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포제도

양포제도(洋浦諸島)

백평국의 현인 양포현에 대해서는 양포현 문서로.

좌: 양포현 서향시 소재 망양산국립공원(칠영봉) / 우: 양포현 율포시 현산동 일대(현산공원)


개요

양포제도(洋浦諸島)는 백평국 서남부에 위치한 제도로 백평국의 13현 중 하나인 양포현을 구성한다. 본토와 약 200km 너비의 독산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지리

양포제도는 두 개의 주요 섬과 73개의 부속 도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망양도, 율포도, 도선도, 소율도를 제외한 모든 섬이 무인도[1]이다. 본토의 홍도신산, 독산과 함께 칼데라의 지름만 약 160km라고 알려진 초화산인 독산 칼데라를 구성하고 있으며, 현재 양포제도를 이루는 산들은 거의 사화산이거나 휴화산이다. 2022년 전국 인구조사 결과 양포제도의 총 인구는 16,594,243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주요 도시로는 인구 492만의 망양시, 373만의 율포시가 있다. 주요 산업은 관광업으로,[2] 산호초, 백사장이 발달하여 백평 국민들에게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이다. 항공 교통으로는 흥양-망양 간 약 1시간 30분, 독산-망양 간 약 40분 정도가 소요되며, 페리를 이용하면 본토의 독산진시, 웅곡시, 해하시 등지에서 약 3시간 내외로 망양항, 율포항에 도착한다.

망양도

망양도

율포도

율포도

도선도

도선도

소율도

소율도는 율포도 남서쪽에 위치한 섬이다. 넓이 341km^2, 인구 159,090명이다. 역사적으로 율포에 속했으며, 현재는 소율군송철당시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

양포제도는 역사적으로 백평 본토와 분쟁이 잦았다. 16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양포제도는 망양, 율포라는 두 부족 국가가 서로 활발히 교류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1557년 백평 왕정명진왕이 이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양포제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후 왕정에서 파견된 지방관이 살해당하거나 양포제도의 해적들이 백평 남부 해안을 약탈하는 일이 잦아졌고, 이는 1622년 독산해전으로 이어진다. 17년간 이어진 독산해전은 양방에게 고통만을 남긴 승자 없는 전쟁이었으며, 전쟁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고 피란을 떠나야 했다.[3] 전후 복구가 어느 정도 완료된 18세기 이후 양포제도와 백평 본토 간의 물적, 인적 교류가 활성화되었고, 1793년 삼자간 양포 조약의 체결로 백평 왕정에 편입되는 대신, 망양, 율포의 통치자에게 백평국 국왕 다음의 지위에 해당하는 망양왕, 율포왕 지위를 각각 하사하여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면서[4] 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5] 백평국이 왕정에서 민주 공화정으로 전환된 이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본토와 양포제도의 사람들은 서로 융화되어 현재는 문화적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6] 젊은 세대 사이에는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여러 사람들이 어떤 뿌리를 가지고 있든 간에 차별 없이 대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7] 현재 양포제도는 흥양시와 함께 서륙으로 향하는 무역의 중심지로써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며, 앞으로의 발전이 주목되는 곳으로 여러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여담

백평국 5대 사철에 속하는 양포철도주식회사가 양포제도 사회 전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철도 사업뿐만 아니라, 버스, 관광업, 숙박업, 유통업까지 양포 철도 주식회사의 자회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 건물 하나 짓기 이전에 선박의 정박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 절벽 해안이 나타나는 돌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 전통적으로는 반농반어가 산업 구조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3. 백평 왕정 인구의 38%, 망양 인구의 53%, 율포 인구의 49%가 사망 혹은 실종되었다. -<백평제사>
  4. 백평 왕정의 입장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양포제도를 편입했으나, 그들에게 사실상의 자치권을 준 셈이었다.
  5. 그러나 양포제도의 일부 오지 마을에서는 노령 세대를 중심으로 미족을 혐오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양포제도의 오지 마을에 방문한 미족 여행가가 실종되거나 살해되는 일이 현재도 가끔 발생한다.
  6. 고대부터 망양족율포족은 교역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물자가 오고갔는지 문서로 남겨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록을 대단히 중시하는 전통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록하고자 했고, 이러한 기록에 따라 민속 음악이나 무용, 토속 신앙과 관련한 종교적 의례 등 양포제도의 특색 있는 고유 문화는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 많다.
  7. 다만 일부 집단 간 지역 갈등이 다소 존재하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