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독일의 역사를 정리한 문서

게르만의 이동과 로마 제국

기원전 유럽 북부의 거주하던 게르만족은 어떤 이유로 남하하게 되고 현재의 남부 유럽(현재의 라인-도나우 유역 과 갈리아 지역(현재의 프랑스))로 내려오게 되고 당시 유럽의 지배자였던 로마 제국과 접촉하게된다. 하지만 게르만족은 야만인이라고 멸시받았고 오랜 기간동안 자신만의 거주지를 만들어 살았다. 하지만 이후 로마에서 게르만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하고 게르만족 출신의 장교까지 나오면서 로마는 게르만족에게 점점 잠식되고 있었고 이들은 군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상황속에서 게르만족이 갈리아와 도나우 유역으로 대이동을 하게 되고 이 이동한 게르만족에게 잠식당한 서로마는 결국 멸망하게 된다.

프랑크 왕국

로마가 멸망한 이후 클로비스 1세의 의해 프랑크 왕국이 세워지게 되고 이는 독일 역사 최조의 국가 정치 체제였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 곳곳에 다양한 게르만족 국가가 세워졌었지만 대부분 그 새력이 작거나 멸망한데비해 프랑크 왕국은 공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유럽의 강대국이 되었고 교황으로부터 서로마 황제 직위까지 받을 만큼 잘나갔지만 카롤루스(샤를마뉴) 대제가 죽은 이후 왕국이 3개로 분활되며 독일 지역에 동프랑크 왕국이 새워진다.

이후 동프랑크 왕국은 하인리히 1세 기점으로 독일 왕국으로 변화하게 되고 이는 이후 나타나는 신성 로마 제국의 모태가 된다.

신성 로마 제국

이후 오토 대제의 의해 중소국들의 일종의 국가 연합 형태를 띈 (신성)로마 제국을 세워졌다. 신성 로마 제국은 단일 국가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나름 국가 체계를 갖춘 집단이였다.


하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며 독일 왕국 시절부터 영향력있던 5대 왕국이 분열되면서 서부 공국들이 점점 분열되기 시작했고 동부에서는 오스트리아, 작센, 바이에른등의 신흥 강국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제국은 규모는 점점 커지지만 황제의 권한은 점점 약화되는 상황에 쳐했고 설상가상으로 교황과 성직자 임명 분쟁까지 발생하며 황제의 권한이 점점 추락하며 급기아 황제가 선출되지 않는 대공위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런 상황속에서 스위스의 소국 출신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백작이 황제로 선출되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합스부르크 황가의 시작이 된다.

이후 한자 동맹등이 결성되면서 독일 내에 민족 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점점 유럽의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학문으로는 인문학, 신학등이 발전했고 황제의 권한도 점점 회복되었다.

하지만 이후 루터가 루터교를 선포하면서 종교 분쟁이 발생했고 급기아 30년 전쟁이 발발하여 사실상 북부의 대한 통제권을 잃는 등 제국은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와 제국의 해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터지며 프랑스의 최초의 근대 국가가 세워지면서 독일은 또다른 위기를 맞게 된다. 프랑스로부터 전파된 자유와 평등등의 혁명정신은 전 독일을 강타했고 제국의 구시대적인 체제의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아 1803년 프랑스의 황제가 된 나폴레옹이 나폴레옹 전쟁을 일으키며 프로이센오스트리아를 탈탈 털어버리고 독일 서부에 라인 동맹을 결성하며 제국을 해체시킨 것 이다. 이후 러시아, 영국등 동맹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나폴레옹 프랑스를 몰아냈지만 이미 독일 지역은 회복이 힘든 손상을 입은 뒤였다.

남북 체제와 보오전쟁

이후 평화 협정에서 새로운 연방 국가인 '독일 연방'이 제안 됐었지만 프로이센 측의 반대로 실패하고 독일은 오스트리아 주도의 남독일 연방프로이센 주도의 북독일 연방으로 분열된다.

이런 체제 속에서 3월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오스트리아의 갓 제위한 프란츠 대제는 비록 권위주의적 타협이였지만 혁명주의자들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의회를 설치하게됀다.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 군의 한계를 느끼고 군사 개혁으로 중앙통재를 강화하였고 다양한 무기를 개발하여 혹시 다시 일어날 전쟁에 대비하였다.

이후 1866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보오전쟁이 발발하게되고 이후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다.

전쟁 초반에는 철도를 이용한 효율적인 운송 시스템을 가진 프로이센이 유리했지만 이후 오스트리아군이 최신식 병기와 뛰어난 전술로 반격을 시작했고 의도한건 아니였지만 전투에 나타난 프로이센 왕자를 사살하면서 프로이센군의 사기를 꺽어 실레시아를 차지하고 간을 보던 남독일 연방 국가들이 참전하면서 프로이센은 결국 독일 통일에서 빠지겠다는 조건으로 휴전하며 합스부르크는 독일 통일의 대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연방의 결성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쥐게 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남독일 연방북독일 연방을 통합한 '독일 연방'을 설립하고 프로이센의 영향을 없애기 위해 그단스크와 포즈난을 러시아에게 선물하여 친선을 맺는 등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한다. 이후 군사를 황제가 관할한다는 '레겐스부르크 선언'으로 군사를 황제의 이름 아래 통합하게된다.

제국의 부활과 독일의 통일

하지만 아직 독일 연방은 국가 연합이라는 고전적인 형태에서 벋어나질 못했고 아직 지방에서는 공작의 말이 황제의 명령보다 높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고 연방 의회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공국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프란츠 대제는 공작들의 권한을 낮추고 여러 군소국가를 통합하여 하나의 큰 주(State)로 통합하는 정책을 내세웠고 이에 반발한 제후들이 연방에 선전포고를 하며 독일 통일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하지만 슈타이어포와 공동군으로 대표돼는 연방의 군사력에 반란군은 상대가 되지 않았고 결국 1869년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모든 반란군을 진압하고 자신을 새로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칭하면서 독일은 완전한 단일 국가 체제로 통일된다.

제1차 세계대전

독일의 통일 이후 독일은 오스트리아의 강력한 문화적 파워와 하노버, 브란덴부르크의 강력한 공업력이 합쳐서 유럽의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클레멘스 폰 불프 제독으로 대표되는 해군파의 의해서 제국 해군은 대전이 일어난 1914년 당시 유럽에서는 영국 다음으로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게되었고 육군에서도 탄피 개발, 볼트액션 소총 개발등의 신무기와 오스트리아군 특유의 멋이 합쳐서 엄청난 위용을 뽐냈다.

하지만 독일은 프로이센을 합병하고 폴란드 서부를 장악한 러시아와 남부에서 남슬라브인들의 통합을 외치는 세르비아와 이탈리아 통합을 외치는 이탈리아와 대립하는 등 외부 상황은 좋지 못했다.

이후 독일-폴란드-헝가리의 신성 동맹과 영국-프랑스-러시아의 3국 협상의 대립구도가 생겨났고 이것은 유럽을 점점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들었다.

이후 1914년 독일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세르비아인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터졌지만 확전을 두려워한 협상국이 참전을 거부하며 위기는 넘어가는 듯 했으나...

1915년 알자스-로렌에서 양 측 군이 만나서 술 게임을 하다가 술에 취한 프랑스 병사가 독일 병사를 총으로 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서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독일은 러시아를 빠르게 제압하고 러시아와 전면전을 펼친다는 펼친다는 작전을 계획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프랑스군은 참호를 파며 저항했고 결국 진격은 베르됭에서 멈추게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러시아군이 잘 밀리는것도 아니였다. 러시아군은 처음에는 압도적인 전력차로 밀렸으나 금방 회복하고 참호를 파고 방어에 집중해 독일군의 진격은 민스크에서 멈추게되었고 결국 독일은 협상국과 소모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남쪽에 이탈리아는 독일군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졌고 독일군은 그 상태로 로마로 진격해 로마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이탈리아를 항복시키고 베르됭, 알프스에서 프랑스군을 동시에 공격하여 프랑스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하고 새로 개발된 병기인 전차와 함께 파리까지 진격해 1918년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낸다.

마침 러시아도 계속된 소모전으로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여 독일과 휴전을 제의했고 독일은 폴란드의 독립, 발트 3국의 독립을 조건으로 러시아와 평화협상에 조인하며 서부전선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이후 1년간 더 싸우던 독일과 영국은 1919년 독일측의 평화 협정을 받아들이면서 제 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완전한 승리로 끝이 난다.

이념 대립과 내전

전쟁으로 독일은 많은 것을 상실했고 내부에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자가 성장했다. 프란츠 대제의 뒤를 이은 카를 1세는 이를 해결하려 다양한 정책을 실시했지만 이들의 성장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점점 패쇄적으로 변했고 이는 공산주의자들과 연대하던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상황이였다. 결국 자유주의자들은 집권층인 권위주의자들과 연대해 '기독사회당'을 창당하게되고 이는 공산주의 vs 자유주의 구도를 만들게되었다.

1929년 베를린에서 일어난 노동조합의 시위를 기독사회당에서 고용한 무력집단이 진압하게되고 뒤늧게 경찰이 출동하지만 이미 3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이였다.

이후 정부는 이 사태를 주도한 기독사회당 소속 정치인 8명을 체포했지만 이미 공산주의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고 결국 공산주의자들의 대표인 붐프는 독알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하고 신성 로마 제국과 전쟁을 선포하게된다.

이후 독일 공화국은 브란덴부르크를 중심으로 민병대를 모집해 정규군과 싸우게된다.

하지만 민병대들이 대전쟁을 겪은 베테랑 군인들한테 상대가 되지 못했고 이들의 반란군은 3달만에 진압당하고 공산당의 지도자 붐프는 체포되고 사살당하고 공산당 인사들도 대부분 처형되거나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권력을 장악한 자유주의자들은 황제에게 민주적인 연방을 건의했고 1930년 1월 28일 입헌군주제와 의원내각제의 기반한 독일 연방이 선포된다.

제 2차 세계대전

대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알자스-로렌과 프랑슈콩테 지역을 빼앗긴 프랑스에서는 복수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1939년 9월 11일 프랑스가 독일에게 최후통첩을 전달하며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이후 영국,프랑스가 다시 연합하여 연합국을 창설했고 독일을 공격하였다. 독일은 곧바로 자신들의 동맹인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 일리리아, 프로이센을 호출하여 동맹국을 형성하여 맞대을을 했다.

하지만 개전 초기에 이탈리아측 방어선이 무너지고 제노바가 함락당하는 등 동맹국은 많이 고전한다. 독일 본토는 어느정도 잘 방어하고 있었지만 이탈리아 전선이 뚫린다면 황제의 거처가 있는 빈이 바로 연합국 폭격기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기에 독일 입장에서는 이탈리아 방어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프랑스군의 공세를 버티지 못했고 시칠리아와 나폴리에 영국군이 상륙하며 위기를 느낀 이탈리아는 연합국에게 항복하게 된다.

한편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 상선이 격침당하자 미국 내부에서 참전 여론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미국은 독일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독일은 이 요구를 묵살했고 결국 미국은 연합국으로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이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연합국은 독일의 방어선을 돌파하여 라인강 근처까지 진격하게되고 독일의 몰락이 코앞까지 오게된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연합국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데 바로 소련이 폴란드를 기습 공격하며 참전한 것이다. 이후 소련은 미친듯이 진격하며 독일을 위협했다. 하지만 독일은 소련에게 자신들의 영토를 내줄 마음이 없었고 서부 전선 방어군을 반씩이나 줄이면서까지 동부 전선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다.

그러자 소련군의 진격은 순식간에 저지되고 오히려 밀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독일에게 희망이 보이나 했으나...
1945년 연합국이 트리에스테로 상륙하며 독일의 본진을 치게 되고 빈이 위험해지자 독일은 결국 1946년 군주제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연합국과 소련에게 조건부 항복을 하게 된다.

냉전과 현대

독일은 전쟁에서 패전했지만 소련의 위협을 인지한 미국의 의해 영토는 프랑스측이 요구한 알자스-로렌 지방만 상실하는 선에서 그친다. 이후 미국의 예상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되었고 독일은 미국측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합류하게된다. 이후 미국의 지원을 받은 독일은 전쟁 이전의 경제력을 회복하게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속에서 카를 1세세가 1949년 승하하면서 프란츠 요제프 2세가 즉위하였고 프란츠 요제프 2세는 제국을 미국식 연방제와 비슷하게 만들고 싶어하였다. 공작은 해당 지역군 지휘을 겸하는 독일 군사의 특성상 전쟁으로 많은 지역의 공작들과 후계자들이 죽어 기존의 연방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민주주의적 선거로 주의 통치자를 뽑는 방식을 도입한다 하였고 이는 별 반대 없이 통과되었다.

마침내 독일은 완전한 민주주의적 연방제를 이뤄내였고 이후 유럽 연합을 창설하며 유럽 민주주의의 중심이 되었디.

전쟁 이후 추락한 경제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 정책으로 세계 4위급 경제력을 갖춘 국가로 성장하였고 독일 특유의 전문성으로 소비자들에게 독일 제품의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줬다.

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등의 고향인 만큼 문화도 프랑스.이탈리아와 함께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국가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