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텔란트 코뮌의 영역(지도에서 다갈색 영역)

미텔란트 코뮌
Mitteland Kommune
미텔란트 코뮌 국기[1]
정치체제 생디칼리슴Syndicalism / 노동조합주의
의회 체제 단원제, 코뮌 의회
경제 체제 사회주의, 계획경제, 노동조합 중심제
국가의 표어 우리들이 잃을 것은 사슬 뿐이요, 얻을 것은 모든 영광이도다!
설립 연도 1921년
국가 ISO 코드 MTC
소속 국제기구 인터내셔널 커먼웰스The Intetnational Commonwealth
수도 미덴하임Middenheim
국가 자유, 평등, 해방
세계관의 국가 상징색 A12702
화폐 단위 탈러Thaler[2]/MCT
계승한 국가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
현재 인구수 약 9,024만 명
코뮌정부 인사 목록
현직 국가원수 코뮌 의장 알리시아 하렐Alicia Harel
현직 정부수반 노동자의회 총대변인 안네로제 뮈젤 Annerose Müsel
현직 외교 장관 지클린데 키르히아이스Sieglinde Kircheis
현직 국방 장관 카밀라 리용쿠르Carmilla Lyoncourt
현직 노동 장관 위르겐 마르쿠제Ürgen Marcuse
현직 법무 장관 카를 마우누슨Karl Magnussen
현직 의료-보건부 장관 루트비히 훔볼트Ludwig Humboldt
현직 교육부 장관 리제트 베르크마이스터Lisette Bergmeister
현직 과학-정보부 장관 리하르트 슈톨만Richardt Stollman
현직 국토-환경부 장관 스베틀라나 루빈스카야Svetlana Rubinskaya
현직 농림-어업 장관 레나테 호르크하이머Lenate Horkheimer

개요

"우리들이 잃을 것은 사슬 뿐이요, 얻을 것은 모든 영광이도다!" - 레티시아 마르크스, 미텔란트 코뮌의 제 1 국모

미텔란트 코뮌(Mitteland Commune)가상지구 BF 세계관에서 독일 지역에 위치하는 국가이다. 미텔란트 코뮌은 '코뮌'[3]이라는 이름 답게 사회주의 성향의 국가이나, 현실의 공산주의 국가와 같은 일당독재 국가가 아닌 민주적 사회주의 체제(작중 세계에서는 '생디칼리즘'이라고 이름지어진)를 따르는 국가이다. 생디칼리즘은 노동조합을 기본 투쟁의 단위로 하는 사회주의 운동이라고 간단하게 이해하면 된다. 물론 이 세계관 미텔란트 코뮌의 생디칼리즘은 현실 세계의 생디칼리즘을 100퍼센트 모방하기 보다는 '카이저라이히-레거시 오브 벨트크리크Kaiserreich-Legacy of Weltkreig' 라는 대체역사의 설정을 상당히 차용하고 있다.

정치

인민은 인민인 것 그 자체로 존엄성이 있으며, 미텔란트 코뮌는 그 존엄성을 항구적으로 존중하고 보호, 확장시키기 위하는 국가임을 천명한다. 이 정신은 그 어떤 경우에도 훼손되거나 폐기될 수 없다.

- 미텔란트 코뮌 헌법

생디칼리즘 국가인 미텔란트 코뮌에서는 전 국민이자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자 의회'가 존재하며, 이들은 미텔란트 코뮌의 모든 성인들의 보통 선거 원칙에 의해 선출된다.. 즉,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공산주의가 아니라, 상당히 민주적인 사회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미텔란트 코뮌의 생디칼리즘식 민주주의는 조금 특이한 점이 있는데, 미텔란트 정부 각 부처의 장관진들마저도 선거로 뽑는다는 것이다. 현실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일반적으로 대통령 중심제를 하던, 내각 책임제를 하던 어떠한 방식으로 정부 지도자(대통령 혹은 총리)가 선출된 후, 정부 지도자가 자신의 의중에 맞는 사람들을 각종 장관진으로 임명하여 내각을 구성하는 형태이지만, 미텔란트 코뮌의 선거에서는 각각의 장관진에 여러 사람들이 후보로 출마하고, 이들 중 누가 장관이 될 지는 미텔란트 인민들의 자유 선거의 결과를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또 다른 특이점이라고 하면 이 나라에는 민주적으로 선출되는 내각과 의회가 존재하지만,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부르주아들의 민주주의'에서나 존재하는 기만의 산물이라고 간주되어, 정당의 결성 행위는 미텔란트 코뮌 헌법에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인민의원들은 정당에 소속될 수 없고 정당을 결성할 수도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정당과 비슷하게 이념 따라 모이는 느슨한 파벌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파벌들

미텔란트 코뮌에는 공식적으로는 정당이 존재할 수 없지만, 이념 따라 이합집산하는 '파벌'들은 존재하며, 미테란트의 노동자의회 의원 선출 및 장관 선출에서 경쟁하게 되는 것도 대부분 이런 파벌 차이 때문이다.

미텔란트 코뮌 정계에는 대체적으로 이와 같은 정치적 파벌들이 존재한다.

  • 마르크스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미텔란트 코뮌의 제 1 국모이자 공산주의 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레티시아 마르크스의 주장을 따르는 것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미텔란트 코뮌이라는 국가 자체가 사회주의 국가이며 정치인들도 모두 사회주의 계열이기는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 파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정립한 공산주의 이론을 가장 정통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자처하는 파벌이다. 최근 수십년 간 '20세기~21세기의 시대적 변화'에 의해 '마르크스주의' 파벌은 그대들은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가 취급을 받으며 인기가 없어지고 점차적으로 위축되어 갔지만, 2010년대 들어 또 다른 정세의 급변을 맞으며 다시금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이 재평가되고, 마르크스주의자 파벌에 속하는 알리시아 하렐이 신임 코뮌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이 정파는 다시금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 조합주의자

미텔란트 코뮌이 지급과 같은 생디칼리즘(노동조합주의) 체제를 설립하는 데는, 마르크스의 노선에서 약간의 바리에이션이 가해진 '조합주의자'들의 영향도 막대했다. 조합주의자들은 각각의 개별적인 노동조합 집단들의 자치적인 경영 및 노동을 지지한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과정에서는 일시적인 과도기 형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지만, 조합주의자들은 혁명이 완수되기 이전에도 노동자들의 자치적-민주적인 구조가 설립되어야 최종적인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 혁명 당시 각지의 사회주의 혁명 세력들은 하나의 혁명 수뇌부로 모인 것이 아니라 각지에서 행정구역을 점령하고 해방구, 코뮌을 선포하는 방식으로 혁명을 진행하였는데, 이 점조직들과 자치세력들의 막강한 위세로 인하여 미텔란트 코뮌은 생디칼리즘 국가화 되었다.

  • 사회혁신주의자

사회혁신주의자들은 미텔란트 코뮌 내에서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정파이다. 이들을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사회주의 색으로 염색한 우파라고도 한다. 이들의 주장은 시장 및 재산의 자유범위를 확대하는 정책을 주장하는 등 일견 우파적인 면이 강하다. 사회혁신주의자들은 '시대적인 상황에 변화에 맞춰 생디칼리즘 노선에 대대적인 혁신을 가해야 한다'고 비난에 맞선다. 그러나 이들을 단순한 우파 세력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 미텔란트 코뮌의 20세기 중-후반 들어 개인적-시민적 자유의 보장(가령, 성소수자 권익 등)에 가장 앞섰던 것이 사회혁신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 빵과 장미

시적인 이름을 가진 파벌은 농업, 축산, 어업, 임업 등 1차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자 파벌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산업 노동자 사회를 혁명의 중점으로 두었는데,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게 여겨진 농부 등의 계층을 혁명의 중점으로 두는 '개량주의' 노선의 파벌이라고 볼 수 있다. 미텔란트 코뮌의 농림-수산 장관은 대체적으로 농업인 등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빵과 장미 파벌에서 주로 배출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타 파벌에서도 이 파벌을 무시할 수 없다. 현임 농림-수산 장관인 레나테 호르크하이머 또한 이 파벌에 속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환경주의자

환경주의자 파벌은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및 '생디칼리즘' 노선을 걷는 미텔란트 코뮌에서 새롭게 등장한 생소한 사회주의 이념 분파이다. 이들은 산업 발전에서 벌어진 환경 파괴 문제에 대해서도 좌파가 마땅히 신경을 써야 할 문제이며, 깨끗한 환경 또한 전 인민이 공유해야 할 재산이므로 환경에 대한 강경한 규제 및 보호를 주장하였다. 이들은 '빵과 장미' 파벌과 간혹 협력을 하지만, 유전자 변형 작물 문제나 축산, 임업, 어업 등에서의 환경파괴적, 동물학대적 운영에 대해서는 충돌이 일어난다.

  • 기술사회주의자

1950년대에 '컴퓨터'라는 새로운 전자 장비가 발명되고 그것이 모든 산업 분야로 확대되면서 또 다른 산업의 혁신이 일어났다. 기술사회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정보의 혁명'을 찬미하는 세력으로, 공산주의 또한 적극적으로 기술을 받아들이고, 노동자들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기술에 근거한 유토피아 사회를 이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직 미텔란트 코뮌 정계에서 미미한 세력이지만, 신임 과학-정보 장관으로 이 파벌에 속하는 리하르트 슈톨만이 선출되었다.

  • 국제주의자

레티시아 마르크스와 카를라 엥겔스의 공산주의 사상 자체가 혁명은 만국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국제주의자들은 특히 혁명을 국외로 퍼뜨리는 데 전념하는 파벌들이다. 이 파벌은 자신들의 정념과 패기 하나만 믿고 외국의 노동 현장으로 건너가 노동운동 및 혁명 활동에 투신하던 사람들을 그 기원으로 한다, 국제주의자들은 인터내셔널 커먼웰스와 같은 사회주의적 국제기구 설립을 적극 지지한다. 한편 이들이 외국에서 벌이는 활동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마찰을 빚는 것은 미텔란트 코뮌의 외교 관계를 곤란하게 되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 극단주의자

극단주의자 파벌은 제 2차 소녀혁명 이후에 생겨난 파벌이며, 국제주의자 파벌에서 더욱 극성맞은 공산주의자들이 따로 분류된 것이다. 2차 소녀혁명 당시 미텔란트 코뮌의 국체를 보존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반혁명 연합군에게 일부 영토를 떼주고 막대한 피해를 입는 등의 손해를 입게 된 것이 계기이기도 하다. 이들이 극단주의자라는 이름을 얻는 것은 바로 그 외국의 '반혁명 세력'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다. 극단주의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외국의 '반동주의' 국가에 대한 강경책, 외교 단절을 주장하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내부의 '반혁명 분자'를 '정화'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극단주의자들은 외국의 좌파 탄압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력이며, 코뮌 의회 내의 극단주의자 파벌이 주로 특정 반동주의 세력에 대한 규탄 선언 시도를 주도하는 편이다.

  • 공산-민족주의자

공산-민족주의자들은 일단 경제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고전적인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를 수용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미텔란트인이라는 특정한 민족 정체성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다. 레티시아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들이 단결할 것을 주장하는 초국가적, 탈민족적 계급투쟁을 지지한 사람이지만 말이다. 공산 민족주의자들은 미텔란트 코뮌라는 공산 국가가 미텔란트 민족이 향유하는 생디칼리즘적 낙원이 되기를 원하며, 혁명의 전파보다는 내부적으로 국가 및 공산주의를 안정화 시키기를 원한다. 공산 민족주의자들 중 일부는 소위 좌파 파시즘적 성향을 보이며, 타국에서의 난민 수용 등에도 부정적이다.


그렇지만 앞에서 서술되었듯 미텔란트 코뮌에서는 정당을 결성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공식적인 강령이나 당 지도체제 같은 것도 성립될 수가 없으므로 이와 같은 '파벌'과 '어디 파벌에 속한 것으로 평가된다'와 같은 말들은 절대적이지 않다. 미텔란트 코뮌의 정치계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파벌에 속했는지는 그 정치인이 어떤 사람과 대체적으로 우호적인지, 최근에 내놓는 정치적 발언이 어떤지에 따라 개략적으로 추정되는 것이며, 쉽게 바뀔 수 있다.

노동자 의회

노동자 의회는 18세 이상의 모든 미텔란트 코뮌 시민권자들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는, 4년마다 한 번씩 치루어지는 보통 선거에 의해 구성되는 입법부이며, 단원제 의회이다. 노동자 의회의 규모는 총 728석으로 정해져 있다.

노동자 의회의 728석 중 500석은 지역구 의석이며, 해당 지역구의 의견을 대변하는 노동자의회 의원을 선출한다. 그리고 나머지 228석은 직별 의석이며, 코뮌 법률에 의해 모든 직업들을 일정한 분류로 묶은 '직별'이 구성되고, 이 직군들의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것이다. 즉 코뮌의 각 지역 인민을 대표하는 지역구 의석과 코뮌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직별 의석이 하나의 노동자의회를 구성한다.

지역구 의석은 각 지역구 단위로 소선거구제(지역구 후보자 중 최다득표자 1인이 선출되는 형태)로 선출하며, 직별 의회는 각 직업군별로 배정된 의석에서, 전국구 단위의 투표를 통해 최다 득표 순으로 정해진 의석 수만큼 해당 직군에서 의원이 당선되는 형태이다. 모든 코뮌의 선거권자들은 모든 직군별로 후보에 대해 투표해야 하며, 이로 인하여 미텔란트 코뮌의 투표용지는 비교적 큰 편이다. 후보자는 지역구 의석 또는 직별 의석 하나에만 출마할 수 있으며 복수 출마는 불가능하다.

각 직별에 할당된 227석은 코뮌 법에 의해 다음과 같이 분할되어 있다.

농업(경작, 축산업)과 임업 16석
어업(어획 및 양식업) 8석
광업 11석
경공업 25석
금속(제철 및 기타 합금 주조) 산업 18석
차량, 선박 및 항공기 제작 산업 25석
화학(약품 및 제 화합물) 산업 15석
교통 및 운수업(대중교통, 화물 운반 등) 14석
전기, 전자 산업 20석
상업, 서비스업 18석
의료업(의사, 약사, 간호사 및 요양사 등) 10석
교육직(유치원, 초-중-고교 및 대학) 20석
군인 11석
기타 정부 공무원 17석

외교

프로이센과의 관계

미텔란트 코뮌과 프로이센 모두 자신들의 국토가 과거 레스카티에의 영토였다는 점에서, 두 국가 모두 자신들이 레스카티에의 후신이라고 주장한다. 미텔란트 코뮌 입장에서 헌법적으로는 프로이센 또한 미텔란트 코뮌의 영토임을 주장하지만[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나라는 일단은 수교하였고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시점에는 헌법 조항에만 '프로이센은 미텔란트 코뮌의 고유 영토이다'라고 되어 있지, 실제 국내정치적/국제정치적으로는 전혀 이를 주장하고 있지 않다.

제 2차 소녀혁명 / 혁명 수호전쟁은 노동자 대중들의 스스로의 힘으로 부르주아적 제국주의자들과 싸워서, 노동자들의 생디칼리즘 국가를 수호했다는 점에서는 거대한 영광이지만, 동시에 그들을 완전히 압도하지 못함으로서 영토를 떼어주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치욕이기도 하다. 이로 인하여 상실한 영토 중에는 부르군트 지역(현실의 알자스-로렌 지역에 대응), 슐레스비히 지역(현실의 덴마크 남부에 대응)등도 있지만, 그 중 가장 크게 상실한 영토가 바로 프로이센 지역인 것이다.

비사회주의 국가인 프로이센이 생겨나자, 구 레스카티에의 자본가들, 구 귀족들, 공산주의에 우호적이지 않은 자유주의자들이나 극렬 반공주의, 레스카티에 왕정 복고주의자들[5] 등 상당수가 프로이센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자본가들의 유입과 비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지(자유 국가 프로이센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선전)에 의해 프로이센은 경제적으로 미텔란트 코뮌보다 우세를 점하였으나, 현재는 인구수에서 비롯된 절대적인 체급 차[6], 미테란트의 '생디칼리즘적, 민주적 사회주의' 정책의 긍정적인 경제성장, 그리고 현대시대에는 외교적 정치현실주의에 의하여 프로이센보다는 미텔란트 코뮌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택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현재는 과거의 우세가 반전된 상황이다

프로이센 - 미텔란트 코뮌간 양국간 외교관계는 오랫동안 '상호 적대적인 사실상 적국'이었다. 애초에 양국의 설립 계기, 이념적 차이만 보아도 이들은 서로 우호적일 수 없는 사이이다. 양국이 설립되고 나서 국제사회의 압력에 의해 일단은 평화적인 외교를 천명하였지만[7] 실제로는 양측간의 외교적 비방, 스파이 행위가 빈번하였고, 1940년대 초에 발생한 '세계의 참화'[8]때 프로이센은 프랑스의 동맹에 섰고, 미테란트는 반극우 연합군에 참가함으로서 이 두 나라는 서로 전쟁을 하게 되었다. 이 '세계의 참화' 전쟁에서 미텔란트 코뮌 측이 참가한 연합군이 승리하였으며, 해당 전쟁으로 프로이센이라는 나라 자체가 통째로 병합되지는 않았지만, 프로이센의 서부 지역을 1946년에 미텔란트 코뮌 수복하게 되었다.(프로이센의 공식적 입장은 이 결과로 인해 해당 지역이 점령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전쟁의 결과는 미텔란트 코뮌과 프로이센 사이에서, 미텔란트 코뮌이 명백히 힘의 우위를 차지하였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후로도 상호간의 수작이 의심되는 치안불안 행위 및 국지적 무력충돌 행위가 지속되고 있으며, 여전히 미텔란트 코뮌과 프로이센은 '실질적 적국'인 상황이다. 그러나 프로이센 측에서도 체제역량의 한계를 느끼는 여론은 반공적 보수파 측에서도 제기되고 있으며, 약간의 변화의 실마리가 주어진 상황이다.

미텔란트 코뮌의 신임 코뮌 의장으로 '알리시아 하렐'이 선출되었는데, 마침 기막힌 우연으로 프로이센국 신임 대통령으로 '엘자 폰 레스카티에-하렐'이 선출되었다.[9] 일부 호사가들은 이것이 양국의 외교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썰을 풀기 좋아한다고 한다.

중화민국과의 관계

중화민국과 미텔란트 코뮌은, 두 나라의 1920년대 후반~1930년대의 경제 성장의 상호 협력자이자 수혜자였다. 중화민국의 역사에서 왕룽 민국수상 시기에 남중국의 상당한 경제 발전이 있었는데, 미텔란트 코뮌에서는 중화민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기술자와 자금을 지원했으며, 반대로 중화민국에서는 국내의 자원 인프라를 개발하여 미텔란트 코뮌의 산업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고, 또 어떤 품목들은 중화민국에 공장을 지어서 외주 생산을 해주기도 하였다. 당시 전통적인 선진국/강대국에서는 핏빛 수요일이라는 경제 대공황에 의해 경제가 침체되고 혼란에 빠지던 와중이었지만, 두 나라는 상호 협력 관계에서 크게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또한 가상지구 BF의 중화민국은 완전한 생디칼리슴,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었지만 당시 왕룽 주석이 삼민당 좌파로서 사회주의적 경향성을 갖고 있었고 미텔란트 코뮌의 사회주의 정책을 부분적으로 모방하기도 하였다.

세계의 참화 대전쟁 때, 미텔란트 코뮌는 자신들의 국토를 보존하는데 바빠서 역시 북중국-일본국의 공세에 시달렸던 중화민국을 돕지는 못했지만, 당시 미텔란트 코뮌 인으로서 중화민국의 의용병으로 참가한 '플리겐데 티거Fliegende Tiger' 항공단이 중화민국의 편에서 침략자들과 맞서 싸웠고, 현재까지도 플리겐데 티거는 미텔란트 코뮌 - 중화민국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후 삼민당에 사회주의 성향이 약한 우파들이 독립해서 나간 국민당 정권 시기에도 이념적 차이는 무시하더라도 기존의 협력 관계를 아예 끊을 수는 없다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기에 여전히 미텔란트 코뮌와 중화민국의 사이는 각별한 편이다. 그 예시 중 하나로 중화민국 공군은 세계의 참화 대전쟁 이후로 지속적으로 미텔란트 코뮌제 항공기를 구매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도 코뮌 산 5세대 전투기 아들러Adler를 직도입+라이선스 생산 혼용을 발표하였다.

역사

코뮌 설립 이전

본래 '미텔란트' 라는 단어는 대륙의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지명이었으며, 어떤 국명 또는 정치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다. 이 지역에는 비슷한 언어와 문화양식을 공유하는 소왕국와 공국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중에서 비교적 영토가 크고 군사력이 강했던 나라인 레스카티에 공국은, 군국주의적 정책을 토대로 미테란트 지역의 각국들에 대한 무력 합병, '온건한' 자발적 합병(실상은 레스카티에 휘하의 제후국이 되는 조건으로, 레스카티에의 무력시위에 겁을 먹고 반강제적으로 국가 통합 협약에 조인한 것)등을 통하여 영토를 급격히 확장하였고, 이윽고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을 건립하게 된다. 레스카티에는 명목상 왕국과 공국들의 연방이었으나, 그 연방의 대표인 '연방 국왕'의 자리는 레스카티에 왕가에 한정되어 있었고, 레스카티에 내 지도를 보더라도 대부분의 영토가 레스카티에 직할령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생각하는 평등한 연방제가 아닌, 실상은 레스카티에 우위의 위장된 중앙집권 체제였다.

또한 당시의 레스카티에 연방왕국 정부는 명목상 퍼지고 있는 '자유주의' 기조를 국민 불만을 달래기 위해 수용하였고 의회를 두었으나, 이 의회는 연방 국왕의 간섭을 받고, 명목상 보통 선거가 진행되었으나 내각의 수장인 수상은 선거와 무관하게 국왕의 단독 의사로 선출되었다는 점은 후대에 '사이비 입헌 국가'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다.

또한, 일개 제후국이었던 레스카티에를 급격하게 대국의 반열로 올려놓은 것은 군사 우선의 군국주의에 따른 것이었으므로,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 또한 사회 전반에 군국주의 논리가 강하게 배어 있었다.

공산주의 사상의 태동

19세기 들어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이 일어났고, 세계는 '현대'라고 훗날 불릴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공장 산업의 발달에 의해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계급의 분화도 일어나게 되었다.

막대한 돈과 그에 따라나오는 권력을 쥔 자본가들은 모든 노동자 위에 군림했지만, 노동자들에겐 이에 저항할 수단도, 저항할 논리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본가들의 횡포에 대해 저항할 수 없었고 불만은 가졌으나 어떻게 대항할 논리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티시아 마르크스라는 한 소녀(훗날 미텔란트 코뮌의 제 1 국모로 추앙받을 여인)가 불현듯이 역사에 나타났고, 이렇게 선언하기 시작하였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세요!"

소녀 레티시아가 설파하는 내용은 노동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세계를 움직이는 진정한 축은 물질이고, 그 구조를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노동자라는 것은, 노동자가 이 세계의 주축이고 따라서 그들이 정당한 댓가를 받아야 한다는 당위가 그녀가 말하는 사상의 핵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레티시아가 말하는 이야기는 훗날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사상이 되고, 이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노동 운동의 불씨를 지핀 소녀 레티시아는 병약해서 오래 살지 못했지만, 하지만 혁명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그 자신이 공장주의 딸이자 아가씨였던) 미텔란트 코뮌의 제 2 국모 카를라 엥겔스가 레티시아 마르크스의 메시지를 이어받고, 그녀가 남겼던 이야기를 '자본론'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면서 본격적으로 '공산주의'의 토대가 되었고, 수많은 나라에서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하조직과 방구석에서 이 책을 돌려 읽음으로서 공산주의의 이념은 전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제 1차 소녀혁명

'공산주의' 이념이 널리 퍼지면서 그만큼 노동운동가들과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그리고 그 혁명 정신의 도화선은 어느날 불이 붙어, 폭발하게 된다.

어느 날, 레스카티에 왕국의의 대도시의 한 광장에서 일련의 노동자 집단들이, 그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자본가들과 결탁한 부르주아 정부인 레스카티에 왕국 정부는 이 시위에 (명백한 폭동의 증거가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란이자 폭동'이라는 딱지를 붙였고, 무장 경찰대를 파견해 이 시위를 유혈진압하는 와중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 와중에 16세의 여성 봉제 노동자 엠마 리스가 사망한 것이 대대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노동자들의 분노는 하늘 끝까지 폭발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 전까지는 한낱 노동자일 뿐이었던 엠마 리스는 부르주아 정부의 잔혹함과 악독함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고, 그녀의 죽음을 통하여 노동자들은 결집하고 부르주아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였다.

이미 대륙의 전쟁에 쓸데없이 개입하여 국가의 역량을 낭비했던 레스카티에 왕국[10] 은 들불처럼 번지는 노동자들을 제대로 막을 수가 없었고, 노동자 혁명 세력들은 각지의 관공서를 장악하고 '코뮌', '해방구'를 선포하면서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켜 갔으며, 결국 레스카티에 국왕 오토 7세를 포함한 왕국 정부 인원의 상당수는 외국으로 망명함으로서 정부는 '공식적'으로 붕괴하고[11], 노동자들의 혁명은 많은 피를 흘린 끝에 성공하였다!

다만 여담적으로는, 레스카티에 왕가의 막대한 자산은 오토 7세가 도주했을 때 이미 해외로 빼돌려진 지 오래고, 그 자산을 미텔란트 코뮌 혁명군이 접수한 후 국유화한다면 정부 재원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레스카티에 왕가를 생포하지 못한 것은 혁명전쟁사의 전략, 전술적 측면에서 아쉬운 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혁명이 성공하자, 그 다음에 노동자들은 그들 스스로 나라를 운영해야 했고, 이들은 민주적인 노동자들의 정부인 '미텔란트 코뮌Mitteland Commune'을 선포하고, 혁명 전쟁 당시 가장 두각을 나타낸 혁명 운동가였던 로자 룩셈부르크가 미텔란트 코뮌의 제 1대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노동자들의 생디칼리즘 국가가 세상에 공식적으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혁명의 이념을 제공한 마르크스와 엥겔스, 혁명의 불씨를 당긴 상징인 엠마 리스, 그리고 미텔란트 코뮌의 제 1대 의장인 로자 룩셈부르크 등이 모두 여성이었던 탓에, 이 미테란트 사회주의 혁명은 훗날 제 1차 소녀 혁명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차'라고 하면 '2차'가 있다는 뜻이 되는데, 그건 바로 다음 문단에서 일어날 사건이다.

제 2차 소녀혁명

제 2차 소녀혁명 또는 혁명 수호전쟁이라고 불리는 사건은, 후자의 명칭에서 보듯 국제적인 전쟁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첫 번째 코뮌 의장으로 취임하고, 미텔란트 코뮌이라는 나라가 대강 꼴은 갖추게 되었다. 그것으로 '메데타시 메데타시'가 되었으면 좋겠지만가 아니라, 곧바로 또 다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구체제의 레스카티에가 무너지는 것을 본 주변국들은, 미텔란트 코뮌의 사건이 도미노가 되어, 자기들의 나라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의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힘으로 미텔란트 코뮌 정부를 전복시키고 다시 우파 정부를 설립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생김으로서,

그들은 미텔란트 코뮌에 대적하는 반혁명 침공을 감행하게 된다.

신생 미텔란트 코뮌는 제 1차 혁명으로 인하여 많은 군사력이 소진되었고, 체계적인 전략, 전술 훈련을 받지 못한 신생 코뮌 지휘부들은 이 전쟁에서 엄청나게 불리할 요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전념, 참전 경험이 있던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한 '아래로부터'의 민병 조직들의 분전 등의 노력, 세계 각국의 노동운동가들,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열혈 청년들로 구성된 의용군들이 있었으며, 때마침 미텔란트 동쪽의 외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에 동참하기 위해 미텔란트 코뮌로 찾아온 사회주의 혁명가 타냐 덱탸료바가 그야말로 '기적적'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전략전술로 반혁명 동맹의 군세를 격파함으로서 반혁명 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생 미텔란트 코뮌의 근본적인 여력 상 이들 나라 모두를 꺾고 완벽하게 승리할 수 없었으며, 전후 평화 협상에서 미텔란트 코뮌은 일부 영토를 적대국에게 할양할 수밖에 없었다.[12] 그러나 미텔란트 코무는 끝내 부서지지 않고 버텨냈다.

한편 2차 소녀혁명 또는 혁명수호전쟁에서 영웅적이라 할 소녀였던 타냐 덱탸료바는 전쟁 종료 직전에 끝내 사망하였으며, 당시 의장 로자 룩셈부르크는 그녀를 '코뮌 수호의 영웅'으로서 훈장을 추서하고 '코뮌 원수'의 계급장도 사후에 수여하였다.

폐허에서 부활하여

제 2차 혁명전쟁을 통해 수많은 남녀의 피를 흘려가며 어떻게든 미텔란트 코뮌라는 틀을 지켜내고, 반혁명 연합군 또한 여러 문제로 인하여 미텔란트 코뮌을 파괴하지 못하고, 전후 평화협정 단계에서 일부 영토를 받는 조건으로 미텔란트 코뮌를 공식 국가로 인정하는 것으로 전쟁이 끝나면서, 미텔란트 코뮌는 이제 당당한 정식 국가로 인정받았으나, 끔찍한 전쟁 동안 미텔란트 코뮌 영토는 참혹하게 파괴되었으며, 미처 체제를 정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제대로 된 제헌헌법과 체제 등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는 문제도 있었다.

미텔란트의 체제를 제대로 정하려는 제헌 회의가 시작되었을 때. 수많은 주장이 오갔다. 어떤 중앙집권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사회혁명론에 따르면, 공산 사회로 완벽하게 이행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니, 강력한 인민위원회를 세우고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텔란트 코뮌가 설립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혁명 조직, 노동자 집단이 자발적으로, 아래에서 뭉쳤고 그 아래로부터의 봉기를 자랑스러워했던 각지의 노동자들이 하나의 강력한 인민위원회 아래 구속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한편 '극단주의자'라고 불리게 될 파벌들은 이제 '저 반동놈들의 피를 흘려줄 때이니, 미텔란트는 혁명의 군단이 되어 전 세계를 붉게 물들여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갑론을박이 벌어지면서 미텔란트 코뮌는 내부 분열로 멸망할 것이라는 우려(우파 세력들에게는 '희망')가 나왔지만, 기적적으로 미텔란트 코뮌 제헌 헌법이 제정되었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미텔란트 코뮌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제각기 아래에서부터 봉기하고, 그 봉기의 힘으로 건립되고 전쟁을 버텨내었으므로, 우리 모두가 전쟁영웅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인민 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강력한 사회주의 통치자를 내세우는 것은 사실상 좌파의 탈을 쓴 전제군주를 옹립하는 것과 같다.
  • 미텔란트라는 나라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이 설립되기 이전, 이 땅에는 수많은 소국들이 제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했으며, 그 중의 강성한 한 나라가 무력으로 이를 병합하고 임의로 '민족국가'를 선언함으로서 하나의 나라처럼 된 것이다. 따라서 미텔란트 코뮌는 부르주아지들이 주장하는 '단일한 민족국가 미텔란트'라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인민들로 이루어진 자유로운 지방들의 연합, 분권국가가 되어야 한다.
  • 언젠가는 전 세계에 마르크스의 이상을 꽃피워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강해져야 하고, 강해지기 전에 우리의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 그러니 일단은 우리 나라를 건강하고 강성하게 세우자.

이렇게 민주적이고, 지방분권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형식을 갖춘 '미텔란트 코뮌' 체제가 갖추어지고, 다시금 폐허에서 일어설 준비를 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위기를 버텨내다: 세계의 참화

국가를 지켜낸 미텔란트 코뮌의 인민들은 다시 나라를 재건하고, 공장과 농토에서 근면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본래 레스카티에 왕국 자체가 일정한 수준의 산업화가 되어 있었고, 기초 역량이 튼튼했기에 미텔란트 코뮌의 경제력은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고, 1920년대 말에 대공황이 닥쳤지만, 역설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라고 다른 나라와는 독자적 경제를 구축하고 있었던[13] 대공황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념을 따지지 않고 미텔란트 코뮌과 거래를 하려고 했던 나라들과 경제적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미텔란트 코뮌의 경제력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이 때 주 거래 상대가 10년도 지나지 않아 혈전의 상대가 된 프랑스의 '불의 쌍십자 결사' 정권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종교극단주의-극우주의 정권은 겉으로는 미텔란트 코뮌과 교역을 하면서 우호적이었지만, 그 뒤로 강경한 공산주의 혐오자였던 당시 정권의 수장 '알렉시스 드 라 로크'는, 프랑스의 군비를 크게 확충시켜, 전쟁을 통해 미텔란트 코뮌을 점령하고 영토를 뜯어낼 생각에 가득했다. 더 심각했던 것은 이런 생각을 한 나라가 하나 더 있었다는 점이었다. 레스카티에 왕국 시기에 레스카티에와 전쟁으로서 헤게모니, 패권을 쥐려고 했던 '유럽 최후의 제국' 라이클란트 제국은, 레스카티에와의 전쟁[14] 끝에 수많은 사상자만을 안은 채 황조가 몰락하고 말았다.[15] 이런 파국 속에서 간신히 자유주의적 귀족인 '막스 폰 코르덴Max von Korden'의 주도로,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연방제를 모방하여 라이클란트의 황제를 동군연합으로 모셨던 여러 민족들에게 큰 자치권을 나눠주는 대타협을 통하여 '대 라이클란트 합중국'으로 일시적으로 '땜빵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이 '임시방편 국가'는 얼마 가지 못해 흔들리기 시작했고, , 역시 대공황으로 큰 타격을 입었을 때, 장대한 체구의 대귀족이자 광신자, 그리고 약육강식의 숭배자였던 '에른스트 폰 골덴바움Ernst von Goldenbaum'이 정권을 잡고, '대아들러 군단'이라는 파시즘 정권을 출범시킨다. 그리고 프랑스 불의 쌍십자 정권과 라이클란트의 골덴바움 정권 모두 미텔란트 코뮌을 쳐부수고 싶은 증오심[16]에 불타고 있었기에, 종교적으로 서로 증오하던 가톨릭계 극우 정권과 개신교계 파시즘 정권은 신성 동맹이라는 동맹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똑같이 미텔란트 코뮌을 적대하고 세력을 확대할 욕망에 가득차 있었던 프로이센(가상지구 BF)의 조국당 정권 또한 신성동맹에 가맹한다.

1940년 1월 1일, 신년을 축하하는 분위기에 가득차 있을때, 부르군트에서 약간 후방에 주둔하고 있던 포병 부대가 기습적으로 국경을 넘어 일제 포탄 사격을 가한 것으로 '세계의 참사'가 시작되었다. 미텔란트 코뮌의 정보부와 군부도 멍청하지는 않았기에, 국경선에 '괴터다메룽 방어선'이라는 요새지대를 구축해 놓았지만, 공격의 강세가 예상보다 강했고, 게다가 프랑스군이 중립국이자 알비온과 친밀했던 레오 벨기쿠스를 침략, 점령함으로서[17] 그곳을 통해 코뮌 서부 베스타란드Westaland 지역에 프랑스군의 기갑부대가 침공, 유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미 사전에 암호화된 교신을 마쳤기에) 라이클란트의 에른스트 폰 골덴바움도 '과거의 원한을 갚겠다'는 명분으로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 코뮌 남부로 진공해오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이센에서도 선전포고를 함으로서 미텔란트 코뮌은 '3면전쟁'을 하는 상황이 되었고, 일부 코뮌인들마저도 절망에 빠져 '코뮌은 이제 망했다'라고 울부짖는 현황이었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레오 벨기쿠스를 점령하면서 레오 벨기쿠스의 지젤Giselle 여왕을 능욕살해함으로서, 같은 왕가였던 알비온 왕실을 분노케 했으며, 당시의 알비온이 나약해서 적당히 평화협상을 맺어주면 알비온을 전쟁에서 배제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과 다르게, 당시 알비온의 노회한 총리 프레더릭 러셀Frederik Russel은 즉시 규탄 성명을 발표함과 동시에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던 알비온 대양해군을 소환, 즉시 프랑스 해역을 봉쇄하라고 선언하면서 프랑스와 알비온이 전쟁상태에 들어감으로서 3면전선에 한 면이 뚫렸으며, 과대망상적 패권 추구가 미테란트에만 한하지 않았던 라이클란트 또한 루테니아 제국 및 로마 노바 공화국을 침공함으로서, 비록 전쟁이 세계적 단위로 광화되기는 하였지만, 역으로 미텔란트 코뮌 입장에서는 적의 힘이 분산됨으로서 살아날 구실이 생겨났다.

또한 혁명 수호전쟁때도 미텔란트 코뮌에 '타냐 덱탸로바' 같은 명장이 나왔듯, 미텔란트 코뮌에서도 유능한 지휘관들이 금세 저력을 발휘하여 응전하기 시작했다. 혁명 수호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있던 노장 '펠릭스 슈베르크Felix Schwerg'가 서부전선에 부임하여, 전차 중심의 기동전을 통하여 (상당히 기계화되어 있던) 역시 프랑스군의 기갑 지휘관이자 그때까지만 해도 '불의 쌍십자단의 영웅'으로 취급받던 '앙리 소렐Henri Sorel' 산하의 군단을 격파함으로서 프랑스 전차 군단의 힘을 약화시켰으며, 대 프로이센 전선에는 에밀리아 라이트도르프Emilia Leitdorf가 '생디칼리즘의 마녀'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무자비하고 잔혹하게[18], 라이클란트 방면 전선에서는 이들보다는 훨씬 평범하고 개성이 없었던 아타나시우스 파우스트Athanasius Faust장군이, 화려한 전과는 없었지만 방어선을 굳건하게 구축하고 라이클란트군의 광기어린 공세를 소모시킴으로서 남부 전선을 굳건하게 틀어막았다. 이렇게 미텔란트 코뮌이 마주했던 전선마다 한 명씩의 뛰어난 명장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이들은 '미텔란트 코뮌의 3장군'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언제나 미텔란트 코뮌군의 자랑거리로 남아 있다.

코뮌의 기술력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는데, 이제르론 차량제작국 연구부 소속의 페르시카리아 그림Persicaria Grimm에게서 태어난 코뮌의 기갑부대(서부전선의 펠릭스 슈베르크의 기갑전 성과는 페르시카리아 그림이 설계하고 생산한 전차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또 루테니아 망명자 출신의 항공기 설계자 '미코얀 남매'(스타니슬라스 미코얀과 아나스타샤 미코야나 남매)의 전투기들은 수많은 코뮌의 에이스들의 든든한 강철새가 되어주었다.

거기에 이념을 가리지 않고 '자유의 요새The Bastion of Freedom'를 자처한 북아메리ㅋ 커먼웰스의, 신성동맹에 맞서 싸우고 있는 그 어떤 나라에게도 아끼지 않고 지원을 해준 퀜틴 로즈필드 대통령의 물자공세는 코뮌군의 식량, 총기, 군복등이 됨으로서 그만큼 코뮌의 산업력을 최적화 시킬수 있는 여유가 되었다.

혈전 끝에, 미텔란트 코뮌군을 포함한 반극우 연합국은 승리하였으며, 특히 '철벽의 수비'로 유명했던 아타나시우스 파우스트의 라이클란트 전선군은 사태가 반전되자 철벽과 같이 굳건하던 군세가 어느새 전격전Blitzkreig 군단으로 변하여 쏜살같이 라이클란트 영내로 진군, 라이클란트의 수도 '아일하트AIlhart'를 점령하고, 아일하트 정부 청사 지하에서 총을 들고 결사항전하던 에른스트 폰 골덴바움을 기관총 수백발로 형체없이 짓이겨 버림으로서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대 라이클란트 합중국은 해체되어 제각기 민족국가로 해체되었고, 라이클란트 '본토'는 미텔란트 코뮌의 '라익스 주'가 된다.

인민

코뮌 안에 있는 모든 인민은 평등하다. 모든 인민은 자유롭고 행복을 누릴 가치가 있으며 코뮌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 미텔란트 코뮌 헌법

본래 미텔란트 코뮌가 나타나기 전의 이전 정부는 소위 '미텔란트인'의 단일 민족국가에 거의 가까웠으나, 미텔란트 코뮌가 생겨난 이후, 타 국가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본토의 탄압을 피해 망명하거나, 자발적으로 '사회주의 혁명 국가'의 대오에 동참하기 위해 이민오거나, 단지 '노동자에 대해 더 나은 대우를 하는 나라'에서 일을 하면 입에 풀칠하기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가난한 노동자들 등의 여러 외국인들이 미텔란트 코뮌로 이주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현재의 미텔란트 코뮌는 상당한 다민족 국가화되었다.[19]

비록 일부 마찰이 없는 것은 아니나(특히 '극단주의자' 파벌에 속하거나 이런 경향을 지지하는 경우) 미텔란트 코뮌는 상당히 이민자들 세대를 잘 동화시킨 편에 속하는데, 미텔란트 코뮌 제 2차 소녀혁명 당시 코뮌을 수호한 전쟁영웅 타냐 덱탸료프가 동쪽의 외국에서 온 이민자였다는 점, 코뮌의 제 1 국모인 레티시아 마르크스와 제 2 국모 카를라 엥겔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호소하여 모든 노동자들이 하나의 동료라는 사해동포주의가 비교적 널리 퍼지고, 미텔란트 코뮌 헌법에서 한 번 이 조항이 들어간 뒤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미텔란트 코뮌의 최초 헌법 제정이후, '귀족 칭호 제거법'이 발효되어, 과거 레스카티에 연방왕국 시절의 각종 귀족 칭호(von 등)는 법령에 의해 강제로 제거되었다. 이 법안과 관련된 사례 중 하나는 바로 현재의 코뮌 의장 알리시아 하렐인데, 본래 하렐 가문은 레스카티에 가문의 방계였으나(계승권은 한참 낮아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미테란트 혁명 당시 알리시아 하렐의 선조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혁명의 대오에 동참했고, 귀족 칭호 제거법이 발효되자 즉시 자신의 성을 갈아치웠다고 전해진다.[20] 이 법에 의하면 미텔란트 코뮌에 귀화하고자 하는 이의 성명에 귀족임을 나타내는 칭호가 있다면, 그 칭호를 제거하는 데 동의해야만 귀화할 수 있다.

사회

미텔란트 코뮌의 국체는, 평등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연합에서 나오는 생디칼리슴 체제로 규정한다.

- 미텔란트 코뮌 헌법

미텔란트 코뮌라는 국가는 생디칼리슴적 사회주의를 국체로 정한 나라이고, 이 생디칼리슴적 사회주의는 현실의 대다수 사회주의 국가와 다르게 민주적인 보통선거로 선출된 코뮌 의회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민주사회주의국가로 간주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의 사회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좋은 점만 혼합된 나라'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 관점이다.

'언론' 문단에서 보듯 미텔란트 코뮌는 민영 언론과 복수 언론의 자유가 형식적으로 보장되고 있지만, 이 언론이 반혁명적, 반동적 주장을 할 시에는 처벌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며, 이와 같은 형법은 각 개개인에게도 적용되어 반혁명적 행위, 반동적 행위는 처벌될 수 있으며, 사회주의적 대의를 따른다는 점에서는 자유롭고, 그 대의에서 '일부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허용 가능한 범위에 들고 국영 언론인 '코뮌 회보'에서도 부분적인 현체제 비판이 실리기도 하지만, 그 범주가 너무나도 파격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반혁명적이라고 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의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가까운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식 관점에서 본다면 미텔란트 코뮌의 사회는 다소 경직적이고 획일적인 측면이 있으며, 미텔란트 코뮌의 정치적 파벌들 중에서 사회주의 색으로 염색한 우파라고 욕을 먹는 '사회 혁신주의자' 파벌이 코뮌 정계 내에서 다수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체제 내의 획일성에 대해 비판하고 '더 많은 개인적, 시민적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혁신주의자 파벌의 활동에 의해 과거에 존재했던 권위주의적이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많은 법률들이 점진적으로 철폐되었다.

종교

미텔란트 코뮌의 인민들은 종교의 자유를 지닌다. 미텔란트 코뮌의 정부는 그 어떤 종교도 우대하거나 특혜를 주거나 차별할 수 없다.

- 미텔란트 코뮌 헌법

미텔란트 코뮌 사회는 개개인에게까지 "국가 무신론"[21]을 강요하지는 않으며, 수도 미덴하임이나 대도시인 이제르론, 바텐베르크 등에는 가톨릭교회나 개신교회 등이 흔하게 보이는 편이며, 가톨릭교회에는 '전 미텔란트 코뮌를 담당하는 대교구의 추기경'도 존재할 정도이다. 그리고 생디칼리슴 체제의 기본적 경제 공동체 단위인 '노동조합' 중에서도 소수나마 "기독교사회주의적 노동조합"을 표방한 단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는 개인적이고 비정치적 차원에서만 보장되고 있으며, 공직 차원에서는 철저히 종교배제적 정책을 취하고 있다. 종교인은 미텔란트 코뮌의 '코뮌 의회 의원'이나 공무원이 될 수 없다.

미텔란트 코뮌에서 추정되고 있는[22] 종교인 비율은, 암묵적으로 절반을 약간 넘는 수치의 사람들이 비종교인일 것으로 여겨지며, 종교인들 중에서는 70%가 복음주의 개신교 계열이고, 30% 정도가 가톨릭 계열이라고 추측된다. 그 외의 소수종교들은 정말로 극소수 비율인 것으로 여겨진다. 개신교는 미텔란트 코뮌의 북부 지역에서 강세이며, 가톨릭교회 코뮌 남부 및 '세계의 참화' 이후로 코뮌의 영토로 편입된 라익스 주(구 라이클란트)에서 신도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개신교회의 경우에는 많은 개신교인들이 미텔란트 코뮌의 생디칼리즘 사회주의 국가체제에 익숙하기 때문에, '개신교회 성직자 노동조합'도 존재할 정도이지만[23] '사회주의는 기독교의 악, 적그리스도'라고 믿는 소수의 반공적 목사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운영하는 '지하 교회'가 적발되고 관련자가 처벌을 받았다는 뉴스는 심심찮게 나온다. 현대 시대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며, 일부 '지하 반정부교회'는 외국에 서버를 두고 온라인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경제

미텔란트 코뮌의 인민들의 노동은 신성하며, 그들의 노동에서의 편익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조합을 결성하고 단체행동에 나서는 권리는 헌법으로 보장한다.

- 미텔란트 코뮌 헌법

본 문단의 출처가 된 글

생디칼리슴Syndicalism과 '노동조합'의 뜻을 가지기도 한 단어 Syndicate는 동일한 어근을 갖고 있다. 생디칼리슴 국가는 그 경제의 기본 단위를 한없이 많이 존재하는 복수의 노동조합들로 삼는다. 이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당의 일방적인 주도' 노선과는 다른데, 미텔란트의 '소녀 혁명'의 주된 추동력이 각 지역, 기업, 직별 노동조합들의 연립된 봉기 때문이었다는 점도 감안된다.

미텔란트 코뮌의 '생디칼리즘'은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공장 간에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경쟁의 과열을 시장에서의 경쟁이 완전히 배제된 존나게 많은 협동조합들 간의 유기적인 협조로서 '좋은 방식으로 방지' 한다고 볼 수 있으며, 그 각각의 협동조합이 기업, 공장, 재단, 작업장 등등 모든 경제적 주체를 대체한다. 또한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자본의 우위'를 통해 가진 자들이 정보, 지식들을 독점하고 이로서 더 많은 부를 '착취'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노동 현장에서의 권력을 분산하고 사회 하부구조에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시키며, 생산수단과 정보 등을 노동조합을 통해 공유함을 원칙으로 한다.

산업의 경우라면 하나의 공장, 농업의 경우라면 지역 농업자 모임 등의 단위로 하나의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다시 이 단위는 그 '소규모 노동조합'의 연합체인 상위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다. 이 분권적인 노동조합들의 연합체가 해당 업종 및 산업의 이해관계, 노동자들이 누릴 권리를 대변하게 된다. 미텔란트 코뮌의 경우에는 소련과 같은 국영 노동조합제를 채택하지 않았기에 이 노동조합의 설립은 자유로우며,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심지어는 하나의 노동조합 단위가 복수의 연맹체에 가입하는 경우도 가능하다.[24] 실제로 미텔란트 코뮌에서는 특정 노동조합이 직종을 초월한 '특정 지역 노동조합 연맹'에 가맹하고, 또 해당 직종의 노동조합 연맹체에 복수 가맹해 있는 사례도 존재한다.

이와 같은 노동조합 구조는 자칫하면 방만해지고 비효율적이 될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미텔란트 코뮌에서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코뮌 의회에 별도의 '직별 의회'를 신설하고, 행정부에서는 노동부가 부정기적으로 조합-국가 대타협을 통하여 국가적 차원에서의 교통정리를 시도한다.

주요 도시

미텔란트 코뮌의 주요 도시는 다음과 같다.

  • 코뮌 수도 미덴하임Middenheim: 미덴하임은 코뮌 이전 구 정부 시절부터 수도였던 곳으로, 미텔란트 코뮌 성립 후에도 행정적 편의를 위하여 여전히 국가의 수도 자리를 사수하고 있다. 미덴하임은 입법, 사법, 행정 수도를 모두 겸하고 있으며, 코뮌 의회와 코뮌 정부청사, 코뮌 최고 재판소가 모두 위치해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유럽의 여느 나라들이 그렇듯 미덴하임은 미텔란트 코뮌의 최대 도시는 아니다. 미덴하임의 인구는 약 150~200여만 명이다.
  • 이제르론Iserlohn: 이제르론 시는 미텔란트 코뮌 내의 최대도시로, 인구는 약 800여만 명이다. 이제르론 광역권의 산업단지에는 희한하게 군수산업 단지가 많다.
  • 바텐베르크Battenberg: 바텐베르크 시는 또 다른 코뮌 내의 최대도시로, 이제르론 시가 서북부 쪽에 위치해 있다면, 바텐베르크 시는 그보다 동쪽에 위치해 있다.
  • 노이에 고타Neue Gotha: 노이에 고타 시는 해석하면 '신 고타'시로서, 고타 시는 미텔란트 코뮌의 이전 우파 정부가 있던 시기보다 더욱 오래된 유서깊은 도시이나, 미테란트 제 2 소녀혁명 당시에 반혁명 연합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거점으로 쓰이다가 결국 도시 전체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전쟁 후 이 도시는 새로이 재건되었으며, 그 때 도시의 이름도 '노이에 고타'로 바뀌었다. 현재 노이에 고타 시는 미텔란트 코뮌 내 it산업의 성지이다.
  • 아일하트Ailhart: 아일하트는 구 라이클란트 제국의 대도시였으며, '세계의 참화' 전쟁에서 미텔란트 코뮌가 라이클란트의 파시스트 정권을 격파하고, 대 라이클란트 합중국을 분할한 뒤 라이클란트 본토를 합병함으로서 미텔란트 코뮌의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아일하트는 인구 수로 따지면 코뮌의 여러 도시 중에서 인구수로는 상위권에 들지만, 코뮌에 병합된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쇠락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코뮌 내에서 부정적 지역감정과 갈등의 요소가 되고 있다. 현 코뮌 의장인 알리시아 하렐은 선출되면서 지역감정의 완화 및 생디칼리즘 이념에 맞는 균형발전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하였으며, 이에 따라서 구 라이클란트 본토(현 라익스 주)의 격차 문제가 해소될지는 지켜봐야 할 사항이다.

언론

현실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국영 단일 언론만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미텔란트 코뮌은 다수 언론사들이 존재하며 민주적인 언론의 절차는 보호되고 있으나, 반혁명적, 반동적 주장을 담을 경우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미텔란트 코뮌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언론사들이 존재한다.

  • 미텔란트 코뮌 회보

미텔란트 코뮌 회보는 이 국가에서 가장 오래된 언론이고, 국영 신문이다. 미텔란트 코뮌 회보는 일상적인 신문 기능과 동시에 관보의 기능을 겸한다.

  • 중앙방송국

미테란트 중앙 방송국은 국영 텔레비전 방송국이다. 미텔란트 코뮌 회보와 동일하게 국영 언론이기는 하나 운영주체는 독립적이다.

  • 미텔란트 자유신문

미텔란트 자유신문은 미테란트의 민영 신문사 중 가장 큰 언론으로,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소녀혁명 이전에 사회주의자들의 소식을 전하던 언론인들 및 지하 신문사들, 언론사 노조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 베스터란터 차이퉁

베스터란터 차이퉁은 본래 미텔란트 코뮌의 서쪽 지역인 '베스터란트' 지역의 지방 언론사로 출발하였으나, '세계의 참화' 대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였던 '서부 전역' 한복판에서 미텔란트 코뮌 회보나 자유신문보다도 더욱 열정적으로, 종군기자들의 희생을 통해 전장을 취재함으로서 유명세를 얻었고, 전후에 지역 언론의 범위를 넘어서서 전국적 정론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 미덴하임 네트워크

미덴하임 네트워크는 미테란트의 민영 방송국으로, 본사는 코뮌 수도인 미덴하임에 존재한다. 미덴하임 네트워크는 미테란트의 모든 아이돌 문화의 성지이며, 이 아이돌 산업은 외국에도 활발히 수출되어 미테란트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국가: 자유, 평등, 해방

미텔란트 코뮌의 국가는 자유, 평등, 해방이며, 3개의 절과 후렴구로 이루어진 노래이다. 각각의 절은 제목에 적힌 단어인 자유, 평등, 해방을 노래한다. 그리고 3절을 부르고 후렴구를 부른 뒤에 나오는 마지막 부분이 이어진다.

  • 1절

들어라! 자유로운 모든 인민들이여
그대들은 본래 자유로운 존재였음을.
억압과 착취의 사슬은 무한한 죄악일지니
어떤 인민도 여기 매일 수 없다.
폭군들의 사슬을 모두 끊어버리고
이제 우리는 폐허에서 일어서리라.

  • 2절

착취하는 이들이 노동자 위에 군림하니
그들이 말하는 평등은 허상일 뿐.
모든 인민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불변의 진리로다.
모두 동등한 미테란트의 인민들아
서로를 사랑하며 평등하게 단합하자.

  • 3절

그 어떤 신도, 제왕도 우리를 구원치 못하니
해방은 오로지 우리의 손으로만 이루어진다.
정의가 들불처럼 불타오르니
해방의 힘찬 질주는 멈추지 못하리라.
우리 인민들의 힘을 굳게 믿고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굴하지 않으리라.

  • 후렴

보거라! 모든 세상의 인민들이여!
이 세계에 대격변의 시간이 왔음을!
무너진 착취자들의 폐허 위에
자유 평등 해방의 토대 쌓고
새로운 희망의 햇살이 떠오를 때
영원히 아름다운 이상의 나라를 세우리라.

  • 마지막 부분, 3절까지 부르고 후렴을 부른 후에 나온다.

우리의 코뮌이 갈 곳은
행복과 평화가 가득한 곳이다.
전 세계의 인민이 이를 갈구하니
우리가 그 앞에서 손을 내밀자.
모든 인민들이 손잡고 하나되어
더 이상 슬퍼하고 눈물흘리는 이가 없도록!

군대

미텔란트 코뮌는 오직 착취자와 압제자의 침략으로부터 선량한 인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군대를 보유한다. 미텔란트 코뮌의 군대는 타국을 침략할 수 없다.

- 미텔란트 코뮌 헌법

미텔란트 코뮌의 코뮌군은 군국주의적 국가였던 레스카티에 군의 영향력을 어느정도 이어받아 현 시점에서도 지역 강군이나, 그 교리와 사상은 상이하다. 구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군은 고전적인 보병 위주의 화력투사, 참호전 등을 사용했지만, 미텔란트 코뮌의 혁명 당시 급조한 개조 차량 등을 통한 기동전이나, 탈취한 초기형 전차 등을 중심으로한 차량전이 레스카티에 왕국군의 방어선을 뚫는 데 유용했으며, 이와 같은 차량화 전술은 반혁명 연합군들을 상대로도 유효하였다. 이 전훈을 받아들인 미텔란트 코뮌군은 차량 중심의 기동전 전술 위주로 재편되었다. 레스카티에 왕국의 군국주의적 정책으로 인해 지나치게 많은 인력이 군대에 묶였고, 국가의 생산성 및 개인의 자유가 군대로 인해 너무 침해된다는 문제도 한몫 거들었다.

이런 군사 교리에 의해 국가의 인구수에 대비해서 미텔란트 코뮌의 병력 수는 비교적 작으며, 대부분 고도로 기계화된 기계화보병 사단과 항공전력 등이 주축이 된 '(비교적) 소수의 첨단화된 정예군' 체제이다.

미텔란트 코뮌의 헌법에 의해 미텔란트 코뮌군은 침략전쟁을 부인함이 명문화 되어 있으며, 현재의 시점까지 미텔란트 코뮌 측이 먼저 선제공격한 사례는 없다.

육군

미테란트 육군은 징병-모병 혼합제로 운용되는 군이며, 남녀 모두가 징병되어 약 6개월 동안의 짧은 복무를 하는 것이 의무이나. 현실 세계의 대한민국과 같이 현역 자원 기동률이 90%에 달하는 막장 수준으로 가고 있지는 않으며, 대부분 자원자들 위주로 우선 선발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유로 합법적인 방법으로 병역의무를 면제받거나, 징집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징병된 병사의 경우 후방 지역에서의 치안유지, 향토 방위 업무를 담당하며, 그 외의 정예화된 포병, 전차, 방공, 헬리콥터, 기계화보병, 특수부대 등의 병과는 전원 모병으로 인원을 선출한다.

미텔란트 코뮌의 전차 성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현실의 어느 나라와는 달리 전차의 실전적인 개량, 전자전 장비 등의 개조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미텔란트 코뮌제 전차의 명성은 타국에도 유명하며,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제 3국에서도 일부러 코뮌의 전차를 구매하기도 한다.

미텔란트 코뮌의 전차 보유 수
개량된 3.5세대 전차 실트마이트Schildmaid 200여 대(+150대 추가 생산 예정)
3.5세대 전차 베르제르커 개량형 750여 대
3세대 전차 베르제르커Berserker 550여 대(현대화 개수 진행 중)
2세대 전차 란첸리터Lanzenreiter 전량 퇴역되거나 예비물자로 창고 보관 중.

해군

코뮌 해군은 미텔란트 코뮌의 군 중에서 가장 겉보기에 작아 보이는 군종이다. 구 레스카티에 해군은 알비온, 프랑스 등의 해군을 능가하기 위해 거대한 전함 등에 많은 예산을 소비했지만, '대륙 전쟁'에서 해군의 대다수가 격침당함으로서 쓸모없게 되었다. 이 해군을 만들자고 소모한 국고를 졸지에 바닷속에 수장시킨 꼴이 된 것은 덤이다. 미텔란트 코뮌는 이런 '교훈(?)'을 얻고 난 뒤, 미텔란트 코뮌에 대양해군은 사치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현재까지 철저한 연안해군 전술을 유지하고 있다. 미텔란트 코뮌의 지도를 보면 바다에 면한 영역이 상당히 좁기 때문에, 코뮌 해군은 이 지역을 철저히 요새화함으로서 적군의 상륙을 최대한 지연, 거부하는 수세적 해군 전략을 입안해두었다.

다만, 적군의 주력 함대를 제거하기 위한 비대칭전력인 '잠수함' 전력은 미텔란트 코뮌가 비교적 눈독을 들이고 투자하는 영역 중 하나이다. 특히 대양의 심해를 누비며 적의 주력함들을 먼 거리에서 타격 가능한 원자력 잠수함이 미텔란트 코뮌 해군이 현재 가장 주목하고 있는 트렌드이다.

미테란트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해군 전력은 다음과 같다.

  • 구축함 6척 + 신규 건조 구축함 3척
  • 호위함 20척
  • 그 외 미사일 고속정 운용
  • 원자력잠수함 3척(공격원잠)
  • 그 외 다수의 재래식 잠수함
  • 이지스 어쇼어[25] 형태의 해안방어시스템(해군 운용)

공군

미텔란트 코뮌 공군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군지 꼽으라고 하면, 루스에서 이주해 온 미코얀 남매(스타니슬라스 미코얀과 아나스타샤 미코야나)라고 할 수 있다. 미텔란트 코뮌는 창립 초기에는 혁명 수호전쟁의 피해를 수습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힘썼기에, 육군의 경우에는 그나마 투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공군의 경우에는 도외시되고 있었으며, 기껏해야 복엽기나, 타국에서 구매해 온 전투기가 전부였다. 이 공군기들은 파시스트 세력인 신성동맹이 벼르고 준비해 온 당시 기준의 신식 전투기들을 버텨낼 수 없었으며, 미텔란트 코뮌가 초창기에 매우 밀릴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공권을 상실한 데 있었다. 그러나 미코얀 남매가 제공한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발퀴레Walküre' 전투기들은 이 전쟁시기 가장 위력적이었던 전투기 중 하나이며, 전세가 반전되고 파시스트 프랑스, 라이클란트의 본토에 '발퀴레의 비행'이 이루어질 때 코뮌 공군은 전쟁 초기의 무력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미코얀 남매 이후로 코뮌의 군용기 제작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왔으며, 미텔란트 코뮌가 개발한 현용 5세대 전투기 '팔켄Falken'과 '아들러Adler'는 기체 성능으로 따지면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AF-45 엑스칼리버Excalibur'와 막상막하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의 코뮌 우호국인 중화민국(가상지구 BF)이 아들러 전투기의 개발에 공동 투자하고, 또 해당 전투기를 라이선스 생산하여 자국에 배치하는 것으로 확정하면서, 코뮌의 전투기 산업 또한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그 탁월성을 인정받고 있다.

각주

  1. 본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 설명
    원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Image:Flag_of_warships_of_VM_(East_Germany).svg?uselang=ko 해당 페이지]
    저작자 : 독일어 위키백과 유저 Jwnabd
    저작권 : 독일 법률에 의하여 퍼블릭 도메인임.
  2. '탈러'는 중세 독일 지역에서 쓰이던 화폐 단위로, 그 유명한 '달러'의 어원이다.
  3. 흔히 알려진 프랑스어 표기에 따르면 코뮌Commune.
  4. 미텔란트 코뮌의 명목상 영토는, 헌법 해석에 따르면 구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이 점유하고 있던 영토 전체이다
  5. 이들은 프로이센에 오토 7세를 즉위시키려던 계획이 무산된 것에 분노했지만, 미텔란트 코뮌에서는 살 수 없었기에 다른 제 3국으로 간 것이 아니라면 프로이센으로 이주하였고, 프로이센과 국제사회도 이들의 유입을 막지는 않았다.
  6. 미텔란트 코뮌의 인구는 약 9100만 명이지만, 프로이센의 인구는 약 1800만 명으로 코뮌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7. 이는 프로이센을 인정하게 함으로서 미텔란트 코뮌의 힘을 제약시키려는 의사도 존재했다. 그리고 초기 미텔란트 코뮌의 입장에서 이는 영토 상실의 굴욕에 더욱 쐐기를 박는 것으로, 미텔란트 코뮌의 '좌파 파시즘'적 파벌인 '극단주의자' 파벌이 커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8. 세계대전에 해당, 프랑스의 '불의 쌍둥이 십자'라는 종교근본주의-극우적 정권의 '알렉시스 드 라 로크'에 의해 발발한 대전쟁
  9. 미텔란트 코뮌에는 '귀족칭호 금지법'이 존재하여 von, de와 같은 귀족적 칭호는 모두 국가에 의해 금지되었다. 코뮌 의장 알리시아 하렐의 가문은 본래 레스카티에 왕가의 방계(계승권은 없음)였던 레스카티에-하렐 가문이지만, 이 귀족칭호 금지법에 의해 성씨에 변경이 가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알리시아 하렐과 엘자 폰 레스카티에-하렐은 촌수로 따지면 4촌 자매관계이다. 이는 레스카티에-하렐 가문 내에서 알리시아 계통은 귀족이었지만 공산주의에 우호적이었고 혁명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10. 후대의 역사가 한 사람이 평가하기를, 본래 레스카티에 연방왕국은 군국주의로 성장했기 때문에, 미테란트 내 국가들을 때린 후에도 계속적으로 공격해야 할 대상을 찾아야 했으며, 결국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계속하면서 스스로를 좀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기술한다.
  11. 이 때, 오토 7세는 망명하여, 레스카티에 왕국 망명정부를 선포한다.
  12. 영토가 현대 독일과 비슷하게 된 이유를 이것으로 설명
  13.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공산주의 국가 미텔란트 코뮌은 다른 나라로부터 노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기피되었으니까.
  14. 훗날 '대륙 전쟁'이라고 불린다.
  15.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 또한 결국 몰락하여 지금의 '미텔란트 코뮌'이 되었으니 둘이 싸워서 자살한 셈이다.
  16. 그는, 레스카티에 연방 왕국의 후신인 '미텔란트 코뮌'을 무찌름으로서 최종적인 '헤게모니 쟁탈'을 이룩하고 싶었다.
  17. 레오 벨기쿠스에는 프랑스계 거주자들도 일부 있었기에, 드 라 로크 정권은 레오 벨기쿠스가 프랑스의 정당한 강역이자 영원한 영토라고 선언하였다.
  18. 이 시기가 엄밀히 말하면 미쳐돌아가는 시기였고, 신성동맹 측의 선제적 전쟁범죄 행위 때문에 잊혀진 감이 있지만, 여기서 '잔혹하다'는 것은,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에밀리아 라이트도르프가 벌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현재까지 미텔란트 코뮌-프로이센 간의 국민감정에 악영향으로 남아 있다.
  19. 최상단 표의 장관진 구성만 하더라도, '독일어' 풍 이름 이외의 언어로 된 이름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바로 미텔란트 코뮌로 이주한 사람들에서 연원한 사람들이다
  20. 옛 귀족식 성명이 그대로 보존되었다면, 알리시아 하렐의 이름은 알리시아 폰 레스카티에-하렐'이 된다.
  21. 국가에서 '무신론'을 국가관으로 잡고 종교를 억압하는 형태.
  22. 미텔란트 코뮌에서는 신앙인의 여부를 묻는 공식적인 통계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23. 단, 코뮌의 정치적 제도 상 공무에서 종교는 철저하게 배제한다는 원칙으로 종교인은 철저히 배제되기 때문에, 이 개신교회 성직자 노동조합의 위치는 어정쩡한 편이다. 정치 문단 기준으로 종교인들을 위한 직별 의석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나마 '상업 및 서비스업' 직별이나 일부 지역구 코뮌 의의원들이 부분적으로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편이다.
  24. 단, 그 연맹체가 복수 가입을 허락한다면.
  25. 소위 말하는 '이지스함'의 '이지스 시스템'을 육상시설에 적용한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