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한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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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太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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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년 12월 13일 | |||||||||||||||||||
신라국 동계 | |||||||||||||||||||
998년 8월 9일(향년 77세) | |||||||||||||||||||
청한 청호부 청운궁 | |||||||||||||||||||
청한 4대 국왕 | |||||||||||||||||||
985년 6월 2일 ~ 998년 8월 9일(12년 1개월 3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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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생애
개국공신
청한의 중신
3대를 섬기다
사대부의 지지로 즉위하다
태종 총서
청한 제4대 국왕 태종(太宗)은 태조의 서차자이자 명종의 동복 동생으로, 환종의 숙부이다. 휘는 조민(趙旼)이며, 어머니는 민비 김씨로, 훗날 민애왕후로 추존되었다. 달구벌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문학에 뛰어났고, 장성한 후에는 아버지 태조를 보좌하여 국정에 참여하였다.
태종은 태조, 명종, 환종 3대에 걸쳐 등용되어 조정의 중신으로 활약하였으며, 특히 환종 치세에는 왕실의 큰어른이자 조정의 어른으로서 청한의 국정을 이끌었다. 환종이 승하하자, 왕실은 매화왕후의 소생 인호공을 세우려 하였으나, 혼란의 시기에는 경험 많은 군주가 올라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태종이 왕위에 올랐다.
재위 12년 동안 태종은 송나라, 요나라, 고려에 사신을 보내 교역을 추진하였고, 내정을 정비하여 여러 가지 내치의 치적을 세웠다. 여러 사대부들을 등용하고, 여진과의 교역을 통해 나라의 재물을 쌓았으며, 내탕금을 풀어 백성을 보살폈다.
그러나 본래 환갑이 넘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크고 작은 병치례를 겪었고, 결국 77세의 나이에 숙환으로 훙서하였다.
태종의 치세는 청한의 안정과 번영을 이끈 시기로 평가되며, 그의 업적은 후대에 길이 남을 것이다.
청한사
○ 태종 원년 왕이 즉위하였다
○ 태종 원년 왕이 사면령을 내리다
○ 태종 원년 도적떼가 준동하다
○ 태종 2년 태조의 서자 백안공이 역모를 꾸밀려고 하다 발각되다. 백안공을 귀양보내었다.
○ 태종 2년 송에 사신을 보냈다
○ 태종 3년 내부 대신중 간사한 자를 파면하고, 공정한 인사를 단행하였다. 민간에 흉년이 있으매, 내탕금을 풀어 굶주린 백성을 구휼케 하였다.
○ 태종 4년 송에게 사신을 보내다
○ 태종 5년 군령을 엄하게 하고, 병부에 명하여 병기와 군량을 점검하게 하였다.
○ 태종 6년 태묘에 친히 나아가 제사를 올리고, 조종의 업적을 정리하여 실록 편찬을 명하였다.
○ 태종 7년 노령으로 병환이 잦아짐에, 별궁에 기거하고 정무는 태자에게 대리하게 하였다.
○ 태종 8년 변방의 오랑캐들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고자 하니, 조정에서 후히 접대하고 우호를 맺었다.
○ 태종 9년 태종께서 몸소 사직에 나아가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고, 도성 밖에 연못을 파서 농사에 쓰게 하였다.
○ 태종 9년 전국에 창고를 정비하고, 세곡의 축적을 명하였다. 백성은 편안하고 풍년이 들어 조세를 감면하였다
○ 태종 9년 오랑캐들이 변경을 어지럽히다.
○ 태종 10년 전국의 군현을 순차적으로 순시하여 수령의 치적을 점검케 하였고, 탐관오리를 엄벌하였다. 민심이 안정되니 태종을 성군(聖君)이라 칭송하였다.
○ 태종 11년 태종께서 병환이 깊어지니 정사는 세자에게 위임하고, 궁내의 일을 간소히 하게 하였다. 국왕의 건강을 염려하는 상소가 연일 올라오니, 친히 후손들을 위해 유시를 작성했다.
○ 태종 12년 정월, 숙환이 더욱 깊어지니, 세자와 대신들을 불러 유시하기를, “내가 나이 많아 국운을 오래 이끌지 못하였으나, 부디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사심이 없어야 할 것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