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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위굴라드의 정당
여당 (116석)
굴라드당
87석
자유민주당
17석
청색당
12석
야당 (106석)
변화
56석
민주당
35석
토지균분당
9석
환경당
6석
굴라드당
Plaid o Gwlad
로고
약칭 굴라드당
표어 Aberthwch calonnau o Gwlad
국가에 심장을 바쳐라
상징색     청록색
이념 자유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사회민주주의
굴라드 민족주의
환경주의
스펙트럼 중도주의중도우파
당원  (2021년) 4,857명
당직자
당수 어드뮈 레오우
의장 에드 오브루트
총비서 하설 게이레월스
원내대표 고 히르트부르테
정책위원장 에셀 술라더
역사
창당 1872년 6월 3일 (140년전)
예하 부문
중앙당사 네위굴라드 데이 중앙청사로
기관지 굴라드의 긍지
학생조직 굴라드 민족 학생회
청년조직 굴라드 민족 청년회
선거연합 굴라드 연맹
-자유민주당, 청색당
국제 부문
국제조직 중도민주 인터내셔널
유럽정당 유럽 인민당 (옵저버)
의석
의회
87 / 222
지역의회
178 / 506
당기

굴라드당(굴라드어: Plaid o Gwlad 플라이드 오 굴라드)은 네위굴라드중도우파 정당이자, 현 집권 여당이다. 1872년 창당된 네위굴라드 최고의 정당이다. 1875년부터 1977년까지 102년간 합법적인 선거로 계속 집권해왔을정도로 당세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이 정당은 멕시코의 제도혁명당과 비교되곤 한다. 1977년 총선 패배 이후 좌익 성향의 정당인 변화와 중도 성향 정당인 민주당과 경쟁하고있다. 2019년 총선에서 승리해 민주당으로부터 여당 지위를 탈환하였다.

사회보수주의, 보수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족주의 등을 표방하며, 중도에서 중도우파 정도의 성향을 띈다. 좌로는 복지 확충을 주장하는 중도좌파부터 우로는 강경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우익까지 있기 때문에 스펙트럼의 폭이 넓지만 주류 세력은 중도에서 중도우파정도로 평가받는다. 최근 들어 당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연립 내각을 세우는 일도 잦지만, 당세가 크기 때문에 섣불리 군소정당으로 몰락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

1872년 정당정치가 네위굴라드에 소개됨에 따라 여러 보수 성향 정치인들이 창당했다. 주로 정부 요인들이 가입했으며, 왕정을 옹호하고 공화파들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소속되어있었다. 1899년 창당된 공화당과는 대립하였으나 굴라드당이 압도적 우위를 통하여 계속 집권하고있었다. 1916년, 1차대전 당시 공화당은 독일에 반대하는 친 협상국적인 외교 정책을 주장했으나 실패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이후 1950년대까지 굴라드당의 1당 체제가 이어졌다. 그러나 1952년 좌파 정당인 변화당이 창당되면서 일당우위 정당제가 무너지고 변화당과 경쟁을 하게 되었다. 1979년 총선에서 선진적 복지 체제를 앞세운 로터르 마이이르가 이끄는 변화당이 압승을 거뒀고 굴라드당은 참패했다. 1989년까지 변화당에 연이어 패해 당세가 크게 줄어들었다. 1987년 총선을 앞두고 굴라드당은 노선을 좌클릭하여 자유보수주의로 표방 이념을 수정하였다. 1989년 다시 정권을 잡았고, 그 이후 현재까지 변화당, 그리고 2000년대 후반 급작스럽게 주요 정치권으로 진입한 민주당과 3당 체제를 이루고 있다.

이념

보수주의와 사회보수주의를 추구하는 중도우파 정당이다. 종교보수주의가 아닌 온건한 자유보수주의를 추구하고 따라서 이민자나 여성 정책에 있어서 개방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보수주의 정당이기 때문에 테크노크라시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마약이나 페미니즘 문제도 변화당보다는 더 보수적이다. 외교적으로 고립주의를 표방한다.

굴라드당의 전반적인 이념은 보수주의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좌익이다. 경제적으로 굴라드당은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를 표방해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키려 하고 기업과 노동자들이 서로 타협하는 사회 타협주의를 표방한다. 굴라드당은 1875년부터 77년까지 장기 집권기때 굴라드의 복지를 확충하였고, 현대와 같은 복지국가의 틀을 마련하였다. 자국의 노동자를 지키기 위해 보호무역을 실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1950년대 이전에는 국가주의를 주장하기도 했으나, 1968년 이후 국가주의 색체는 많이 줄어들었다. 다만 정당 표어를 제외하면 현재에는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적 색체는 모두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이하게도 1950년대 당시 공산권에 대한 거부감이 극에 달했을때도 반공정책을 취하지 않았다.

주요 지지 세력

굴라드당은 주로 40 ~ 80대 중노년층에게서 지지를 받는다. 2021년 총선에서 20대 지지율은 단 10%밖에 건지지 못했지만 60대 지지율은 70%로 압도적인 지지를 과시하였다. 노년층의 굴라드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굴라드당이 이끈 1940 ~ 1970년대 대호황기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반면 보수주의에 반대하는 주류 젊은층들은 굴라드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1968년 68혁명 당시에는 굴라드당이 20대에 의해 네위굴라드의 진보를 막는 주적으로 찍혀서 공격받았다. 현재는 그런 공격은 없지만, 그래도 과격한 20대들은 굴라드당을 반동파라며 비난하고는 한다.

굴라드당은 고학력자와 고소득층, 그리고 남성들에게서 주로 지지를 받는다. 이 당의 표방 이념과 정책도 주요 지지층들에 맞는것이라서 굴라드당이 어느정도 당세를 유지할수 있는 근간이 되고 있다.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