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지역민방 연구사업체

대한민국 (어나더어스) 대한민국의 방송사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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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공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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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방송
지역 민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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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140 주식회사 ARK
株式會社韓國地域民放硏究事業體
ARK Corp.
지역민의 대표방송, Control The Nation
국가 대한민국 (어나더어스) 대한민국
설립 169년 9월 (54주년)
개국 TV 169년 10월 (54주년)
라디오 172년 2월 (52주년)
본사 소재지 한경특별시 중앙구
지역 소재지 한경특별시 외 15개 지역
웹사이트
SNS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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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임영륜
법인형태 민영방송 (169년 ~)
업종명 방송업, 광고기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기업형태 중견기업
직원 수 7,400명 (205년)
자본금 1,224억 7,527만 1,181원 (218년)
매출액 979억 9,300만 2,738원 (218년)
영업이익 89억 8,500만원 (218년)
순이익 33억 6,419만원 (218년)
자산총액 65억 1,282만원 (218년)
자회사 제신어터너머스네트워크

한국지역민방 연구사업체(독일어: Arbeitsgemeinschaft der lokale öffentlich-rechtlichen Rundfunkanstalt der Republik Korea 아르바이츠게마인샤프트 데어 로칼레 외펜틀리히레흐틀리헨 룬트풍칸슈탈텐 데어 레푸블리크 코리아[*]) 혹은 ARK(아에르케)는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방송사이자 지역방송 연합체이다.

ARK는 15개의 지역 민영방송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경특별시 중앙구에 본사를 두고 있다. 독일의 ARD와 게르마스 왕국EGF를 모티브로 하여 169년 9월 설립되었다.

역사

ARK의 역사는 167년 개국을 준비 중이었던 한경방송김덕관의 구상에서 시작되었다. 한경방송은 당시 한경방송공사가 친정부를 띄던 시기였는데, 김덕관은 한경방송을 포함해 5개 지역방송을 새로 개국하여 지역방송국 연합체를 설립을 고집 중이었다. 그러던 중 게르마스 제1방송 출신 업무담당자인 프리드리히 레벤을 만나 같이 지역방송국 연합체를 구상하자며 제안했고, 레벤과 김덕관은 169년 강천도(現 강천북도, 강천남도, 경창특별자치구), 대경직할시(現 대경광역시), 충영도(現 충영북도, 충영남도), 광진직할시(現 광진광역시), 전주도(現 전주북도, 전주남도), 제신도(現 북제신자치구, 남제신자치구)에 개국을 준비 중이었던 강천방송, 대경텔레비전, 충영방송, 광진방송, 전주방송, 제신방송을 인수하였다. 그 해 9월 한경방송의 개국과 함께 ARK가 설립된다. 출범 1년 뒤에는 경산방송이 개국하여 일곱번째 가맹 네트워크가 되었다.

172년 박경열 정부가 국회를 해산하고 국평을 출범시키자, 한경방송을 제외한 모든 지역방송국들은 정부를 옹호하기 시작했고 한경방송만 유일하게 정부를 비판하는 논조였기에 정부의 강압적인 지침을 피할 수는 없었다. 대신 한경방송은 정부를 옹호하는 척 하면서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논조로 선회했다. 174년에는 레벤의 사망으로 김덕관이 이사장을 맡게 되는데, 김덕관 역시 181년 사망한다. 김영후가 정권을 잡고 난 후에는 친김 성향의 안영민이 3대 이사장을 맡았는데, 한경방송 내 임직원 일부는 물론, 산하 지역방송국 임직원들이 대거 구조조정을 하게 된다. 결국 안 이사장은 공정한 방송 체계와 국민의 신뢰성을 빌미로 친김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ARK의 한 축이었던 한경방송에서는 정부 비판보다는 종교적인 성향을 잠시 가졌다.

이후 ARK는 정치적 편향성 논란과 정부 유착 의혹 등이 불거졌음에도 새로운 지역방송국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186년에는 경인도(現 경인북도, 경인남도)에 경인방송이 개국하게 되고, 187년 3월에는 충영방송이 충영도 분리와 함께 북충영방송, 남충영방송으로 분리되었다. 188년 2월에는 경창특별자치구가 신설되면서 경창방송을 개국, 189년 5월에는 북영특별구 신설과 함께 북영방송이 개국했지만 199년 경창방송이 강천네트워크로, 북영방송이 TDK(텔레대경)에 흡수되었다. 190년 3월에는 광진전주방송이 다시 광진방송, 전주방송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다 190년 1월 ARK는 대대적인 내부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그동안 정치적으로 비판을 받았던 친정부 성향의 논조에서 탈피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좌경화가 이루어졌고, 임직원들의 권리를 위한 목적으로 노동조합 설립을 허가, 전 이사장과 정부 조치에 의해 강제 퇴사당한 임직원들을 복직시켜 다시 ARK에 일할 기회를 주게 되었다. 그리고 ARK의 신규 임직원 모집을 매년 진행하여 1년에 100명 이상이 합격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195년 로고 변경을 거쳐 196년에는 11개 지역방송국이 합작한 다큐멘터리 "한국의 미래, 3세기의 희망"이 게르마스 방송상어나더어스 방송대중상을 수상했고, 204년에는 프랑키아 텔레비지옹, EDF, 앵글로카 방송공사와 제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