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마의 사회주의 계열 정당
개마 공산당 개마 노동자당 사회당
개마 사회당
개마 노동자당 (로동자당)
盖馬 勞動者黨 | Kaeman Workers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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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노동자당, 로동자당, 개로당, KWP
표어 몯혼 구루운위 로동자야 단결하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창당 1950년 7월 1일
해체 1991년 5월 31일 (사회당으로 재창당)
선행 정당 개마공산당, 개마사회당
후계 정당
(법적)
(실질적)
이념 공산주의
현실사회주의
개마 민족주의
스펙트럼 극좌
상의회 의석수 23석 / 100석 (23.0%) (해체 직전)
평의회 의석수 45석 / 320석 (14.1%) (해체 직전)
당색 빨간색 (#CE0011)
당가 개마 무산자들은 무장하라
당원수 약 460,000명 (해체 직전)[1]
청년 조직 청년 공산주의자 동맹
당군 개마 인민방위군[2]

개요

몯혼 권력싀 개맛 소볫트로[3]
1950년 7월 1일 창당 대회에서 채택된 표어

개마의 구 집권여당. 194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약 4~50년간 개마공민공화국의 유일 합법정당이었다. 1990년, 개마 민주화 혁명으로 인해 당 조직이 와해되었고 1991년 온건파를 중심으로 사회당이라는 이름으로 재창당되었다.

당가로는 인터내셔널가를 번안한 "개마 무산자들은 무장하라"를 사용했다. 이 노래는 개마의 국가로도 사용되었다.

역사

1946년 1월 1일 일본제국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이후 소련의 영향력 하에 개마는 공산화되었다. 1932년 창당된 개마 공산당이 주도권을 쥔 가운데, 1947년 5월 첫 총선이 치뤄졌다. 결과적으로는 소련과 개마 공산당 정부 측의 부정선거로 압도적으로 공산당이 승리하였다. 공산당은 이후 대부분의 원내 정당들을 금지했고 1950년 7월에는 마지막으로 원내에 남아있던 야당인 온건파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개마사회당을 흡수해 개마 노동자당을 창당했다.

이후 독립운동가이자 공산당의 서기장을 맡았던 현우봉이 노동자당의 서기장을 역임하여 현우봉 독주 체제가 시작되었다.

1950년대까지 개마는 명백한 친소련 국가였으나 흐루쇼프 서기장의 개혁 및 스탈린 격하 정책을 비판하며 개마식 사회주의를 추구하였다. 또한 중국과 소련의 갈등 사이에서 중국을 편들면서 친중 국가로 기울게 되었다.

1977년, 천우봉 서기장이 사망했다. 개마 노동자당은 혼란에 빠졌고 얼마간은 천우봉 서기장 밑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던 박근조가 서기장으로 재직했다. 그러나 이후 소련 공산당의 지지를 받았던 천도현 장군이 일으킨 쿠데타로 친중파가 실각하고 친소파의 무소불위 독재가 시작되었다.

1980년대 중후반 들어 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적극적 개혁 개방을 추구하자 친소로 기울어있던 개마 노동자당은 혼란에 빠졌다. 1980년대 후반 노동자당은 현실사회주의의 한계를 어느정도 인정하면서 신 사회주의 공화국 정책이라는 명목 하에 관제야당 허가, 경제의 부분적 자유화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조치에 불과했으므로 민중들의 기본적인 불만을 잠재울 수 없었다. 게다가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시나트라 독트린을 발표하면서 개마 노동자당 독재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폭동이 빈발하였다. 개마 당국은 파업과 폭동을 강경 진압했으나 민중들의 분노를 막을 수 없었고, 결국 1990년 일어난 개마 민주화 혁명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의회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1990년 첫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치뤄진 총선에서 개마 노동자당은 참패했고, 자유민주당의 주도 하에 개마공민공화국이 멸망하고 개마공화국이 건국되자 노동자당은 더욱 수세에 몰렸다. 1991년 마지막 당대회에서 노동자당은 당을 자체 해산하고 사회민주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사회당을 재창당하기로 결의했다.

이념

개마식 사회주의

역대 서기장


개마 노동자당 중앙위원회 서기국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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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선거 결과

연도 선거 명 득표수 득표율 의석수 증감 선출 방식
1951 제2대 개마 대의원 선거 13,598,321표 80.25%
184 / 190 (97%)
증가 7석 직선제
1958 제3대 개마 대의원 선거 8,632표 98.35%
190 / 200 (95%)
증가 6석 간선제
1965 제4대 개마 대의원 선거 8,754표 99.17%
193 / 200 (97%)
증가 3석
1972 제5대 개마 대의원 선거 10,064표 95.85%
288 / 300 (96%)
증가 95석
1979 제6대 개마 대의원 선거 8,564표 91.18%
285 / 300 (95%)
감소 3석
1985 제7대 개마 대의원 선거 11,643표 96.00%
295 / 300 (98%)
증가 10석
1990 초대 개마 평의원 선거 3,683,206표 18.75%
47 / 320 (15%)
감소 248석 직선제
1990 초대 개마 상의원 선거 4,637,131표 23.63%
24 / 100 (24%)
-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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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의 정당 목록
[ 펼치기 · 접기 ]
정통공산당계 ● 노동자연합당 (11석 · 37석), ● 개마 부활공산당 (1석 · 0석), ● 신노동연대
사회주의계 ● 사회당 (28석 · 96석), ● 전진개마 (2석 · 18석), ● 민주사회당, ● 사회민주통합당, ● 동부삼도연합 (1석 · 0석)
중도진보계 ● 녹색당 (0석 · 3석), ● 청년권리당, ● 환경민주당, ● 유권자권리연대
민주계 ● 자유민주당 (71석 · 286석), ● 정의민주당 (9석 · 52석), ● 민주진보위원회, ● 자유보수당
보수계 ● 단결연대당 (1석 · 5석), ● 동지당, ● 공화당, ● 개마민족연합
단일쟁점 ● 성소수자인권당, ● 여성주의대안, ● 보편연금지급당
해체된 정당 ● 개마 공산당, ● 개마 사회당, ● 개마 노동자당, ● 통합민주연합, ● 개마민족당
괄호 안은 각각 개마 입법회상의회, 평의회 의석수

각주

  1. 전성기 시절인 1970년대에는 거의 700만명에 육박했다. 이후 1980년대 친중-친소파간 권력 투쟁으로 약 100만명 정도의 친중파 핵심 당원들이 출당당했고 1990년에는 민주화혁명으로 대부분의 당원들이 탈당한 상태였다.
  2. 헌법상 개마의 국군이었던 인민방위군은 노동자당의 당군도 겸하였다.
  3. 모든 권력은 개마 소비에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