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성 사건 鳳城事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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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청년파 및 동조 세력 | 군 내 통제파 및 진압군 | ||||||
지휘관 | |||||||
니시와타 사부타 아타고 이사오 |
오카시타 하루스케 아타리 마사유키[1] | ||||||
병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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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성 사건(일본어: 鳳城事件, 보죠지켄)은 1896년, 야에야마(八重山)에서 일부 근위사단 참모와 육군 청년장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쿠데타 미수 사건이다. 니시와타 사부타(西綿左部太) 중교(中校)[2]를 주도로 제1군 내 다수의 병력들이 덴테(天帝)가 거주하는 타이쿄(台京)를 일시적으로 점거하면서 '유신'(維新)을 주장했으나, 오카시타 하루스케(岡下晴典) 육군 대장을 주축으로 한 통제파의 진압 시도 및 덴테(天帝)의 원대 복귀 명령으로 명분을 잃게 되면서 실패하였다. 이 사건은 어전회의(御前會議)를 기점으로 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했던 군 수뇌부 내 청년파(靑年派)를 비롯한 일부 현역 무관들이 아가리에 테루야 내각 이후로 '군부대신 문관제'(軍部大臣 文官制) 법안이 통과되어 내각 구성의 참여할 수 없게되자 내각과 의회가 민생 해결의 중심점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천제친정(天帝親政)을 내세워 정권 탈취를 기도했으며, 결과적으로 봉성 사건 이후로 민중들의 군부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됨에따라 군부의 폭주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