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한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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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明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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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4월 3일 | |||||||||||||||||||||
신라국 달구벌 | |||||||||||||||||||||
981년 7월 21일(항년 63세) | |||||||||||||||||||||
청한 청호부 청운궁 | |||||||||||||||||||||
청한 세자·청한 국왕 대리청정 | |||||||||||||||||||||
970년 1월 12일 ~ 975년 6월 7일 | |||||||||||||||||||||
청한 2대 국왕 | |||||||||||||||||||||
975년 6월 8일 ~ 981년 7월 21일(6년 1개월 1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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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생애
명종 총
청한 2대 국왕 명종(明宗)은 태조의 서장자로, 휘는 조염(趙炎)이라 하며, 민비 김씨를 어머니로 두었으니 훗날 민애왕후로 추존되었다. 달구벌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침착하였으며, 군사와 문학을 함께 익혀 태조의 신임을 받았다. 장성한 뒤에는 태조를 따라 수차례 전투에 나아가 무공을 세웠고, 특히 연해주에 남아 거란과 장기간 대치하며 청한의 북방 안정을 꾀하였다.
태조 말년에 후계 문제로 인하여 적장자 인호공과 대립하였으나, 신료 다수와 장병들의 지지를 얻어 결국 세자로 책봉되었고, 태조가 병이 들자 대리청정을 맡아 국정을 주관하였다. 태조가 훙서하자 즉위하여 제2대 국왕이 되었으니, 명종이라 하였다.
즉위 후 명종은 어지럽고 미약하던 조정을 바로잡고자 하여, 종묘와 사직을 창건하고 왕실의 체제를 확립하였으며, 태조 이전 4대조를 추숭하여 조종묘를 설립하고 왕실의 정통을 굳건히 하였다. 국정을 안정시키고, 민심을 회복하며, 법제를 정비하여 청한의 기틀을 다졌으니, 비록 재위는 6년에 그쳤으나 그 치적은 선명하고도 깊었다.
명종은 강한 책임의식과 온화한 인품으로 조정을 화합시켰고, 외척을 멀리하며 공신과 중신을 골고루 등용하였다. 그는 화려한 치적을 남기진 않았으나, 청한의 기반을 다진 내실의 군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말년에 끝내 건강이 회복되지 못하고, 981년, 재위 6년 만에 훙서하였다. 뒤이어 장남 환종이 즉위하였다.
청한사
○ 명종 달구벌에서 탄생하다. 이해 9월, 태조의 서장자인 염이 가문 사가에서 태어나니, 어머니는 후궁 민비 김씨로 훗날 민애왕후(閔哀王后)에 추존되었다. 이때 하늘에 오색 구름이 뜨고, 밤에 신묘한 향기가 온 집에 퍼졌으므로 태조가 크게 기뻐하며 “이 아이는 집안을 잇고 나라를 세울 인물”이라 칭하였다.
○ 태조 35년(975년), 태조 붕어. 왕이 즉위하다.
○ 명종 원년(975년), 종묘와 사직을 창건하다.
○ 명종 원년(975년), 왕의 외아들 평안공을 세자로 책봉하다.
○ 명종 2년(976년), 송에게 새 왕의 등극을 알리다.
○ 명종 2년(976년), 선왕의 묘당을 정비하고 왕실 족보를 편찬하다.
○ 명종 3년(977년), 법제와 관복 정비에 힘쓰다.
○ 명종 4년(978년), 고려와 교역하다
○ 명종 4년(978년), 고려 왕에게 사신을 보내다
○ 명종 5년(978년), 고려 왕에게 사신을 보내다
○ 명종 6년(981년), 병환이 위중해지다.
○ 명종 6년(981년), 왕이 붕어하다.
음력 윤3월 2일, 명종이 청한 대남궁에서 붕어하시니 향년 63세였다.
조정과 백성들이 슬퍼하며 7일간 국상을 치렀고, 묘호는 명종 시호는 의계신무대왕이라 하였다.
세자가 왕위를 이어받아 즉위하였다.
“사관은 논한다. 문무를 겸비하고 조정과 군영을 넘나들며, 국초의 혼란을 평정하였도다. 비록 짧은 재위였으나, 종묘사직을 세워 국가의 근본을 바로잡았으니, 진실로 태조의 대업을 이을 만한 군주라 하겠다.” — 『청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