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 (흐드러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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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
일본 고구려

(고려)?

대한
(이름) 외왕내제
? 외왕내제 논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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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大韓國 | State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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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大韓國
영어 State of Korea
한어 大韓國(ㄉㄚˋ ㄏㄢˊ ㄍㄨㄛˊ)
일본어 大韓国(だいかnこく)
러시아어 Государство Корея
도이치어 Staat Korea
에스파냐어 Estado de Corea
포르투갈어 Estado da Coreia
네덜란드어 Staat Korea
아랍어 دولة كوريا
몽골어 ᠶᠡᠬᠡ ᠰᠣᠯᠤᠨᢉᠭᠤᠰ ᠤᠯᠤᠰ
여진어 ᡩᠠᡳᠶᠰᠣᠯᡤᠣ ᡤᡠᡵᡠᠨ
월남어 Đại Hàn Quốc
히브리어 מדינת קוריאה
국기 국장
實事求是 利用厚生 王道堯舜(실사구시 이용후생 왕도요순)[1][2][3](1388~1644)
弘益人間(홍익인간)(1644~1812)
經天緯地 光明天地 弘益人間(경천위지 광무천지 홍익인간)(1812~)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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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애국가(사실상)[4][5]
국화 오얏꽃
국조 참매
국수 [6], 용[7]
국기 태극기
국장 이화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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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건국 1388년 6월 6일
무인정남 1398년 11월 13일
한성 천도 1399년 3월 15일
갑신경장 1644년 5월 19일
광무유신 1812년 3월 1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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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심양부(1388~1398)
개성부(1398~1399)
한성부(1399~)
최대도시 심양부
면적 총 면적 2,569,117km²
내지 2,534,558km²[8]
외지 34,559km²[9]
위치 조선반도, 요동, 부여, 연해, 유귀, 해남, 남양 군도, 남인도양 군도, 복국도
접경국 대몽골국, 러시아 제국, 대청국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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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인구 309,870,989명(건헌 2년(서력 2024년) | 세계 5위)
민족 구성 한민족 51.7%
여진족 21.5%
한족 16.2%
일본인 4.3%
러시아인 2.2%
월남인 1.4%
유대인 0.8%
기타 1.9%
인구 밀도 120.6명/km²(건헌 2년(서력 2024년) | 세계 75위)
출산율 1.32명/km²(건헌 2년(서력 2024년))
기대수명 83.5세(건헌 2년(서력 2024년))
언어 국어 대한어, 대한수어
공용어[10] 여진어, 한어, 일본어, 러시아어[11]
문자 국문 한글, 한글 점자, 한문(보조)[12]
공용문[13] 여진 문자, 한문[14], 가나 문자, 키릴 문자[15]
종교 국교 없음(정교분리)[16]
황실 유교[17]
분포 무종교 38.5%
유교 22.3%
기독교 16.7%[18]
불교 16.4%[19]
그외 6.1%
인간개발지수 0.955(건헌 2년(서력 2024년)) | 매우 높음 | 세계 5위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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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대한국군
통수권자 건헌제 이건(대한국 황제)
지휘감독권자 김용현(대한국 군무대신)
군령권자 김명수(대한국군 원수군통제사)
군정권자 박안수(유군통제사), 양용모(수군통제사), 이영수(공군통제사), 김계환(해군통제사), 임석정(우주군통제사)
편제 대한육군, 대한수군, 대한공군, 대한해군, 대한우주군
병역제도 모병제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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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자치단체 23부[20] 38도[21] 4도독부[22]
기초자치단체 428목 832군 576현 9주[23]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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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입헌군주제, 자유민주주의, 의원내각제, 다당제, 양원제, 단일국가[24], 성문법주의(대륙법계)
민주주의 지수 9.02점, 완전한 민주주의(건헌 2년(서력 2024년))
황제[25](국가원수) 건헌제 이건
정부 요인 의정총리 대신 윤석열
홍문원장 우원식
중추원장 이학영
대금자의원장 뇨후루 요이더
대평리원장 조희대
여당 국민당
연립여당 통합청년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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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제 자본주의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27조 7,316억(건헌 2년(서력 2024년)) | 세계 2위
1인당 $89,494(건헌 2년(서력 2024년)) | 세계 4위
GDP(PPP) 전체 $21조 4,014억(건헌 2년(서력 2024년)) | 세계 2위
1인당 $88,753(건헌 2년(서력 2024년)) | 세계 5위
국부 $109조 9,842억(건헌2년(서력 2024년))
수출입액 수출액 $2조 8,983억(건헌 2년(서력 2024년)) | 세계 2위
수입액 $2조 1,577억(건헌 2년(서력 2024년)) | 세계 2위
무역수지 $8,406억(건헌 2년(서력 2024년))
외환보유액 $3조 1,389억(건헌 2년(서력 2024년)) | 세계 1위
신용등급 무디스 Aaa
S&P AAA
Fitch AAA
송상 가가가
통화 명칭 대한국 원
ISO 4217 KOW
국가 예산 1년 세입 $12조 1,290억(건헌 원년(서력 2023년))
1년 세출 $16조 3,492억(건헌 원년(서력 2023년))
지니계수 0.389(건헌 원년(서력 2023년))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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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건헌, 서력기원
시간대 UTC+9(대한국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국정척관법[26]
전압 120V 60Hz
운전석(통행방향) 왼쪽(우측통행)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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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 가입 1945년 10월 24일(창립 회원국)
국제연합회원국 승인여부 197개국 전원 승인
수교국 197개국
ccTLD
.ko, .대한, .정부
국가코드
410, KOR, KO
국제전화코드
+81

위치
國本在民 實事求是 利用厚生 王道堯舜 국본재민 실사구시 이용후생 왕도요순
나라의 본에는 백성이 있으므로 실제적인 일에 옳음을 구하여 백성의 이용과 후생을 도와 왕의 길이 요순과도 같게 함이 마땅함이라.
태조 고황제

개요

대한국(大韓國/State of Korea)는 조선반도와 요동, 부여, 연해와 그 부속도서 및 해외령으로 이루어진 입헌군주제 제국이다.

수도는 한성부이며, 아시아국가국제협회의 맹주국으로서 21세기 현대 신냉전 시대의 한 축을 구축하고 있는 강대국이다.

상징

국호

발해
1388년 6월 6일 ~ 1399년 3월 14일
> 조선
1399년 3월 15일 ~ 1644년 5월 18일
> 대조선국
1644년 5월 19일 ~ 1812년 2월 28일
> 대한국
1812년 3월 1일 ~
대한 국호의 변천사

대한의 정식 국호는 대한국(大韓國)이다. 이것은 대한의 최초의 헌법인 대한국 흠정국제와 현행 헌법인 대한국 헌법의 표제 및 그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이다.

대한의 국호가 이러한 뜻을 품게 된 것은 대한이 처음으로 칭제건원한 1812년으로 돌아가야한다. 당시 광무유신을 이끌었던 성조 광무제는 국호에 대한 여러 논의를 진행하였고 당시 영의정이었던 심환지가 '삼가 아뢰기를, 과거의 조상들은 한(韓)이라 불렸다고 하옵니다. 마침네 신라, 고려, 백제의 삼한이 하나로 일통되었으니 하나의 큰 한(大韓)이라 함이 옳은지 아옵니다.'[27]라고 밝혔고 해당 주장이 받아들여져 국호는 대한(大韓)이 되었다.

이후 외국과의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외국과 아국의 국호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몇몇 예외[28]를 제외한 모든 국호의 뒤에는 국(國)자를 붙이기로 결정되면서 대한의 정식국호 또한 대한국이 되었다.

대한의 최초의 국호는 발해(渤海)였는데, 해당 국호는 태조 고황제가 건국할 때 직접 지은 이름이었다. 왜 하필이면 멸망한 전조의 이름을 따랐냐면, 당시 발해가 건국될 당시 건국을 지도한 층은 위화도 회군 당시의 태조 고황제를 비롯한 고려인이었으나 피지배층의 많은 수가 여진족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태조 고황제는 과거 신라인 지도층과 말갈 피지배층으로 이루어졌던 발해의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발해라 이름을 지었고, 실제로도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반송장으로 살아있던 한반도의 고려를 남고려 또는 왕씨 고려라고 부르며 스스로를 발해가 외교에서 사용했던 왕명 중 하나인 고려왕이라 칭하였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인정남이후 한반도를 다시 완전히 수복한 대한은 더이상 여진의 땅에서만 사용되었던 이름은 모순이 있음을 고려하며 대한 국사의 최초의 국가라 불리며 동시에 요동 일대에 자리잡았던 단군조선에서 유래한 조선(朝鮮)을 국호로 하였다.

대한의 약칭으로는 대표적으로 대한(大韓)이 사용된다. 이외에도 한국(韓國)이라는 약칭도 있으나, 해당 약칭은 한족의 국가인 한나라(漢國)와 명칭이 겹치므로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 편이다.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대한이라는 약칭을 지지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관공서에서도 대한이라 지칭하며 한국이라는 약칭을 사용하면 특이한 언어 습관이라고 평가받을 정도이다.

한편 영문 명칭은 공식적으로 State of Korea이다. 마치 영국의 그레이터 런던(Greater London)처럼 대한은 하나의 한이 아니라 여러 한이 하나가 된 거대한 한이므로 Korea가 아니라 Greater Korea를 사용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소수이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한 대한은 멸망한 고려와는 단절된 왕조이기에 개항 초기만 해도 대한(당시에는 조선)은 Chosun이라는 영문칭호를 사용해주기를 요구했지만, 일본이 니혼(Nihon)이나 닛폰(Nippon)이라 불리지 않고 재팬(Japan)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너무나 오랫동안 사용된 명칭인 Korea가 여전히 사용되었다. 이것은 대한이 칭제건원하고 난 뒤에도 이어져 현재까지도 Korea를 사용한다. 영문 공식 양칙은 Korea이며, 이니셜로 KO, KOR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대한을 부르는 별칭으로는 조선(朝鮮)이 있다. 사실 조선이라는 국가에서 법통만 바뀐체 왕조와 정체성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조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표기는 아니다. 한편 과거 건국 극초기에 사용했던 국호인 발해(渤海)라는 별칭도 사용되는 편이다. 두 명칭 모두 공식적으로 사용된다기 보다는 예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작품이나 상품명 등의 작명에 사용하는 편이다.[29] 소수지만 또다른 별칭으로서 부여, 신라, 백제 등의 명칭도 있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부여가 발해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편.

국기

태극기
太極旗
지위 공식 국기
최초사용 1812년 3월 3일
채택 1812년 3월 3일
근거법령 대한국기칙령(1812년~2007년)
대한국국가상징법(2007년~)
제작자 이현상(李顯相, 1770년~1822년)

태극기는 대한의 국기이다. 광무유신 당시 성조 광무제가 당대 외교관 겸 화가였던 이현상을 유럽으로 유학보내어 유럽 국가들의 국기를 참고하여 국기 도안을 제작할 것을 명령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현상에 의해 탄생한 태극기는 성조 광무제대한국기칙령을 반포함에 따라 대한의 공식 국기가 되었다.

한편 태극기가 가지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우선 태극기의 배경이 되는 흰색 바탕은 평화를 상징한다. 한편 중앙의 태극에서 붉은 색은 양, 푸른 색은 음을 상징해 두 음과 양이 뒤섞이는 형상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며, 동시에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사는 대한의 조화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태극의 주위에 있는 건곤감리 사궤는 각각 우주만물의 원소들을 상징하는데, 이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표현한다.

국장

이화문
李花文
지위 공식 국장
제정 시기 2007년 10월 8일
근거법령 대한국국가상징법(2007년~)

이화문은 대한의 국장이다. 본래 이화문은 전주 이씨 가문의 문자이었으나 대한의 황실이 곧 대한의 상징이므로 대한 황실의 상징 또한 대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2007년까지 대한에는 공식 국장이 없었으며, 황실 문장인 이화문이 여권 등에 사용되는 등 비공식 국장으로 이화문이 활용되었으나 대한국가상징법이 2007년 제정되면서 이화문 또한 공식적인 대한의 국장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대한에게도 공식적인 국장이 생겼다.

국가

애국가
愛國歌
1절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사
성수무강하사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시고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
오 천만세에 복록이
일신케 하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2절 상제는 우리 대한을 도우사
광명천지하사
영원토록 천지를 광명하고
해와 달이 무궁토록
오 천만세에 대한이
불멸케 하소서
상제는 우리 대한을 도우소서
3절 상제는 우리 인민을 도우사
영원무궁토록
나라 태평하고 인민은 안락하야
위권이 세상에 떨치사
오 요순태평성세를
굳건케 하소서
상제는 우리 인민을 도우소서
지위 관습상 국가
제정 시기 1897년 3월 1일
작사가 민영환
작곡가 프란츠 폰 에케르트

애국가는 대한의 관습상 국가이다. 이전에도 대한에는 국가를 상징하는 여러 음악이 있었지만 서구 문명식의 국가가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한 고종 흥녕제가 당시 도이치 출신의 음악가 프란츠 폰 에케르트[30][31]에게 의뢰하여 작곡하였다. 애국가가 작곡되기 전에는 기존 황실에서 사용하던 대취타를 변형한 국조대취타를 연주하였었다.

역사

여말선초

원나라로부터의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해 개혁을 단행하였던 공민왕은 당시 기철 등의 친원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대규모 숙청을 준비했지만 이것을 알아챈 기철이 자신의 여동생인 기황후를 시켜 공민왕을 폐위시키는데 이르른다. 공민왕이 폐위되고 새 왕이 필요한 상황에서 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가 고려 국왕의 적통한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여럿 형성되었다. 친원세력과 자칭 왕씨의 적자들이 뒤섞인 정치적 혼란 속에서 고려 백성의 생활 수준은 점점 더 피폐해져갔다.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곳곳에서 일어난 군벌들이었다. 마치 옛 신라의 말기에 나타났던 것처럼 각 지역의 유지들은 성을 세우고 스스로를 성주라 칭하거나 장군이라 부르며 각자의 지역에서 권력을 확장해갔다. 군벌들의 수탈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백성은 수확하는 양의 8할 이상을 받쳐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농민 봉기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고려의 운명은 더더욱 혼란 속으로 소용돌이 친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사료에 따르면 '백성의 배는 곪아 배가 등에 짝 붙은 것이 한 둘이 아니며 산 마다 나무껍질을 베어먹는 탓에 나무는 벌거벗어 추위에 얼어붙었다. 배고픈 백성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식인을 서슴치 않았으며 불신과 허기가 공존하니 말그대로 세상은 말세에 접어들었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상황은 지옥과도 같았다. 실제로 이 시기에 죽은 고려 사람이 여몽전쟁 당시 죽은 사람의 합과 유사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상황이 극단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것은 신진사대부였다. 그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성리학을 바탕으로 문제를 타개하려고 시도했으나 자신의 아이마저 식인하기를 꺼리지 않는 사태를 보고는 흰 종이에 적힌 검은 글로는 백성을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나 신진사대부 중 하나였던 정도전은 가장 먼저 앞장서서 경세치용의 중요성을 설파하였고 중국에서 들여온 성리학은 작금의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믿으며 고려만의 유학을 창시하기로 결정한다.

오랜 고민 끝에 백성의 이용후생에 더욱 주안점을 둔 새로운 유학 체계인 치용학이 탄생하였다. 당시 많은 수의 신진사대부가 치용학을 받아들였으며 무엇보다도 기적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체 영향력을 행사하던 몇몇 사찰도 치용학에 가세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도전이 만난 인물은 다름 아닌 태조 고황제였다.

자연환경

면적

대한의 사극단
최북단 최남단 최동단 최서단
부여북도 부랴트현
우다면 추미칸리
복국도독부 복국주
몽타이면 남면도리
유귀동도 동변현
포로나이스키면 튜레니리
복국도독부 복국주
간다우면 서간다우리

대한의 헌법상 영토는 내지와 외지로 나뉜다. 내지에는 조선반도, 요동, 부여, 연해, 유귀가 속하며, 외지에는 해남, 남양 군도, 남인도양 군도, 복국도가 속한다. 내지의 면적은 2,534,558km², 외지의 면적은 34,559km²으로, 총 면적은 2,569,117km²으로 나타난다. 아르헨티나(2,780,400km²)와 카자흐스탄(2,724,900m²)보다 작으며, 알제리(2,381,741km²)보다 크다.

문화

  1.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출전은 ≪한서(漢書)≫의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이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출전은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이다. 왕도요순(王道堯舜)은 딱히 출전은 없지만, 전설적인 한제의 태평시대를 비유로 활용하였다.
  2. 뜻은 '실제적인 일에 옳음을 구하여 백성의 이용과 후생을 도우니 왕의 길이 요순과 같노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3. 해당 문장 자체의 출전은 태조 고황제 건원릉 비문이다. 다만, 실록에 따르면 태조 고황제가 생전에도 자주 사용했던 말이었임을 알수 있다.
  4. 대한의 어떤 법률에도 국가를 규정하는 내용은 없다. 그나마 대한의 황실 행사의 예법을 정리한 국조오례의에 따라 황실 행사에서 애국가를 연주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대부분의 국가 행사에선 애국가가 사용된다.
  5. 이외에도 군대에서는 충황가가 애국가와 동일한 대우를 받으며, 황실 행사에서는 국조대취타가 애용된다.
  6. 전통적인 상징으로, 여기서 범이라 함은 조선반도에서 자생하는 시베리아 범을 의미한다.
  7. 용은 황제를 상징한다. 참고로 여기서 용이라 함은 오조룡을 의미하며, 사조룡은 황태자의 상징이다.
  8. 조선반도, 요동, 부여, 연해, 유귀
  9. 해남, 남양 군도, 남인도양 군도, 복국도
  10. 공용어는 지위 상 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행정 작용은 국어인 대한어로만 이루어지지만 모든 관공서는 공용어로된 자료를 포함할 것을 필수로 하고 있다. 또한 공교육에 있어서도 각 공용어에 특화된 학교가 존재하며, 해당 학교에서는 국어 시간에 대한어 대신 그 언어로 된 교과서를 사용한다. 단, 그런 학교에서도 일상생활을 위해서 대한어 교육이 제1외국어 수준으로 교육과정에 편성되어있다.
  11. 최근 월남어와 유대어를 공용어로 지위 격상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아직은 확정되지 않은 사항이다.
  12. 보조용으로 병기하거나, 국한혼용 모두 허용된다. 이것은 관공서에서도 적용되는 사항이라 공문이 국한혼용으로 인쇄되어도 문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통은 순한글로만 이루어진 경우가 주류이다.
  13. 공용문은 지위 상 국문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행정 작용은 한글로만 이루어지지만, 모든 관공서는 공용문으로 쓰인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
  14. 여기서 한문은 국한혼용이 아닌 순수 한문을 의미한다.
  15. 최근 월남의 자국어와 히브리 문자를 공용어로 지위 격상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아직은 확정되지 않은 사항이다.
  16. 그 어떤 법적 근거도 유교 치용학을 국교로 하는 내용은 없다. 단, 국가의 운영 방책 자체는 유교 치용학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종교적 의미보다는 정치철학에 가까운 의미다.
  17. 유교 치용학의 세속적인 분위기에 전통 유교적 색채를 결합한 형태이다. 유교 치용학과 따로 분리하여 국례유학이라고도 한다.
  18. 가톨릭 12.3%, 개신교 2.4%, 정교회 1.9%, 성공회 0.1%
  19. 대한불교조계종 14.9%, 대한불교태고종 1.3%, 기타 종단 0.2%
  20. 한성부, 심양부, 평양부, 인천부, 개성부, 동래부, 대전부, 경주부, 포항부, 광주부, 전주부, 함흥부, 의주부,대련부, 용원부, 장춘부, 하르빈부, 치치하르부, 백력부, 화성부, 청진부, 길주부, 원산부
  21.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강원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요동도, 심철남도, 심철북도, 백화도, 간변남도, 간변북도, 연해남도, 연해동도, 연해북도, 외흥남도, 외흥북도, 부여남도, 부여북도, 동원남도, 동원북도, 흑하남도, 흑하북도, 간흥남도, 간흥북도, 간흥동도, 간흥서도, 제주도, 유귀남도, 유귀동도, 유귀북도
  22. 해남도독부, 남양도독부, 남인도양도독부, 복국도독부
  23. 주는 도독부 산하에만 있는 기초자치단체이다.
  24. 단 요동, 부여, 연해 지역을 묶은 대금에는 대금자의원이라는 자치의회가 존재하며 연방국가적 모습이 있다.
  25. 대금에 한해서 '대금 대칸 겸 대한국 황제'
  26. 모든 학회와 관공서에서는 SI 단위를 사용하지만 일상에서는 국정척관법을 여전히 사용한다.
  27. 성조실록 성조 11년 1월 12일 임신 7번째
  28. 대표적으로는 캐나다
  29. 예로들어 최근들어 유행하는 약과를 판매하는 발해정과 등이 있다.
  30. 참고로 에케르트는 고종 흥녕제의 의뢰를 받아 당시 대한의 제후국이었던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도 자곡하였다.
  31. 이후 프란츠 폰 에케르트는 예계로(譽啓爐)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대한에 귀화하였으며 이후 한성 예(譽)씨의 시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