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본의 지역·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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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신설-마전지역 또는 신설-마전지방은 동북부의 신설지역과 마전도를 묶어서 이르는 월본의 지방이다. 11개의 군과 1개의 특별행정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월본의 지역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다.

상세

관본도의 북부 지역에 존재하기에 관북지역이라고도 한다. 신설지방은 예로부터 오랑캐라고 불리던 원주민들이 살아왔고, 중앙정계로부터 소외와 차별을 받아왔던 지역이다. 전월본제국 시기에 공산주의 시위나 반정부 시위의 대부분이 신설지방에서 발생했으며 이러한 점 또한 신설지방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이뤄진 원인이 되었다.[1]

이후 60~70년대에도 신설지방은 도신설 7.17 항쟁 등의 민주화 운동을 하는 등 민주주의 수호의 보루로 남았다. 마전도 역시 신설지방과 함께 비교적 중앙정계로부터 소외를 받아왔던 지역인데다 뒤늦게 개척에 참여한 외지인들이 정착하여 살게 된 지역이다. 드넓은 평야와 광활한 해안이 있어 농어업이 매우 발달한 지역이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80년대까지는 인구가 많았으나, 산업화로 인한 이촌향도와 인구유출이 심해져 점점 인구가 줄고 있는 지역이다.

또한, 최근에는 고령화 문제와 저출산 문제도 대두되면서 절반 이상이 농어업에 종사하던 신설-마전지역의 거주민들은 인문적인 요인에 의해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북쪽으로는 북양지역, 남쪽으로는 중부지역을 마주하고 있으며, 도본특별행정구의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가장 산업화된 지역은 도본특별행정구이다. 이외에 신설-마전지역에서 발전된 지역은 도신설군, 선전군이 있다. 특히 선전군은 2008년에 정부차원에서 도본 지역의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개발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역사

본래 북방 원주민의 영역이었으며, 아카사인의 발길이 닿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반부터이다. 당시에는 이 지역을 관북지역이라고 불렀으며, 이 지역에 정식적인 중앙집권 정부가 17세기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8세기경 북양지역의 찰문토기(擦文土器)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러한 문화를 전파한 것은 퉁구스, 니브흐 계통의 북양지역 원주민이었다.

8세기 중반부터 11세기까지 관북문화라고 불리는 지역 고유의 문화가 발달하였다. 9세기초(812년 추정), 현재 관북군 북부지역에 해당하는 곳에 준연맹형태의 도시국가인 규사이가 나타난 적이 있지만, 내부 분열로 괴멸하여 중앙집권 형태의 정부를 가지지 못한체 도시국가의 형태로서 17세기 까지 존속한다. 이후 월본의 문화권으로 서서히 흡수되다가 전월본제국에 의해 최북단까지 정식으로 합병된다.

인문환경

인구

인구 통계 순위
마전군 5,810,000명
도신설군 4,800,000명
선전군 2,210,000명
광전군 1,768,000명
도본특별행정구 1,550,000명
경우군 1,150,000명
관북군 1,030,000명
공선군 1,000,000명
다와군 980,000명
당군 970,000명
내와군 870,000명
구정군 820,000명

언어

신설-마전지역 사람들은 월본어를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신설방언, 마전방언 등 여러개의 형태의 지역방언이 존재한다.

종교

교통

  1. 예전보다는 지역차별이나 갈등이 해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