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연방 역대 최고지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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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나디 안드레예비치 주가노프
Генна́дий Андре́евич Зюга́но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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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 25일 ~ 1999년 5월 24일 | ||
1995년 7월 3일 ~ 2009년 5월 24일 | ||
2009년 5월 25일 ~ 2014년 5월 24일 | ||
니콜라이 리시코프 | ||
세르게이 미로노프 | ||
2009년 5월 25일 ~ 2014년 5월 24일 | ||
니콜라이 리시코프 | ||
세르게이 미로노프 | ||
1944년 6월 26일 | (8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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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룔 주립 교육대학교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사회과학연구소 | ||
소련 공산당 | ||
나데즈다 주가노바 | ||
안드레이 주가노프 타티야나 니키포로바 | ||
국가 무신론 | ||
소련군 | ||
1963년 ~ 1966년 | ||
대령 |
겐나디 안드레예비치 주가노프(러시아어: Генна́дий Андре́евич Зюга́нов)는 소비에트 연방의 제3대 수상이다. 소련 개혁 개방의 황금기를 이끈 니콜라이 리시코프의 뒤를 이어 수상이 되었다. 안드로포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를 격렬하게 비판했던 주가노프는 소련의 국제적 위상이 매우 약해졌다는 주장과 함께 군사력 강화와 서방과의 영원한 경쟁을 선언했다. 또한, 주가노프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미국의 중동 침공과 NATO의 지속적인 확장을 "서방 제국주의의 공격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소련의 동맹 영향력을 확대를 주장했고, 이는 신냉전의 신호탄이 되었다. 계속되는 중동에서의 전쟁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기점으로 약화된 미국의 성장 동력을 틈탄 결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주가노프는 무리한 군사력 강화 정책과 서방 세계의 제재로 인한 경제 침체, 언론 통제로 인해 소련 국민들의 지지를 잃었다. 유리 안드로포프 이후로 끊임 없이 성장하던 소련이 세계 금융 위기를 피하지 못한 채 대침체에 빠지고, 덩달아 공산당의 지지율도 떨어지자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마저 그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결국 당 중앙과 국민의 지지를 잃은 주가노프는 서기장직에서 축출되었고 수상직 신설 이후 최초로 2014년 제4대 소련 수상 선거에서 연임에 실패했다.
연임 실패 이후 주가노프는 소련 공산당에서 반서방주의, 개혁 반대파를 이끌며 지속적으로 중앙위원회 재진입을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