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대한민국 (일상 속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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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기업 규모에 관한 대한민국 법률 규정. 대기업이란 아래 4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기업이다.

중소기업기본법이 규정하는 중소기업의 규모보다 더 커야한다. 중소기업 기본법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3조(중소기업의 범위) ① 「중소기업기본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2조제1항제1호에 따른 중소기업은 다음 각 호의 기준을 모두 갖춘 기업으로 한다.
  • 자산총액이 5천억 미만일것
    • 의복, 종이, 1차 금속, 전기장비, 가구 등 제조업은 평균매출액등 1,500억원 이하
    • 농어업, 광업, 식료품, 담배, 섬유, 중공업 제조업은 평균매출액등 1,000억원 이하
    • 음료, 인쇄, 의료, 비금속 광물, 운수, 환경 제조업은 평균매출액등 800억원 이하
    • 전문 과학, 스포츠, 예술, 시설관리 업등은 평균매출액등 600억원 이하
    • 숙박, 금융 및 보험, 부동산, 교육서비스 업등은 평균매출액등 400억원 이하.
중견기업성장촉진에 관한 법률에 해당하는 사항이 없어야 한다. 해당 법률은 아래와 같다.
제2조(중견기업 및 중견기업 후보기업의 범위) ①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2조제1호다목에서 "지분 소유나 출자관계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한 기업"이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기업을 말한다.
  • 1호「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4조제1항에 따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또는 채무보증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이 아닐 것.
  • 2호「통계법」 제22조에 따라 통계청장이 고시하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른 금융업, 보험업 및 보험 서비스업이 아닐 것.
  • 3호「민법」 제32조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이 아닐 것.
  • 4호「중소기업기본법」 제2조제3항 본문에 따라 중소기업으로 보는 기업이 아닐 것[1]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소속한 회사일 것.리스트[2] [3]
금융업 보험업은 중소기업기본법상의 규모를 벗어나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아니어도 대기업으로 간주된다. [4]

국내법상 대기업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매년 4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지정하여 대기업 집단, 자산 10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을 간접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적용해보면 대기업은 2017년 5월 기준 자산총액이 10조원 이상인 31개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사이가 너무 지나치게 멀기 때문에 등장한 개념이 중견기업이다. 중견기업의 개념은 관련 법령으로 중소기업은 아닌데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는 들어가지 않는 규모의 기업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등뼈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아니라고 볼만한 기업집단이 별로 없기 때문에, 대기업과 재벌 소속 기업을 정의에 따라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우며, 재벌 소속 기업이라고 모두 대기업은 아니다. 따라서 이 페이지에서는 재벌과 기업집단을 특별히 나누지는 않고 기업집단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하지만 분명 비계열대기업, 신흥 대기업들이 존재한다.

한국에선 대기업, 특히 재벌 경영인들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취지로 큰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사면을 받고 경영에 복귀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도 이슈로 다뤘던 삼성의 이건희 사면을 들 수 있겠다. 국내외 모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부분.[5] 한국 문화의 고질적인 문제인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가 남이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심지어 2014년에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투자 활성화"를 통해 경제를 살린다는 이유로 기업인들의 가석방이 필요하다라고 직접 건의까지 했다고.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찬동했지만, 홍준표 당시 경남 도지사처럼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직접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이런 풍조를 두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설을 올렸다.

대기업 및 기업 집단 현황

공기업 역시 기업이기 때문에 이전에는 일정 규모를 넘어가면 대기업으로 지정되었지만, 2016년 10월 30일부로 공기업은 대기업집단 지정 현황에서 제외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공기업 항목 참조.

재벌(범 계열)

국내 기업집단순위는 위에서부터 삼성-현대자동차-SK-LG 순이지만, 모그룹에서 이른바 분가[6]라는 이름으로 분리된 그룹들이 많으며, 따라서 이러한 모습은 국내 재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한국이라는 공화국 내에 존재하는 왕국

삼성

이름 소유
삼성그룹 이병철 → 이병철의 3남 이건희 → 이건희의 장남 이재용
CJ그룹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 → 이맹희의 장남 이재현
새한그룹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7]
한솔그룹 이병철의 장녀 이인희 → 이인희의 3남 조동길
신세계그룹 이병철의 5녀 이명희 → 이명희의 장남 정용진
중앙그룹 이건희의 처남 홍석현 → 홍석현의 장남 홍정도
보광그룹 이건희의 처남 홍석조

현대

이름 소유
현대그룹 정주영 → 정주영의 5남 정몽헌 → 정몽헌의 아내 현정은
현대자동차그룹 정주영의 차남 정몽구
현대백화점그룹 정주영의 3남 정몽근 → 정몽근의 장남 정지선
현대중공업그룹 정주영의 6남 정몽준
현대해상 그룹 정주영의 7남 정몽윤
현대미래로 정주영의 8남 정몽일
한라그룹 정주영의 동생 정인영 → 정인영의 차남 정몽원
성우그룹 정주영의 동생 정순영 → 정순영의 장남 정몽선
현대성우그룹 정순영의 4남 정몽용
현대산업개발그룹 정주영의 동생 정세영 → 정세영의 장남 정몽규
KCC그룹 정주영의 동생 정상영 → 정상영의 장남 정몽진
서한그룹 정주영의 매제 김영주 → 김영주의 장남 김윤수
후성그룹 김영주의 차남 김근수

LG

이름 소유
LG그룹 구인회 → 구인회의 장남 구자경 → 구자경의 장남 구본무 → 구본무의 양자 구광모
희성그룹 구자경의 아들 구본능, 구본식
깨끗한나라 구자경의 사위 최병민
LF 구인회의 손자 구본걸[8]
아워홈 구인회의 3남 구자학
LB그룹 구인회의 4남 구자두
LS그룹 구인회의 동생 구태회, 평회, 두회
LIG그룹 구인회의 동생 구철회 → 구철회의 장남 구자원
GS그룹 구철회의 손자 허창수[9]

SK

이름 소유
SK그룹 창업주 최종건의 조카 최태원
SK케미칼 창업주 최종건의 삼남 최창원

롯데

이름 소유
롯데그룹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 신격호의 차남 신동빈
농심그룹 신격호의 셋째동생 신춘호
푸르밀 신격호의 넷째동생 신준호
롯데관광개발 신격호의 여동생 신정희의 남편 김기병

한진

이름 소유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의 장남 조양호
한진중공업 조중훈의 차남 조남호
메리츠금융지주 조중훈의 사남 조정호

한화

이름 소유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의 장남 김승연
빙그레 창업주 김종희의 차남 김호연

금호아시아나

이름 소유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 박인천의 삼남 박삼구
금호석유화학그룹 창업주 박인천의 사남 박찬구

공기업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재계서열)

공정거래위원회자산 총액 10조원 이상인 기업 집단을 상호 출자 및 채무 보증이 제한되는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2014년 중견기업법이 제정되면서 상호 출자 제한 기업 집단에 속한 기업이 진정한 의미의 대기업 집단이 되었다. 2017년 5월 31개사가 지정되었으며, 아래는 자산총액 순서이다. 아래의 재계서열이라는 것은 자산총액 기준으로 규제를 받는 기업들을 의미하기 때문에, 상호출자 제한집단이라고 해서 반드시 재벌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에쓰오일은 일개 가문에 의해 지배받고 있지도 않고[11] 다양한 사업군을 영위하지도 않는다. 다만 재벌이라는 개념이 한국 경제계에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므로 그 정의가 딱히 엄밀하지도 않은지라 사용되는 맥락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6년 하반기 대기업집단 규정 자산규모 조건을 기존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인상하고 5조원 이상 10조원 규모의 기업에 대하여 준대기업이라는 분류를 신설했다. 또한 공기업을 해당 집단에서 제외하기로 하면서 2017년 5월 31일 개사가 지정되었다. 단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 대상으로는 기존 조건을 사용한다.

순위 기업집단명 동일인[12] 계열회사수 자산총액(조)
1 삼성 이건희 62 363.2
2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53 218.6
3 SK 최태원 96 170.7
4 LG 구본무 68 112.3
5 롯데 신격호 90 110.8
6 포스코 (주)포스코 38 78.2
7 GS 허창수 69 62.0
8 한화 김승연 61 58.5
9 현대중공업 정몽준 29 54.3
10 대우 (주)대우그룹 40 52.3
11 농협 농업협동조합 중앙회 81 50.8
12 신세계 이명희 37 32.3
13 두산 박용곤 26 30.4
14 한진 조양호 34 29.1
15 CJ 이재현 70 27.8
16 부영 이중근 22 21.7
17 LS 구태회 45 20.7
18 대림 이준용 26 18.4
19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28 15.6
20 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14 15.3
21 미래에셋 박현주 41 15.2
22 S-OIL 에쓰-오일 2 14.0
23 현대백화점 정지선 29 13.4
24 OCI 이수영 22 11.8
25 효성 조석래 46 11.546
26 영풍 장형진 23 11.0
27 케이티앤지 (주)케이티앤지 9 10.8
28 한국투자금융 김남구 28 10.7
29 대우건설 (주)대우건설 14 10.7
30 하림 김홍국 58 10.5
31 케이씨씨 정몽진 7 10.5

공시대상 기업집단

금융

언론

흑역사가 된 기업집단

크게 봐서 군사독재 시절 정치적인 이유로 해체당한 기업집단,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경유착과 재벌의 선단식 경영의 폐해가 곪아터져 망한 기업집단, 그리고 2008년 이후 세계금융위기의 후폭풍을 맞은 기업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름 비고
거평그룹 1979년에 나승렬 창업주가 설립한 '금성주택'을 모태로 하여 1994년에 대한중석을 인수해 민영화한 기업이었다. 90년대 동대문 패션타운 붐의 신호탄과도 같았던 거평프레야[13][14]가 일반에 많이 알려졌었으나, 역시 IMF 체제 와중에 해체되었다.
고합그룹 1966년에 장치혁 창업주가 세운 고려합섬을 모태로 하던 기업이었다.
광명그룹 1978년에 이수왕 창업주가 세운 대구지역 향토기업 '광명주택'을 모태로 하여 8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재벌이었으나 1983년 부도가 나 해체되었다. 당시 신문 기사
나산그룹 '무랑루주' 등 밤무대를 경영한 안병균 창업주가 1980년에 세운 나산실업을 모태로 한 기업집단. 그러나 IMF 이후 해체. 그룹의 중심이었던 패션사업만 '인디에프'라는 법인으로 존속중.
대한선주 서주우유로 유명한 윤석민이 김연준의 대한조선공사를 빼앗아 운영했던 기업. 1987년 4공 정권의 '해운산업 합리화조치'에 따라 한진으로 넘어감.
대한전선그룹
덕산그룹 1962년에 자양 박철웅이 설립한 고려시멘트를 모태로 90년대 초중반 광주광역시를 본거지로 하여 몸집을 키웠으나 1995년 광속으로 부도 릴레이를 맞으며 빠르게 사라졌다. 이들이 한때 소유했던 주요 계열사 중에서는 조선대학교 재단과 고려시멘트, 무등일보 등이 있었다. 사실상 조선대학교가 이 그룹의 모체였다. 역사가 좀 거시기한데, 재단 설립자인 박철웅 일가의 전횡을 견디다 못해 지역 여론이 이들을 끌어내렸고, 설립자 박철웅이 여기에 불복해 자신들의 존립 기반이었던 학교재단을 되찾고자 아들 박성섭을 내세워 언론사 설립과 여러 계열사 인수합병 등 급조한 기업집단이었던 것.
동명목재그룹 1965년 당시 재계 1위 재벌이었고, 동명목재그룹의 모체인 동명목재는 해체 직전까지 세계적인 규모의 목재가공업체였다. 하지만 군부세력에 의해서 1980년 6월에 해체당했다. 부산의 동명대학교도 동명목재그룹이 만든 대학교이며, 부산항만물류고등학교도 여기서 설립한 학교이다.
동아그룹 동아건설, 대한통운 등을 계열사로 두었던 기업이었으나 2001년에 해체되어 현재는 학교법인 공산학원으로 남아서 연명하고 있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와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가 동아그룹의 학교법인 공산학원에서 세운 학교들이다.[15] 한편 주축인 동아건설은 2008년부터 프라임그룹에 인수되었다가 2016년에 SM그룹으로 인수된 상태이다.
성우그룹 2016년 5월 성우종합건설이 SM그룹에 매각되면서 현대시멘트만 남고 사실상 해체되었다. 현대시멘트는 2017년 한일시멘트그룹에 인수되었다.
동양그룹 오리온그룹과 로고를 같이 썼을 정도로 뿌리가 같았던 그룹이었으나, 2016년에 해체되었다.
명성그룹 국내 관광 및 레저 산업의 선구자[16]격인 재벌이었으나, 군부세력에게 찍히고서 1983년 7월 명성 홀딩스와 크리스천 신문사만 남긴 채 전격 해체.[17]
삼미그룹 삼미 슈퍼스타즈를 운영했던 그 삼미가 맞다. 1997년에 부도가 나서 결국 해체되었다.
삼풍건설그룹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일으키고 공중분해되었다. 이쪽은 도저히 쉴드치지 못할 정도로 일을 너무 크게 저지르는 바람에 산하에 있었던 학교법인 숭의학원(숭의여자대학교, 숭의여자고등학교, 숭의여자중학교, 숭의초등학교) 조차도 건지지 못하고 1996년에 공식해체 되었으며, 학교법인 숭의학원은 1999년에 영안모자가 인수하였다.
새한그룹 삼성그룹이병철 회장의 차남 故 이창희 씨가 따로 차린 새한미디어와, 그의 사후 삼성그룹이 계열분리될 때 이창희 씨의 장남 이재관 씨가 받은 제일합섬을 합쳐 출범했던 범 삼성가 그룹. 그러나 얼마 못 가 IMF 때 범 삼성가 그룹 중 유일하게 망해서 해체되었다. 이후 (주)새한(구 제일합섬)은 웅진을 거쳐 웅진케미칼로 바뀌었다가 제일합섬 설립 때부터 제휴 관계였던 일본의 도레이에 넘어가서 도레이케미칼이 되었고, 새한미디어는 GS그룹의 방계 기업인 코스모신소재에 넘어갔다.
봉명그룹 서봉 이동녕 창업주가 1947년에 세운 '봉명광업소'를 모태로 한 기업집단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세 경영이 본격화되어 봉명(이승무), 아세아(이병무/이윤무), 동창제지(이세무) 등으로 3분할되었다. 한편 봉명은 1991년 성균관대학교 경영에서 손을 떼었고, 1993년 도투락과 봉명산업이 부도를 내면서 해체되었다. 이후 1994년에 동창제지 역시 부도나 현재는 아세아그룹만이 건재하게 된 것이다.
신동방그룹 1966년에 눌원 신덕균(1909~1999)이 세운 신동방(구 동방유량)을 모체로 하여 '해표 식용유'로 알려져 있던 회사였으나 1997년 외환위기 타격을 맞고 해체되어 사조그룹에 인수되었고 현재 사조해표로 바뀌었다. 현재 신동방의 흔적으로는 눌원문화재단이 있다.
쌍용그룹
신동아그룹 IMF 외환위기와 옷로비 사건에 연루되어 1999년에 해체되었다. 원래 신동아그룹 계열사였던 대한생명은 신동아그룹이 해체되고 나서 한화그룹에 인수되어 한화생명으로 바뀌었다. 그 밖에도 대한생명의 본사 건물인 63빌딩, 신동아화재(현 한화손해보험) 등도 한화그룹에 인수되었고, 현존하여 독자생존 중인 과거 계열사로는 신동아건설과 동아원(동아제분)등이 있으며 학교법인 신동아학원(전주대학교, 전주비전대학교, 전주영생고등학교, 전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도 남아서 독자생존 하고 있다.
신진그룹 1960년대~1970년대 초반 당시 국내 최대의 자동차 재벌이었고 건설업(현 삼성물산 건설부문)까지 진출했으나, 주은래 3원칙으로 인해 도요타가 배신을 때리고 먹튀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해서 신진자동차공업은 신원개발을 흡수합병하여 신원개발로 사명이 변경되었다가 삼성그룹으로 팔려가버리고, 이후에는 거화(구 신진지프자동차, 현 쌍용자동차)의 부자간 경영경 분쟁으로 인하여 흑자도산 하면서 팔려가버리는 바람에 아예 그룹이 공중분해되어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 2014년 현재는 신진자동차공업고등학교 1개교 규모에 불과한 학교법인으로 연명하면서 현존하고 있다 (...) 지못미
아남그룹
영동개발
우성그룹 1973년에 유연 최주호(1914~2003)가 세운 우성건설을 주축으로 하던 기업. 1996년에 부도가 났는데 이 기업을 한일그룹이 인수하려다가 그만 한일그룹 전체가 망해 버렸다.(...)
원기업 율산, 제세, 대봉과 같은 1970년대 '신데렐라 재벌' 중 하나. 1976년에 율산실업 쿠웨이트 지사장이던 원길남이 원기업을 비롯한 원엔지니어링, 원해운 등으로 주축을 만들었으나, 자금난으로 1977년에 대표 원길남이 구속된 뒤 해체.
율산그룹 3년 만에 흥하여 3년 만에 망한 재벌. 정주영 회장의 바지선 자재 운송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대담하고 기발한 방식[18]으로 바이어들의 오퍼를 수주하고 성과를 내면서 빠르게 성장했었지만, 부채가 너무 많다고 해산당했다. 망한 뒤 센트럴 시티로 재기하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건설 과정에서 생긴 부채를 갚기 위해 지분의 60퍼센트를 외부에 매각했었다. 그리고 그 지분은 애경그룹, 통일교를 거쳐 인천터미널을 롯데에게 뺏기고 이를 갈던 신세계 그룹이 인수, 계열사로 흡수했다. 리즈 시절에는 석촌호수 부지를 소유했었으나, 율산이 망한 뒤 롯데에게 넘어가서 지금은 우리가 아는 그 놀이동산이 되었다. (참고)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율산그룹이 망하지 않았다면 석촌호수 부지에는 율산그룹 사업체가 들어서거나 조촐하게 율산석촌호수공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19]
제세그룹 1974년에 젊은 기업가인 이창우가 '사업으로 세계를 제패한다'는 일념으로 세운 제세산업을 모태로 하여 삼각무역으로 번성한 기업. 그러나 1978년에 재정난으로 부도가 나 금세 사라졌다.
진로그룹 1924년에 우천 장학엽이 세운 진천양조상회를 모체로 한 기업집단. 1985년 장진호 회장대에 들어서 무리한 확장으로 1997년에 부도가 났고 결국 해체되었다. 현재 진로는 하이트맥주에 인수되어 하이트진로로 바뀌었다. 구 진로그룹의 흔적으로는 우신중학교와 우신고등학교가 있다.
청구그룹 1973년에 장수홍 창업주가 세운 청구주택개발을 모체로 한 대구·경북지역 향토건설 재벌이었지만 IMF 때 부도가 났고 그 후 재기하는 듯 했으나 2010년에 완전히 파산하였다.
한보그룹 1980년대 강남 개발[20]로 급성장한 재벌, 무리한 확장을 벌이다 결국 1997년 1월 부도 처리.[21] 관련 기사
한신공영그룹 한신공영을 중심으로 건설업으로 성장한 그룹으로 한신아파트가 특히 유명했다. 전성기때는 백화점 같은 유통업 까지 진출했으나, 1997년 6월에 부도로 인하여 해체되었고, 지금 남아있는 한신공영은 코암시앤시개발에 인수된 한신공영의 건설부문이다. 연산동 브니엘중학교를 철거 및 폐교하지 않고 학교만 그대로 인수해서 유지했더라면, 신진그룹이나 한일그룹, 동아그룹처럼 그룹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소규모 학교법인으로 연명하면서 잔존했을지도 모른다
한일그룹 한일합섬이 모기업이었던 그룹이었으나 2004년 한일리조트가 (주)동일에 인수되면서 해체되었다가 2005년 한일합섬이 핀튜브텍을 인수, 그룹이 다시 형성되었다. 2007년 동양그룹에 인수되면서 다시 해체되었다. 이 기업은 전두환에게 잘 보인 덕분에 국제그룹이 해체될 때 대부분의 국제그룹 계열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1996년 우성그룹도 인수했는데 이 기업을 한일그룹이 무리하게 인수하려다가 그만 부도가 나 버렸다. 한일합섬은 동양그룹을 거쳐 현재 유진그룹에 인수되었다. 2014년 현재는 김해한일여고와 마산한일여고 2개교 규모의 학교법인(한효학원)으로 남아서 현존하고 있다(...)[22]어찌보면 신진그룹, 진로그룹과 비슷한 말로인듯... 그 외에 부산 강서구에 있는 경일고등학교와도 관련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한일합섬 문서를 참조할 것.
해태그룹 1990년대 중반까지 제과 및 음료 관련 재벌이었다. 1997년 11월 부도 후 전면 해체.

대한민국 기업 관련 통계

파이낸셜 타임즈 500

세계 시가총액 상위 500대 기업에 들어간 대한민국 기업.

(2014/9/30) 세계 시가총액 상위 500대 기업(파이낸셜 타임즈 500)에 들어가는 대한민국의 7개 기업[23]
한국 국내 순위 기업 업종 2014년 9월 시가총액(단위: 100만달러)
1위 삼성전자 Technology hardware & equipment 184,701.8
2위 현대자동차 Automobiles & parts 46,850.7
3위 SK하이닉스 Technology hardware & equipment 32,068.9
4위 한국전력공사 Electricity 29,322.6
5위 포스코 Industrial metals & mining 27,141.3
6위 네이버 Software & computer services 25,208.1
7위 현대모비스 Automobiles & parts 23,707.5

관련 문서

  1. 4호 항목을 벗어나면 곧바로 중견기업법을 적용 받는것이 아니라, 3년간 유예기간을 거친 후 중소기업법을 벗어나고 중견기업법을 적용 받게 된다.
  2. 매년 4월 공정거래 위원회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발표한다.
  3.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2016년 10월 30일부로 자산 10조원 이상인 기업으로 상향조정되었다. [1]
  4. 중견기업법령을 적용받지 아니하므로.
  5. 이는 훗날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의 보상으로 밝혀졌다.
  6. LG그룹처럼 매우 드물게 별 탈 없이 분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도 유산 등 돈 문제를 두고 형제 자식 간에 개판이 벌어지는 판국에 최소 억에서 조 단위의 액수가 오고가는 기업집단 승계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황금의 제국 등 드라마 소재로도 쓰인다.
  7. 1997년 외환 위기 때 해체됨.
  8. 구인회의 차남 구자승의 장남.
  9. LG 공동 창업자 허만정의 손자이기도 하다.
  10. 공항과 비교될 수 있는 항만분야는 부산항을 굴리는 부산항만공사가 5조원 가량이다.
  11. 사실 따지고 보면 일개 가문의 지배 아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에쓰오일의 대주주는 아람코인데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이고, 사우디는 이름에서부터 실질적으로 나라 전체가 사우드 가문의 사유물이기 때문에(...)
  12. 동일인은 기업 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인이나 자연인을 뜻한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본인과 친인척이 해당 회사와 거래할 때 관련 사항을 공시해야 하며 이와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진다. 정식 법적 명칭으로는 동일인으로 나오지만, 사기업의 경우 총수를 나타낸다.
  13. 이후 프레야타운, 청대문, 케레스타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다가 복잡한 문제로 폐쇄되어 한동안 폐건물로 남았다가, 2016년 3월 현대시티아울렛 동대문으로 재개장하였다.
  14.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건물 내에 있는 장난감 가게로 유명했고, 오덕들에겐 코믹월드 발상지로 추앙받았다.
  15. 범 동아그룹으로 동아그룹 창업주 최준문 회장의 아들 중 한명이자 최원석 회장의 동생인 최원영 씨가 대표로 있던 예음그룹도 있었다. 최원영은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공사 주역중의 하나였으며, 예음그룹은 1989년 1월에 동아그룹에서 독립 하였는데 이쪽은 월간 객석과 만화왕국을 발행하던 예음출판사로 유명하였고, 국제언론문화사, 예음파이낸스, 동아실업, 동아정공, 동아종합환경 같은 계열사, 서울예술고등학교, 예원학교, 경원대학교, 경원전문대학을 산하에 두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때 계열사의 부채를 갚기 위해서 경원대학교나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거액의 등록금을 횡령하는 바람에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그 후 경원대학교와 경원전문대학은 1998년 이길여 씨의 가천길재단에 인수되어 2007년 한 대학으로 통합되었고, 경원대학교는 기존에 이길여 씨가 설립하여서 소유하고 있던 가천의과대학교와 역시 가천길재단이 인수한 학교인 가천길대학이 통합되어 출범한 학교인 가천의과학대학교와 통합하여 가천대학교로 바뀌어서 현재에 이른다. 지금의 가천대학교는 무려 4개의 대학이 통합하여 출범한 대학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예음그룹에 대한 설명이 동아그룹에 대한 설명보다 훨씬 자세하다.
  16.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은 관광,레저 분야의 귀재로 불릴 정도로 그 옛날에도 혁신적인 레저 사업안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전도 유망한 사업가였다. 현재 국내 관광 레저 산업의 보편적 형태로 정착된 콘도는 바로 명성그룹에서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만약 김철호 회장이 진두지휘하는 명성그룹이 해체되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었으면, 국내 관광 및 레저 산업이 현재보다 더욱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을 거란 의견도 있을 정도.
  17. 당시에 정부로부터 골프장 부지 고가 매입과 관련한 청탁을 받았으나 낮은 사업성을 사유로 거절했고, 4공 핵심인사가 정치자금을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영수증을 달라고 하는 바람에 파토가 나면서 완전히 찍혀버렸다. 이를 빌미로 비협조적으로 나오던 김철호 회장을 죽여버리고자 2차에 걸친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실시 했는데, 김철호 회장이 난 억울하다며 국세청의 부당한 세무조사에 공식항의하는 문건을 4대 일간지 1면 광고로 실으면서 4공 정권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셈이 되었다. 세무조사로 이미 금융권에서의 자금줄이 끊겨 고민하던 김철호 회장은 궁여지책으로 은행 돈을 가지고 지멋대로 불법 사채놀이를 하던 간 큰 은행 직원한테서 자금을 공급받았는데, 이게 세무조사에서 걸려드는 바람에 김 회장은 그 은행 직원과 작당했다고 뒤집어 씌워 징역 15년형을 받는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건실한 기업체였던 명성그룹 계열사들은 이런 최악의 조건에서도 부도가 나지 않았고, 결국 5공 정권이 명성그룹 경영진들을 압박하여 억지로 부도처리 시키고 계열사들을 전부 헐값에 한화그룹으로 매각시킨다. 현재 한화그룹의 콘도를 비롯한 레저 사업 부문 계열사들은 그 근원이 바로 명성그룹이다.
  18. 바이어들의 오퍼를 수주받은 물건을 수출할 때 국내에서 노는 선박을 자신들이 직접 임대해서 화주가 선주를 겸하거나, 사우디아라비아 법 체계의 허술함을 이용하여 화물선 선장실에 진압이 가능한 규모의 화재를 고의(!)로 일으켜 순서보다 훨씬 빨리 부두에 접안하여 물건을 내린다거나, 전차상륙함(!)에 물건을 실은 트럭을 임시도로가 깔린 해안에 상륙(!!)시켜 운송하거나 헬기(!!!)까지 동원하여 상품을 하역하는 등 현재 시점으로 봐도 상상을 뛰어넘는 각종 방법을 동원했다.
  19. 군사독재 시절에 해체 당한 재벌들이 다 그렇지만, 율산그룹 해체 과정도 의문스러운 점들이 매우 많다. 채권이 너무 많아서 부실기업으로 지정하여 퇴출시켰다고 하는데, 순자산이 채권 총액을 초과(!)하였다. 한마디로 흑.자.도.산 당했다. 이 때문에 음모론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호남에서 거대 기업이 나오길 원치 않았던 영남 위주의 정관계 인사들과 기존의 체제가 흔들리길 원치 않았던 기득권 재벌들에 의해 망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치적인 요인을 살펴보면 율산그룹의 회장이었던 신선호의 장인 부완혁이 사상계의 2대 발행인이었다(!). 그런 그가 율산그룹의 덩치가 커지면서 회사의 중심을 잡아줄 원로격으로 영입되었으니 정권의 눈에는 율산그룹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재계 자체의 요인을 살펴보면 율산그룹을 세운 창업 동지들은 기존 재계의 인사들과 비교하면 새파란 애송이라고 불릴만큼 젊은 청년들이었다. 특히, 그룹의 핵심이자 회장이었던 신선호는 2010년대 들어서 60대를 넘어 70대로 접어들었다.
  20. 세무공무원 출신인 정태수 회장이 1973년에 구멍가게처럼 시작한 기업으로, 1976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통틀어 최대인 4400가구 규모의 은마아파트를 건설 및 분양하여 강남 개발의 신호탄을 날리고 이후 강남 및 서초 지역에 자체브랜드인 미도아파트 분양 사업까지 성공하며 그야말로 떼돈을 벌어 재벌로 급성장하였다. 그만큼 정태수 회장이 은마아파트 부지에 대한 풍수지리적인 애착이 컸는지 부도 직전까지 한보그룹 본사를 은마아파트 상가 건물에 두고 있었다.
  21. 사업성이 신중히 검토되어야 할 시베리아 유전개발 사업 및 철강사업에 무리하게 뛰어들어 과도한 투자를 한 것이 결정적 화근이 되었다. 채권단이 경영권 포기 절차등으로 제3자 인수로 회생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정태수 회장이 거부하면서 결국 극단적인 부도 처리로 귀결되었다. 부도 당시 부채규모가 당시 액수로 4조 2천억원씩이나 되었으나, 자기자본규모는 고작 900억원에 불과한 기형적인 재무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은행 차입을 통해 외형을 부풀리는 재벌들의 기존 관행과 더불어, 은행들 또한 대출 검토시에 제대로 신용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외형 및 실적 위주로 평가한 탓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보그룹의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아 결국 구조조정 후 해외로 매각되는 안습의 수순을 밟았으며, 더불어 한보그룹 부도사태는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위기의 전주곡이 되었다.
  22. 이 두개의 학교는 본래는 산업체 부설고등학교로 개교했으나 폐교되지 않고 잔존하여 일반계고나 특성화로 전환된 드문 케이스다. 같은 한효학원 산하로 대구와 수원에도 산업체 부설고등학교가 있었으나 대구에 있던 산업체 부설고등학교는 어찌된 영문인지 1995년에 폐교해서 부지를 매각해버리고, 수원에 계속 남아있던 한일전산여고는 2011년에 학교법인 한봄학원으로 분리되었고 2012년 8월 수원전산여고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일그룹의 자취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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