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어나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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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원전 시대
1세기
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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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년 제정
(IY 1년, 1800년)
이클리우스 왕국의 건국
(IY 8년, 1808년)
국제 이세계 공동체 설립
(IY 36년, 1836년)
제1차 이클리우스 전쟁
(IY 69년, 1869년)
제2차 이클리우스 전쟁
(IY 91년, 18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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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 96년, 18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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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 126년, 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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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 131년, 1931년)
유로아스피아 전쟁
(IY 142년, 1942년)
유로아스피아 재건
(IY 145년,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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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 146년,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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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 148년,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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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 149년,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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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아스피아 공동체 탄생
(IY 173년, 1973년)
유로아스피아 왕국 혁명
(IY 176년, 1976년)
88시위
(IY 188년, 1988년)
이세계 최초로 지구와 통신 성공
(IY 191년, 1991년)
유로아스피아 연합 탄생
(IY 194년, 1994년)
200년 분쟁
(IY 200년,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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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 204년,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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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 220년, 2020년)
관련 문서: 이세계년 · 어나더어스에 관한 100가지 사실 · 어나더어스가 · 어나더어스기 · 어나더어스의 총책임자 · 어나더어스의 부총책임자 · 유엔에이 · 어나더어스의 문화 · 이세계 의회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
大韓民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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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Hongik Ingan
홍익인간
국가 번영을 위하여
국목
소나무
국화
무궁화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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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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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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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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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북양민주국, 앵본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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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93,049명
밀도
23.48명/km2 | 세계 28위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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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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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수명
9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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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지역어
사투리
공용 문자
한글
종교
국교
없음 (정교분리)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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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광역시·특별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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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특별자치단체
4개특별구·자치구·특별자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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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민주공화제, 이원집정부제, 단일 국가, 양원제, 다당제
민주주의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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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원수 (대통령)
권남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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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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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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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남
대법원장
황정열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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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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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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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사회적 시장 경제, 혼합 경제,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
GDP
(PPP)
전체 GDP
$14억 9,918만
1인당 GDP
$75,615
GDP
(PPP)
전체 GDP
$18억 4,431만
1인당 GDP
$69,715
무역
수입
$104억
수출
$102억
예산
세입
$78억
세출
$14억
외환 보유고
$692억
신용 등급
이코노미스 A+2
화폐
공식 화폐
대한민국 원(현실 대한민국 혼용)
ISO 4217
KRW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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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이세계년
시간대
UTC + 09:00 (한국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ccTLD
.kr
국가 코드
KOR, KR
전화 코드
+82


대한민국(大韓民國, 영어: Republic of Korea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Korea)는 유로아스피아동아스피아에 위치한 민주공화국이다. 서쪽으로는 중화민주북양국이, 동쪽은 한앵강을 사이에 두고 앵본이 있으며 북쪽에는 루스키아 제국이 있고 남쪽에는 남앵본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한경특별시이며 국기는 태극양괘기, 국가는 번영을 위하여, 국화는 무궁화이다. 공용어는 한국어로 국내에선 간단히 한국(韓國)이라고 부른다. 연호는 이세계년을 공용으로 사용한다.

현실 한국과는 달리 경제발전, 사회통합과 국가성장률이 매우 뛰어나 아스피아 내에선 앵본과 함께 모범국으로 평가되며 유엔에이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유엔에이, 아스피아 경제 연합, 어나더어스 국제평화조약기구, 유로아스피아 무역 기구, G11에 가입되어 있고 현재 경제 규모에서 15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국경 없는 기자회가 집계하는 어나더어스 내 언론 자유 지수에서 자유도가 높으며 OECD 집계 자살률은 39위로 기록되고 있다.

국명

국명은 현실 한국과 똑같이 대한민국이라고 칭한다. 대한(大韓)이라는 국호도 이와 비슷하다. 과거 공동체 사회인 한조족(韓朝族)이 국명을 정하려고 했을 때, 영종은 지하에서 발견된 세계 지도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발견했고, 이에 국명을 조선으로 하자는 의견을 통해 조선(朝鮮)이라 칭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불분명하다. 99년 청조가 즉위했을 때, 기존 명칭이 새 국명에 적합하지 않다며 조선 대신 고유 이름인 한(韓)을 사용하여 "대한제국"이라고 칭했다. 119년 대한제국이 몰락하자 임정수립연대 측은 새 헌법에 "대한민국 림시정부는 민주공화제로, 대한국 린민이 주인인 국가임을 명시한다"라고 서술하여 "대한민국"이라고 결정되었다. 하지만 임시정부 형태이기 때문에 임시정부라는 명칭을 써야만 했다. 이후 145년 7월 정부 수립을 계기로 공준위는 임시정부를 뗀 "대한민국"으로 국명을 고쳤다.

현실 대한민국에서는 혼동할 가능성이 있어 "AE한국", "AE대한민국"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어나더어스의 약칭인 AE를 붙여서 "AE-Korea"라고 부르고 있다. AE한국 외교부 측은 "사용하기에 적합한 이름"이라고 반응하였다. 어나더어스 역사 교과서에서도 대한민국을 AE대한민국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우 그 나라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AE한국이 현실 한국의 속국이라며 "괴뢰조선"이라고 칭하고 있어 AE한국 외교부 측의 반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앵본, 중국의 경우에는 한국(일본어: 韓国 간코쿠[*], 중국어(중국대륙): 韓國 한궈)이라고 부르며 이클리우시아 일부나 유리코프치아에선 카이리야(Kairiya)라고 부른다. 유엔에이, 어나더어스 관리행정부에서는 코리아(Korea)라고 등록되어 있다.

지리

역사

조선·대한제국 시기

어나더어스 내 한민족들은 다른 공동체보다 영토가 큰 아스피아족 공동체의 일부였으며 19년 이세계의 한민족이라 불리는 한조족으로 분리되면서 따로 공동체를 형성시킨다. 25년 9월 영종이 초대 왕이 되면서 조선을 건국하였으며 공동체에서 왕국으로 발전하였다. 조선의 문화, 사회 등은 현실 조선에 영향을 받았고 그 당시에는 성경부를 중앙정부로, 현재의 경인도의 소재지인 선경시(옛 이름 경인부)를 행정지역으로 삼았다. 초기 조선에는 안정적인 국가발전을 이끌었고 동양식 문화, 문학 등 등의 전파로 아스피아의 문화에도 동양 문화가 널리 발달하게 된다. 그러나 군조, 영락군, 궁종 집권기에서 30년 간 혼란과 부흥의 시대를 겪으면서 백성들의 피로감과 불만은 이어져만 갔으며 영락군 시대에서 등장한 영인당서인당을 몰아내고 거대 정당으로 부상하면서 급진적인 정책을 실시하자 백성들의 반발이 커졌다. 이후 궁종 사후에도 계속 집권당이 되면서 사실상 일당 정치를 펼쳤다. 새로 집권한 인종은 탈군주를 주장하게 되지만 내부 갈등이 커져 반인종파는 조선회의로 분열되었으며, 의회주의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의회학파를 조직하면서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고, 개화 세력들의 서양삼개론개화론을 통해 탄생한 서양개화파가 등장하면서 전국적인 개화운동을 벌였다. 89년 춘조가 집권하면서 개혁 정책에 집중하였으나 백성들의 불만은 여전하였다. 결국 반춘조 운동이 일어났고, 99년 12월 춘조가 퇴위하고 청종이 초대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청종 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을 수립하였다.

현실 대한제국과는 달리 황제는 유지하되 총리를 신설하고, 입법부인 의정원을 설치하면서 입헌군주제의 기틀을 닦았으며, 경진개혁을 통해 백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또 영나라, 앵본 입헌왕국은 물론 영어권 국가, 서양과 교류하면서 외교 열강에 들어올 수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

101년 청조의 후임인 훈종이 집권하면서 중립적 외교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107년 황종이 집권하면서 12년간 대한제국을 이끌었으나, 117년 임시정부수립연대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파가 성경부에 진군하면서 2년간 황종 내각과 협상을 가진 끝에 119년 4월 황종이 물러나고 유상민-조경윤 내각이 들어서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임정은 기존의 입헌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전환했는데 이러한 민주 운동은 124년 나가야마 히로유키 앵본 행정총리대신이 시도했던 나가야마 데모크라시, 131년 영나라를 무너뜨린 북양혁명에 정치적 영향을 미쳤다.

임시정부는 140년 3월 헌법 개정을 통해 총리제를 폐지하고 의원내각제로 개편하였으나 일부 우익 인사들이 반발하여 임시정부에서 이탈하는 등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144년 민중해방결사단, 전국노동자정치해방협의회, 조선사회당, 사회민주당 등의 진보/사회주의 정당, 자유당, 대한인민당 등의 중도/보수정당들이 전국대한인공화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정부 수립을 준비하였으며 동시에 임시정부는 해산된다.

정부 수립과 유상민 정부, 그리고 권한대행 시기

반면 유상민의 전 측근이었던 신익규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 정치단체인 대한인민국립촉성민주협의체가 유상민의 좌경화, 공준위에 반발하면서 대한민주당보수파를 결성하면서 공준위에 대항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은 보수파보다 공준위를 더 선호하면서 국민 정서에 맞지 않았고, 결국 공준위는 145년 7월 임정 헌법을 개정한 헌법 제정을 통해 이원집정부제로 전환, 정부 수립을 선언하였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이원집정부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공화국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여기에 임시정부, 공준위의 법통을 계승한 공화국이라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다. 이후 유상민은 초대 대통령이 되고, 강문규가 초대 총리가 되면서 정권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149년 8월 건강 악화로 대통령직을 사퇴했으나 후반기에 열린 대선에서 장평구 무소속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이후 유 전 대통령은 4대 대선에서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었지만 국총협이 자유당과 비밀거래를 통해 선거구 곳곳에서 표 날치기 등의 부정선거를 일으켰고, 결국 국민들의 반발로 인해 3월 혁명으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조경윤 전 임정 총리가 대통령을 맡아 유상민의 남은 임기를 채우려 했지만 조선공산당의 파생 단체와 국총협 간의 좌우 정치테러를 막지 못했고 일부 내각 인사의 압박으로 사퇴하게 된다.

박경열 정부 시기

5대 대선에서 박경열 대통령이 집권하자 집권여당, 보수정당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당들을 반국가단체로 간주하고 정치 활동과 선거 참여를 금지시켰으며 선거마다 집권당인 유신당 지지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또 정부에 비판적인 문학, 출판, 방송, 언론 등을 탄압했으며, 163년 제1차 언론통폐합을 강행해 일부 방송, 언론 등이 강제 통폐합되었다. 한편 박경열은 국가 발전을 위해 신경제계획을 추진하면서 경제에 주력했는데 그 결과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돌파, 국민총생산은 3,000$를 기록했으며 경제성장률은 15%로 성장해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그리고 산업화와 이촌향도로 인하여 도시의 인구 집중이 시작된 시기이도 하다. 그런데 168년 3선 개헌 통과와 10대 총선 무효화, 172년 국회 해산을 통한 국평을 형성시켰고, 총리제를 폐지시켜 대통령이 정부의 모든 권한을 가져가 사실상 독재 정권으로 변하게 되었다. 때문에 재야, 학생, 노동계 등 각계각층에서 민주화 및 대통령 퇴진 운동을 전개했지만 정부의 탄압을 받았고 국내 최대 노동조합이었던 대한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활동이 정지되었다.

또 박정희처럼 '한국식 민주주의'를 강조하여 장기 집권을 이용해 한국 민주주의를 파괴했고 정당을 설립할 때 정부에 우호적인 정당만 허용한다는 것 때문에 관제야당들이 국평 의석을 흭득할 수 있어서 정당 설립 권리를 빼앗는 등 정치적으로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던 179년 12월 9대 대선 도중 박경열 후보는 선거 유세 도중 측근 겸 중앙정보관리부 장관이었던 유경춘에게 암살되었고, 그의 장기 집권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김영후 정부 시기

박경열이 암살되자, 대부분 국민들은 암살 소식에 안타까워했으나 한편으론 독재정권을 끝장내고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후에 친박경열로 분류되는 김영후가 정권을 이양하였지만, 국민들은 한국식 민주주의가 사라졌음에도 박경열의 2인자가 정권을 이양한 것에 대해 불만이 폭주하고랴 말았다. 그래서 김영후 정부는 기존 정권과는 달리 오락·문화예술에 관한 정부 계획을 발표하여 정치보다는 우민화에 집중했다. 이후 186년과 188년에 IOL의 개최지 선정을 통해 한경시와 부성시에 각각 제49·50회 올림픽을 개최하였고, 188년 9월에는 KIBA를 설립하면서 국내 야구 문화를 형성시켰다. 또 경제강국 실현 대한민국 세우기 정책을 통해 경제에도 집중하여 가속도를 높였는데 경제 규모가 버블 경제로 급성장을 누리고 있던 앵본을 뛰어넘는 등 한국 경제에 호황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187년 6월 김영후 정부는 경찰, 군대, 자경단 등을 이끌고 반김영후 성향의 사회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 중도주의자 등이 참여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박람회'를 강제 해산시켜 참여자 15,000명을 학살한 6월 학살이 터졌으며 국민들은 우민화 정책과 정부의 강경 진압에 분노하였다. 결국 7월 혁명이 발생하게 되었고 일부 내각 인사들도 혁명에 참가하여 위기를 맞았다. 결국 김영후는 대통령직을 사퇴하게 되고 8월 선언을 통한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며 평화민주당 소속 강규일12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첫 정권 교체와 문민 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 또 박경열 정부 시절 등장한 국가평의회를 해산하고 현재의 의회 방식인 양원제를 도입하여 민의원참의원으로 개편, 4년 연임제를 도입, 우민화 정책을 아예 금지시켰다.

강규일 정부 시기

김유화 정부 시기

황대진 정부 시기

노유천 정부 시기

노유천 정부는 참여정부처럼 탈권위주의, 참여민주주의, 시민민주주의 성향을 띄었다.

탈권위주의와 참여민주주의의 노력을 통해 4년차 지지율이 56%를 기록하는 등의 성과를 남겼지만 자유당 등 보수정당들의 반대로 오히려 자신의 공약이었던 고위공직자부정부패수사위원회(이하 공수위)의 설립, 국가정보청안보방첩청으로 개편하는 부정부패·정치공작 근절 정책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노유천 정부에도 부정적인 경우도 있었는데 과거 반공법에 의해 구속된 공안 1,201명이 204년 명절 기념으로 특별 사면되었는데, 자유당이 공안들을 왜 사면시키냐는 지적이 나왔으며 국민 여론 역시 16%가 특별 사면에 반대하는 의견으로 나왔다.

이명재 정부 시기

노유천 정부의 뒤를 이은 이명재 정부는 경제실용주의녹색국가를 내세웠다. 대선 기간 동안 이명재는 경제실용주의와 녹색국가를 강조하여 EG(Economic-Greens)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당선 이후 공약대로 EG 정책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명재 정부는 취임 초부터 퇴임까지 다소 실패한 정책들로 논란이 많았는데, EG 정책에 포함되어 있던 친환경 경제 정책인 녹색경제성장한앵강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한앵강 개척 사업을 진행했으나 녹색경제성장은 경제성장률이 증가했을 뿐 오히려 자본가들과 고소득층에 호의적이었지만 노동자, 중산층 및 서민 등에게 비난을 받았고 특히 정부가 발표한 녹색에너지 포인트제에 부정적이었다. 한앵강 개척 사업 역시 녹조 등의 환경 문제로 인해 양국 모두 큰 피해를 입었으며, 외교적으로는 반한, 반일 감정이 확산되는 등 양국간의 관계가 얼어붙기도 하였다. 또 외교 정책이었던 다이나믹 코리아도 예산 문제와 범국민주의 정책으로 논란이 컸고, 병영부조리를 막기 위해 병영부조리특별법을 제정했으나 북제신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터져 아미퀄리티가 특별법의 실효성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게다가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는데, 이명재는 친중·반앵 성향으로 앵본과의 패싱이 잦아 중국과 유로아 나라들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206년 11월 한중정상회담을 통해 중국과의 역사관 존중으로 한 때 논란이 되었었다. 207년 8월 정부가 앵본 애니메이션과 문화를 사회악으로 지정하자 청년층의 비판을 받아 결국 3개월 만에 원점으로 회귀한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전 정부에 비해 더 극심해졌으며, 급기야 야당을 중심으로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야 말았다. 게다가 여당인 자유당도 계파 갈등으로 분열 위기까지 가게 되었다.

여기에 대통령 여사의 땅 투기 의혹, 자경단 설립 의혹, 1134 게이트 등이 불거져 여당은 물론, 대통령까지 심각한 위기를 맞았으며, 급기야 퇴진 시위까지 번져 지지율도 31%로 급락했다. 하지만 선거에서 연달아 승리한 여당인 자유당은 208년 유영호가 이끄는 세력이 당권을 잡고 당 내 개혁을 추진해 친이 계열을 밀어냈다. 이후 자유당은 당 총재에 친유영호 성향의 홍문열을 지명하고, 유영호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유영호 정부 시기

유영호 정부는 이명재 정부의 비리로 인한 퇴진 시위로 정국이 혼란하던 시기에 탄생하였다. 유영호 정부는 전 정부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었던 EG 정책을 폐기하기로 결정했고, 대신 창조적 경제성장을 발표했다.

창조적 경제성장은 로봇 사업과 첨단 기술을 원동력으로 삼고 이를 통해 222년까지 천만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었고 여기에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하여 미래 먹거리 창출과 미래사회 진입을 위한 국가과학기술발전계획까지 발표했다. 창조적 경제성장은 현실보다 로봇 시대에 진입함에 따라 이른바 영호노믹스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국가과학기술발전계획에서 발표된 나라호가 211년 6월 쏘아올리는 등 나로호보다 2년 빨리 우주발사체를 발사시킨 나라가 되었다.

권남국 정부 시기

2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권남국은 황대진 정부 이후 두 번째 정권 교체를 맞았다. 새로운 정부는 과감한 개혁을 위해 국가발전 4개년 계획을 발표했고, 가장 먼저 미래창조 경제정책국방계획을 폐기하고 혁신경제국방개혁 220을 실행해 전 정권 당시 1.3%까지 추락했던 경제성장율이 219년이 되어서야 10%를 기록했다. 또 국방 관련해서는 국방개혁 220을 통해 병영부조리의 처벌이 강화되어 부대 내 병영부조리는 크게 줄어들었고, 여기에 육군·공군·해군의 신무기 연구, 연예병사제도 폐지, 군사방어체계 강화, 모병제 도입 등을 이루어내는 성과를 보였다.

또 국가에서 성문화의 자유와 사생활의 자유 등을 보장받기 시작하여 성인영화 외에도 포르노 제작과 수출, 상영 등이 허가되면서 영화계의 중흥기를 맞았다. 뿐만 아니라 정치과 사법 개혁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삼권 분립의 원칙을 강화하고, 노유천 정부 시절 추진하려 했던 부정부패방지법 시행, 공부청 설립으로 부정부패를 척결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좌우익 단체들을 강경하게 탄압해 집회의 자유 침해로 논란이 되었고, 218년에는 행정수도가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서 한경특별시를 행정수도로 삼자는 국민투표로 인해 좌우의 극심한 이념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220년에는 일부 우익 세력들이 주도한 이지예 의원과의 스캔들 음모론까지 제기되기에 이른다.

정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19년 3월 황종이 폐위되면서 한경시를 수도로 삼아 4월 정부 수립을 선언하였다. 140년 이후 정부 수립을 놓고 좌우익은 충돌했으며 결국 공준위와 보수파로 나뉘었다. 145년 7월 공준위는 개헌과 동시에 정부 수립을 선포했고, 공준위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AE한국은 현실 한국처럼 민주공화국을 강조하여 국민주권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원집정부제를 기반으로 한 정치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또 현행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준위의 법통과 대통령의 독재의 불의에 항거한 자유민주적 운동과 7월 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

최초의 헌법은 145년 7월 공포되었다. 이후 154년, 160년, 163년, 169년, 172년, 181년, 187년, 189년, 218년에 헌법이 9번 개정되었으며, 최근 발효된 헌법은 218년 3월 제10호로 인본·평등·권리에 관한 내용, 행정수도 지정 등이 새로 담겨 있다.

현실 한국처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나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자유를 가지나 국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 이외에는 허가하지 아니된다."라고 명시되어 있어 권력의 전횡을 견제하고 있다. 하지만 극성 보수단체나 대한새벽당, 강경 사회주의 단체같은 극단주의자들을 과도하게 처벌한다며 양측 모두 정부가 자유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당

대한민국 참의원 로고.svg대한민국 민의원 로고.svg 대한민국 참·민의원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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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참의원 219.03 ~
제26대 민의원 220.05 ~
권남국 정부
217.07 ~
여당
대한민국 민주당 마크.svg
민주당
118석·434석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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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31석·11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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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전진당
28석·52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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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진보당
16석·3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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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보수당
15석·24석
대한민국 공화당 새 마크.svg
공화당
11석·16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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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당
9석·1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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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당
6석·12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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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중도당
6석·1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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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당
4석·6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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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산당
3석·6석
무소속 3석·29석
재적 250석·750석
원내 · 원외 · 금지
극좌 · 진보 · 민주당계 · 중도 · 보수 · 극우 · 종교

헌법 제9조와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 설립의 자유와 상호작용적 다당제를 보장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한다고 되어 있다.

가장 최근 개원한 의회는 26대 민의원9대 참의원이며 220년 기준으로 여당이자 원내 1당인 민주당이 있으며 원내 2당인 자유당, 원내 3당인 연합전진당, 원내 4당인 열린진보당, 원내 5당 개혁보수당, 원내 6당인 공화당이 교섭단체를 이루고 있다.

비교섭단체로는 사회당, 태양당, 현대당, 국민정당, 대한공산당, 대한인민당 등이 있다. 민의원, 참의원에 아무런 의석이 없는 정당은 H국당, 대한새벽당, 공명당, 민중공화투쟁당 등이 있다.

정부

입법부

대한민국은 현실 한국과는 달리 양원제로 민의원참의원이 존재한다. 정원은 각각 750석, 250석으로 민의원은 법률상 의정원을 계승한다고 되어있다. 매년 2회의 정기회와 임시회(50일 이내)가 열리며 회기 중에는 법의 의결권과 예산안의 심사, 국정 감사와 헌법에 명시된 기관장의 임명 동의 및 조약의 체결 및 비준 동의 등의 활동을 한다.

과거에는 단원제를 실시하였기 때문에 국회가 존재했지만, 박경열 정부 시절 국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국평을 개회시켰다. 이후 국평은 187년 7월 혁명으로 인하여 몰락할 때까지 지속되었으나 김영후 정부가 187년 8월 선언을 발표하여 42년만에 단원제를 폐지하고 양원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이후 의회가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나뉘면서 각각 정원이 300석과 200석으로 고정되어 개회했으나 202년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정원을 각각 750석과 250석으로 고정하여 현재의 의회 형태가 되었다.

행정부

대한민국의 행정부에 해당되는 대한민국 정부는 총리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다. 대통령과 총리는 각각 의장과 부의장을 맡고 국무위원들로 구성된 국무회의의 조력을 받아 업무를 처리한다.

대통령은 4년 연임으로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현재의 대통령은 권남국으로, 대통령은 국가 원수와 행정부 수반을 담당함으로써 총리 임명, 장관 임명, 대법관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임명, 법률안 재심의권, 법률 공포권 등을 가지고 있지만 의회 해산권이나 명령권이 없다. 총리는 대통령의 궐위나 사고 시 권한대행자로서의 지위, 대통령의 보좌기관으로서의 지위, 행정부의 제2인자로서의 지위, 중앙행정관청으로서의 지위, 국무회의의 부의장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행정부는 20부처 4처 16청, 3원 5실 6위원회(54개)로 구성되어 있다. 6위원회 중 국가인권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독립기관이며, 아스피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마물·마법 등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마계특별위원회에서도 마계관리법 제2조 7항에 따라 독립기관으로써 운영하고 있다.

사법부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현대 국가와 마찬가지로 재판에 있어서 공정한 심판을 위해 3심제로 이루어져 있다.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그 밑에 고등법원, 지방법원, 특허법원, 가정법원, 행정법원 등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법률 심사를 위해 설치된 특수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군의 경우 군사재판소가 존재하며 군사재판을 할 수 있으나 최종심은 대법원이 관할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법령 등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헌법재판소가 구성되어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판가름하는 위헌법률심판,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탄핵 소추를 심사하는 탄핵심판,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위헌 정당의 해산 여부를 심사하는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을 심사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총 9명으로 대통령, 의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임명시킬 수 있다.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법관인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따라 의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의 임기는 헌법을 통해 보장되며, 그 연한은 6년이다.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관에 의하여 독립된 재판이 보장되나 실질적으로 불기소 처분권을 가지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는 사건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재판권이 보장되어 있다.

행정 구역

AE대한민국의 국장 마크.svg 대한민국
광역지방자치단체
특별시
한경특별시 심볼.svg
한경특별시
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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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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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광역시
대경광역시 심볼.svg
대경광역시
경인북도 심볼.svg
경인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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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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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영북도
충영남도 심볼.svg
충영남도
강천북도 심볼.svg
강천북도
강천남도 심볼.svg
강천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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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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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남도
자치구·특별자치구·특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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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신자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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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제신자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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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창특별자치구
북영특별구 심볼.svg
북영특별구
220년 기준

대한민국의 전 지역은 1개의 특별시, 3개의 광역시, 8개의 도, 2개의 자치구, 1개의 특별자치구, 1개의 특별구로 나뉘어져 있다. 이상 16개의 행정구역은 광역지방자치단체로 구분된다.

특별구는 읍으로, 광역시는 구와 군으로, 도는 시와 군으로 다시 나뉘며 이를 기초지방자치단체로 구분된다. 특별시와 3개 광역시에는 80개의 구가 설치되어 있고, 3개 광역시와 8개 도에는 총 110개의 시와 180개의 군이, 2개 자치구 (동·서·남·북·중앙), 경창특별자치구(동·서·남·북), 북영특별구(동·서·남·북·중앙·제2북영), 한경특별시의 37개구를 합친 57개의 구가 설치되어 있다.

외교

대한민국의 외교에 관한 업무는 외교부가 맡고 있다. 현재 유엔에이에 속해 있는 55개국이 이 나라를 인정하고 있지만 현재 마법원리주의 단체 마법사 전선내전 중인 스네이스카는 아직까지 수교하지 않은 상태이고 마법사 전선의 연관조직인 마녀교도 이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인 카르치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우호적인 분위기로 현재 수교까지 한 상태이며, 이클리우스 민주연방, 사클레치아 왕국, 프랑키아 왕국, 게르마스 왕국과 함께 G5를, 여기에 앵본과 와루샤-라트바, 앵글로카 왕국, 이카루시아 왕국, 브라치아 제국과 함께 G10을 이끌고 있다.

한이 관계

한국과 이클리우스의 관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129년 고민성 당시 외교성대신이 프리드리히 레나 외교부장관과 첫 한이정상회담를 열었고, 135년 임성빈 임시정부 총통이 프랑수아 오스카르 국왕과 한이공동조약을 체결하여 임시정부를 공식 국가로 인정하였다. 145년 이클리우스 공화국은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을 축하하며, 공동 수립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이후 148년 이클리우스 공화국, 앵본과 삼국무역조약을 체결했고 154년과 157년에는 루스키아 제국, 이카루시아 공화국이 추가 서명하다가, 175년 아스피아 국가들이 대거 조약에 서명해 아스피아-이클리우시아 조약으로 발전한다.

186년 3월 김영후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노르트만 국방안보부장관한이군사조약을 맺었으나 앵본 상공에 전투기를 횡단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앵본 정부의 항의를 받아 한이군사조약은 폐기되었다. 그 후 32년 간 한이정상회담이 없다가, 218년 8월 프랑수아 이클루아 민주연방 대통령과 권남국 대통령이 이클리우스 시티에서 한이정상회담을 열게 되었다. 이후 219년 3월에는 이클루아 대통령과 라티몽 연방총리가 방한하여 두 번째 한이정상회담을 열었고, 219년 8월에는 권 대통령이 이클루아 대통령, 스즈키 히로유키 앵본 총리와 함께 이클리우스 시티에 만나 삼국정상회담을 열면서 삼국 간 국가적 교류를 위한 공동조약에 서명하였다.

한사 관계

한국과 사클레치아의 관계는 186년 9월 율리우스 5세의 방한에서 시작되었다.

한불 관계

한국과 프랑키아와의 관계는 서양개화파의 등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게 관계

게르마스 왕국과의 관계는 서양개화파의 등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교류를 시작한 건 게르마스 상인들이 서양개화파를 따르는 조선 상인들을 만난 것이 시초로, 89년에는 금화를 베르데니스에 보냄에 따라 무역 교류를 맺었다.

한앵 관계

한국과 앵본의 관계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인종실록에 따르면 인종 시기 사쿠라 막부가 조선에 조공을 바치려 하자 인종이 사쿠라 막부의 조공을 거부했다는 기록에 남아있다고 하며 영락군 때는 국력이 상당했던 데라우치 막부를 왜구라고 비난하는 등 반앵 성향이 강했다. 이는 청종까지 반앵 성향이 상당했다.

이후 청종이 집권하면서 앵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친앵적인 행보를 보여 일부 백성들의 반발이 일었고, 임시정부 시기에는 유인주 내무성대신이 앵본을 방문하여 우익 인사들을 만나 조선사회당 등이 반발해 유인주 내무성대신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139년 임성빈 총통이 요시모토 데쓰야 총리와 한앵평화조약을 체결했고, 145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을 공식 국가로 인정했다. 유상민 정부가 출범한 직후 데쓰야 총리가 취임식에 참석해 각종 앵본 언론에 화제가 되었다. 앵본사회당앵본민주당이 공동집권(160년 ~ 172년) 할 동안 박경열 정부를 비판하고 민주화 운동을 지지했지만 앵본보수당이 집권하면서 박경열 정부를 지지했고, 앵본의 좌소우대 시대에서는 친한 세력을 좌파로 간주하여 대거 척결했다. 반면 김영후 정부 때는 앵본의 대중문화 개방을 세 차례 진행하였다.

김영후 정부 이후 강규일 정부가 마법물질을 이용한 신무기 개발을 위해 앵본 출신 기술자, 마법과학자들을 대거 투입하기도 했으나 신무기 개발의 위험성을 이유로 194년 취소되었다.

황대진 정부 시기에는 앵본 정부, 경인도의회와 함께 유천시 관련 사업을 추진하여 애니메이션의 성지로 만들었고, 한앵 양국 우익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앵상호교류조약에 서명하여 양국 간의 교류를 넓혀갔다.

노유천 정부 시기 박경열·김영후 정부 과거사 청산을 추진하자 에리카 나오 총리는 "한국의 두 독재 정권에 관한 과거사 추진은 한국의 잘못된 민주주의를 바로 잡는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집권여당 민주진보당, 앵본공산당, 사회민주당이 '한국 내 과거사 청산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입헌대의원에 발의했다. 이에 노유천 대통령은 호응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자유당 등 보수야당은 반발하기도 했다.

이후 과거사청산지원특별법이 통과되자 앵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게 과거사 공동 청산을 약속했고 정부가 이에 승인하였다.

하지만 이명재 정부가 들어서자 박경열·김영후 정부의 성과를 짓밟았다며 과거사 청산 정책을 폐기했고 동시에 앵본 정부를 비판해 반앵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런데 208년 5월 한앵강 개척 사업을 추진하면서 앵본 정부는 한앵강 개척에 반대했고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앵본 애니메이션과 앵본 문화를 사회악으로 규정시키는 만행을 저질러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되었으나, 후기에 들어서며 원래대로 회귀했다. 그럼에도 한앵강 개척 사업은 조금씩 진행되었다. 유영호 정부는 전 정부의 정책이었던 한앵강 개척 사업을 폐기하고 한앵 문화의 교류 추진 등을 내세워 앵본에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극우 성향의 앵본우선당이 유영호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열자 한국 정부는 앵본 정부에게 혐오발언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혔다.

권남국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황대진·노유천 정부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18년 3월 한앵정상회담을 개최했고, 이후 219년 8월 삼국정상회담을 통해 공동조약에 서명하게 되었다.

한중 관계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는 대한제국의 황종 시기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한유 관계

국방

경제

사회

인구

220년 기준 대한민국의 인구 수는 46,193,049명이다. 이는 어나더어스 나라 중 세계 19위이며 43,190,494명을 기록한 비잔텔레니카보다 많다. 유상민 정부 시절 경제 발전과 도시화를 추진해 인구 수가 점점 증가했고,

인권

대한민국의 인권은 헌법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며, 어나더어스의 세계 자유 지수가 세계 15위에 든다.

교육

복지

문제

사회 지표

여가

문화

한국의 문화는 대부분 현실 한국에서 영향을 받았고, 조선의 문화 역시 현실 조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실 한국과는 달리 신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 한국의 문화를 구문화, AE한국의 문화를 신문화라고 부른다.

언어

대한민국의 공용어로는 한국어를 많이 사용한다. 어나더어스 특성상 지구의 언어가 그대로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한국어를 쓰지도 않았고 개별 언어가 존재했지만 인종 시기 지구에서 들여온 한글을 모든 백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겠다는 명목으로 한글 사용 의무화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조선회의에서 우익파는 한글을 배우게 되면 오랑캐에게 굴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한글 사용을 금지하도록 했고 좌익파는 이 나라도 현실 조선의 것이라며 한글 사용을 지원하였다. 한편 백성들은 한글을 알기 쉽기 위한 글자로 여겨져 한글을 배우기 위한 서당이 생기기 시작했고, 곧 보편화되었다. 163년 1월 박경열 대통령은 한글전용표기 및 맞춤법를 발표하여 표기문자의 주류가 되었다.

방송과 언론

헌법에 의하면 언론의 자유와 함께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한국의 일간 언론은 전국지, 지방지, 인터넷지로 나뉘며 대표적인 전국지 신문을 성향별로 분류하자면 진보성향에는 더 리버럴, 신진일보, 팩츠가 있으며 보수성향에는 대한일보, 뉴퍼스트신문, 동일일보, 자유일보 등이 있다. 시장점유율은 더 리버럴, 신진일보, 대한일보, 팩츠, 동일일보, 자유일보 순으로 더 리버럴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국영언론 대한신문정부홍보원이 소유하고 있다. 국영언론답게 정부 홍보, 정부 소식을 다루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성향도 바뀌는 단점이 있다. 대한신문은 과거 자유당 정권동안 편파 보도와 공정성 붕괴 등으로 많은 논란을 빚었으나 최근 정권 교체와 최순성 사장의 취임을 통한 언론개혁을 통해 나아지는 추세이다. 신진일보, 팩츠, 더 리버럴 순으로 진보성향이 강하고, 동일일보, 자유일보, 대한일보, 뉴퍼스트신문, 트루스 오브 네이션 순으로 보수성향이 강하며 특히 트루스 오브 네이션은 뉴퍼스트신문과 함께 극우성향이 강하고 반정부 성향을 드러내는 편이다. 트루스 오브 네이션은 대한새벽당 등의 극우 정치단체에 호의적이며 다중우주론 왜곡, 반백신 운동 등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더 리버럴은 진보언론으로써 친노유천, 좌파 자유지상주의 등의 다양한 정치성향을 가진 기자들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신좌파 성향을 보이는 기자들도 다수 존재한다.

3대 진보언론인 더 리버럴과 신진일보, 그리고 팩츠를 합쳐 '삼자언론'(三自言論)이라고 부르며 4대 보수언론인 대한일보, 동일일보, 자유일보, 뉴퍼스트신문을 합쳐 '우사언론'(右四言論)이라고 부른다.

200년대 이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터넷이 연결된 나라이자 세계 최초로 극초고속 인터넷 속도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며 아이뉴스넷, JC3 등의 인터넷지가 등장하였다.

타블로이드 언론도 존재하는데 뉴퍼스트신문이 운영하는 뉴퍼스트 데일리, 대한일보가 운영하는 주간대한, 팩츠가 운영하는 피플메이크뉴스가 대표적이다.

최초의 언론이 등장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로, 조선시대까지는 언론이 없었다. 이후 등장한 언론은 좌익성향의 대한신보와 우익성향의 조선신문이며 140년부터 정부수립 논의정국에서 각각 공준위, 보수파를 지원해 정부수립까지 양대 언론사였지만, 167년 조선신문의 김영민 사장의 부정부패와 정치공작 등이 드러나 조선신문이 몰락했고, 조선신문의 기자 대부분이 이탈하여 대한일보를 창간한다. 한편 대한신보는 반정부 성향이 강했으며 정부의 탄압을 피해 오랫동안 유지하다가 195년 자진 폐간되었고 소수는 우익으로 전향하여 대한일보에 들어간다. 그 중 최윤빈 기자와 전 대한신보 출신 48명이 모여 진보신문을 창간했으나 대한일보, 동일일보, 중앙신문보다 낮은 점유율을 기록, 이후 202년 홍수연 사장이 취임하면서 회사 내 개혁을 추진함과 동시에 명칭을 '더 리버럴'로 바꾸어 다시 진보성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을 정치와 공작하는 경우도 있다. 유상민 정부 당시 보수정당이었던 국총협이 조선신문을 정치에 애용하기 시작했고, 박경열 정부는 대한신문을 아예 국영화하여 민간인 출신 기자를 전부 해임시키고 친정부 성향의 인사들을 대거 투입시켰다. 또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면 공산주의자들이 반동 시위를 저질렀다는 왜곡보도를 자행하였으며 이는 박경열 대통령이 사망한 179년까지 지속되었다. 김영후 정부는 언론개혁을 추진하여 진보성향의 언론들을 유해선전물로 간주해 대한신보만 남기고 전부 속간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특히 반정부 성향이 상당했던 신진일보는 무려 강제 정간을 당했고 마르크스-레닌주의, 반김용직 성향이 강한 월간 혁명은 강제 폐간되었다.

18대 대선 당시 극우성향의 언론인 뉴퍼스트신문의 유령직원들을 데려와 여론을 조작하여 특정 정당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마구 퍼뜨리는 것이 논란이 되었으며, 19대 대선에서도 뉴퍼스트신문 여론조작단을 이용해 정부에 관한 가짜 뉴스는 물론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뜨려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권남국 정부 이후 가짜 뉴스의 비중이 커졌는데, 우익성향의 소규모 언론들이 등장하여 음모론과 찌라시를 확대 재생산하고 정부에 부정적인 여론을 심기 위한 수단을 통해 정부 전복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고자 낸 법안이 바로 '가짜뉴스방지법'과 '정언유착금지법'이다. 두 법안 모두 민주당과 열린진보당의 핵심 당론이다. 자유당은 이 법을 표현의 자유 침해, 정언 협력 약화를 야기한다며 법안에 반대하였고 220년 3월 권남국 정부가 "가짜 뉴스는 한국 언론계를 무너뜨리는 고질적인 문제다"라고 발언해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 두 법안에 대한 국민여론을 보면 76%의 국민이 해당 법안에 찬성하지만 22%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다.

방송의 경우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 AM/FM 라디오 방송, 단파 라디오 방송, 케이블 방송, 디지털 위성방송, DMB 방송 등이 있다. 현재 전국 단위 방송으로는 한경방송공사(HBS), 준공영방송인 명진방송(MB), 민영방송인 선진방송(SBC), 지역민방 연합체인 한국지역민방 연구사업체(ARK)가 있다.

지역 단위 방송으로는 한경방송공사, 명진방송을 중심으로 하는 계열과 선진방송를 중심으로 하는 계열, 그리고 한국지역민방 연구사업체를 중심으로 하는 비가맹 지방 민영방송이 있으며 이 밖에도 경일방송, 홍주네트워크 등의 소규모 민영방송도 존재한다.

교육방송으로는 '교육방송법'에 따라 지정된 국립교육방송공사(NEB), 비영리 민간법인 교육방송인 대한교육방송(KEB)가 있고 보도 채널은 HBS E&M이 운영하는 HNN, 더 리버럴이 운영하는 LNN, 대한일보가 운영하는 대한일보TV가 있다.

케이블TV PP사업자는 HBS의 자회사인 HBS E&M, MB의 MB Networks 같은 지상파 운영 사업자 등이 존재한다.

종교

220년 기준 대한민국의 종교 비율은 무신론이 94.8%, 그리스도교회가 3.1%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기타로 나타났는데 신성교, 이슬라마교 등이 해당된다. 무신론이 가장 많은 이유가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거나 혹은 중립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인식이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유교적인 무신론자 혹은 유교론자가 많았지만 천주교와 개신교가 전파되면서 거대한 종교로 부상했다. 하지만 무신론자는 꾸준히 줄면서 정부 수립 당시 대한민국은 무신론자가 9.9%에 불과했고 오히려 가톨릭교회와 그리스도교 계열 종교만 강해졌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우파와 천주교 성향의 단체들이 등장하면서 반공주의와 제정일치 성향을 띄게 되고, 일부는 국총협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데 박경열 정부부터 계속해서 개신교를 밀어주기 시작했고, 그 결과 172년 기준 종교 비율은 83%가 개신교를 믿기 시작해 점점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황대진 정부부터 종교 개혁과 정교분리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세습교회 척결, 잘못된 개신교의 실체를 폭로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개신교 계열 교회는 조금씩 약화되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한 정책인데다가 개신교를 아예 끝장내는 정책에 불과하다며 집회를 열었으나 정치와는 일절 교류하지 않겠다는 규칙을 위반한 탓인지 일부 교단들이 개신교에서 떠나는 등의 행보를 보여 사실상 쇠퇴를 맞는다.

유영호 정부에 이르러서는 개신교를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선언하자 무신론은 점점 강해졌다. 그럼에도 더 많은 신도들을 얻기 위한 그리스도교회는 개혁을 단행하게 되고 이후 수많은 신도를 끌어오는데 성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부정적 인식은 여전했다.

대한민국에도 신성교가 존재하나, 신성교는 이클리우스의 국교라 영향을 받기가 미미하고 이들의 인지도가 아주 낮아 0.2%가 신성교를 믿고 있다.

성문화

AE한국은 현실 한국에 비해 매우 개방적이다. 여기서는 개방국임에도 성매매와 낙태 등이 부분적으로 허용되는 앵본보다 덜 개방적이지만 주로 20대, 특히 남성과 여성 대부분이 성문화에 우호적인 인식을 보이고 있으며 포르노의 생산과 유통, 시청 등이 허용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통계청이 조사한 평균 성 경험 연령이 15.4세로 아스피아 나라들 중 앵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6월에 성축제가 열리며 매년 5만 명의 사람들이 참가한다. 한국의 성축제는 다른 나라들의 성축제와는 달리 한경시와 한국성문화진흥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으며 성에 관한 인식과 건전한 성문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매춘과 성매매는 국민 정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금지되어 있고 아동·청소년 착취 포르노, 불법 포르노, 디지털 성범죄 역시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성인물 사이트는 대략 합법적인 절차와 정부의 허락에 따라 운영되지만 과거 불법적인 성인 사이트들이 많았기에 현재는 방관위가 이를 대거 규제시켜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성인물의 경우에는 매우 다양하지만 학생 컨셉의 성인물은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의 이유로 배우가 미성년자일 경우 금지된다. BDSM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허용되지만 이를 이용해 착취하는 성인물을 제작할 경우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올바른 성문화를 위해 힘쓰고 있지만 "한국의 성문화는 전부 민주정부가 도와줬다"라고 할 정도로 성문화를 옹호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부모들의 경우 자식이 성문화에 빠지는 것이 걱정된다며 성문화에 우려하고 있고 소수의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성문화를 다시 사회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문화를 다시 사회악으로 지정한다면 사생활을 침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유일하게 성인물 합법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연합전진당, 열린진보당, 사회당 등의 진보정당들도 성인물 합법화에 찬성하고 있다. 반면 국민정당, 현대당 등의 정당들은 성인물 합법을 지지하지만 미성년자가 성인물을 보게 되면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아청법 강화를 주장한다. 자유당, 개혁보수당, 태양당 등의 보수정당은 성인물을 유해매체물로 지정해야 한다며 불법화를 외치고 있으며 대한새벽당 등의 극우정당들은 한술 더 떠 불법화와는 물론 성인물 유통과 제조, 성인물 시청을 금지시켜야 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일민신당 등의 친국총협계 정당들 역시 유해매체물로 지정해야 한다며 성인물 불법화를 내세우고 있다. 여성의당도 여성들을 성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 뿐이라며 성문화에 혐오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한인민당은 중도정당 중 유일하게 성인물 불법화를 외치고 있는 정당이다.

과거 대한민국은 개방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성인물이 등장한 시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후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유상민 정부 당시 성인물을 유해매체로 지정했다. 성인잡지나 성인물을 소유하고 있는 자에겐 벌금 500만원과 징역 2년, 성인물을 몰수하게 되고 성인물을 유통·생산하는 기업들을 압수수색해 그 기업을 해산시켜버리는 처벌이었기에 그 강도가 매우 심했다. 박경열 정부는 이것도 모자라 더욱 강력한 규제를 추진하여 형량을 징역 7년으로 강화했고 동시에 성문화를 사회악으로 지정했다. 이에 언론들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성문화의 위험성을 보도해 국민들 사이에서 큰 충격이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성적 자유주의를 외치던 운동가들이 대거 구속, 사형당하는 등 더욱 잔혹하게 탄압했다.

그러다 김영후 정부 시절 성문화 형성과 개방 국가 활성화를 위한 성문화성장정책을 발표했다. 이 정책으로 대한민국은 개방국이 되었으며 동시에 성인주점과 성매매가 생겨났고 야간 통행금지 정책도 폐지했다. 하지만 당시 기독교를 믿는 인구가 많고 최대 종단인 그리스도교회와 일부 기독교 단체 등을 중심으로 성문화 반대 운동이 벌어져 이 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졌고 이는 황대진 정부 초기까지 이어졌다.

황대진 정부 중반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추진함에 따라 성문화 반대 운동으로 멈춰버린 성문화가 다시 가동하는 듯 보였다. 이후 성인물의 소유와 시청, 제작 등이 허용되는 대신 성폭력의 처벌과 미성년자가 성인물을 시청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된다. 다만 노유천 정부와 이명재 정부 당시에는 단속과 처벌을 단행하여 성문화에 직격탄을 맞았고 동시에 상업적인 불법 포르노 사이트들이 속출했지만 방관위에 의해 대거 규제되었다. 그러다 권남국 정부가 들어선 후 219년 4월 건전한 성문화를 위한 '성문화관리법'이 공포되어 그동안 도박과 관련되어 있던 불법 포르노 사이트들을 규제, 리벤지 포르노 제작자 등의 처벌이 이루어졌고 성인물 사업자들은 정부의 허가와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합법 포르노 사이트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는 미성년자들의 건강과 정신을 해칠 수 있다며 성교육 부문에 성인이용시설과 성인물 출입 제한을 막기 위한 내용을 신설하도록 결정했다.

이에 보건복지가족부, 여성평등부가 권 정부가 추진한 성문화관리법을 지지했고 많은 국민들도 이 정책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도박

대한민국에서의 도박은 당연히 국민 정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금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하 도박장에 관한 대규모 단속이 벌어지는 터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도박 참여자, 주최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도박에서 사용된 모든 돈을 몰수하여 그 돈을 국고로 사용하는 처벌 방식을 가지고 있다.

김영후 정부 시절 정부의 무능함을 우회하기 위해 우민화 정책을 피기 시작하여 대한민국의 카지노 사업이 시작되었고 황대진 정부 시기 카지노 사업에 관한 처벌이 이루어지자 지하에 도박장을 마련하는 등이 생겨나 이른바 '지하 카지노'의 수가 폭발했다. 노유천 정부는 지하 카지노 사업과의 전쟁을 선포하겠다며 "도박방지법"을 공포하여 지하 카지노 조직을 어느 정도 와해하는데 성공했다.

음악

예술

스포츠

대한민국의 스포츠는 씨름, 태권도 등 현실과 비슷한 스포츠가 발달해있지만 궁술 같은 전통 스포츠도 존재한다. 한국의 프로리그는 축구, 농구, 야구, 배구, e스포츠, 바둑, 궁도에 있으며 그 중 야구와 축구가 인기 있는 종목으로 꼽힌다. 야구에서는 KLB 리그가, 축구에서는 KSL이 대표하고 있으며 야구는 180년대부터 먼저 시작했으며, 축구는 194년 대한축구리그의 설립으로 야구보다 가장 늦게 시작하였다.

공휴일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