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내용은 태화국 공식 설정입니다.
이 문서는 리반이 작성한 가공 국가인 태화국과 관련된 공식 설정이기 때문에 함부로 편집을 시도하시면 반달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꼭 수정여부를 설정자에게 물어봐주십시오. 다만 오류 및 오타 교정은 반달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역대 태화 총독
2대
시바 타츠야
3대
아쿠츠
야스마사
4대
혼마 무토
아쿠츠 야스마사
阿久津泰政
인물 정보
본명 아쿠츠 야스마사
출생 1859년 4월 11일
사망 1920년 2월 17일
가족 관계 불명
경력 일본제국 육군 중장, 군무 국장, 태화 총독, 군부 대신
의원 선 수 선 의원

아쿠츠 야스마사(일본어: 阿久津泰政)는 일본 제국의 정치인이자 군인이다. 군인으로 출세하여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3대 태화 총독직을 역임하였다가 고국으로 귀국한 뒤, 육군 첩보기관인 카제 기관(風 機關)을 설립하는데 막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초기 이력

규슈 미야자키 현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에는 사쓰마 번의 사무라이로서 군인 생활을 시작하였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육군 사관으로 임관하였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1873년부터 1876년까지 유학 생활을 했으며, 이후 1876년에 소위, 12월에 중위, 그 다음해 6월에 대위가 되는 등 빠른 속도로 진급에 진급을 거듭하였다. 1894년, 청일 전쟁이 발발하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이때 소좌로 진급함과 동시에 그의 별명인 "면도칼"이 붙여지게 되었다.

이후로 승진을 거듭하여 1887년에는 군무 국장 직책을, 1889년에는 참모본부 차장, 육군 대학교 교장직을 거쳐 제2차 야마가타 내각때 군부 대신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의원직과 군인직을 동시에 수행하다가 1900년, 소장으로 예편되었으며, 1906년에 사이온지 킨모치 내각의 제의로 총독직을 사임한 시바 타츠야의 뒤를 이어 태화 총독직에 부임하였다.

태화 총독

1906년, 태화 총독으로서 부임하게 되었으며 시바 타츠야 총독처럼 무단 통치를 단행하였으나, 당시 발생한 13인 폭동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학살을 저지름에 따라 이에 책임을 지고 1907년, 사임하였다.

카제 기관의 설립과 몰락

총독직을 사임한 아쿠츠 야스마사는 중장으로 예편된 뒤, 육군 첩보기관을 세울 것을 강력히 건의한 바 있으나, 당시 경직된 일본 군조직 사회에서 군인의 첩보 활동은 스파이 불요론자가 대두되는 등 대단히 반하는 행동으로 규정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13년, 카자토 아키시마 중령이 관련 육군 첩보 기관을 세울 것을 희망한다는 것과 함께 방첩의 긴급성 및 육군 내 비밀기관의 필요성에 대한 내용의 보고서를 올림에 따라 그를 육군참모본부로 불러 독립된 방첩 기관을 설립할 것을 논의, 이에 1915년에 카제 기관(風 機關)을 비밀리에 설치하게 되었다.

그는 카제 기관장으로 카자토 아키시마를 추천하였으며, 겉으로는 해당 기관과의 연고가 없음을 누누히 말하고 다녔으나, 실상은 카제 기관의 전폭적 지원과 지지를 안아주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카제 기관이 1920년, 카제 기관 정보 방출 사건이 벌어지면서 몰락하게 됨에 따라 카자토의 자살과 함께 자신도 연루되었음이 밝혀지면서 스스로 할복하게 되었다.

태화에서의 평가

시바 타츠야와 다를 바 없는 전기 무인 총독으로서, 태화에서 13인 폭동을 조장하여 이를 이유로 학살을 자행했던 인물로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13인 폭동에 대해서 민족 갈등을 야기하여 분열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시바 타츠야보다 더한 놈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야깃거리

당대 말이 많고 탈이 많았던 일본의 장성급 군인들 중 일본 육군에 문제점을 직시하고 개혁을 시도했던, 그나마 제대로 된 인물이었다고들 평가하나, 실상은 식민지에서 학살을 주도한 악랄한 도살자이다.

실제 캐릭터 설정은 '조커 게임'의 등장인물, 아쿠츠 야스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