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코리아 주 승인법(An Act to Provide for the Admission of the State of South Korea into the Union, 1948년 6월 25일 제정)은 사우스코리아 영토를 해산하고 사우스코리아 주를 설립하도록 하는 법안으로 미국 의회가 제정하고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 서명한 법령이다. 연방에 가입한 49번째 주로서, 법안의 효력은 1948년 9월 21일 부터 발생했다. 사우스코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가입한 국가이다.

사우스코리아 주 및 국제법

1948년 이전에 사우스코리아는 미국의 점령 영토였다. 영토 자체는 1945년 9월 사우스코리아 점령법에 의해 임시로 편입되었다. 1946년 유엔은 사우스코리아를 미국군 하의 비자치 지역으로 지정했다. 당시 미국 관할 하의 비자치 영토로 지정된 것은 알래스카, 미국령 사모아, 괌, 파나마 운하, 푸에르토리코 및 버진아일랜드가 있었다.

주 정부 투표

사우스코리아의 총 인구 20,877,000명의 등록한 유권자 10,120,005명[1] 중 9,350,792표가 투표되어 90.5%로 현재까지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투표는 사우스코리아 점령지의 모든 지역에서 최소 91%이상의 동의를 얻었다.[2] 930여 만 표 중 약 36만 표 만이 1948년의 승인법을 거부했다.

주 정부 자체의 문제

사우스코리아의 주 정부는 산적한 문제가 많았다. 특히 김구를 위시한 독립파는 주 정부의 지위에 대해 반대했으며[3], 테러 또한 불사하겠다는 상황이었다. 또한 3월 사우스코리아를 미국의 주로 편입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때 부터 이미 미국 의회는 코리아계 미국인이 많기 때문에[4], 차라리 소수민족 자치령이나 통치국가를 세울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사우스코리아가 36년 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었다며, 사우스코리아 주민들의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우려하기도 했다.

사우스코리아 민주당애런 리[5]가 사우스코리아 입법부를 대표하기 위해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을 때, 일부 공화당원과 딕시크랫들은 애런 리 상원의원이 공산주의자나 파시스트 둘 중 하나라고 비난했다.

남부 민주당의 반대

애런 상원의원은 다른 의원들에게 인종적 비난은 부당하며, 공산주의자들이 사우스코리아를 통제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실수라고 지적하며 다른 의원들에게 로비를 시작했다. 특히 애런 의원은 린든 B. 존슨이 이끄는 남부 민주당에 공격적으로 로비했지만, 존슨은 사우스코리아의 편에 서지 않았고, 3번이나 반대표를 던졌다.[6] 존슨은 흑인민권에는 찬성함에도 불구하고, 사우스코리아가 인종차별 반대 의원들을 의회에 진출 시킬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존슨은 결국 사우스코리아 주 정부를 승인하는 쪽으로 돌아섰다.[7]

주 정부의 설립

사우스코리아 주의 영토는 이 법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사우스코리아 주는 이 법의 제정과 동시에 사우스코리아 점령영토에 포함된 반도와 그에 수반되는 모든 섬과 암초 및 영해로 구성된다.

각주

  1. 당시 투표는 영어로 공고되었고, 투표용지 역시 영어로 적혀있었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려는 사람 자체가 성인 인구의 70%정도에 불과했다. 이러한 차별은 연방 대통령 선거를 위해 직후 행정명령을 통해 시정되었다.
  2. 싱먼 리케이든 허트, 필립 제이슨 등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이 적극적으로 투표를 알리기 위해 전국을 순회했기 때문이다. 이 때에도 어디에 투표해달라기 보다는 윗 칸에 투표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이후 1948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주 정부 편입을 주도한 미국 민주당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사우스코리아에서 80%를 뛰어넘는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이 발표된 후 독립파의 활동 자체가 위축돼가던 상황에서, 1949년 김구가 암살된 후 독립파의 활동이 음지로 숨어들었으며 결국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4. 당장 편입한다면 미국 인구의 10% 이상이 코리아계 미국인이 되는 상황이었다.
  5. 이시영이다.
  6. 그는 남부에서 인종적 반대를 대표했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은 어쩔 수 없었다고 판단된다.
  7. 트루먼 대통령이나 민주당 지도파와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만이 존재한다. 물론 존슨 자체가 즉흥적 인물이었기에 갑자기 마음을 바꿨을 경우도 있다. 실제로 말년에는 사우스코리아에 대해 좋은 말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