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마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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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공화국
盖馬共和國 | Republic of Kaema
국기 국장
헌국헌민
獻國獻民
상징
국가 화민가
국수
백두산 호랑이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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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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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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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청진
최대 도시
청진
면적
209,472.64km2
접경국
러시아, 중국, 대한민국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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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45,059,700명 (2020년)
밀도
215.11명/km2
민족 구성
개마인 82.6%[1]
한국인 6.5%
중국인 5.1%
몽골인 2.0%
러시아인 1.6%
기타 2.2%
출산율
1.56명 (2020년)
기대 수명
81세 (2020년)
공용어
개마어 (육진 방언, 한국어)
지역어
한국어, 중국어, 러시아어
공용 문자
한글, 한자 (번체자)
종교
국교
없음 (정교 분리)
분포
무종교 57.3%
불교 30.0%
기독교 7.4%
기타 5.3%
군대
개마공화국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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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 도
4개 부
26개 목
123개 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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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단일국가, 이원집정부제 (사실상 의원내각제), 공화제, 다당제[2], 성문헌법
민주주의 지수
7.65점, 결함있는 민주주의 (2020년)
국가 원수 (대통령)
신오을
정부
요인
정무총리
김진서
내무대신
전무선
법무대신
박성재
대법원장
서용연
여당
(대통령)
(내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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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PPP)
전체 GDP
$1,261,671,600,000 (22위)
1인당 GDP
$28,000
GDP
(명목)
전체 GDP
$788,544,750,000 (21위)
1인당 GDP
$17,500
신용 등급
무디스 Baa3
S&P BBB
Fitch BBB
화폐
공식 화폐
개마 전
ISO 4217
KMJ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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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 기원
시간대
GMT+09:00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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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1991년 3월 20일
UN 가입
1971년 7월 25일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길 27
ccTLD
.km
국가 코드
KM, RKM, 095
전화 코드
+64

개요

개마공화국(蓋馬共和國)은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상세

1467년 이시애함경도 독립전쟁으로 조선에서 독립한 이래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국가이다. 1912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지배를 받은 것 외에는 자주 국가를 유지해왔다. 일본으로부터의 광복 이후로는 잠시 소련의 영향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으나 1990년 여타 공산권 국가와 마찬가지로 민주화혁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오랫동안 현실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한계로 인하여 개발도상국으로 남아있었으나, 청진항, 나선항 등 수없이 많은 동해안의 부동항을 이용하여 현재는 구공산권 국가중에서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과 함께 경제 성장률이 가장 빠른 준선진국으로 분류된다. 비록 긴축정책과 이로 인한 사회 안전망 취약화, 빈부격차 증가 등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인한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베트남, 태국 등과 함께 유망한 동아시아 중진국으로 분류된다.

문화적으로는 조선에서 독립한 국가인만큼 남쪽의 대한민국과 비슷하며, 언어 역시 한국어의 방언중 하나인 개마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15~16세기 이후 개마의 영토 확장으로 인해 만주족, 말갈족, 여진족 등 다양한 문화들이 개마에 유입되었고, 이 문화들이 조선 문화와 융합되면서 개마의 문화는 독특한 모습을 띄게 되었다.

상징

공식 국기 공식 국장

공식 국가

개마의 국기, 국장, 국가는 1991년 민주화 이후 제정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국가로 "개마 무산자들은 무장하라"를, 국기로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적기를 사용하였다. 1990년 민주화 혁명으로 이듬해 공산주의 정부가 무너진 이후, 신정부는 일제시대 개마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개마 독립혁명군의 군기를 공식적인 국기로 사용하였다. 청색 바탕의 금색 오각별이 그려진 모양이며 오각별은 개마를 이루는 다섯개의 민족, 즉 개마인, 조선인, 만주인, 몽골인, 중국인을 상징한다.[3] 국가는 개마의 민주주의 혁명을 상징하는 곡인 민중 가요 "화민가"가 공식적인 국가로 지정되어있다.

1990년 이전에 사용되었던 국기는 다음과 같다.

개마의 역대 국기
대개마국
(1891 - 1912)
일제강점기
(1912 - 1945)
개마공민공화국
(1947 - 1990)

한편 국호의 경우 고대 고구려 시대때 존재해왔다고 한 국가인 "개마국"에서 따온 것이다. 개마 자체는 한반도 북부 지역을 일컫는 지명으로 사용되었으며 현도군이 개마 지역 일대라고 불렸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이는 개마고원의 어원이 되었고 고조가 국가를 건국하면서 개마고원과, 구 개마국의 이름을 둘다 본따서 대개마국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 개마실록의 기록에 남아있다. 이는 공산당 정부와 현재의 공화국 정부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역사

대개마국

1467년 함경도 독립전쟁(이시애의 난)에서 승리한 이시애 장군은 대개마국을 선포하고,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였다.

일제강점기

1910년 7월 조선이 일본에게 합병되자 개마가 일본에게 합병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개마의 마지막 황제였던 애종은 어떻게든 일본의 침략을 막으려고 분주하였으나 일본의 야욕을 꺾지는 못하였고, 1912년 9월 31일 대개마국의 455년 역사는 막을 내리고 일제강점기에 돌입하게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조선에서 3.1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영향으로 개마에서도 독립을 요구하는 산발적 집회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개마에 대한 회유책으로 문화 통치 정책을 시행한다. 이 시기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문관 총독 임명 등이 있다. 하지만 일본이 만주에 대한 야욕을 보이기 시작하자, 만주와 최전선을 맞대고 있던 개마의 문화통치는 금세 무너져버렸고 군부에 의한 수탈 통치[4]가 조선의 민족말살통치보다 수년 앞서 시작되었다.

개마인들은 이에 대항하여 만주 및 중국 관내 지역에서 무장 투쟁을 벌였으며 일부는 연해주로 이동해 독립 운동을 벌였다. 1924년, 개마 지하정부가 세워졌으나, 불과 2년만에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간의 갈등으로 인해 와해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마의 독립 운동은 실질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이 1928년 결성한 개마 독립혁명군이 주도하였고 민족주의자들은 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뜻을 함께하였다.

개마공민공화국

1945년,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대일본 전선에 참여했다. 사실상 미군에 의해 멸망 일보 직전 상태에 있던 일본제국은 만주와 개마, 조선 북부 일대에서 속수무책으로 소련에게 영토를 내어줬고, 자연스럽게 개마의 영토 대부분이 소련의 수중에 떨어졌다. 독립 운동을 벌이던 개마 독립혁명군의 수뇌부도 입국하여 개마의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소련은 이를 간단하게 무시하고 위성국가 건국을 준비하였다. 1946년 1월 1일, 조선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기 약 1년 8달정도 앞서 개마공민공화국 정부가 출범하였다.

개마공민공화국은 민주주의를 표명했고 실제로 자유 선거도 실시하였으나 이는 모두 허상에 불과했다. 부정선거와 소련측의 매수, 협박 등으로 인해 자유 선거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고 선거 결과 개마 노동자당이 총 190석중 177석을 차지하며 압도적 우위의 여당이 되었다. 얼마 안가 노동자당 정부는 자유 선거와 다당제를 폐지한 이후 일당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선언한다.

공민공화국은 항일 독립 투사이자, 개마 노동자당의 창당 발기인인 현우봉이 1945년부터 1977년까지 총 22년간 개마 노동자당 중앙위원회 서기국 주석으로 재임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특히나 현우봉 시절의 개마는 195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스탈린 격하 운동에 반발하며 스탈린주의 노선 고수를 선언하였다. 이 때문에 소련과는 다소 다른 독자 노선을 걷게 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손을 잡고 소련과 척을 졌다. 마오쩌둥 중국 주석이 직접 현우봉 주석을 "개마의 모택동"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 시기 개마와 중국의 사이는 좋았다.

그러나 1977년 현우봉이 급사하면서 노동자당 내 친소파와 친중파간 암투가 거세졌다. 일시적으로 친중파이자 현우봉 주석의 심복이었던 박근조가 주석직에 올랐으나, 얼마 안가 친소파 천도현이 일으킨 반정으로 인해 물러났다. 천도현은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철권 독재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천도현 역시 얼마 안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1985년 주석 자리에 오른 김연준은 당시 소련과 다른 동구권, 공산권 국가에 불어닥친 개혁개방 개혁에 영향을 받아, "신 사회주의 공화국 정책"을 선포하였다. 이로 인하여 제한적이지만 관제 야당이 허가되었고, 대한민국의 자본이 개마에 들어오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외부 문물과 접근하기 용이해진 개마인들은 오히려 공산주의 정권에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다. 결정타는 1988년 동부 3도(요성도, 현연도, 경광도)에서 일어난 대규모 홍수 사태에서 개마 당국이 무능한 대처를 보인 것이었다. 개마 당국이 잔해를 수습할 지언정 오히려 보도를 막고 무능하게 대처하자, 개마 내에서는 이에 대한 소식이 퍼지며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게 되었다.

민주화 이후

1989년 동유럽의 공산독재정권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자 깜짝 놀란 노동자당 정부는 개마 국민들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지 않도록 언론을 통제하였다. 하지만 동독, 폴란드, 헝가리가 무너지고 소련마저 위태롭다는 소식은 이미 개마인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나 다름이 없었다. 1990년 3월, 주요 대학가를 중심으로 민주화와 자유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잇따랐다. 시위의 규모는 점점 커지더니 4월 경에는 개마의 대도시 대부분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개마 당국은 수도인 청진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도시에서 경찰 통제력을 잃었고 심지어 노동자당 중앙 당사마저 성난 시위대에게 점령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1990년 4월 26일, 노동자당 정부는 1991년까지 자유선거와 다당제 보장 등 개헌을 통하여 민주정부에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개마 민주화 혁명이라고 부른다.

얼마 이후 치뤄진 초대 총선에서 자유민주당이 총 320석중 184석을 얻으며 압승했고 개마 노동자당은 47석을 얻는데 그치며 완전한 민주화가 이뤄졌다. 1991년, 개마공민공화국은 개마공화국으로 다시 탄생하였다.

2017년 개마사회당의 대규모 부정부패 의혹으로 인하여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1990년 민주화 이후 최대이다. 결국 이듬해 총선에서 사회당은 대참패를 겪고, 자유민주당의 일당 독주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 역시 부정부패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범진보 소수 야당인 전진개마신오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을 낳게 된다.

지리

개마 국명의 기원이 된 개마고원의 모습

산지가 많고 지리가 험준하다. 또한 기본적으로 고위도 지역이기 때문에 한국보다 훨씬 추운 기후가 특징이다. 겨울에 어떤 지역은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심한 추위를 자랑한다. 더군다나 해도 빨리 져서 겨울에는 4시 50분이면 해가 져버린다.

개마 영토의 약 1/5정도는 개마고원이라는 거대한 고원 지대가 차지하고 있다. 백두산부터 대한민국의 북서부 끝쪽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고원으로, 한반도에서는 보기 힘든 자연 침엽수림이 분포해 있는 등 이색적 자연의 모습을 띈다. 이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있기도 하다.

개마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은 활화산이기도 하다. 이 근방은 지진이 잦고 최근 들어 화산 폭발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어 개마 당국에서 특별히 예의주시중인 산이다.

주요한 대도시로는 청진, 함흥, 나선, 병주, 참천, 흠성 등이 존재한다.

행정

개마공화국
부목급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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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주목 함흥목 청진목 흠성목
신흥도 길풍도 삼수도 중성도
장백도 고양도 장융도 신서도
참천도 요성도 극동도 현연도
칠선도 경광도
개마의 부목급 행정구역 지도

대한민국과 비슷하게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방자치제의 역사는 길지 않으며 공산당 정권이 무너진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지방자치에 대한 법률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부목급 행정구역이 생겨난 것은 매우 오래전의 일인데,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15세기까지 올라간다. 몇번의 행정구역 분할 및 통폐합은 있었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현재와 같은 14도 체제를 지켜왔다.

다만 목은 꽤 변동이 심했는데 18세기까지 목은 전국에 30개 이상 있었다가, 18세기 행정 구역 개편으로 20개정도로 줄어들고,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다시 30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공산당 정부에서 목의 존재로 인한 세금 낭비를 비판하면서 수가 3개로 줄어버렸다. 민주화 이후에는 기존의 함흥시를 함흥목으로 한단계 격상시켰을 뿐, 특별히 목을 추가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행정구역 이름은 "도"와 "목"으로 되어있는데, 아직도 부목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공산당 정부 시절 때만 하더라도 부를 사용했고 이 단어가 정착되면서 고유명사화되었기 때문이다.

정치

체제

개마는 대통령과 정무총리가 존재하는 이원집정부제 국가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오스트리아, 독일과 같이 내각책임제 국가에 더 가깝고 대통령은 형식상 국가 원수에 지나지 않는다.

개마의 입법 기구는 입법회이며 입법회는 상원에 속하는 상의회와 하원에 속하는 평의회로 나뉘어져있다. 독일식 내각제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상의회가 가지는 입법에 대한 권한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정무총리 임명권, 대통령 임명권, 장관 임명권이 모두 상의회에 있고 상의회 표결에서 부결시 어떠한 장관진도 임명이 불가능하므로 본질적으로 그 권한은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평의회에서는 입법의 권한이 강하지면 상대적으로 임명에 대한 권한은 약하다.

상의회는 전원 지역구 의원으로 뽑는 반면, 평의회 의석 500석중 410석은 지역구 의석으로, 90석은 비례대표 의원으로 뽑는다. 또한 상의회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평의회는 중대선거구제고 따라서 한 정당의 복수 공천도 가능하다.

정치 환경

민주주의가 정착한지 불과 3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아서 때문에 여전히 부정부패나 소위 말하는 "아이돌 팬덤"식 정치인 지지자들로 인해 개마의 정치에는 한계가 많다. 그러나 제도상으로는 구공산권 국가중 가장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나라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고 시민들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 의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정치 참여 및 민주주의 의식은 오히려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보다 더 높다. 의무투표제 국가가 아님에도 투표율이 80% 이상 나오는 몇 안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정당으로는 1990년대 민주화를 주도한 자유민주당개마 노동자당을 계승한 개마사회당이 양당 구도를 이루고 있다. 다만 2018년 총선에서 각종 부패 혐의로 인하여 사회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 진보 유권자들이 각각 중도파 리버럴 정의민주당, 극좌 노동자연합당, 포퓰리스트 전진개마 등 다른 진보 정당으로 사분오열된 상태라서 정당 구도에 있어서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2020년 대선에서는 범진보의 지원을 받은 전진개마신오을 후보가 53.5%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민주화 이후 사회당이나 자민당이 아닌 다른 정당 소속의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 된 것은 처음이었기에 국내외로 주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인한 빈부격차 때문에 빈곤층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늘어나 그에 비례해 정치 혐오와 포퓰리즘이 만연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역대 대통령 목록


개마 공화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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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 이름 소속 취임 퇴임 기간
초대 정성순 (鄭成舜)
1990년 2000년 10년
제2대 김연천 (金然泉)
2000년 2005년 5년
제3대 심면 (沈勉)
2005년 2010년 5년
제4대 김선영 (金善榮)
2010년 2015년 5년
제5대 박청광 (朴靑光)
2015년 2020년 5년
제6대 신오을 (申悟乙)
2020년 현재 1년

역대 정무총리 목록


개마공화국 정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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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 이름 소속 취임 퇴임 기간
초대 백석기 (白碩氣)
1990년 1997년 7년
제2대 조춘식 (趙春殖)
1997년 2001년 4년
제3대 심한홍 (沈翰鴻)
2001년 2002년 1년
제4대 리영석 (李榮席)
2002년 2007년 5년
제5대 박형동 (朴炯桐)
2007년 2009년 2년
제6대 김성구 (金星求)
2009년 2011년 3년
제7대 안창현 (安創鉉)
2011년 2017년 6년
제8대 김영표 (金嶺豹)
2017년 2018년 1년
제9대 김진서 (金進徐)
2018년 현재 3년

정당 목록

개마 입법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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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서 내각
2018.10.25 -
여당

71석 · 286석
야당

28석 · 96석

9석 · 52석

11석 · 37석

2석 · 18석

1석 · 5석

0석 · 3석
무소속 5석 · 4석
재적 127석 · 500석
좌측은 상의회(상원) 의석 수, 우측은 평의회(하원) 의석 수
로고 당명 당수 이념 의석수 비고
자유민주당
自由民主黨
Liberal Democratic Party
김진서 (金進徐) 중도우파
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
71석
286석
여당
사회당
社會黨
Socialist Party
리영서 (李英緖) 중도좌파 - 좌익
사회민주주의
사회보수주의
28석
96석
제1야당
정의민주당
正義民主黨
Justice and Democracy
오제현 (吳諸賢) 중도
현대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9석
52석
제2야당
노동자연합당
勞動者聯合黨
United Worker's Party
길수헌 (吉洙櫶) 좌익 - 극좌
민주사회주의
좌익대중주의
11석
37석
제3야당
전진개마
前進盖馬
Forward Kaema
신오을 (申娛乙) 중도우파 - 중도좌파
중도주의
대중주의
2석
18석
제4야당
단결연대당
團結連帶黨
Together United Party
박성은 (朴成殷) 우익 - 극우
보수주의
우익대중주의
1석
5석
제5야당
녹색당
綠色黨
Kaeman Green Party
선우연 (選優演) 중도좌파
환경주의
사회자유주의
0석
3석
제6야당
개마의 정당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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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공산당계 ● 노동자연합당 (11석 · 37석), ● 개마 부활공산당 (1석 · 0석), ● 신노동연대
사회주의계 ● 사회당 (28석 · 96석), ● 전진개마 (2석 · 18석), ● 민주사회당, ● 사회민주통합당, ● 동부삼도연합 (1석 · 0석)
중도진보계 ● 녹색당 (0석 · 3석), ● 청년권리당, ● 환경민주당, ● 유권자권리연대
민주계 ● 자유민주당 (71석 · 286석), ● 정의민주당 (9석 · 52석), ● 민주진보위원회, ● 자유보수당
보수계 ● 단결연대당 (1석 · 5석), ● 동지당, ● 공화당, ● 개마민족연합
단일쟁점 ● 성소수자인권당, ● 여성주의대안, ● 보편연금지급당
해체된 정당 ● 개마 공산당, ● 개마 사회당, ● 개마 노동자당, ● 통합민주연합, ● 개마민족당
괄호 안은 각각 개마 입법회상의회, 평의회 의석수

경제

오랜 기간 일제의 경제 수탈, 비효율적인 계획 경제 등으로 인해 개발도상국 신세를 면치 못했으나 민주화 이후 무역을 통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국가중 하나이다. 2010년대에 국민 소득 1만불을 돌파한데 이어 2022년에는 2만불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 발전의 이면에는 빈부격차나 부도덕적 기업의 성장 등 부작용 역시 많다. 이 때문에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구조조정 및 긴축으로 인해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안창현 부동산 투기 사태 등이 일어나면서 지도층의 무능하고 부정한 경제 운영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주요 정당들은 개마 내에서 급격히 인기를 잃고 있다.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경제심판론이 거세게 일어날정도로 개마 내에서 경제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로 여겨진다.

주요 기업들로는 항만 회사인 재현해운, 운송회사인 여천물류 등이 있다. 한국과 같은 재벌 기업은 없고 벨기에와 마찬가지로 몇몇 대기업이 존재하는 가운데 중소기업으로 국가가 돌아가고 있다.

아무래도 부동항이 위치한 곳이 많다보니, 러시아와 일본, 만주, 한국, 중국 등을 잇는 항만회사 및 운송회사들이 크게 발달하였다. 중공업, 특히 조선업도 발달하여 전세계 조선업 1~2위를 다툰다.

복지

복지가 취약한 나라중 하나로 전체 예산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이 10%를 겨우 넘어서는 수준이다. 공산당 정부 때에는 20%정도는 되었지만 민주화 이후 혼란을 겪으면서 이곳 저곳 지출해야할 비용이 늘어나 복지 지출 비용이 대폭 감소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노인 복지가 축소된지라 노인층을 중심으로 공산당에 대한 향수가 더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그러나 자민당과 사회당 양당이 2030년까지 복지 지출 비중을 전체 예산 대비 18%까지 올리기로 합의하면서 개마 내 복지 문제는 느리긴하지만 해결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급진적인 복지 인상을 추진하는 노동자연합당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현재로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사회

민족

언어

한국어족 계통 언어인 개마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있으며 이 외에 만주어, 여진어, 한국어, 중국어 등이 사용된다.

종교

건국 이래 불교가 우세를 잡은 국가였으나, 공산화로 인하여 무신론자의 수가 크게 늘었다. 공민공화국 시기 무종교인의 비율이 가장 높았던때는 전국민의 80% 가량이 무종교인이었다. 민주화 이후, 당국의 탄압을 피해 몰래 불교를 믿던 시민들이 많았음이 드러나면서 1990년대 후반에는 불교 신자의 비율이 40%대 후반까지 회복되었다.

하지만 공산당 정부에 의한 강력한 세속화 정책 때문에, 개마 내에서 종교는 단순한 문화일 뿐이며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이로 인하여 2010년대 이후로는 불교 신자의 비율이 30%대 초반까지 떨어지는 등 다시금 무종교가 힘들 얻고 있다. 여느 나라나 그렇지만, 특히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무종교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와는 별개로 개마 내에서 불교 관련 시설은 중요한 문화재이자 시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간주되어 보존이 잘 되어있다.

문화

외교

범아연맹

한개관계

이념상의 문제로 오랜 기간동안 수교하지 않았으나 민주화 이후 1991년 공식적으로 수교하였다.

각주

  1. 세부적으로는 만주계 개마인 47.7%, 조선계 개마인 34.9%.
  2. 2018년 총선 이전까지는 사회당자유민주당의 양당제였으나 안창현 부동산 투기 사태로 인해 사회당이 몰락한 이후 다당제 체제로 바뀌었다.
  3. 만주국 국기와 그 의미가 비슷하나, 시기상으로 독립혁명군 군기가 약 5~7년정도 더 빠르다.
  4. 개마 내에서는 공식적으로 민족수탈통치라고 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