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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朝鮮帝國 Empire of Ashta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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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旗 | 國章 | |||
弘益人間 | ||||
象徵 | ||||
國歌 | 愛國歌 | |||
1868年1月3日 ~ 1947年5月2日 (79年間存續) | ||||
成立以前 | 解體以後 | |||
李氏政權 | 聯合軍占領下朝鮮 | |||
歷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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槪要
대아사달제국, 아사달제국 또는 조제는 광덕유신이래 아사달반도와 그 식민지들을 지배했던 국가다. 1868년 5월 16일부터 1947년 5월 2일까지 존속했다.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뒤 동아시아 각지에서 큰 영향을 끼쳤으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인한 연합군의 점령 이후 아사달국 국제가 제정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象徵
國號
國旗
歷史
1867년 숭황성본을 시작으로 어라하에게 권력과 정권이 봉환되었고, 이로서 공식적으로는 장장 수백년이 넘게 이어지던 대군의 정권 독주 체제가 종료되었다. 이듬해인 1868년에는 옛 건도신정의 사례를 따라 '만신민령(萬臣民令)'을 선포, 대경대정과 대정의 구시대적 잔재인 대군, 섭정, 상좌평 등의 관직을 모조리 폐지, 각무대신 제도를 신설하며 성립되었다. 이후 광덕유신이라 불리는 대개혁을 통해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최초로 동아시아에서 근대화에 성공하였고, 1889년에는 대아사달제국 국제가 제정되고 이듬해인 1890년 제국의회가 개설되어 정치적 선진화의 도약에 성공하였다.
아사달제국은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를 표방하였고, 이를 위해 순, 러시아 제국 등 여러 주변국들과의 전쟁과 일본의 회유를 통해 패권과 이익선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조러전쟁의 승전을 통해 비유럽권 국가가 최초로 근대 유럽 열강을 상대로한 전면전에서 승리하는 역사적 의의를 남겼다. 이렇게 수많은 전쟁을 거친 끝에 조순전쟁 이후 황제와 섞어 쓰던 어라하의 명칭을 황제로 공식화하고 타이완섬(남만도독부), 남사할린(하이도독부), 쿠릴 열도(천도) 등 다수의 식민지를 할양받은 한편 일본과 류큐 또한 유구출병,토막파를 지원한 뒤 메이지 정부를 성립시키는 방식으로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뒤이어 확장 이래 최대의 목표였던 만주까지 여진도독부로 강제로 병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협상국 측에 가담하여 승전하고, 전후 국제 연맹의 상임 이사국에 등극하는 한편 대전쟁시기 쌓아둔 경제력을 통해 호황을 누렸으나, 대공황을 계기로 총리가 암살되는 등 정치적 혼란이 가속화되었다. 2.26 사건이라 알려진 쿠데타 미수 사태 이후엔 군부 내의 파벌인 통제파가 득세하였고, 결국에는 군부가 권력을 잡는 군사독재 및 황제제 성총 국가로 전락하였다. 이후 고도국방국가 건설과 전쟁이 최우선 목표가 되는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선 대아사달제국은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같은 파시즘 국가와 손을 잡고 추축국의 일원이 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때 자행된 전쟁 범죄는 현재의 외교 관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후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 패배하여, 포츠담 선언을 기초로 한 무조건 항복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황실과 정부가 종속되었고, 1946년 11월 3일에 아사달국 국제가 공포, 1947년 5월 3일에 시행됨으로써 체제가 붕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