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민선 부산광역시장
전체
1대 2대 3대 대행 대행
문정수

민주자유당

안상영

한나라당

안상영

한나라당

오거돈

무소속

안준태

무소속

4대 5대 6대 7대 8대
허남식

한나라당

허남식

한나라당

서병수

새누리당

김영춘

시민연합당

제37대 부산광역시장
대한민국 국회의원
이름
김영춘(金榮春)
출생
1962년 02월 05일(1962-02-05) (62세)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거주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1]
본관
김해 김씨 경파
이름
부산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영문과 / 학사)
고려대학교 (정치학 / 석사)
병역
면제 (수형)
종교
가톨릭교 (세례명 : 다니엘)
정당
시민연합당
지역구
부산진구 갑[2]
의원 선수
3[3]
의원 대수
16, 17, 20
위원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직
시민연합당 상임고문
부산광역시장
서명
경력
고려대학교 학생회장
청와대 정무비서관
열린우리당 발기인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위원장
민주당 최고위원
시민연합당 대표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현 부산광역시장. 제37대 부산광역시장을 지냈으며 소속 정당은 시민연합당이다. 상도동계의 막내이자, 부산 정치계의 거물이며 언론에서는 부산의 이회창으로도 불린다.

생애

1962년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에서 태어났다. 현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이다.

현재의 부산진구의 성지초등학교, 부산개성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고려대학교 학부 시절때 민정당 당사 점거 사건의 배후로 몰려 구속되었다. 학도호국단이 없어지면서 부활한 학생회에서 제1대 고려대학교 학생회장을 지냈다. 연세대학교 학생회장이자 현 인천시 국회의원이었던 송영길과 함께 1980년대 학생운동의 리더로서 활약하였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김영삼에 의해 발탁되어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3당 합당 당시 YS에게 실망하여 정계은퇴까지도 고려하였으나, 김종필과 차기 대권주자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김영삼 총재의 설득을 받고 1992년 다시 정계에 입문하였다. 한나라당의 젊은 보수 인사로 발탁된 그는 1996년 총선에서 여권 험지로 분류되었던 광진갑에 출마하였지만 근소한 표차이로 낙선하였다. 2000년 총선때에는 당선되는데 성공하였는데 이때가 그의 나이 39세였다. 김영춘은 2002년 대선때 이회창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하였으며, 민정당, TK스러운 정치를 계속 한다면 이회창 후보의 미래는 어두울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다.

이부영, 김부겸과 함께 당내 소장파로서 우경화되가던 한나라당 주류를 비판하면서 한나라당과 점차 멀어지게 되었고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천정배와 노무현, 유시민 등이 창당한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이회창의 대선 불복과 탄핵 소추 언론 플레이에 답없음을 느끼고 탈당했다고 한다. 김영삼이 찾아와 김영춘의 탈당을 만류하자 '현재 한나라당은 점점 민주정의당처럼 되가고있다'라며 반드시 탈당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소추 안건을 막기 위해 몸까지 던져가며 막았지만, 끝내 압도적 표차로 탄핵안이 통과되자 분노하여 '한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 '오늘부로 이 더러운 금뱃지를 내려놓겠다'라며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였다. 이후, 탄핵 역풍 속에서 치뤄진 17대 총선에서 김영춘 후보는 이회창의 측근 홍희곤을 꺾고 압도적인 표수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역시 소득불평등과 부동산값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에 열린우리당에 실망하였으며,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사무총장으로 우리당의 간판을 내리는 역할을 맡았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동영, 천정배, 손학규의 철새짓에 지쳐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며 민주당을 탈당하고 창조한국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창조한국당 역시 문국현의 독단적 개인정당으로 변모해가자 크게 실망해 중앙 정계를 떠나 야인으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에 다시 입당하였는데 놀랍게도 광진구갑이 아닌 부산진갑에 출마하겠다고 발표했다. 험지에 출마하여 부산 지역주의의 틀을 깨 부시겠다는 선언이었다. 3500여표차로 낙선한 이후에는 민주통합당에서 당직자 활동을 하였는데,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당하자 김한길과 안철수를 비판하며 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부산시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서병수 - 오거돈 - 김영춘의 삼파전이 된 이 선거에서 김영춘은 174,811표를 받아 17.10%를 기록한다. 선거 결과는 야권의 표가 갈려 42.75%를 득표한 서병수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였다.

시정

역대 선거 결과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신한국당
22,309 (27.93%)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한나라당
37,446 (50.79%)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열린우리당
44,519 (50.73%)
당선 (1위)
재선
2012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갑)
민주통합당
34,238 (35.76%)
낙선 (2위)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광역시장)
무소속
174,811 (17.10%)
낙선 (3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부산진 갑)
시민연합당
55,706 (59.58%)
당선 (1위)
3선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광역시장)
시민연합당
804,322 (40.88%)
당선 (1위)
초선

역대 소속 정당

1

통일민주당 (1988 - 1990)
2

신한국당 (1996 - 1998)
3

한나라당 (1998 - 2003)
4

열린우리당 (2003 - 2007)
5

창조한국당 (2007 - 2008)
6

민주통합당 (2011 - 2013)
7

새정치민주연합 (2013 - 2014)
8

무소속 (2014 - 2016)
9

시민연합당 (2016 - 현재)

  1. 주민등록상 주소, 실질적으로는 부산광역시 시장 관저에 거주한다.
  2. 16, 17대에는 광진구 갑으로 출마
  3. 시민연합당 내에서는 조경태(5선) 다음으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