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국
Deutsches Reich
국기 국장
Ein Volk, ein Reich, ein Führer
한 민족, 한 국가, 한 총통
상징
국가 독일의 노래
국조
검독수리
국목
참나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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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7월, 나치당 집권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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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베를린
최대 도시
베를린
면적
633,786㎢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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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47,208,087명
공용어
독일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군대
국방군, 무장친위대, 돌격대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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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Gau)
39개 가우
세계수도(Welthauptstadt)
게르마니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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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잘 통제되지 않는 대중주의, 표면적 민주주의, 국가사회주의, 일당독재, 지도자 원리
국가 원수 (대통령)
아돌프 히틀러 (베르사유의 용)
정부
요인
총리
아돌프 히틀러 (베르사유의 용)
돌격대 참모장
에른스트 룀 (베르사유의 용)
친위대 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힘러 (베르사유의 용)
나치당 당수 대리
루돌프 헤스 (베르사유의 용)
여당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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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국가사회주의적 자유 시장경제
화폐
공식 화폐
국가마르크(Reichsmark)
ISO 4217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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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LD
'
국가 코드
'
전화 코드
'


개요

독일국은 대전쟁 이후 재편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채를 유지하고 있다.

상징

국호

독일국은 독일 제국의 항복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국체를 계승하였다. 독일 제국(Deutsches Kaiserreich)은 국호로 활용하지 않지만, 공식 명칭인 독일국(Deutsches Reich)은 계승되었다. 대독일(Großdeutschland)은 본래 북독일과 남독일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었으나, 아돌프 히틀러의 계획에서는 동방주들을 이르게 되었기 때문에 독일 패권이 구축된 뒤의 새 국명으로 예정되었다.

국기와 국장

히틀러는 1935년 국기법을 제정하려고 시도하였으나[1] 국내외 정치적 불안정을 이유로 실행하지 않았다. 정치 세력의 재편이 부재한 것으로 인해 독일국의 정치는 다양화되어 단일한 히틀러의 사상 하에 통일되었다고 볼 수 없어 정치적으로 완전한 나치적 색체를 더할 수 없었다.

국장 또한 바이마르 정부에서 형성된 국장을 유지하면서 이전의 공화국 체제를 일정 유지하고 있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히틀러를 위시한 중앙파와 복고적 정신을 가진 우파 계급에서는 흑백적 삼색기 또는 나치당기를 통해 '독일인에게 부적합한' 체제에서 벗어나 독일인의 국가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반대도 만만치 않다.

국가

독일인의 노래는 독일 통일의 의지가 담겨 있던 노래이다. 히틀러는 소독일주의 정책을 뒤엎고 대독일주의 정책을 기반으로 오스트리아와의 합병 및 주데텐란트 병합과 뵈멘-뫼렌 보호령 설치 등으로 국가 통일의 과정을 밟아가며 프로파간다로 위시하고 있다.

독일국의 주 프로파간다는 독일의 완전한 통일은 슬라브가 현재 점거하고 있는 동방주를 정복하고 독일인의 영토로 만듦을 통해 지정학적 유리함을 얻고 국가를 완전한 통일 상태로 이끈다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국가이다.

역사

정치

독일국 내에서 수권법 이후 정치는 사실상 나치당 내의 다툼으로 변모했다.

에른스트 룀과 파울 요제프 괴벨스, 슈트라서 형제를 중심으로 한 나치당 내 좌파는 중앙에 속한 괴벨스, 돌격대를 이끄는 룀, 슈트라서주의 사조직 흑색 전선을 지도하는 슈트라서 형제로 나뉜다.

중앙당은 히틀러를 중심으로 뭉쳐 있으며 히틀러는 하인리히 힘러의 우파 집단을 조금 더 신뢰하고 있다.

특히 좌파와 우파 간의 갈등은 크게 벌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흑색 전선과 돌격대는 괴벨스와 힘러, 괴링 등의 단체로부터 작성된 살생부를 얻고 발표해 갈등이 크게 벌어졌다. 당내 중앙의 공식적인 발표는 "그들이 반대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기록하고 행동한 것"으로 확실하게 강한 의도를 가졌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돌격대는 흑색 전선과 협력하고 국내 영향력을 증진하고 있다.

  1. 미국 내 나치당기 훼손 사건을 이유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