있으니 내 아들이라고 어디 내놓을 수도 없어, 이제.”
 
:
-->잘나가는 미모의 여배우였던 엄마. 걸출한 연예인이 가득한 기획사의 대표인 아빠. 사생아란 것도 덮어놓은 채 기껏 임신 소식 밝혀놓고, 이제 좀 이용해서 가정적인 이미지라도 만들어보려다가. 그나마도 이능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토픽이라 나는 마케팅 수단으로 쓰기도 글렀다고 했던가. 아홉쯤 한참을 집안 살림 다 박살내던 엄마가 나 붙잡고 울면서 저주를 퍼부을 때나 알았다. 그리고 그럴 때면.{{brbr|18}}<!--
:잘나가는 미모의 여배우였던 엄마. 걸출한 연예인이 가득한 기획사의 대표인 아빠. 사생아란 것도 덮어놓은 채 기껏 임신 소식 밝혀놓고, 이제 좀 이용해서 가정적인 이미지라도 만들어보려다가. 그나마도 이능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토픽이라 나는 마케팅 수단으로 쓰기도 글렀다고 했던가. 아홉쯤 한참을 집안 살림 다 박살내던 엄마가 나 붙잡고 울면서 저주를 퍼부을 때나 알았다. 그리고 그럴 때면.
 
:
-->“희야. 할미랑 책 읽을까?”{{brbr|18}}<!--
:“희야. 할미랑 책 읽을까?”
 
:
-->외할머니가 어김 없이 내 귀를 막고서 작게 속삭이곤 했다.{{brbr|18}}<!--
:외할머니가 어김 없이 내 귀를 막고서 작게 속삭이곤 했다.
 
:
-->솔직히 말하면 할머니는 좀 웃긴 사람이었다. 저멀리 해가 주저앉고 창밖에서 기어들어오던 땅거미가 잦아들기 시작할 쯤이면, 할머니는 늘 열 살도 채 안 된 아이를 마르고 볼품 없어진 다리 위에 앉혀놓았다. 그리고선 동화를 읽어주다가도 고리타분한 본인 인생관을 관련지어 사이비 교주 마냥 설파하곤 했다.{{brbr|18}}<!--
:솔직히 말하면 할머니는 좀 웃긴 사람이었다. 저멀리 해가 주저앉고 창밖에서 기어들어오던 땅거미가 잦아들기 시작할 쯤이면, 할머니는 늘 열 살도 채 안 된 아이를 마르고 볼품 없어진 다리 위에 앉혀놓았다. 그리고선 동화를 읽어주다가도 고리타분한 본인 인생관을 관련지어 사이비 교주 마냥 설파하곤 했다.
 
:
-->“희야. 세상을 살다보면 모진 풍파가 많단다.”{{brbr|18}}<!--
:“희야. 세상을 살다보면 모진 풍파가 많단다.”
 
:
-->할머니. 나 이제 고작 아홉이야.{{brbr|18}}<!--
:할머니. 나 이제 고작 아홉이야.
 
:
-->“물론 할미는 모든 안 좋은 시련과 재난이 너를 피해갔으면 해. 하지만 녹록치 않을 거란다.”{{brbr|18}}<!--
:“물론 할미는 모든 안 좋은 시련과 재난이 너를 피해갔으면 해. 하지만 녹록치 않을 거란다.”
 
:
-->할머니.{{brbr|18}}<!--
:할머니.
 
:
-->“그럴 때면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언젠가는 지나갈 일인 게야.”{{brbr|18}}<!--
:“그럴 때면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언젠가는 지나갈 일인 게야.”
 
:
-->원래 이 나이쯤 애들은 그런 말 이해 못 한다니까.{{brbr|18}}<!--
:원래 이 나이쯤 애들은 그런 말 이해 못 한다니까.
 
:
-->“너는 사랑 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아이야. 그런 세상 가운데서는 정과 사랑만이 살아남는단다.”{{brbr|18}}<!--
:“너는 사랑 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아이야. 그런 세상 가운데서는 정과 사랑만이 살아남는단다.”
 
:
-->아니,{{brbr|18}}<!--
:아니,
 
:
-->“그것도 힘들 성 싶으면 기억하려무나. 할미는 희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변치 않고 사랑할 사람이 또 생겼다고.”{{brbr|18}}<!--
:“그것도 힘들 성 싶으면 기억하려무나. 할미는 희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변치 않고 사랑할 사람이 또 생겼다고.”
 
:
-->하……….{{brbr|18}}<!--
:하……….
 
:
-->대개 이런 식이었다. 나는 기껏해야 겨울을 아홉 번밖에 지나지 않은 어린 애였으나, 할머니의 이야기들이 뻔하고 현실적으로 도움 되지 않는 현학적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따분한 할망구, 분명 젊을 적에 종교를 하나 만들었으면 떼돈 벌었을 터다.{{brbr|18}}<!--
:대개 이런 식이었다. 나는 기껏해야 겨울을 아홉 번밖에 지나지 않은 어린 애였으나, 할머니의 이야기들이 뻔하고 현실적으로 도움 되지 않는 현학적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따분한 할망구, 분명 젊을 적에 종교를 하나 만들었으면 떼돈 벌었을 터다.
 
:
-->할머니는 그 이후로도 자신만의 종교를 누누히 내게 전하곤 했다. 봄은 희망과 기대의 만개라는 둥 그런 것들. 노부는 춘계에 벚꽃과 개나리를 믿었고, 하계에는 새와 맨드라미를 믿었으며, 추계에는 단풍과 낙엽, 동계에는 눈을 믿었다. 그리고 사계 동안에는 인연과 정, 사람을 믿는다고 내게 속삭이곤 했다. 그것들도 죄 알았다. 미련하고 의미 없는 소리란 거. 목적 없는 다정은 아직 낯설고 시렸다.{{brbr|18}}<!--
:할머니는 그 이후로도 자신만의 종교를 누누히 내게 전하곤 했다. 봄은 희망과 기대의 만개라는 둥 그런 것들. 노부는 춘계에 벚꽃과 개나리를 믿었고, 하계에는 새와 맨드라미를 믿었으며, 추계에는 단풍과 낙엽, 동계에는 눈을 믿었다. 그리고 사계 동안에는 인연과 정, 사람을 믿는다고 내게 속삭이곤 했다. 그것들도 죄 알았다. 미련하고 의미 없는 소리란 거. 목적 없는 다정은 아직 낯설고 시렸다.
 
:
-->그래도 주름진 그 손이 내 귓등을 푹 눌러덮던 감각과, 그 온기와, 늙고 힘 없는 말씨가 그리 믿음직스러웠던 건, 약아빠졌어봐야 나는 고작 열 번도 겨울을 나지 않은 어린 애였으니까. 탓에 나는 그런 생각도 했다. 어쩌면 할머니의 미련하고 한심하며, 따분한 인생관을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조금씩 그것을 믿어가기 시작했었다.{{brbr|18}}<!--
:그래도 주름진 그 손이 내 귓등을 푹 눌러덮던 감각과, 그 온기와, 늙고 힘 없는 말씨가 그리 믿음직스러웠던 건, 약아빠졌어봐야 나는 고작 열 번도 겨울을 나지 않은 어린 애였으니까. 탓에 나는 그런 생각도 했다. 어쩌면 할머니의 미련하고 한심하며, 따분한 인생관을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조금씩 그것을 믿어가기 시작했었다.
 
:
-->꿋꿋이 눈 밖에 난 사생아를 감싸고 도는 할머니를 엄마와 아빠는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어쨌든 나는 노부의 보살핌 아래 자랐다. 그러니까, 미련하고 따분한 인생관을 빙자한 종교 설파 아래서.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랑비에 옷가지가 젖어들 듯 나는 첫 종교를 얻었다.{{brbr|18}}<!--
:꿋꿋이 눈 밖에 난 사생아를 감싸고 도는 할머니를 엄마와 아빠는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어쨌든 나는 노부의 보살핌 아래 자랐다. 그러니까, 미련하고 따분한 인생관을 빙자한 종교 설파 아래서.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랑비에 옷가지가 젖어들 듯 나는 첫 종교를 얻었다.
 
:
-->그리고 열 살 하고도 몇이 되던 해의 봄, 나는 개종했다.{{brbr|18}}<!--
:그리고 열 살 하고도 몇이 되던 해의 봄, 나는 개종했다.
 
:
-->외가에 다녀오는 길이었는지, 그즈음엔 아마 부부가 할머니와 나를 태운 채 빗속을 뚫으며 산자락을 운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천둥이 땅을 때리고 비가 차창을 거세게 두드리는 것이, 실은 고약한 겁쟁이었던 나는 할머니 품속에 안겨 달달 떨고 있었다.{{brbr|18}}<!--
:외가에 다녀오는 길이었는지, 그즈음엔 아마 부부가 할머니와 나를 태운 채 빗속을 뚫으며 산자락을 운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천둥이 땅을 때리고 비가 차창을 거세게 두드리는 것이, 실은 고약한 겁쟁이었던 나는 할머니 품속에 안겨 달달 떨고 있었다.
 
:
-->“괜찮다, 얘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brbr|18}}<!--
:“괜찮다, 얘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
-->차 안에서 새카만 하늘로부터 숨어든 작은 손을 붙잡고, 할머니는 계속 속삭이셨다.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하고.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대로 할머니의 고리타분한 그것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도로에서 미끄러진 차체가 가드레일을 부수고 산 아래로 굴러떨어질 쯤에 그것을 확신했다.{{brbr|18}}<!--
:차 안에서 새카만 하늘로부터 숨어든 작은 손을 붙잡고, 할머니는 계속 속삭이셨다.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하고.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대로 할머니의 고리타분한 그것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도로에서 미끄러진 차체가 가드레일을 부수고 산 아래로 굴러떨어질 쯤에 그것을 확신했다.
 
:
-->할머니.{{brbr|18}}<!--
:할머니.
 
:
-->피가 흥건해서 앞이 잘 안 보였다. 그래도 알음알이로 반쯤 찢어진 차체와, 커다란 나무 밑동에 쳐박힌 할머니는 알아볼 수 있었다. 바르작거리던 노파의 몸은 몇 마디 안타까운 중얼임 끝에 멎었다.{{brbr|18}}<!--
:피가 흥건해서 앞이 잘 안 보였다. 그래도 알음알이로 반쯤 찢어진 차체와, 커다란 나무 밑동에 쳐박힌 할머니는 알아볼 수 있었다. 바르작거리던 노파의 몸은 몇 마디 안타까운 중얼임 끝에 멎었다.
 
:
-->할머니. 정신 차려.{{brbr|18}}<!--
:할머니. 정신 차려.
 
:
-->노부의 손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고 반쯤 빳빳해져있었다. 나는 무슨 추레한 울음 소리로 흐느끼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울었다. 그 밖의 것은 그리 선명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brbr|18}}<!--
:노부의 손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고 반쯤 빳빳해져있었다. 나는 무슨 추레한 울음 소리로 흐느끼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울었다. 그 밖의 것은 그리 선명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
-->“희야. 아가.”<br><!--
:“희야. 아가.”
-->“자책 말아라. 모두 네 탓이 아니야.”<br><!--
:“자책 말아라. 모두 네 탓이 아니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아가.”{{brbr|18}}<!--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아가.”
 
:
-->다만 마지막까지 그 노친네가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라는 둥 개소리만 짓껄이다 간 것 정도는 기억한다.{{brbr|18}}<!--
:다만 마지막까지 그 노친네가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라는 둥 개소리만 짓껄이다 간 것 정도는 기억한다.
 
: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만히 서 있으면 머리를 한껏 적셨던 피를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뒤섞여 씻어내려갔다. 내가 뭘 바랐더라. 그렇게 큰 걸 바라진 않았던 것 같은데. 치묵색의 하늘이 꼭 뒤틀린 것마냥 보여 무서웠다. 먹색으로 물든 하늘을 손으로 가려봤다. 그래도 비바람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brbr|18}}<!--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만히 서 있으면 머리를 한껏 적셨던 피를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뒤섞여 씻어내려갔다. 내가 뭘 바랐더라. 그렇게 큰 걸 바라진 않았던 것 같은데. 치묵색의 하늘이 꼭 뒤틀린 것마냥 보여 무서웠다. 먹색으로 물든 하늘을 손으로 가려봤다. 그래도 비바람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
-->“…희야, 희야…!! 여기다. 여기.”{{brbr|18}}<!--
:“…희야, 희야…!! 여기다. 여기.”
 
:
-->무섭네. 하늘 말이야. 근데 이제 손이 떨리진 않아. 있잖아, 할머니. 할머니는 틀렸어. 와중에 차체 아래 깔려있던 부부가 나를 향해 말했다.{{brbr|18}}<!--
:무섭네. 하늘 말이야. 근데 이제 손이 떨리진 않아. 있잖아, 할머니. 할머니는 틀렸어. 와중에 차체 아래 깔려있던 부부가 나를 향해 말했다.
 
:
-->“그래, 여기… 응? 아빠랑 엄마야. 이미 죽은 노친네나 붙잡고 멍하니 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좀 도와줘, 착하지.”{{brbr|18}}<!--
:“그래, 여기… 응? 아빠랑 엄마야. 이미 죽은 노친네나 붙잡고 멍하니 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좀 도와줘, 착하지.”
 
:
-->고동소리가 들린다. 진심 같은 게 무슨 의미야. 결국 다 이 꼴이지. 이럴 줄 알았어, 나는. 못내 광증이 도졌고, 가늘게 휜 눈으로 자못 아름답게 웃었다.{{brbr|18}}<!--
:고동소리가 들린다. 진심 같은 게 무슨 의미야. 결국 다 이 꼴이지. 이럴 줄 알았어, 나는. 못내 광증이 도졌고, 가늘게 휜 눈으로 자못 아름답게 웃었다.
 
:
-->“…빨리!!!!!!!!! 우릴 죽일 셈이야? 우리 말고 너를 보살펴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너를 사랑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이리 와, 어서!!”{{brbr|18}}<!--
:“…빨리!!!!!!!!! 우릴 죽일 셈이야? 우리 말고 너를 보살펴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너를 사랑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이리 와, 어서!!”
 
:
-->나도 알아요. 엄마, 아빠. 나도 이제 희망이니 기대니 이딴 의미 없는 것들에 삶의 궤도가 무력하게 흔들리는 건 넌더리가 나요.{{brbr|18}}<!--
:나도 알아요. 엄마, 아빠. 나도 이제 희망이니 기대니 이딴 의미 없는 것들에 삶의 궤도가 무력하게 흔들리는 건 넌더리가 나요.
 
:
-->“그래, 이리 와. 옳지………?”{{brbr|18}}<!--
:“그래, 이리 와. 옳지………?”
 
:
-->넌더리가 나서, 그래서.{{brbr|18}}<!--
:넌더리가 나서, 그래서.
 
:
-->“자, 잠깐만. 너, 지금 뭐하는…!!!!!”{{brbr|18}}<!--
:“자, 잠깐만. 너, 지금 뭐하는…!!!!!”
 
:
-->그래서 이제 기대 않으려고.<!--
:그래서 이제 기대 않으려고.
 
:
 
:<div style="margin: 30px 0; text-align: center;">*</div>
 
:
 
:{{c|gray|''속보입니다. 배우 도예린 씨 일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인데요. 도예린 배우의 모친과 아들을 태우고 산길을 주행 중이던 도예린 씨 부부의 차량이 산 아래로 떨어져, 자녀 1명을 제외한 일가 3명이 전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톱스타 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던 도예린 씨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추모를…''}}
--><div style="margin: 30px 0; text-align: center;">*</div><!--
:
 
:<div style="margin: 30px 0; text-align: center;">*</div>
 
:
 
:능력을 쓰는 건 생각보다 쉽고 간단했다. 희미하게나마 붙들어져있던 부부의 숨을 손수 마무리해드렸고, 조문객 없는 상을 치룬 나는 빌어쳐먹게도 질긴 내 숨을 고르며 근처의 보육원에 들어갔다. 나는 더 이상 삶에 어떤 희망도 기대도 기울일 수 없었다. 당신의 종교는 틀렸고, 봄은 내게 우울과 박탈의 만개였다. 당신은 인연과 사람을 신봉했으나 나는 허무와 염세로 개종했다. 나는 그 이후로 가짜 이름을 지어내서 쓰기 시작했다.
 
:
-->{{c|gray|''속보입니다. 배우 도예린 씨 일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인데요. 도예린 배우의 모친과 아들을 태우고 산길을 주행 중이던 도예린 씨 부부의 차량이 산 아래로 떨어져, 자녀 1명을 제외한 일가 3명이 전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톱스타 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던 도예린 씨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추모를…''}}<!--
:위작의 미소를 기워내면 살아남는 것도 그리 어렵잖았다. 정을 팔면 따라오는 것은 많았다. 의미도 없는 짓거리에 애쓰기보단 정이고 뭐고 가볍게 흘리는 게 맞는 줄 알았다. 보육원에 들어가는 해부터 몇 년의 공백 후 재회한 소꿉친구는 나를 낯설어했으나, 믿지 않았다. 친한 후배는 내 망가진 인생 꼬라지를 알아보는 듯해, 역린을 긁고 몇 대 얻어맞아줬다. 비행 청소년이니 뭐니 하는 낙인 같은 건 아무렴 상관 없었고. 그냥 마음 가는대로 피곤할 일 없이 살았다.
 
:
 
:그래, 그렇게 살았다.
 
:
 
:“그렇다면 여기서 지어도 되는 거잖아. 집.”
--><div style="margin: 30px 0; text-align: center;">*</div><!--
:“뭐?”
 
:
 
:…분명히 그렇게 살았었는데.
 
{{소설/끝}}
 
-->능력을 쓰는 건 생각보다 쉽고 간단했다. 희미하게나마 붙들어져있던 부부의 숨을 손수 마무리해드렸고, 조문객 없는 상을 치룬 나는 빌어쳐먹게도 질긴 내 숨을 고르며 근처의 보육원에 들어갔다. 나는 더 이상 삶에 어떤 희망도 기대도 기울일 수 없었다. 당신의 종교는 틀렸고, 봄은 내게 우울과 박탈의 만개였다. 당신은 인연과 사람을 신봉했으나 나는 허무와 염세로 개종했다. 나는 그 이후로 가짜 이름을 지어내서 쓰기 시작했다.{{brbr|18}}<!--
 
-->위작의 미소를 기워내면 살아남는 것도 그리 어렵잖았다. 정을 팔면 따라오는 것은 많았다. 의미도 없는 짓거리에 애쓰기보단 정이고 뭐고 가볍게 흘리는 게 맞는 줄 알았다. 보육원에 들어가는 해부터 몇 년의 공백 후 재회한 소꿉친구는 나를 낯설어했으나, 믿지 않았다. 친한 후배는 내 망가진 인생 꼬라지를 알아보는 듯해, 역린을 긁고 몇 대 얻어맞아줬다. 비행 청소년이니 뭐니 하는 낙인 같은 건 아무렴 상관 없었고. 그냥 마음 가는대로 피곤할 일 없이 살았다.{{brbr|18}}<!--
 
-->그래, 그렇게 살았다.{{brbr|18}}<!--
 
-->“그렇다면 여기서 지어도 되는 거잖아. 집.”<br><!--
-->“뭐?”{{brbr|18}}<!--
 
-->…분명히 그렇게 살았었는데.<!--
-->{{소설/끝}}


{{folding|id=memory-1-talk|title=[ 대화 형식으로 보기 ]|table=on|
{{folding|id=memory-1-talk|title=[ 대화 형식으로 보기 ]|table=on|
217번째 줄: 205번째 줄:
{{소설/버튼|id=memory-2|style=default-btn|{{ff|Noto Serif KR|{{반전2|[[파일:좌클릭.png|20px|link=]]}} {{bold|과거의 파편 - 백하민}}}}}}
{{소설/버튼|id=memory-2|style=default-btn|{{ff|Noto Serif KR|{{반전2|[[파일:좌클릭.png|20px|link=]]}} {{bold|과거의 파편 - 백하민}}}}}}


{{소설/시작|folding=on|id=memory-2}}<!--
{{소설/시작|folding=on|id=memory-2}}
-->100BPM<br><!--
:100BPM
-->110BPM<br><!--
:110BPM
-->120BPM{{brbr|18}}<!--
:120BPM
 
:
-->거기까지. 측정용 트레드밀이 또 망가졌다. 발 닿은 곳의 고무는 언제 고체였냐는 양 녹아있고, 몸에서는 김이 샌다. 접목되지 않은 기술의 한계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제 아홉이 된 나는 생각했다. ‘이딴 걸로는 안 될 텐데.’ 투명하고 공기만 채워져있는 수족관 안의 미확인 생명체처럼 보이는 나를 관찰하는 이 사람들은 항상 애를 쓰고 있다.{{brbr|18}}<!--
:거기까지. 측정용 트레드밀이 또 망가졌다. 발 닿은 곳의 고무는 언제 고체였냐는 양 녹아있고, 몸에서는 김이 샌다. 접목되지 않은 기술의 한계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제 아홉이 된 나는 생각했다. ‘이딴 걸로는 안 될 텐데.’ 투명하고 공기만 채워져있는 수족관 안의 미확인 생명체처럼 보이는 나를 관찰하는 이 사람들은 항상 애를 쓰고 있다.
 
:
-->“기계 고장입니다.”<br><!--
:“기계 고장입니다.”
-->“망할…… 기계 내구도에 얼마를 들였는데 또 이래!!”{{brbr|18}}<!--
:“망할…… 기계 내구도에 얼마를 들였는데 또 이래!!”
 
:
-->그들은 늘 화가 나있었다. 그리고 그 등판 너머로는, 기반은 무표정이지만 주름의 능선까지 합하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를 내 조부가 있었다. 측정이 끝나고 내게 굽신굽신 수건을 건네고, 나는 나가서, 수업을 듣는다. 조금 정을 붙이려고 했던 선생들도 과목마다 얼굴이 바뀌어 있다. 이 또한 이능을 사람 취급 않는 조부의 휼계다.{{brbr|18}}<!--
:그들은 늘 화가 나있었다. 그리고 그 등판 너머로는, 기반은 무표정이지만 주름의 능선까지 합하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를 내 조부가 있었다. 측정이 끝나고 내게 굽신굽신 수건을 건네고, 나는 나가서, 수업을 듣는다. 조금 정을 붙이려고 했던 선생들도 과목마다 얼굴이 바뀌어 있다. 이 또한 이능을 사람 취급 않는 조부의 휼계다.
 
:
-->하얀 방. 하얀 침대. 하얀 베개. 내가 주어진 것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비싼 섬유의 비싼 물건들. 가치를 느끼지 못했지만 그 색에는 애정을 가졌다. 이 속에서 검은 저는 꼭 이물인 것만 같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것을 잊지 말라고 일부러 이리 고른 탓일까, 그리도 생각하는 것이 피해망상의 전조나 다름이 없었다. 또 눕고 눈을 감으면 똑같은 내일일 것이다. 나는 유복하다. 하지만 땅에서 달려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brbr|18}}<!--
:하얀 방. 하얀 침대. 하얀 베개. 내가 주어진 것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비싼 섬유의 비싼 물건들. 가치를 느끼지 못했지만 그 색에는 애정을 가졌다. 이 속에서 검은 저는 꼭 이물인 것만 같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것을 잊지 말라고 일부러 이리 고른 탓일까, 그리도 생각하는 것이 피해망상의 전조나 다름이 없었다. 또 눕고 눈을 감으면 똑같은 내일일 것이다. 나는 유복하다. 하지만 땅에서 달려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
-->“형”이 있었을 적에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함께 눈 위를 뛰어다녔다. 능력이 발현하기 전 엄마가 내게 또래 친구가 필요할 것이라 아버지에게 이를 때면 아버지는 항상 눈이 붉고, 나와 닮아있는 형을 데려오곤 했었다. 그때는 녀석이 형인 이유는 그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것으로 알았지만 머리가 크고 알고 보면 죄 우리 아버지가 쓰레기인 증빙 서류에 지나지 않았다.{{brbr|18}}<!--
:“형”이 있었을 적에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함께 눈 위를 뛰어다녔다. 능력이 발현하기 전 엄마가 내게 또래 친구가 필요할 것이라 아버지에게 이를 때면 아버지는 항상 눈이 붉고, 나와 닮아있는 형을 데려오곤 했었다. 그때는 녀석이 형인 이유는 그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것으로 알았지만 머리가 크고 알고 보면 죄 우리 아버지가 쓰레기인 증빙 서류에 지나지 않았다.
 
:
-->형은 아빠의 사망과 동시에 어느샌가 없어졌다. 직계의 후계자인 아버지가 사망함과 동시에 독자(형은 애초에 상속 계열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았다)인 내가 덜컥 후계자가 되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이능을 발현했댄다. 크게 와닿진 않았다. 그때까지는 직경이 먼, 진원이 먼 이야기였거든.{{brbr|18}}<!--
:형은 아빠의 사망과 동시에 어느샌가 없어졌다. 직계의 후계자인 아버지가 사망함과 동시에 독자(형은 애초에 상속 계열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았다)인 내가 덜컥 후계자가 되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이능을 발현했댄다. 크게 와닿진 않았다. 그때까지는 직경이 먼, 진원이 먼 이야기였거든.
 
:
-->어른들은 녀석이 아버지를 죽인 게 아니냐며 떠들어댔지만 그것도 별반 와닿진 않았다. 아버지는 정략 결혼을 했던 어머니에게도 자주 손찌검을 하던 쓰레기였고, 제 씨에서 세포분열한 핏덩이에게도 좀처럼 아버지 노릇을 하지 않는 쓰레기였다. 그래도 이 건물에서 한 자리 꿰차고 있는 이유는── 일대가리는 유별나게 좋았나 보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니, 처음에는 그 사실 자체가 와닿지 않다가, 와닿았다가, 하얀 눈처럼 부숴져 대수가 아닌 일이 되었다.{{brbr|18}}<!--
:어른들은 녀석이 아버지를 죽인 게 아니냐며 떠들어댔지만 그것도 별반 와닿진 않았다. 아버지는 정략 결혼을 했던 어머니에게도 자주 손찌검을 하던 쓰레기였고, 제 씨에서 세포분열한 핏덩이에게도 좀처럼 아버지 노릇을 하지 않는 쓰레기였다. 그래도 이 건물에서 한 자리 꿰차고 있는 이유는── 일대가리는 유별나게 좋았나 보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니, 처음에는 그 사실 자체가 와닿지 않다가, 와닿았다가, 하얀 눈처럼 부숴져 대수가 아닌 일이 되었다.
 
:
-->요는 나만 이곳에 남겨졌다는 거지. 이젠 낙도 없이 떨어질 일만 남기고. 능력이 발현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내 취급이 많이 변질되었다. 어느 날은 쥐는 모든 것들에 외력으로 인한 손자국이 남고, 어느 날은 반사 신경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고, 어느 날은 떨어진 샹들리에가 유독 느리게 보여서 그 아래서 직원을 구했다. 그랬다니 의심에서 천천히 사실이 되었다. 안 그래도 내가 직계인 것을 마뜩찮아 했던 주주들은 그 사실을 미친듯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고, 두 눈이 무안해지는 일이 많아졌다.{{brbr|18}}<!--
:요는 나만 이곳에 남겨졌다는 거지. 이젠 낙도 없이 떨어질 일만 남기고. 능력이 발현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내 취급이 많이 변질되었다. 어느 날은 쥐는 모든 것들에 외력으로 인한 손자국이 남고, 어느 날은 반사 신경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고, 어느 날은 떨어진 샹들리에가 유독 느리게 보여서 그 아래서 직원을 구했다. 그랬다니 의심에서 천천히 사실이 되었다. 안 그래도 내가 직계인 것을 마뜩찮아 했던 주주들은 그 사실을 미친듯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고, 두 눈이 무안해지는 일이 많아졌다.
 
:
-->문득 생각이 들었다.{{brbr|18}}<!--
:문득 생각이 들었다.
 
:
-->나도 형처럼 사라지는 건가?{{brbr|18}}<!--
:나도 형처럼 사라지는 건가?
 
:
-->그리 생각할 때 내 조부는 그 결정을 따르지 않고 나를 품기로 결정했다. 누구나 그쯤에서는 호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조부가 생각한 방향은 달랐다. 그는 나를 “수단”으로서 사용했다. 아니, 원래도 그 이상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능력자라는 이유로 그것을 드러내도 당연시되는 양, 나는…….{{brbr|18}}<!--
:그리 생각할 때 내 조부는 그 결정을 따르지 않고 나를 품기로 결정했다. 누구나 그쯤에서는 호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조부가 생각한 방향은 달랐다. 그는 나를 “수단”으로서 사용했다. 아니, 원래도 그 이상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능력자라는 이유로 그것을 드러내도 당연시되는 양, 나는…….
 
:
-->회사 내에서 훌륭한 표본이자 매출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딱히 내 기분이나 지위를 들어올리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조부에겐 다른 이에게 회사를 넘기지 않아도 될 좋은 명분이 되었다.{{brbr|18}}<!--
:회사 내에서 훌륭한 표본이자 매출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딱히 내 기분이나 지위를 들어올리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조부에겐 다른 이에게 회사를 넘기지 않아도 될 좋은 명분이 되었다.
 
:
-->그러다 칠성재단이 부상했다. 그들은 급박해져 어린 나를 탈수기에 돌리듯 계속해서 측정을 거듭했고, 일이 풀리지 않을 시엔 정서적 학대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무언가를 주사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여러 선을 몸에 감고 속력에 느려질 때면 강한 저주파를 가해서 통각을 준다던가. 일차원적으로 때린다던가. 식상하게 골프채를 가져온다던가. 지들이 멍청해서 닦이는 걸 나한테 분이나 푼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쳐맞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곧잘 맞은 만큼 돌려주었다.{{brbr|18}}<!--
:그러다 칠성재단이 부상했다. 그들은 급박해져 어린 나를 탈수기에 돌리듯 계속해서 측정을 거듭했고, 일이 풀리지 않을 시엔 정서적 학대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무언가를 주사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여러 선을 몸에 감고 속력에 느려질 때면 강한 저주파를 가해서 통각을 준다던가. 일차원적으로 때린다던가. 식상하게 골프채를 가져온다던가. 지들이 멍청해서 닦이는 걸 나한테 분이나 푼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쳐맞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곧잘 맞은 만큼 돌려주었다.
 
:
-->하지만, 그러다 조부가 들어와서 나를 가만히 바라볼 때면…… 나는 싸우다가도 모든 것을 멈추었다. 이상하게 식은 땀이 지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파블로프였으며, 나는 개였던 것 같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brbr|18}}<!--
:하지만, 그러다 조부가 들어와서 나를 가만히 바라볼 때면…… 나는 싸우다가도 모든 것을 멈추었다. 이상하게 식은 땀이 지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파블로프였으며, 나는 개였던 것 같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
-->그래서 하루는 밖으로 도망쳤다. 무계획. 무대책. 발 아래 밑창도 없이 맨 것으로.{{brbr|18}}<!--
:그래서 하루는 밖으로 도망쳤다. 무계획. 무대책. 발 아래 밑창도 없이 맨 것으로.
 
:
-->130BPM<br><!--
:130BPM
-->140BPM<br><!--
:140BPM
-->150BPM{{brbr|18}}<!--
:150BPM
 
:
-->──그리도 빠를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뛰어도 항상 제자리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풍경을 가장 많이 바꾸는 것은 도망이었다.{{brbr|18}}<!--
:──그리도 빠를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뛰어도 항상 제자리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풍경을 가장 많이 바꾸는 것은 도망이었다.
 
:
-->며칠이고 쉬고 뛰기를 반복했다. 시를 쥐 잡듯 돌아다녔다. 족척은 밑창이 없는 것도 모자라 피부도 모자라지기 시작했다. 따끔거리고, 아프고, 아팠는데. 좋았다.{{brbr|18}}<!--
:며칠이고 쉬고 뛰기를 반복했다. 시를 쥐 잡듯 돌아다녔다. 족척은 밑창이 없는 것도 모자라 피부도 모자라지기 시작했다. 따끔거리고, 아프고, 아팠는데. 좋았다.
 
:
-->명료한 목표가 있었다. 형. 사라진 형을 찾겠다고 시 전역을 수소문하고 돌아다녔고, 나를 찾는 눈들을 피해다녔다. 밖에서 자는 일이 조금 힘겨워질 무렵에서야 겨우 한 문 앞에 도달했다. 붉은 눈의 소년을 보았다고. 그게 기억에 남을 정도라면 아마도 형일 것이라고. 형이라면 나와 같은 처지일 테니까,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나를 저 안에서 꺼내줄 것이라고.{{brbr|18}}<!--
:명료한 목표가 있었다. 형. 사라진 형을 찾겠다고 시 전역을 수소문하고 돌아다녔고, 나를 찾는 눈들을 피해다녔다. 밖에서 자는 일이 조금 힘겨워질 무렵에서야 겨우 한 문 앞에 도달했다. 붉은 눈의 소년을 보았다고. 그게 기억에 남을 정도라면 아마도 형일 것이라고. 형이라면 나와 같은 처지일 테니까,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나를 저 안에서 꺼내줄 것이라고.
 
:
-->똑똑. 아이는 문을 두드렸다.{{brbr|18}}<!--
:똑똑. 아이는 문을 두드렸다.
 
:
-->끼익. 모르는 갈색 머리의 여자 아이가 문을 열었다.{{brbr|18}}<!--
:끼익. 모르는 갈색 머리의 여자 아이가 문을 열었다.
 
:
-->“누구……?”{{brbr|18}}<!--
:“누구……?”
 
:
-->그 애는 전신이 멍투성이였고 성한 구석이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일 주기로 어디선가 맞고 있을 것이라는 게 짐작되었다. 위화감이 느껴졌다.{{brbr|18}}<!--
:그 애는 전신이 멍투성이였고 성한 구석이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일 주기로 어디선가 맞고 있을 것이라는 게 짐작되었다. 위화감이 느껴졌다.
 
:
-->“저, 그, 안녕하세요. 혹시…… 허억. 여기, 황민, 황민호…… 있, 나요……?”{{brbr|18}}<!--
:“저, 그, 안녕하세요. 혹시…… 허억. 여기, 황민, 황민호…… 있, 나요……?”
 
:
-->“민호……? 민호야. 누가 널 부른, 앗.”{{brbr|18}}<!--
:“민호……? 민호야. 누가 널 부른, 앗.”
 
:
-->뒤를 돌아보다가 다가온 소년의 몸과 부딪힌다.{{brbr|18}}<!--
:뒤를 돌아보다가 다가온 소년의 몸과 부딪힌다.
 
:
-->그때 문틈에서 한 명의 형상이 더 드러났다. 익숙하게 닮은 얼굴, 색채만 다른 눈, 같은 종자에서 드러난 것이 분명한 둘을 여자아이는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만난 형은 여자아이의 꼴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놀란 기색 하나가 없었다. 곧잘 웃던 그때와는 무언가가 달라진 것만 같았다. 그것이 두 번째 위화감이다.{{brbr|18}}<!--
:그때 문틈에서 한 명의 형상이 더 드러났다. 익숙하게 닮은 얼굴, 색채만 다른 눈, 같은 종자에서 드러난 것이 분명한 둘을 여자아이는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만난 형은 여자아이의 꼴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놀란 기색 하나가 없었다. 곧잘 웃던 그때와는 무언가가 달라진 것만 같았다. 그것이 두 번째 위화감이다.
 
:
-->그래도 아직 희망 또한 있었다. 그래도 함께라면 조금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brbr|18}}<!--
:그래도 아직 희망 또한 있었다. 그래도 함께라면 조금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
-->나는 말했다.{{brbr|18}}<!--
:나는 말했다.
 
:
-->“미, 민호 형! 나 하민이야. 나 기억하지!? 나 좀 도와줘. 갑자기 몸에서 빛이 나고, 빨라지고, 이상해졌어. 어, 엄마까지도 날, 아니 전부, 날 전부 이상한 눈으로 보고…… 형은 알잖아, 이거…… 응?”{{brbr|18}}<!--
:“미, 민호 형! 나 하민이야. 나 기억하지!? 나 좀 도와줘. 갑자기 몸에서 빛이 나고, 빨라지고, 이상해졌어. 어, 엄마까지도 날, 아니 전부, 날 전부 이상한 눈으로 보고…… 형은 알잖아, 이거…… 응?”
 
:
-->설명이 잘 나오지 않았다. 쏟아지는 설움이 언어란 그릇을 깨뜨렸다. 목이 매이고, 눈이 뜨거워졌다. 나는 최대한 그를 동하게 할 말을 하나밖에 떠올리지 못했다.{{brbr|18}}<!--
:설명이 잘 나오지 않았다. 쏟아지는 설움이 언어란 그릇을 깨뜨렸다. 목이 매이고, 눈이 뜨거워졌다. 나는 최대한 그를 동하게 할 말을 하나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
-->“……나, 나, 너무 힘들었어…….”{{brbr|18}}<!--
:“……나, 나, 너무 힘들었어…….”
 
:
-->그리고 적막이 흘렀다.{{brbr|18}}<!--
:그리고 적막이 흘렀다.
 
:
-->“…….”{{brbr|18}}<!--
:“…….”
 
:
-->“…….”{{brbr|18}}<!--
:“…….”
 
:
-->“……민호야. 곧 아저씨가 올 거야. 그 애, …….”{{brbr|18}}<!--
:“……민호야. 곧 아저씨가 올 거야. 그 애, …….”
 
:
-->“알아. 먼저 들어가서 애들이랑 있어.”{{brbr|18}}<!--
:“알아. 먼저 들어가서 애들이랑 있어.”
 
:
-->“……응.”{{brbr|18}}<!--
:“……응.”
 
:
-->앞서 문 틈새로 다시 들어간다.{{brbr|18}}<!--
:앞서 문 틈새로 다시 들어간다.
 
:
-->다시 생각해보면 그 말은, 그때 그들에게도 파블로프가 있었다는 뜻이었을 텐데. 형이 내 눈물을 닦아주며 고개를 올리고──{{brbr|18}}<!--
:다시 생각해보면 그 말은, 그때 그들에게도 파블로프가 있었다는 뜻이었을 텐데. 형이 내 눈물을 닦아주며 고개를 올리고──
 
:
-->눈을 마주쳤다.{{brbr|18}}<!--
:눈을 마주쳤다.
 
:
-->''{{c|gray|*마스터 마인드 발동.*}}''{{brbr|18}}<!--
:''{{c|gray|*마스터 마인드 발동.*}}''
 
:
-->“잘 들어, 하민아. 난 널 도와줄 수 없어.”{{brbr|18}}<!--
:“잘 들어, 하민아. 난 널 도와줄 수 없어.”
 
:
-->“……?”{{brbr|18}}<!--
:“……?”
 
:
-->“그곳에서 빼주지 않을 거라고.”<br><!--
:“그곳에서 빼주지 않을 거라고.”
-->“그 집으로 돌아가서, 칼 박힌 방석 위에 염치 불구하고 앉아.”{{brbr|18}}<!--
:“그 집으로 돌아가서, 칼 박힌 방석 위에 염치 불구하고 앉아.”
 
:
-->단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박혀들기 시작한다.{{brbr|18}}<!--
:단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박혀들기 시작한다.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brbr|18}}<!--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평범하진 못할 테지만 최대한 평범하게 살아.”{{brbr|18}}<!--
:“평범하진 못할 테지만 최대한 평범하게 살아.”
 
:
-->“지금 뭐하는 거냐고!!!”{{brbr|18}}<!--
:“지금 뭐하는 거냐고!!!”
 
:
-->“괴물 취급을 받으면서도 평생 엇나갈 생각일랑 말고.”<br><!--
:“괴물 취급을 받으면서도 평생 엇나갈 생각일랑 말고.”
-->“알아들었지?”{{brbr|18}}<!--
:“알아들었지?”
 
:
-->“황민호────!!!!!”{{brbr|18}}<!--
:“황민호────!!!!!”
 
:
-->“스스로 살 수 있을 때까지.”<br><!--
:“스스로 살 수 있을 때까지.”
-->“절대, 그 집을, 떠나지 마.”{{brbr|18}}<!--
:“절대, 그 집을, 떠나지 마.”
 
: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brbr|18}}<!--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
-->나는 어느새 집으로 돌아와 있었고, 돌아온 그 날은 죽도록 맞아서 오른쪽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그리고.{{brbr|18}}<!--
:나는 어느새 집으로 돌아와 있었고, 돌아온 그 날은 죽도록 맞아서 오른쪽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그리고.
 
:
-->그 날 이후로 집을 나가는 것은 포기했다.{{brbr|18}}<!--
:그 날 이후로 집을 나가는 것은 포기했다.
 
:
-->''{{c|gray|*……메일이 도착했습니다!*}}''{{brbr|18}}<!--
:''{{c|gray|*……메일이 도착했습니다!*}}''
 
:
-->조부가 학교에 가라고 교복을 사오기 전까진.<!--
:조부가 학교에 가라고 교복을 사오기 전까진.
 
:
 
:<div style="margin: 30px 0; text-align: center;">*</div>
 
:
 
:''{{c|gray|*건물이 하릴없이 무너집니다…….*}}''
--><div style="margin: 30px 0; text-align: center;">*</div><!--
:
 
:너는 이 광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나는 널 미워하지 못한다.
 
:
-->''{{c|gray|*건물이 하릴없이 무너집니다…….*}}''{{brbr|18}}<!--
:하지만 동시에, 아직 용서하지도 못했다.
 
{{소설/끝}}
-->너는 이 광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brbr|18}}<!--
 
-->나는 널 미워하지 못한다.{{brbr|18}}<!--
 
-->하지만 동시에, 아직 용서하지도 못했다.<!--
-->{{소설/끝}}


== 세 번째 파편 - [[백여운]] ==
== 세 번째 파편 - [[백여운]] ==
363번째 줄: 345번째 줄:


{{소설/시작|folding=on|id=memory-3}}
{{소설/시작|folding=on|id=memory-3}}
''추가 예정''
:''추가 예정''
{{소설/끝}}
{{소설/끝}}


370번째 줄: 352번째 줄:


{{소설/시작|folding=on|id=memory-4}}
{{소설/시작|folding=on|id=memory-4}}
''추가 예정''
:''추가 예정''
{{소설/끝}}
{{소설/끝}}


{{주의 가림막|folding=.|content=만일 이 화면이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면 페이지를 새로고침 하세요.}}
{{주의 가림막|folding=.|content=만일 이 화면이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면 페이지를 새로고침 하세요.}}

2024년 3월 29일 (금) 22:55 판

 이 문서는 과거의 파편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1부의 줄거리에 대한 내용은 칠성고등학교: First Children/줄거리 문서를, 2부의 줄거리에 대한 내용은 칠성고등학교: Second Chance/줄거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별 줄거리

개요

칠성고등학교
First Children · Second Chance
에피소드 목록
[ 펼치기 · 접기 ]
1부
칠성고등학교 입학식 능력 테스트 능력자 협회 견학 현장 실습 사건 수상한 초대장
첫 번째 아이들 놀이공원 대소동 학교 담력 테스트 조커 후송 작전★◆2 서하진 구출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진실 심연 속으로 뒤죽박죽 체인지■▲ 유성 폭격★◆2
2부
프롤로그 두근두근 학교 생활 스타디움 경연 수학여행
과거의 파편
김영희 백하민 백여운 백하연
[ 범례 ]
  • 스토리상 중요한 내용이 포함된 스토리 진행
  • 개화자가 등장한 스토리 진행
    • 2 등장한 개화자가 두 명 혹은 그 이상
  • 특정 러너의 개인 서사를 위한 스토리 진행
  • 이벤트성 스토리 진행
  • 파트가 나뉜 스토리 진행

과거의 파편이란?

Tip 07
다음 스토리 진행부터는 개인 에피소드 이해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캐릭터의 과거 비하인드 설정을 엿볼 수 있는 '과거의 파편'이 연재되기 시작합니다! 연재 차례가 된 능력자님에게 개인적으로 언질을 드릴 예정이며, 과거의 파편에 실을 숨겨진 설정이나 이야기, 실고 싶은 시기를 따로 정리하여 사전에 마련된 개인 공간에 써주시면 적극 반영해드립니다. 이와 같은 숨겨진 이야기, 설정은 총괄진에게 따로 확인 시켜주시지 않으면 스토리 진행에 녹여드리기 힘든 점 유념 부탁드립니다!ㅜㅜ 과거의 파편에 이야기가 어떻게 실리는지는 곧 연재될 첫 번째 파편을 참고해주세요!

각 문단에 있는 제목을 누르면 내용을 열람할 수 있다.

첫 번째 파편 - 김영희

과거의 파편 - 김영희

가짜 이름을 지어내 쓰기 시작했다.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이유가 없진 않았지만,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다 정신차리고 보니 그렇게 돼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기억이라는 것은 본디 오래 된 것일 수록 자취가 깊어져서. 돌이켜보자면.
“밖을 나돌아다니기나 하더니, 기어코 저런 애X끼를 싸지르고 와?”
이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조각이고,
“그땐 실수였다고 했잖아, 내가.”
“당신은 그게 지금 할 말이야?”
“그러는 당신도 내가 지워달랄 땐 안된다면서? 난 그래도 낳을 생각까진 없었어.”
나는 엄마나 아빠 따위의 두 글자를 입으로 부르기 전에 사생아라는 세 글자의 의미부터 익혀야 했다.
“안그래도 회사 애들 구설수 때문에 기자들이 하나라도 더 물어뜯으려고 눈에 불을 키고 뛰어다니던 땐데. 거기서 아내가 외도해서 이름 모를 X끼 애 뱄다고 광고해?”
내 이름은 석자도 아닌 한 글자였고, 선생들이 더러 아이들에게 내미는 자기소개카드 따위의 것들에 나는 성을 적어낼 란을 단 한 번도 채우지 못할 것이리라는 것. 사생아라는 세 글자가 내 이름 한 글자보다 더 많은 칸수를 차지했고, 고작 성조차 허락 받지 못한 이름따위보다 나를 자세히 피력하는 어휘였다. 그정도 의미였다.
“나라고 아무 생각 없이 지우자고 한 줄 알아? 이미지로 먹고사는 건 나야. 나도 각오하고 한 말이었다고. 애초에 그거 덮는 게 원래 당신 역할 아니었어?”
다행히 나는 날 때부터 더럽게도 약아빠졌었다. 그 시절의 나는 더하면 더했지 덜한 놈은 아니었어서. 나 자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제법 소질이 있었다. 물론 아직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충분치가 않아 실수도 적잖이 했다.
“그래서 내 아들인 양 임신 소식만 밝히고 조용히 잘 키웠잖아. 내가 이 정도로 참고 수습해준 것만 해도 당신은 감사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 뭐, 이젠 이능력? 하다 못해 그냥 애도 아니고 괴물 X끼야?”
어렸을 땐 바람이 손에 잡히는 그 느낌을 모두가 아는 줄 알았거든. 뭐든간 잘하는 걸 보여드리면 어필이 될 줄 알았다. 이러면 나를 사랑해주실 거야. 이러면 조금이라도 날 좋아해주실 거야. 그게 외려 더 안좋은 수였던 것도 모르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결국은 내가 하자는대로 지우게 해줬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던 거 아냐? 저런 이상한 능력 같은 게 딸려있으니 내 아들이라고 어디 내놓을 수도 없어, 이제.”
잘나가는 미모의 여배우였던 엄마. 걸출한 연예인이 가득한 기획사의 대표인 아빠. 사생아란 것도 덮어놓은 채 기껏 임신 소식 밝혀놓고, 이제 좀 이용해서 가정적인 이미지라도 만들어보려다가. 그나마도 이능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토픽이라 나는 마케팅 수단으로 쓰기도 글렀다고 했던가. 아홉쯤 한참을 집안 살림 다 박살내던 엄마가 나 붙잡고 울면서 저주를 퍼부을 때나 알았다. 그리고 그럴 때면.
“희야. 할미랑 책 읽을까?”
외할머니가 어김 없이 내 귀를 막고서 작게 속삭이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할머니는 좀 웃긴 사람이었다. 저멀리 해가 주저앉고 창밖에서 기어들어오던 땅거미가 잦아들기 시작할 쯤이면, 할머니는 늘 열 살도 채 안 된 아이를 마르고 볼품 없어진 다리 위에 앉혀놓았다. 그리고선 동화를 읽어주다가도 고리타분한 본인 인생관을 관련지어 사이비 교주 마냥 설파하곤 했다.
“희야. 세상을 살다보면 모진 풍파가 많단다.”
할머니. 나 이제 고작 아홉이야.
“물론 할미는 모든 안 좋은 시련과 재난이 너를 피해갔으면 해. 하지만 녹록치 않을 거란다.”
할머니.
“그럴 때면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언젠가는 지나갈 일인 게야.”
원래 이 나이쯤 애들은 그런 말 이해 못 한다니까.
“너는 사랑 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아이야. 그런 세상 가운데서는 정과 사랑만이 살아남는단다.”
아니,
“그것도 힘들 성 싶으면 기억하려무나. 할미는 희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변치 않고 사랑할 사람이 또 생겼다고.”
하……….
대개 이런 식이었다. 나는 기껏해야 겨울을 아홉 번밖에 지나지 않은 어린 애였으나, 할머니의 이야기들이 뻔하고 현실적으로 도움 되지 않는 현학적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따분한 할망구, 분명 젊을 적에 종교를 하나 만들었으면 떼돈 벌었을 터다.
할머니는 그 이후로도 자신만의 종교를 누누히 내게 전하곤 했다. 봄은 희망과 기대의 만개라는 둥 그런 것들. 노부는 춘계에 벚꽃과 개나리를 믿었고, 하계에는 새와 맨드라미를 믿었으며, 추계에는 단풍과 낙엽, 동계에는 눈을 믿었다. 그리고 사계 동안에는 인연과 정, 사람을 믿는다고 내게 속삭이곤 했다. 그것들도 죄 알았다. 미련하고 의미 없는 소리란 거. 목적 없는 다정은 아직 낯설고 시렸다.
그래도 주름진 그 손이 내 귓등을 푹 눌러덮던 감각과, 그 온기와, 늙고 힘 없는 말씨가 그리 믿음직스러웠던 건, 약아빠졌어봐야 나는 고작 열 번도 겨울을 나지 않은 어린 애였으니까. 탓에 나는 그런 생각도 했다. 어쩌면 할머니의 미련하고 한심하며, 따분한 인생관을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조금씩 그것을 믿어가기 시작했었다.
꿋꿋이 눈 밖에 난 사생아를 감싸고 도는 할머니를 엄마와 아빠는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어쨌든 나는 노부의 보살핌 아래 자랐다. 그러니까, 미련하고 따분한 인생관을 빙자한 종교 설파 아래서.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랑비에 옷가지가 젖어들 듯 나는 첫 종교를 얻었다.
그리고 열 살 하고도 몇이 되던 해의 봄, 나는 개종했다.
외가에 다녀오는 길이었는지, 그즈음엔 아마 부부가 할머니와 나를 태운 채 빗속을 뚫으며 산자락을 운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천둥이 땅을 때리고 비가 차창을 거세게 두드리는 것이, 실은 고약한 겁쟁이었던 나는 할머니 품속에 안겨 달달 떨고 있었다.
“괜찮다, 얘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차 안에서 새카만 하늘로부터 숨어든 작은 손을 붙잡고, 할머니는 계속 속삭이셨다.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하고.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대로 할머니의 고리타분한 그것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도로에서 미끄러진 차체가 가드레일을 부수고 산 아래로 굴러떨어질 쯤에 그것을 확신했다.
할머니.
피가 흥건해서 앞이 잘 안 보였다. 그래도 알음알이로 반쯤 찢어진 차체와, 커다란 나무 밑동에 쳐박힌 할머니는 알아볼 수 있었다. 바르작거리던 노파의 몸은 몇 마디 안타까운 중얼임 끝에 멎었다.
할머니. 정신 차려.
노부의 손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고 반쯤 빳빳해져있었다. 나는 무슨 추레한 울음 소리로 흐느끼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울었다. 그 밖의 것은 그리 선명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희야. 아가.”
“자책 말아라. 모두 네 탓이 아니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아가.”
다만 마지막까지 그 노친네가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라는 둥 개소리만 짓껄이다 간 것 정도는 기억한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만히 서 있으면 머리를 한껏 적셨던 피를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뒤섞여 씻어내려갔다. 내가 뭘 바랐더라. 그렇게 큰 걸 바라진 않았던 것 같은데. 치묵색의 하늘이 꼭 뒤틀린 것마냥 보여 무서웠다. 먹색으로 물든 하늘을 손으로 가려봤다. 그래도 비바람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희야, 희야…!! 여기다. 여기.”
무섭네. 하늘 말이야. 근데 이제 손이 떨리진 않아. 있잖아, 할머니. 할머니는 틀렸어. 와중에 차체 아래 깔려있던 부부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래, 여기… 응? 아빠랑 엄마야. 이미 죽은 노친네나 붙잡고 멍하니 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좀 도와줘, 착하지.”
고동소리가 들린다. 진심 같은 게 무슨 의미야. 결국 다 이 꼴이지. 이럴 줄 알았어, 나는. 못내 광증이 도졌고, 가늘게 휜 눈으로 자못 아름답게 웃었다.
“…빨리!!!!!!!!! 우릴 죽일 셈이야? 우리 말고 너를 보살펴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너를 사랑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이리 와, 어서!!”
나도 알아요. 엄마, 아빠. 나도 이제 희망이니 기대니 이딴 의미 없는 것들에 삶의 궤도가 무력하게 흔들리는 건 넌더리가 나요.
“그래, 이리 와. 옳지………?”
넌더리가 나서, 그래서.
“자, 잠깐만. 너, 지금 뭐하는…!!!!!”
그래서 이제 기대 않으려고.
*
속보입니다. 배우 도예린 씨 일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인데요. 도예린 배우의 모친과 아들을 태우고 산길을 주행 중이던 도예린 씨 부부의 차량이 산 아래로 떨어져, 자녀 1명을 제외한 일가 3명이 전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톱스타 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던 도예린 씨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추모를…
*
능력을 쓰는 건 생각보다 쉽고 간단했다. 희미하게나마 붙들어져있던 부부의 숨을 손수 마무리해드렸고, 조문객 없는 상을 치룬 나는 빌어쳐먹게도 질긴 내 숨을 고르며 근처의 보육원에 들어갔다. 나는 더 이상 삶에 어떤 희망도 기대도 기울일 수 없었다. 당신의 종교는 틀렸고, 봄은 내게 우울과 박탈의 만개였다. 당신은 인연과 사람을 신봉했으나 나는 허무와 염세로 개종했다. 나는 그 이후로 가짜 이름을 지어내서 쓰기 시작했다.
위작의 미소를 기워내면 살아남는 것도 그리 어렵잖았다. 정을 팔면 따라오는 것은 많았다. 의미도 없는 짓거리에 애쓰기보단 정이고 뭐고 가볍게 흘리는 게 맞는 줄 알았다. 보육원에 들어가는 해부터 몇 년의 공백 후 재회한 소꿉친구는 나를 낯설어했으나, 믿지 않았다. 친한 후배는 내 망가진 인생 꼬라지를 알아보는 듯해, 역린을 긁고 몇 대 얻어맞아줬다. 비행 청소년이니 뭐니 하는 낙인 같은 건 아무렴 상관 없었고. 그냥 마음 가는대로 피곤할 일 없이 살았다.
그래, 그렇게 살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지어도 되는 거잖아. 집.”
“뭐?”
…분명히 그렇게 살았었는데.
[ 대화 형식으로 보기 ]
김영희
가짜 이름을 지어내 쓰기 시작했다.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이유가 없진 않았지만,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다 정신차리고 보니 그렇게 돼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기억이라는 것은 본디 오래 된 것일 수록 자취가 깊어져서. 돌이켜보자면.

"밖을 나돌아다니기나 하더니, 기어코 저런 애X끼를 싸지르고 와?"
김영희
이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조각이고,

"그땐 실수였다고 했잖아, 내가."
"당신은 그게 지금 할 말이야?"
"그러는 당신도 내가 지워달랄 땐 안된다면서? 난 그래도 낳을 생각까진 없었어."
김영희
나는 엄마나 아빠 따위의 두 글자를 입으로 부르기 전에 사생아라는 세 글자의 의미부터 익혀야 했다.

"안그래도 회사 애들 구설수 때문에 기자들이 하나라도 더 물어뜯으려고 눈에 불을 키고 뛰어다니던 땐데. 거기서 아내가 외도해서 이름 모를 X끼 애 뱄다고 광고해?"
김영희
내 이름은 석자도 아닌 한 글자였고, 선생들이 더러 아이들에게 내미는 자기소개카드 따위의 것들에 나는 성을 적어낼 란을 단 한 번도 채우지 못할 것이리라는 것. 사생아라는 세 글자가 내 이름 한 글자보다 더 많은 칸수를 차지했고, 고작 성조차 허락 받지 못한 이름따위보다 나를 자세히 피력하는 어휘였다. 그정도 의미였다.

"나라고 아무 생각 없이 지우자고 한 줄 알아? 이미지로 먹고사는 건 나야. 나도 각오하고 한 말이었다고. 애초에 그거 덮는 게 원래 당신 역할 아니었어?"
김영희
다행히 나는 날 때부터 더럽게도 약아빠졌었다. 그 시절의 나는 더하면 더했지 덜한 놈은 아니었어서. 나 자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제법 소질이 있었다. 물론 아직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충분치가 않아 실수도 적잖이 했다.

"그래서 내 아들인 양 임신 소식만 밝히고 조용히 잘 키웠잖아. 내가 이 정도로 참고 수습해준 것만 해도 당신은 감사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 뭐, 이젠 이능력? 하다 못해 그냥 애도 아니고 괴물 X끼야?"
김영희
어렸을 땐 바람이 손에 잡히는 그 느낌을 모두가 아는 줄 알았거든. 뭐든간 잘하는 걸 보여드리면 어필이 될 줄 알았다. 이러면 나를 사랑해주실 거야. 이러면 조금이라도 날 좋아해주실 거야. 그게 외려 더 안좋은 수였던 것도 모르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결국은 내가 하자는대로 지우게 해줬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던 거 아냐? 저런 이상한 능력 같은 게 딸려있으니 내 아들이라고 어디 내놓을 수도 없어, 이제."
김영희
잘나가는 미모의 여배우였던 엄마. 걸출한 연예인이 가득한 기획사의 대표인 아빠. 사생아란 것도 덮어놓은 채 기껏 임신 소식 밝혀놓고, 이제 좀 이용해서 가정적인 이미지라도 만들어보려다가. 그나마도 이능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토픽이라 나는 마케팅 수단으로 쓰기도 글렀다고 했던가. 아홉쯤 한참을 집안 살림 다 박살내던 엄마가 나 붙잡고 울면서 저주를 퍼부을 때나 알았다. 그리고 그럴 때면.

"희야. 할미랑 책 읽을까?"
김영희
외할머니가 어김 없이 내 귀를 막고서 작게 속삭이곤 했다.
김영희
솔직히 말하면 할머니는 좀 웃긴 사람이었다. 저멀리 해가 주저앉고 창밖에서 기어들어오던 땅거미가 잦아들기 시작할 쯤이면, 할머니는 늘 열 살도 채 안 된 아이를 마르고 볼품 없어진 다리 위에 앉혀놓았다. 그리고선 동화를 읽어주다가도 고리타분한 본인 인생관을 관련지어 사이비 교주 마냥 설파하곤 했다.

"희야. 세상을 살다보면 모진 풍파가 많단다."
김영희
할머니. 나 이제 고작 아홉이야.

"물론 할미는 모든 안 좋은 시련과 재난이 너를 피해갔으면 해. 하지만 녹록치 않을 거란다."
김영희
할머니.

"그럴 때면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언젠가는 지나갈 일인 게야."
김영희
원래 이 나이쯤 애들은 그런 말 이해 못 한다니까.

"너는 사랑 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아이야. 그런 세상 가운데서는 정과 사랑만이 살아남는단다."
김영희
아니,

"그것도 힘들 성 싶으면 기억하려무나. 할미는 희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변치 않고 사랑할 사람이 또 생겼다고."
김영희
하……….
김영희
대개 이런 식이었다. 나는 기껏해야 겨울을 아홉 번밖에 지나지 않은 어린 애였으나, 할머니의 이야기들이 뻔하고 현실적으로 도움 되지 않는 현학적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따분한 할망구, 분명 젊을 적에 종교를 하나 만들었으면 떼돈 벌었을 터다.
김영희
할머니는 그 이후로도 자신만의 종교를 누누히 내게 전하곤 했다. 봄은 희망과 기대의 만개라는 둥 그런 것들. 노부는 춘계에 벚꽃과 개나리를 믿었고, 하계에는 새와 맨드라미를 믿었으며, 추계에는 단풍과 낙엽, 동계에는 눈을 믿었다. 그리고 사계 동안에는 인연과 정, 사람을 믿는다고 내게 속삭이곤 했다. 그것들도 죄 알았다. 미련하고 의미 없는 소리란 거. 목적 없는 다정은 아직 낯설고 시렸다.
김영희
그래도 주름진 그 손이 내 귓등을 푹 눌러덮던 감각과, 그 온기와, 늙고 힘 없는 말씨가 그리 믿음직스러웠던 건, 약아빠졌어봐야 나는 고작 열 번도 겨울을 나지 않은 어린 애였으니까. 탓에 나는 그런 생각도 했다. 어쩌면 할머니의 미련하고 한심하며, 따분한 인생관을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조금씩 그것을 믿어가기 시작했었다.
김영희
꿋꿋이 눈 밖에 난 사생아를 감싸고 도는 할머니를 엄마와 아빠는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어쨌든 나는 노부의 보살핌 아래 자랐다. 그러니까, 미련하고 따분한 인생관을 빙자한 종교 설파 아래서.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랑비에 옷가지가 젖어들 듯 나는 첫 종교를 얻었다.
김영희
그리고 열 살 하고도 몇이 되던 해의 봄, 나는 개종했다.
김영희
외가에 다녀오는 길이었는지, 그즈음엔 아마 부부가 할머니와 나를 태운 채 빗속을 뚫으며 산자락을 운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천둥이 땅을 때리고 비가 차창을 거세게 두드리는 것이, 실은 고약한 겁쟁이었던 나는 할머니 품속에 안겨 달달 떨고 있었다.

"괜찮다, 얘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김영희
차 안에서 새카만 하늘로부터 숨어든 작은 손을 붙잡고, 할머니는 계속 속삭이셨다.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하고.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대로 할머니의 고리타분한 그것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도로에서 미끄러진 차체가 가드레일을 부수고 산 아래로 굴러떨어질 쯤에 그것을 확신했다.
김영희
할머니.
김영희
피가 흥건해서 앞이 잘 안 보였다. 그래도 알음알이로 반쯤 찢어진 차체와, 커다란 나무 밑동에 쳐박힌 할머니는 알아볼 수 있었다. 바르작거리던 노파의 몸은 몇 마디 안타까운 중얼임 끝에 멎었다.
김영희
할머니. 정신 차려.
김영희
노부의 손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고 반쯤 빳빳해져있었다. 나는 무슨 추레한 울음 소리로 흐느끼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울었다. 그 밖의 것은 그리 선명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희야. 아가."
"자책 말아라. 모두 네 탓이 아니야."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아라, 아가."
김영희
다만 마지막까지 그 노친네가 바람 소리를 길게 듣지 말라는 둥 개소리만 짓껄이다 간 것 정도는 기억한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만히 서 있으면 머리를 한껏 적셨던 피를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뒤섞여 씻어내려갔다. 내가 뭘 바랐더라. 그렇게 큰 걸 바라진 않았던 것 같은데. 치묵색의 하늘이 꼭 뒤틀린 것마냥 보여 무서웠다. 먹색으로 물든 하늘을 손으로 가려봤다. 그래도 비바람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희야, 희…!! 여기다. 여기."
김영희
무섭네. 하늘 말이야. 근데 이제 손이 떨리진 않아. 있잖아, 할머니. 할머니는 틀렸어. 와중에 차체 아래 깔려있던 부부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래, 여기… 응? 아빠랑 엄마야. 이미 죽은 노친네나 붙잡고 멍하니 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좀 도와줘, 착하지."
김영희
고동소리가 들린다. 진심 같은 게 무슨 의미야. 결국 다 이 꼴이지. 이럴 줄 알았어, 나는. 못내 광증이 도졌고, 가늘게 휜 눈으로 자못 아름답게 웃었다.

"…빨리!!!!!!!!! 우릴 죽일 셈이야? 우리 말고 너를 보살펴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너를 사랑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이리 와, 어서!!"
김영희
나도 알아요. 엄마, 아빠. 나도 이제 희망이니 기대니 이딴 의미 없는 것들에 삶의 궤도가 무력하게 흔들리는 건 넌더리가 나요.

"그래, 이리 와. 옳지………?"
"자, 잠깐만. 너, 지금 뭐하는…!!!!!"
김영희
그래서 이제 기대 않으려고.
 

속보입니다. 배우 도예린 씨 일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인데요. 도예린 배우의 모친과 아들을 태우고 산길을 주행 중이던 도예린 씨 부부의 차량이 산 아래로 떨어져, 자녀 1명을 제외한 일가 3명이 전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톱스타 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던 도예린 씨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추모를…
 
김영희
능력을 쓰는 건 생각보다 쉽고 간단했다. 희미하게나마 붙들어져있던 부부의 숨을 손수 마무리해드렸고, 조문객 없는 상을 치룬 나는 빌어쳐먹게도 질긴 내 숨을 고르며 근처의 보육원에 들어갔다. 나는 더 이상 삶에 어떤 희망도 기대도 기울일 수 없었다. 당신의 종교는 틀렸고, 봄은 내게 우울과 박탈의 만개였다. 당신은 인연과 사람을 신봉했으나 나는 허무와 염세로 개종했다. 나는 그 이후로 가짜 이름을 지어내서 쓰기 시작했다.
김영희
위작의 미소를 기워내면 살아남는 것도 그리 어렵잖았다. 정을 팔면 따라오는 것은 많았다. 의미도 없는 짓거리에 애쓰기보단 정이고 뭐고 가볍게 흘리는 게 맞는 줄 알았다. 보육원에 들어가는 해부터 몇 년의 공백 후 재회한 소꿉친구는 나를 낯설어했으나, 믿지 않았다. 친한 후배는 내 망가진 인생 꼬라지를 알아보는 듯해, 역린을 긁고 몇 대 얻어맞아줬다. 비행 청소년이니 뭐니 하는 낙인 같은 건 아무렴 상관 없었고. 그냥 마음 가는대로 피곤할 일 없이 살았다.
김영희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살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지어도 되는 거잖아. 집."
"뭐?"
김영희
…분명히 그렇게 살았었는데.

두 번째 파편 - 백하민

과거의 파편 - 백하민

100BPM
110BPM
120BPM
거기까지. 측정용 트레드밀이 또 망가졌다. 발 닿은 곳의 고무는 언제 고체였냐는 양 녹아있고, 몸에서는 김이 샌다. 접목되지 않은 기술의 한계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제 아홉이 된 나는 생각했다. ‘이딴 걸로는 안 될 텐데.’ 투명하고 공기만 채워져있는 수족관 안의 미확인 생명체처럼 보이는 나를 관찰하는 이 사람들은 항상 애를 쓰고 있다.
“기계 고장입니다.”
“망할…… 기계 내구도에 얼마를 들였는데 또 이래!!”
그들은 늘 화가 나있었다. 그리고 그 등판 너머로는, 기반은 무표정이지만 주름의 능선까지 합하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를 내 조부가 있었다. 측정이 끝나고 내게 굽신굽신 수건을 건네고, 나는 나가서, 수업을 듣는다. 조금 정을 붙이려고 했던 선생들도 과목마다 얼굴이 바뀌어 있다. 이 또한 이능을 사람 취급 않는 조부의 휼계다.
하얀 방. 하얀 침대. 하얀 베개. 내가 주어진 것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비싼 섬유의 비싼 물건들. 가치를 느끼지 못했지만 그 색에는 애정을 가졌다. 이 속에서 검은 저는 꼭 이물인 것만 같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것을 잊지 말라고 일부러 이리 고른 탓일까, 그리도 생각하는 것이 피해망상의 전조나 다름이 없었다. 또 눕고 눈을 감으면 똑같은 내일일 것이다. 나는 유복하다. 하지만 땅에서 달려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형”이 있었을 적에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함께 눈 위를 뛰어다녔다. 능력이 발현하기 전 엄마가 내게 또래 친구가 필요할 것이라 아버지에게 이를 때면 아버지는 항상 눈이 붉고, 나와 닮아있는 형을 데려오곤 했었다. 그때는 녀석이 형인 이유는 그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것으로 알았지만 머리가 크고 알고 보면 죄 우리 아버지가 쓰레기인 증빙 서류에 지나지 않았다.
형은 아빠의 사망과 동시에 어느샌가 없어졌다. 직계의 후계자인 아버지가 사망함과 동시에 독자(형은 애초에 상속 계열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았다)인 내가 덜컥 후계자가 되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이능을 발현했댄다. 크게 와닿진 않았다. 그때까지는 직경이 먼, 진원이 먼 이야기였거든.
어른들은 녀석이 아버지를 죽인 게 아니냐며 떠들어댔지만 그것도 별반 와닿진 않았다. 아버지는 정략 결혼을 했던 어머니에게도 자주 손찌검을 하던 쓰레기였고, 제 씨에서 세포분열한 핏덩이에게도 좀처럼 아버지 노릇을 하지 않는 쓰레기였다. 그래도 이 건물에서 한 자리 꿰차고 있는 이유는── 일대가리는 유별나게 좋았나 보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니, 처음에는 그 사실 자체가 와닿지 않다가, 와닿았다가, 하얀 눈처럼 부숴져 대수가 아닌 일이 되었다.
요는 나만 이곳에 남겨졌다는 거지. 이젠 낙도 없이 떨어질 일만 남기고. 능력이 발현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내 취급이 많이 변질되었다. 어느 날은 쥐는 모든 것들에 외력으로 인한 손자국이 남고, 어느 날은 반사 신경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고, 어느 날은 떨어진 샹들리에가 유독 느리게 보여서 그 아래서 직원을 구했다. 그랬다니 의심에서 천천히 사실이 되었다. 안 그래도 내가 직계인 것을 마뜩찮아 했던 주주들은 그 사실을 미친듯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고, 두 눈이 무안해지는 일이 많아졌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도 형처럼 사라지는 건가?
그리 생각할 때 내 조부는 그 결정을 따르지 않고 나를 품기로 결정했다. 누구나 그쯤에서는 호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조부가 생각한 방향은 달랐다. 그는 나를 “수단”으로서 사용했다. 아니, 원래도 그 이상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능력자라는 이유로 그것을 드러내도 당연시되는 양, 나는…….
회사 내에서 훌륭한 표본이자 매출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딱히 내 기분이나 지위를 들어올리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조부에겐 다른 이에게 회사를 넘기지 않아도 될 좋은 명분이 되었다.
그러다 칠성재단이 부상했다. 그들은 급박해져 어린 나를 탈수기에 돌리듯 계속해서 측정을 거듭했고, 일이 풀리지 않을 시엔 정서적 학대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무언가를 주사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여러 선을 몸에 감고 속력에 느려질 때면 강한 저주파를 가해서 통각을 준다던가. 일차원적으로 때린다던가. 식상하게 골프채를 가져온다던가. 지들이 멍청해서 닦이는 걸 나한테 분이나 푼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쳐맞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곧잘 맞은 만큼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러다 조부가 들어와서 나를 가만히 바라볼 때면…… 나는 싸우다가도 모든 것을 멈추었다. 이상하게 식은 땀이 지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파블로프였으며, 나는 개였던 것 같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래서 하루는 밖으로 도망쳤다. 무계획. 무대책. 발 아래 밑창도 없이 맨 것으로.
130BPM
140BPM
150BPM
──그리도 빠를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뛰어도 항상 제자리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풍경을 가장 많이 바꾸는 것은 도망이었다.
며칠이고 쉬고 뛰기를 반복했다. 시를 쥐 잡듯 돌아다녔다. 족척은 밑창이 없는 것도 모자라 피부도 모자라지기 시작했다. 따끔거리고, 아프고, 아팠는데. 좋았다.
명료한 목표가 있었다. 형. 사라진 형을 찾겠다고 시 전역을 수소문하고 돌아다녔고, 나를 찾는 눈들을 피해다녔다. 밖에서 자는 일이 조금 힘겨워질 무렵에서야 겨우 한 문 앞에 도달했다. 붉은 눈의 소년을 보았다고. 그게 기억에 남을 정도라면 아마도 형일 것이라고. 형이라면 나와 같은 처지일 테니까,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나를 저 안에서 꺼내줄 것이라고.
똑똑. 아이는 문을 두드렸다.
끼익. 모르는 갈색 머리의 여자 아이가 문을 열었다.
“누구……?”
그 애는 전신이 멍투성이였고 성한 구석이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일 주기로 어디선가 맞고 있을 것이라는 게 짐작되었다. 위화감이 느껴졌다.
“저, 그, 안녕하세요. 혹시…… 허억. 여기, 황민, 황민호…… 있, 나요……?”
“민호……? 민호야. 누가 널 부른, 앗.”
뒤를 돌아보다가 다가온 소년의 몸과 부딪힌다.
그때 문틈에서 한 명의 형상이 더 드러났다. 익숙하게 닮은 얼굴, 색채만 다른 눈, 같은 종자에서 드러난 것이 분명한 둘을 여자아이는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만난 형은 여자아이의 꼴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놀란 기색 하나가 없었다. 곧잘 웃던 그때와는 무언가가 달라진 것만 같았다. 그것이 두 번째 위화감이다.
그래도 아직 희망 또한 있었다. 그래도 함께라면 조금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나는 말했다.
“미, 민호 형! 나 하민이야. 나 기억하지!? 나 좀 도와줘. 갑자기 몸에서 빛이 나고, 빨라지고, 이상해졌어. 어, 엄마까지도 날, 아니 전부, 날 전부 이상한 눈으로 보고…… 형은 알잖아, 이거…… 응?”
설명이 잘 나오지 않았다. 쏟아지는 설움이 언어란 그릇을 깨뜨렸다. 목이 매이고, 눈이 뜨거워졌다. 나는 최대한 그를 동하게 할 말을 하나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나, 나, 너무 힘들었어…….”
그리고 적막이 흘렀다.
“…….”
“…….”
“……민호야. 곧 아저씨가 올 거야. 그 애, …….”
“알아. 먼저 들어가서 애들이랑 있어.”
“……응.”
앞서 문 틈새로 다시 들어간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말은, 그때 그들에게도 파블로프가 있었다는 뜻이었을 텐데. 형이 내 눈물을 닦아주며 고개를 올리고──
눈을 마주쳤다.
*마스터 마인드 발동.*
“잘 들어, 하민아. 난 널 도와줄 수 없어.”
“……?”
“그곳에서 빼주지 않을 거라고.”
“그 집으로 돌아가서, 칼 박힌 방석 위에 염치 불구하고 앉아.”
단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박혀들기 시작한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평범하진 못할 테지만 최대한 평범하게 살아.”
“지금 뭐하는 거냐고!!!”
“괴물 취급을 받으면서도 평생 엇나갈 생각일랑 말고.”
“알아들었지?”
“황민호────!!!!!”
“스스로 살 수 있을 때까지.”
“절대, 그 집을, 떠나지 마.”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집으로 돌아와 있었고, 돌아온 그 날은 죽도록 맞아서 오른쪽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집을 나가는 것은 포기했다.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조부가 학교에 가라고 교복을 사오기 전까진.
*
*건물이 하릴없이 무너집니다…….*
너는 이 광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널 미워하지 못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용서하지도 못했다.

세 번째 파편 - 백여운

과거의 파편 - 백여운

추가 예정

네 번째 파편 - 백하연

과거의 파편 - 백하연

추가 예정
만일 이 화면이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면 페이지를 새로고침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