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제2대 인민위원장 니콜라이 부하린 Никола́й Буха́рин | |||||||||||||||||||
본명 |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부하린 Никола́й Ива́нович Буха́рин | ||||||||||||||||||
출생 | 1888년 10월 9일 (63세)[1] | ||||||||||||||||||
러시아 제국 모스크바현 모스크바시 | |||||||||||||||||||
국적 | 소비에트 연방 | ||||||||||||||||||
임기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인민위원장 | ||||||||||||||||||
1924년 1월 21일 ~ 1943년 1월 7일 | |||||||||||||||||||
전연방 공산당 정치국 위원 | |||||||||||||||||||
1924년 6월 2일 ~ 1943년 1월 7일 | |||||||||||||||||||
전연방 공산당 정치국 후보 위원 | |||||||||||||||||||
1919년 3월 8일 ~ 1924년 6월 2일 | |||||||||||||||||||
프라우다 편집장 | |||||||||||||||||||
1918년 11월 ~ 1924년 1월 2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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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인이자 마지막 지도자.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경제학자이자 공산주의자 중에는 드물게 기계론자이고 볼셰비키의 일원으로 블라디미르 레닌과 함께 러시아 혁명을 이끌고 레닌 사후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자로 올랐으나 여러가지 실책으로 인해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을 이끌었다.
생애
레닌의 후계자
신경제정책과 몰락
실각 및 실종
1943년 1월 7일 결국 전연방 공산당 전체회의에서 실각되었다.[2]
1943년 1월 13일에 결국 모스크바 협정이 체결되자 독일 국방군을 피해 동쪽 시베리아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게 공식적으로 확인된 니콜라이 부하린의 마지막 행적이다.
이후에는 불곰이나 시베리아호랑이와 같은 맹수에게 잡아먹혀 사망했다는 설, 시베리아의 눈보라에 파뭍혀 조난을 당했으나 아무런 도움을 못받아서 동사했다는 설, 독일 국방군 혹은 슈츠슈타펠에게 이미 체포 혹은 납치되었다는 설, 해외로 망명하여 신분을 숨기고 있다는 설 아니면 그냥 시베리아에서 멀쩡히 잘 살아있다는 설까지 여러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여담
- 모스코비엔 국가판무관부는 니콜라이 부하린에게 2천5백만 라이히스마르크의 현상금을 걸었다.
![]() "There would never again be silence for People of Germania" "앞으로 다시는 게르마니아의 사람들에게 고요란 없을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추축국 승리 시나리오... 그리고 그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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