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랑크 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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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코플렌 공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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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 랑크 제국 총리 나크란 3세 Nacran III | |||||||||||||||||||
출생 | 1856년 5월 19일 | ||||||||||||||||||
랑크 프로미주 다크렌 언마을 (現 프란스주 다크렌시 웨일동) | |||||||||||||||||||
사망 | 1932년 1월 24일 | ||||||||||||||||||
랑크 프로미주 코플렌 궁 | |||||||||||||||||||
신체 | 159cm | ||||||||||||||||||
재임기간 | 제5대 코플렌 공작 | ||||||||||||||||||
1894년 12월 24일 ~ 1930년 1월 24일 | |||||||||||||||||||
랑크 제국 초대 총리 | |||||||||||||||||||
1926년 4월 12일 ~ 1930년 4월 11일 | |||||||||||||||||||
본명 | 진스 나크란 함바 | ||||||||||||||||||
소속 정당 |
귀족당 | ||||||||||||||||||
학력 | 학력 미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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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랑크의 초대 총리. 당시 티렌테 9세 황제가 임명하였다. 동시에 코플렌 공작이었다.
작위 및 칭호
사용하던 작위는 다음과 같다.
- 위대한 유젯 백작 대하 (1863년~1873년)
- 위대하신 에바 통치령, 함바 가문의 후계자 덴칫 후작 합하 (1873년~1894년)
- 코플렌의 수호자이신 위대하고 빛나는 공작 저하' (1894년~1926년)
- 코플렌의 수호자이시자 랑크 모든 국민들의 위대한 지도자 총리 각하 겸 공작 저하 (1926년~1930년)
- 코플렌 전국의 령정이자 우상이신 공작 저하 (1930년~1932년)
생애
코플렌 공작가의 함바 가문에서 코플렌 공작이었던 나크란 2세와 불렛 사이에서 공자로 태어났다. 제후 귀족 가문 출신으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1863년에는 유젯 백작으로 임명되었고, 1873년에는 공세자로 임명되어 코플린 공국 산하의 덴칫 후작에 임명되었다.
이후 공작령 대학교를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 제후의 자식들은 그 지역 제후령 대학 또는 왕실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관습이었다. 기록상으로는 공국 내에서 생활하다 부공 나크란 2세가 사망하자, 작위를 세습받아 공위에 올라 공작명을 지어 나크란 3세가 되었다.
이후 랑크 내전이 발발하자, 적극적으로 신제국 세력을 도왔다. 공국 병력 1000명 이상을 파견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했다고 전해지며, 이로서 제3제국 등장 이후 코플렌 공곡은 여러 편의와 특혜를 받았다. 대규모 제후국 정리 과정에서도 영토 하나 잃지 않고 살아남았으며, 공국 내 서열 2위 제후로 올라 사실상 왕작과 그 혜택이 비슷했다. 귀족 출신과 제후들이 모여 만든 귀족당에 가입하기까지 했다. 다만 당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티렌테 9세에 의해 초대 랑크 총리로 명되어 여러 정사를 돌봤는데, 이로 인해 코플렌 공국의 통치는 아들 나크란 4세에게 임시 섭정을 맡았다.
총리로서는 무난했다. 하지만 그저 티렌테 9세의 꼭두각시라는 비판을 듣기도 하였으나, 나름대로 의회와 협차하고 행정적인 능력을 보였다. 이후 총리 직에서 퇴임하고 2년 후인 1932년에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아들 나크란 4세에게 공작위를 물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