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상선연방공화국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 문서이다.

석기시대와 고대(기원전 8만년경 ~ 기원전 4만년경)

기원전 8만년경부터 4만년경까지는 인류의 원시적 생활양식이 형성되었던 시기로, 이 기간 동안 상선연방공화국 지역에서는 주로 농경사회와 사냥채집사회가 번갈아가며 번성하였다. 이 기간 동안 상선연방공화국 지역에서는 주로 돌기둥과 돌칼, 돌도끼 등의 도구가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도구들은 사냥, 어로, 채집 등 다양한 생활활동에 사용되었다.

기원전 6만년경부터는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청동제조기술이 발전하면서 청동기 도구들이 대량 생산되었으며, 이러한 청동기 도구들은 농업과 사냥, 어로 등 생산활동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기원전 4만년경부터는 철기문화가 전개되면서, 상선연방공화국 지역에서도 철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철제조기술이 발전하면서 철기 도구들이 대량 생산되었으며, 이러한 철기 도구들은 농업과 사냥, 어로 등 생산활동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하였다.

백상대국(기원전 4만년경 ~ 1611년)

1차 르네상스(기원전 4만년경 ~ 3세기 초반)

기원전 4만년경 이후 여러 사회가 통합되어 백상대국이 성장하였다. 이때 백상법이 제정되어 토지의 개인소유, 노예제의 폐지, 군대제도의 정비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백상대국은 근대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였으며, 기원전 1세기에는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면서 국가의 통일성이 강화되었다.

이후 백상대국은 서양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 특히 1차 르네상스는 이 시기에 일어난 문화적 혁명으로, 예술,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백상대국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적인 작품과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후대 문화와 학문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국가적 성장과 문화적 혁신은 백상대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상선연방공화국의 국민들은 이를 자랑스러운 역사적 유산으로 여기고 있다.

중세(3세기 중반 ~ 11세기 중반)

이 시기에는 백상대국이 중앙집권적인 국가체제를 갖추고 군주제가 재도입되었다. 국가의 전반적인 통치 체제는 중앙집권적인 제도로 운영되며, 국가의 유기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는 법제도가 강화되어 나갔다.

367년에는 백상대국이 백상제국으로 국명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전제군주제가 다시 도입되어 왕이 행사하는 통치 권한이 강화되었다. 또한, 다양한 법령이 제정되었는데, 411년에는 백상법이 완전히 폐지되고 국가애국법이 도입되어 국가의 안정과 안전을 보호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이외에도 백상제국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국제무대에서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외교 노력을 기울였다.

2차 르네상스(11세기 중반 ~ 1534년)

최초로 군국주의가 도입된 백상대국에서는 군주의 권력이 강화되어 국가 전반에 걸쳐 강력한 중앙집권이 이루어졌다. 12세기부터는 여러 국가를 침략하며 영토를 넓히는 전쟁이 이어졌고, 13세기에는 국왕의 권한이 확대되면서 정치적인 안정이 이루어졌다.

이후 15세기에는 백상대국에서 2차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예술, 문학,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보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예술 분야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적 특성을 지닌 미술 작품이 탄생하였으며, 문학 분야에서는 신경시대적 문학이 발전하였다. 또한 과학 분야에서는 의학, 천문학, 지리학 등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발전은 국가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인 발전을 이끌어냈으며, 백상대국은 그 시기 동안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국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백상대국의 침체기(1534년 ~ 1611년)

이 기간 동안 백상대국은 내부적으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약화되었으며, 외부적으로는 이전에 침략했던 지역에서 저항과 반란이 일어나면서 영토를 잃었다.

경제적으로는 상업의 부진과 국내산업의 발전이 지체되어 경제적 악순환에 빠졌다. 또한 외국과의 무역에서도 불리한 조건으로 양국 사이의 교역량이 줄어들었다.

정치적으로는 왕권이 약화되고 지방권이 강화되었다. 왕권이 약화된 이유는 전쟁과 성종의 사후 분쟁으로 왕권을 쥐고 있던 권력이 분산되어 국가를 지배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부의 중심이 귀족층에서 평민층으로 이동하면서 사회적 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백상대국은 국내외에서의 침략과 저항, 반란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내외적인 압력은 백상대국의 침체를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백상대국 멸망과 7국 분단 시대(1611년 ~ 1625년)

백상대국은 1611년 경 무리한 군사적 확장으로 인해 경제적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경제적 어려움과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다. 또한, 백상대국의 관료 제도와 세무 제도는 비효율적인 면이 많았고, 이는 국가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접한 국가들은 백상대국의 붕괴 상황을 이용해 침략을 시도하였고, 백상대국은 각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렇게 붕괴 상황이 이어지면서 백상대국은 결국 멸망하게 되었고, 이후 7개의 독립된 국가로 분리되어 지역 전쟁과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 7개 국가는 서로 강한 경쟁을 벌이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상선국[1], 경궁국, 부여국, 현주국이었다. 이들 국가는 서로 군사적으로 대립하면서 경제적 발전을 추진하였고, 이후 열강들의 개입과 병합을 거쳐 상선제국으로 통일이 된다.

상선제국

근대(1625년 ~ 1795년)

상선제국은 백상대국의 분열 이후에 상선인들이 중심이 되어 건국된 제국으로, 건국자는 군주인 기연왕이었다. 기연왕은 군국주의를 강화하면서 국내 정치를 중앙집권화했고, 대외적으로는 청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영토를 넓히는 등 국력을 강화시켰다.

상선제국은 18세기에 들어서는 세계적인 경제 성장과 함께 문화적으로도 발전하였다. 르네상스와 발전기를 거쳐 문학, 미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이루었으며, 특히 조선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1795년에는 상선왕조의 후계자 문승왕이 즉위하여 국내적으로는 안정적인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민주화(1795년 ~ 1800년)

제정된 구헌법에 따라 상선제국은 입헌군주제로 변형되었다. 이 시기에는 민주주의 원리와 인권 보호가 강화되었으며,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여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상선제국은 국민들의 인권과 자유를 보호하면서, 국가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개혁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상선제국은 민주주의와 국가 발전을 동시에 이룩하게 되었다.

중흥기(1800년 ~ 1884년)

상선제국은 입헌군주제로 전환된 이후 경제 발전과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는 산업혁명과 함께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국내에서 철강, 석유, 기계공학 등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었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상선제국이 일본과 경쟁하며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 시기에는 유럽의 제국주의와 경쟁하면서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군비 증강과 국내적인 독재성 증가 등의 문제가 있었다.

황혼기(1884년 ~ 1915년)

이 시기는 제국 내부의 부패와 비대칭적인 개발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대외 경제적으로도 불균형한 발전이 이어졌다.

1876년, 상선연방공화국은 조선과 일본과의 무역을 제한하고, 일본과의 경제·외교사안에 대한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국방력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이는 후에 일본과의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거기다가 이후 류큐 분쟁도 있어서 더욱 악화되었다.

1908년, 결국 둘간의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는 1915년까지 지속되었다. 결과는 상선제국의 승리로 끝나며 류큐는 상선제국의 위성국이 된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비합리적인 대외 정책과 국내의 부패, 군주제 체제의 비효율성 등이 황혼기의 상선제국을 몰락의 발단으로 이끌게 되었다.

쇠락기와 몰락(1915년 ~ 1919년)

상선제국의 쇠락기는 외부적인 요인과 내부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였다.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서구 각국의 열강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으로 침략을 확대하며 각자의 이권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커졌다. 이에 따라 상선제국도 서구의 각국들과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군비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군비 강화로 인한 국가 경제의 악화, 자원낭비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상선제국의 경제력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는 상선제국이 민주주의체제로 전환하면서 일어난 문화, 사상의 변화가 쇠락의 계기가 되었다. 상선제국 내부에서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면서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신분제도에 기반한 사회 구조는 혁신과 발전에 대한 제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내부적,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상선제국은 1919년 국가를 폐지했으며, 1921년 완전 몰락한다.

분단(1919년 ~ )

제1차 상선전쟁(1921년 ~ 1939년)

분단 이후 바로 남상선 측에서 상연방을 공격했다.

전쟁은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두 국가 모두 지리적으로 이점을 가진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였다. 전쟁 초기에는 남상선이 상당한 승리를 거뒀지만, 이후 상대적으로 균형이 맞춰지면서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임시협상과 종전으로 전쟁은 종결되었으며, 둘은 분단된 상태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상연방과 남상선 사이에는 계속된 갈등과 긴장이 지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1939년 ~ 1945년)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남상선은 소련과 동맹을 맺고, 상선연방공화국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과 함께 동맹을 맺었다. 이후, 상선연방공화국은 북아프리카 전선, 이탈리아 전선, 유럽 전선에서 싸웠으며, 남상선은 독일군과 소련군이 싸우는 동부 전선에서 맹렬히 싸웠다.

1945년 5월 8일, 독일군이 패배를 인정하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종식되었다.

제2차 상선전쟁(1945년 ~ 1956년)

약속한 대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9월 2일, 남상선에선 즉각 상선연방공화국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다음 날인 9월 3일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1차 전쟁과 다르게 두 국가 모두 초강대국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지원이 들어왔다. 결과적으로 1947년부터 전쟁이 멈췄으나, 공식적으로 전투가 중단된 연도는 9년 후인 1956년이다.

전간기(1956년 ~ 1978년)

종전 후 두 국가는 나름대로 잘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상선연방공화국 같은 경우, 1960년대 박대형 대통령과 박태원 대통령이 국가를 상당히 발전시켜 개발도상국이였던 국가를 순식간에 세계 1위 선진국으로 탈바꿈 시켰다. 반면에 남상선은 군사력에만 전부 투자를 하고 있었다.

남상선이 상연방의 잘 사는 꼴을 보기 싫었는지 1968년 상연방에 대규모 간첩 작전을 실시했고, 10년 후 전쟁으로 번진다.

제3차 상선전쟁(1978년 ~ 2006년)

휴전협정 이후(2006년 ~ )

  1. 후에 통일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