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어나더어스)의 진보정당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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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정당
(28석 · 52석) (16석 · 34석) (9석 · 13석) (4석 · 2석)
원외정당
(극좌 · 민주당계 · 제3지대 · 단일쟁점 · 보수 · 극우 · 종교)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진보주의, 사회자유주의, 여성주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민주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등을 표방하는 정당들을 일컫는다.

역사

대한제국대한민국 임정의 정당 역사
↑ 조선
진보당 사회당 제국진리당 개화인민당 보수당 황국당
사회진보당 대한국진리당 자유당 보수당
급진 진보당 온건 진보당 자유당 보수당
무산당 진보당 개혁당
↓ 공산당계
조선사회당 진보당 자유당 보수당 인민당
대한사정당
조선사회당 임정수립연대
↓ 공산당계 조선사회당 통합자유당 개혁당
민생당 신민당
민중해방결사단
공준위
노정협
공준위
조선사회당
공준위
사회민주당
공준위
자유당
공준위
대한민주당
보수파
국총협
보수파
대한인민당
공준위
대한소작농당
공준위
↓ 진보정당 ↓ 민주당계 ↓ 보수정당 ↓ 중도정당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정부 수립 ~ 김영후 정부
(145 ~ 189)
↑ 대한제국·임정
민중해방결사단
공준위
노동자정치해방협의회
공준위
조선사회당
공준위
사회민주당
공준위
조선민주노동당 조선사회당
인민해방당 노동당 진보당
정치 활동 금지
사회당 사회민주당
사회민주당
정치 활동 금지
진보당
강제 해산
↓ 강규일·김유화 정부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강규일·김유화 정부
(189 ~ 197)
↑ 정부 수립 ~ 김영후 정부
진보당
사회민주당
사회민주당 진보신당 민중당
국민민주당
좌파지상당 녹색진보당 사회당 개혁당
↓ 황대진·노유천 정부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황대진·노유천 정부
(197 ~ 205)
↑ 강규일·김유화 정부
민주노동당 사회당 한국녹색당 개혁당
노동당
노동당 대한정의당 녹색민주당 정당등록취소 여성당 민주사회당
↓ 이명재 정부 ~ 권남국 정부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이명재 정부 ~ 권남국 정부
(205 ~ 220)
↑ 황대진·노유천 정부
노동당 시민민주당 대한정의당 사회당 환경당 미래당 청년당 소수자권리당 여성당 민주사회당
민주좌파당 노동당 평등당 여성우선당
좌파당 소수자권리당 정당등록취소
미래전진당
녹색당 평화전진당
사회민주당 사회당
해산
혁명투쟁당 3세기당 민중사회당 좌파당 시민참여당
사회혁명당 민중공화투쟁당 (열린진보당으로 신설합당) (사회당으로 흡수합당) 열린진보당
열린진보당 사회당
연합전진당 여성의당
◈: 민주당계 정당

대한민국 수립과 진보정당

119년 수립과 함께 26년 동안 존재해왔던 임정이 사라지고 전국대한인공화국준비위원회가 주도하는 세력에 의해 대한민국이 수립된다. 한편 공준위를 이끌었던 극좌 성향의 민중해방결사단과 좌익 성향의 노동자정치해방협의회는 정치 단체에서 정당이 되었으며 임정의 거대 정당이었던 조선사회당은 분열과 함께 세력이 약화되었다. 사회민주당 역시 조선사회당에서 갈라져 나온 사회민주주의 계열 정당이었음에도 세력이 약해졌다.

149년 6월 민중해방결사단의 정주형 단장과 노정협의 임형수 위원장이 만나 새로운 혁명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여 합당을 선언했고 이들은 조선민주노동당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151년 장태진-임형수 분쟁으로 와해되고 151년 8월 사민노동파 계열은 진보당을 창당하였고, 153년 3월 임형수 역시 해방결사단파와 결별하여 노동당을 창당한다. 그 결과 정주형은 이 당을 해산시켜 나머지 잔당들과 인민해방당을 발족시킨다.

진보정당 탄압과 혼돈의 시기

159년 박경열 정부가 출범하자 진보정당들에 강제적인 조치를 취한다. 정치 활동 금지로 인해 위기를 맞은 조선사회당은 진보당, 노동당 계열의 인사들과 흡수하여 세력을 확장시켰다. 한편 인민해방당은 강제 해산되고 숙청당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조선사회당마저 금지되자 대부분의 당원들은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였으며 조선사회당이 몰락한 것이 진보정당의 큰 별이 지는 순간이었다. 일부는 사회당사회민주당을 조직하여 진보정당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이 역시 금지되었다.

제2공화국의 마지막 진보정당은 진보당이었다. 진보당은 진보정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경열 정부를 지지했던 친박경열 정당으로 불린다. 하지만 박경열이 사망하고 김영후가 정권을 이양받자 또 다시 정치 금지 조치를 당할까봐 자진 해산시킨다.

진보정당의 부활과 쟁점정당의 등장

제3공화국 이후 한동안 진보정당이 없었으나 190년 7월 당시 무소속 참의원 의원이었던 노일규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목표로 하기 위해 진보당을 형성한다. 이 때부터 정치권에 PR이라는 계파가 등장하는데 이 당시 PR은 반자유당-사민주의 성향이었다. 이후 진보당은 17대 민선을 위해 사회민주당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6석을 흭득하여 원내 입성에 성공한다. 하지만 사회민주당의 우경화로 인해 진보정당 이미지가 퇴색되었고, "한국 진보주의는 죽었다"라는 발언을 한 최태규 당대표가 혁신진보를 내세우며 탈당해 진보신당을 결성한다. 일부는 민중당으로 넘겨진다.

사회민주당은 이를 구실로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노일규는 개혁진보를 발표하여 사회민주당의 개혁파를 이끌어낸다. 이후 이 개혁파는 진보신당과 함께 국민민주당으로 합당했다. 국민민주당은 급진PR, 녹색계, 범사민당계, 진보신당계 등이 참여한 진보정당이었다. 하지만 국민민주당의 당 색채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탈당하여 좌파지상당, 녹색진보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으로 분열되었고 노일규 등의 세력들은 국민당을 탈당하여 사회당을 결성하게 된다. 이후 사회당은 18대 민선에서 무난하게 민의원에 입성하게 된다. 녹색진보당은 녹색당계 정당의 시작을 알린 최초의 생태주의 단일쟁점정당으로 불린다.

지지율 저조로 좌파지상당이 해산된 후, 사회주의혁명회의(SRC) 세력이 주축이 된 민주노동당이 탄생한다. 이후 민주노동당은 6개월 만에 PR이 당권을 잡고 노동당으로 바꿔 당권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노동자를 대변하는 SRC파와 온건한 노동/사회정책이 필요했던 PR파와 충돌하고 새로 들어온 트로츠키주의 사회주의 전선의 온건 세력이 개입하여 위기를 맞은 노동당은 1차 분열을 맞는다. 결국 노동당은 PR파의 대한정의당과 SRC파, 온건 TSF파의 노동당으로 나뉘게 된다.

한편 한국녹색당은 활동이 별로 없어진 탓에 명칭까지 바꿨지만 이는 오히려 녹색당의 기준을 바꿔버린 정당이 되어버렸다. 여성주의가 전 세계에 퍼진 시기였던 200년대 초반 여성주의자들은 여성도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며 여성당을 창당했지만 양성평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대립하다가 LF 성향의 평등당과 RF 성향의 여성우선당으로 분열되어 버린다.

노동당 분열, 그리고 친노의 가속화

205년 21대 민선에서 정의당이 34석을 차지하고, 노동당도 30석을 흭득하는 등 진보정당의 돌풍이 일어났다. 참의원도 노일규 세력이 주축이 된 사회당은 노일규 당대표가 사망하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오히려 9석이 올라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한편 노동당은 PR 계열이 이탈하고 SRC와 온건 TSF파로 나뉘면서 2년 동안 존속하다가, 갑자기 온건 TSF 세력은 물론, SRC 계열의 김문성계, 이회길계가 추가로 이탈해 민주좌파당을 창당한다. 그 이유는 노동당의 당권파인 문지민계(온건 SRC)가 우경화를 강행해 독자노선을 택했고 결국 당권 패권주의라는 당 내 비판을 받으며 1차 탈당이 벌어진 것. 민좌당은 우경화를 비판하고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권리를 위한 투쟁 등 좌파 노동정당의 정체성을 이어나갔다. 207년에는 당명을 좌파당으로 바꾸고 참의원에서 5석을 흭득하여 입성에 성공한다.

한편 민주당의 일부 친노유천 좌파가 이탈하여 시민민주당을 창당했을 때, 대한정의당에서도 일부 친노 세력이 들어오게 된다. 이들은 시민계로 진보성향의 정치비평가인 유진수와 열린진보당의 원내대표인 조승훈이 이끄는 계파였다. 이후 시민계와 시민민주당의 기세가 강해지게 되자 정의당 내에서 당권파와 시민계와의 경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208년에는 미래당, 청년당, 소수자권리당이 합당하여 미래전진당을 출범한다. 한편 여성당에서 갈라져 나온 평등당은 그대로 소수자권리당에 흡수되고 여성우선당은 정당등록취소를 받아 RF계열 여성주의 정당 계보는 끊어지게 된다. 22대 민선 이후 정의당이 기존 의석보다 8석 늘어난 반면 노동당은 분열의 여파로 19석으로 줄어들었다. 사회당은 15석으로 그대로지만 환경당이 4석, 미래전진당이 6석을 가져가 처음으로 민의원에 입성한다. 그러나 노동당의 일부 의원들이 좌파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노동당은 TSF 계열을 모두 잃었다. 그나마 온건 SRC 계열이 남아있었지만 이 마저도 좌파당으로 옮겨져 노동당은 3석으로 추락하고, 210년 12월 좌파당에 흡수된다.

진보정당의 새 국면

211년 23대 민의원을 계기로 진보정당은 새 국면을 맞게 된다. 일단 환경당은 녹색평화모임녹색운동의 갈등으로 인해 녹색평화모임 대다수는 평화당과 함께 평화전진당을 창당하고 녹색운동은 녹색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각자의 길로 틀어졌다. 214년에는 대한정의당의 일부 당원과 사회당의 일부 당원들이 탈당하여 사회민주당을 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