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창모 (스펙터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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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창모
具昌謨

2016.07.20 국민대학교 강연.
출생 1980년 07월 06일(1980-07-06) (43세)
대한제국 대한제국 경상북도 금릉군 어모면
국적 대한제국 대한제국
별칭 젊은 투사
학력 김천성의고등학교 졸업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 박사 (명예)
경력 김천시 시의원 (4대, 무소속)
경상북도 도의원 김천시1지역구 (5~6대, 무소속->새누리당)
새누리당 청년인재연구소 연구원
유승민 총리 선거캠프 (19대)
바른정치연구소 연구원
직업 20대 의정위원 (김천시)
소속 바른정당
종교 무교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제대


자유란 국가던, 개인이건, 단체건.. 그 어느 존재도 침해 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 2016년 7월 20일 국민대학교 강연

(최순실 게이트) 사건은 한국 국민들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경솔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유의 침해를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 2016년 12월 3일, 친박계 의원들에게[1]

저는 제 고향이자 제가 사랑하는 김천, 그리고 그곳에 사시는 시민 여러분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말로만 하면 당연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본인의 자유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부채로 인한 자유 박탈.. 직업 선택 자유 박탈.. (중략) 전 김천에서 그런 일들이 전혀 없게 하겠습니다. 즉 모두의 자유가 보장되는,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땅 김천을 만들겠습니다.

 
— 2016년 4월 3일, 선거 유세 중 발언

인간을 삼등분하면 생각이 가능한 머리와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한 몸통, 그리고 그것을 자유 의지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개인만의 자유로 나뉘어 진다.

 
— 저서 <<자유의 개론>> 맨 첫번째 문장


대한제국에서 드문 자유주의자 정치인


구창모(具昌謨)대한제국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남성 정치인, 철학자, 국회의원이다.

1980년 7월 6일 김천시 (당시 금릉군)에서 출생하였으며 김천성의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99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에서 존 롤스와 로버트 노직에 큰 감명을 받아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대학 재학 중 징집되어 대한제국 육군에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였다. 그 뒤 만 26세에 무소속 김천시 시의원으로 당선되어 역대 최연소 지방의원 당선자가 되었고 그 뒤 만 30세에는 무소속 경상북도 도의원 김천시1지역구에 당선되었다. 그 후 새누리당에 청년 인재로 영입되어 청년인재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였고 그러던 중 유승민과 친분을 가지게 되어 친유계가 되었으며 새누리당 분당 사태에 탈당파에 가담하여 현재 바른정당 소속 의원이 되었다.

본인이 내거는 슬로건은 젊은 투사! 김천시 출생의 고향 토종 지역일꾼으로 지방의원 시절 공약 이행율은 92%에 달했다. 실제로 지역 내 평가가 매우 좋은 편으로 바른정당에 가담한 이후에는 일부 비판이 있었지만 일 잘하는 의원이라는 인식이 강하여 현재도 지지율이 아주 높은 편이다. 이 지지세를 유지한다면 다선 의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생애

정치 입문 전

1980년 7월 6일 경상북도 금릉군 (현 김천시) 어모면에서 2녀 1남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농촌에서 운동과 놀이를 좋아하는 평범한 어린아이였으나,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TV에서 보게 된 노무현 당시 의정의원의 5공 청문회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고, "나도 저런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여 정치인의 꿈을 키우게 된다. 김천성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무난한 점수를 받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하였고, 1999년 입학하였다.

당시에는 외환위기로 인해 사회적 분위기가 안좋았으며, 그는 정치인의 꿈을 이뤄 사회를 변혁하겠다고 마음먹는다.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강의를 들으며 그는 좋은 학점을 유지하였으며 존 롤스, 노버트 로직, 루트비히 폰 미제스 등의 철학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그 뒤 만 21세에 징집되어 육군으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였다. 대학교 4학년에 그는 고향으로 가 시의원에 출마하기로 결심하고, 아무 정당도 국민을 위하는 정당이 없다고 생각하여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기로 한다.

시의원 시절

2006년 그는 만 26세의 나이에 고향 김천시 어모면 지역구에서 무소속 시의원으로 출마를 선언한다. 당시 경쟁 상대는 한나라당 소속의 지역 원로인 한성구, 이한로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였으나 그는 젊은 패기를 내세웠으며 젊은층과 노년층을 모두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젊은층에는 익숙하게, 노년층에는 신선하게 다가온 이 전략은 성공했으며 득표수 1위라는 대선전을 통해 시의원에 당선되는데 성공하였다.

그의 당선은 역대 최연소 지방의원 당선이였으며, 많은 화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공부를 수행하며 주민들이 원할때마다 집에 방문할 수 있도록 하였고, 매일 마을을 산책하며 항상 주민들과 어울렸다. 공약 이행에도 노력하여 시의회에서 노련한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논쟁에서 승기를 잡아 지원을 받아내는데 성공하였고 공약 이행도 순조롭게 되었다. 당연히 지역 지지율은 매우 높았으며, 그는 4년간 주민들의 찬사를 받으며 일하였다.

도의원 시절

2009년 그는 임기가 끝나감과 동시에 주민들로부터 도의원 출마를 권유받는다. 높은 공약 이행률과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으로서의 그를 주민들은 믿었고, 도의원에 출마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는 고심 끝에 고향을 위해 봉사하기로 하였고 무소속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도의원으로 출마한다. 어모면 주민들의 지원과 입소문으로 김천 전역에서 그는 유명해졌다. 젊은 일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김천 전역에서 홍보를 다녔다. 당선은 불확실했고 오히려 낙선이 예상되었으나, 또 한번 이변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무려 3선 한나라당 출신 도의원을 109표 차이로 꺾고 당선이 된 것이다.

그는 시의원이 이어 도의원이라는 직책까지 오르기 되었다. 자신을 믿어 준 시민 덕분이라고 생각한 그는 김천을 위해 도의회에서 늘 목소리를 내고 김천을 성장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런 그를 주목한 세력이 있었는데, 바로 새누리당이였다. 새누리당은 젊은 계층에 다가가기 위해 청년 인재 영입을 추진하던 중이였고, 그런 새누리당에 구창모는 반드시 영입해야할 존재였다. 새누리당은 그에게 접촉해 영입을 시도했으며, 김천에 더 많은 지원을 약속하고 도와준다는 조건으로 영입에 성공하였다. 그는 새누리당 청년인재연구소에서 최신 트렌드를 이용한 홍보의 제안 및 보수의 딱딱함을 깨기 위한 여러 시도를 했으며 이는 어느정도 효과를 보아 2012년 새누리당의 선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큰 욕심이 없어 계속 도의원으로 지내며 정치를 하고자 했었고, 그렇게 그는 그렇게 좀 성공한 평범한 지역 정치인1이 될뻔 했다.

유승민과의 만남

지방의원1이던 구창모를 중앙정계로 보낸 사건

2013년 경, 그는 새누리당 당사에서 비가 내리는데 우산이 없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한 남자를 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우산을 건네준다. 괜찮냐는 남자의 질문에 그는 "정치인이란 때로는 사람을 위해서 희생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깟 비 쯤은.. 괜찮습니다 어르신"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 어르신은 유승민이였다. 그때 감기로 인해 유승민이 모자와 마스크 등을 해서 영 다른 사람으로 보였기에 그 어르신이 유승민인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유승민과 만나게 되었고, 그의 정치 인생도 180도 바뀌었다.

"우산 사건"을 마음에 들어 한 유승민은 그에 대해 찾아봤고, 김천에서의 그의 행적을 본 뒤 큰 감명을 받게 된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의 편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의 참모로 육성하기로 한다. 그리고 김천으로 향했다. 구창모는 자신의 사무실에 찾아 온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랬다. 바로 당시 정치 거물 중 하나였던 유승민이었기 때문이다. 유승민은 그때 그 어르신이 자신이었음을 밝히고, 인품에 감동했다고 하며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편이 되어달라고 요청한다. 구창모는 당연히 승낙했으며, 그때부터 유승민과 구창모의 정계 인연이 시작되었다.

국회의원 출마와 당선

2014년 그는 지방선거에 한번 더 도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연임을 하게 된다. 한편 그 당시 김천 정치계는 큰 개편을 겪게 된다. 지례면에서 "흑돼지 게이트"가 발생하여 당시 국회의원부터 대부분의 지방의원들이 연루되어 지방의원들은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고, 국회의원은 간신히 살았지만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장났기 때문이다. 그러던 도중 새누리당에서는 김천시민의 여론을 인식해 혁신적인 아이콘의 정치인을 찾게 되었고, 마침 당시 김천에는 큰 지지를 받았고 젊은 정치인이던 구창모가 있었다. 그러나 어리다는 이유로 그를 차기 국회의원에 출마시키려 하는 것은 그렇게 긍정적이진 않았다. 구창모도 처음에는 "내가 감히 국회의원에..."라는 반응이였다. 하지만 유승민이 구창모를 설득하여 국회의원 공천을 받도록 하였고, 당시 당 대표던 김무성에게 그를 김천에 공천할 것을 강력 추천하여 김무성이 공천심사위원회에 그를 공천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렇게 그는 얼떨결에 국회의원 후보가 된 것이다.

하지만 결코 게으르지는 않았다. 그는 늘 김천 곳곳을 돌며 유세에 나섰으며,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인사를 건네는 유세에 나섰다. 또한 평소 연구하던 공것들을 김천을 위해 내세우며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였다. 평소 이미지가 좋았기에 당선은 무난하게 무소속 후보를 76%라는 득표율로 꺾고 성공하였다. 그렇게 그는 중앙 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바른정당 합류

자유주의자

자유란, 내가 원하는 직업을 고를 권리도 자유지만 그 직업을 고를 권리가 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 상태이다. 자신의 직업을 고를수 없는 빈민층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직업을 고를 수 없다. 그렇다면, 그 빈민층들은 자유가 없는 것이다. 즉, 진정한 자유란 그런 사람들까지 직업을 고를 권리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유란 표면적인 것에서 이제는 그 내면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현재 대한민국에서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많고 실제로 취직을 원해 온갖 자격증이나 스펙을 쌓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실업률은 2016년 7월 기준 8%에 달한다. 이렇게 직업을 선택할 자유도 있고, 국가는 근로를 의무로 규정하면서 이렇게 직업을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한 점이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했다면 규칙대로 자유롭게 직업을 고를 자유가 부여되야 하는데, 왜 그렇지 못하는가? 그것은 자유가 우선되어 있지 않아 각자 사회 계층들의 자유가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계층들에게 자유를 다시 돌려주어야 자유로운 사회가 다시 설 것이다.

 
— 저서 <<자유의 개론>>에서

대한민국에서 자유우선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을 제안한 철학자

론 폴처럼 철학자이면서 정치인인 사례 중 하나이다. 대학생 시절 자유주의자가 된 이후 정치를 경험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 연구를 내놓게 되어 자유우선주의라는 사상을 탄생시켰다. 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를 모두 연구하여 자기 나름의 사상인 자유우선주의를 정립하였고, 이는 현재 국내 자유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자유우선주의의 논점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계층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런 계층도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끌어 올리고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유이다."이며, 그는 실제로 복지 정책이나 빈민 구제 정책 등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스텐스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여 부정부패 행위를 비판하며, 테러 집단이나 주변국의 군사적 도발에 대해서는 상당히 강도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다. 즉, 안보에선 상당히 보수적인 스텐스를 취하고 있다.

이야깃거리

  • 야구의 팬이다. 현대 유니콘스의 팬이었으며, 그 뒤를 이어받은 넥센 히어로즈의 팬이라고 한다. 현대 유니콘스 팬이 된 이유는 대학 다닐 시절 주변 학생들이 다 롯데팬이라 좀 튀어보이고 싶었다는 사소한 이유였는데, 현대가 당시 잘하는 팀이여서 쭉 응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 정치 성향은 자유주의이다. 진보든 보수든 개인의 자유가 가장 우선이며 그것은 국가조차도 침범할 수 없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정치인 중에서는 드문 순수 자유주의 정치인이다.
  • 노무현 전 총리에 대해서 새누리당 시절 정치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정치외적으로는 참 술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 한번 해보고 싶은 분이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 이명박 전 총리와도 친분이 꽤 있다. 유승민의 소개로 만난 것도 있고, 사적으로 죽이 잘 맞는다고 한다.
  • 동안이다. 실제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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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가 한 말 중에서 가장 명언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