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당시

백평국의 자치시
송철당시 松哲堂市
Songcheoldang City
국가
백평국
양포현
면적
213.1 km²
인구
총 인구
100,909명[1]
밀도
473.5명/km2
시장
선한영향력 소율청백
상징
시화
홍사화
시목
소율적송
시조
남방삼족학


개요

송철당시(松哲堂市)양포현의 기초자치단체이다. 소율군과 함께 소율도를 구성하고 있다. 백평국의 최남단[2]으로 인지도가 높은 관광지이다. 높은 인지도에 비해 본토로부터의 접근성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편이라 소율도까지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으나, 의외로 관광객 수는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최근에는 한적한 관광지에 별장을 지으려는 부호들에게 알음알음 인기를 얻고 있다.

역사

1793년 양포조약 이전에는 율포족이 거주하는 평범한 변방의 마을로, '해가 뜨고 지는 남쪽의 항구'라는 뜻의 '비타-투마쿠(Bita'atumaku)'라고 불렸다.[3] 이들은 대부분 벼농사와 어업에 종사했지만, 일부 상인들은 왕궁이나 부잣집을 건설할 때 고급 재료로 사용되었던 소율적송을 율포도에 팔아 큰 부자가 되기도 했다. 또한 남방삼족학 요리가 꽤나 발달하여 소율도에 들른 외국 상인들을 통해 주변국에 소문이 나면서 율포도도선도 사람들은 물론, 율포족과 동맹 관계였던 밀산 왕정의 사람들도 율포 중심부로 가면서 자주 들렀다고 한다.

양포조약 이후 백평 왕정이 해산하기까지 송철당시 지역은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당시 기술력으로 독산진시에서 소율도에 들어가려면 꼬박 이틀 동안 배를 타면서 3~4개의 항구를 거쳐야 했고, 흥양시에서 출발하면 날씨가 안 좋을 경우 열흘 이상이 걸리는 일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 송철당시 지역은 '변방에 있는 어촌마을. 요리가 맛있음' 정도의 인식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남방삼족학 원툴도시

그러다 1800년대 후반 증기혁명을 거치면서 이동 시간에 대한 제약이 많이 풀리면서 소율항과 송철당항(당시는 비타-투마쿠항) 주변 어촌마을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관광 수요가 폭증하고 본토 출신 이민자[4]가 늘어나면서 1921년 송철당시 바로 북쪽에 접하는 소율군에는 증기비행선의 이착륙을 위한 소율공항이 개항했고, 이에 따라 1930년대에는 송철당시의 인구증가율이 피크를 찍게 된다.

이 시기에 백평도교 흥양 총본산 흥양사에서 지역 도교 사원 관리를 위해 송철당 공운주형을 파견한다. 그는 현재 송철당시 북부에 위치한 노적사에서 대사제의 신분으로 생활하면서 소율도의 사원 관리뿐만 아니라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그는 소율도에서 활동하면서 뛰어난 성품으로 인해 율포족 원주민들에게 큰 신임을 얻었으며, 말년에는 소율도 원주민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사제직을 내려놓고, 소율 추장을 지냈다.[5] 1969년 그의 사후 거대한 공덕비가 세워졌으며, 그 주변을 송철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75년 백평 왕정이 해산하고 민주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지방 자치 제도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양포제도의 행정 구역을 정비하는 사업이 이루어졌고, 1976년 2월 시행된 주민 투표 결과 소율도의 남부 지역[6]을 송철당군으로 정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지금의 영역을 가지게 된다.

이후 1980~1990년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여, 지난 1998년 9월 10만 명을 돌파하면서 송철당군이 송철당시로 승격되었다. 다만 2010년대 들어 젊은 층이 흥양시독산진시 등 본토로 유출되는 경향이 심화되면서 다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7]

지리

자연지리

섬 면적에 비해 꽤나 높은 해발 1824m의 고도를 자랑하는 노적산 주위로 경사면에 마을이 형성된 소율도에서 남쪽 2/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동부 지역은 완만한 사면으로 산기슭에서 해안까지 계단식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드문드문 마을이 있다. 반면 서부 지역은 논밭과 마을 대신 가파른 해안 절벽에 도교 사원이 여럿 들어와 있다. 북부 지역은 대부분이 뺵빽한 열대림과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구가 매우 희박하며, 남부 지역은 해안 평지 지대에 큰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송철당항의 항만 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인구

  • 1975년 이전 자료들은 모두 율포족의 기록물에 의존한다.
송철당시의 인구
연도 인구
1750년 약 4,000명
1800년 약 4,500명
1850년 약 4,700명
1900년 약 9,500명
1950년 약 54,650명
1975년 73,462명
1980년 81,649명
1985년 87,165명
1990년 94,622명
1995년 98,221명
2000년 102,144명
2005년 113,263명
2010년 115,345명
2015년 112,528명
2020년 106,239명
2022년 100,909명

교통

자세한 내용은 송철당시/교통 문서로.

과거 철도가 존재했으나 지금은 폐선되어 사라졌고, 현재는 버스가 주로 운행되고 있다. 항공교통으로는 소율군소율공항과 연계가 가능하고, 선박으로는 송철당항을 통해 본토 및 주변국[8]과 연결된다.

관광

문화

정치

군사

하위 행정구역

사건 및 사고

여담

자매결연도시

출신 인물

  1. 2022년 6월 기준
  2. 인공섬까지 포함했을 때 기준. 인공섬을 제외하면 도선도의 영포곶이 최남단이 된다.
  3. 율포족의 인구 기록(율포족기록보존문서 제 334호)에 따르면 지금의 송철당시 중심부에는 양포조약 이전까지 꾸준히 4,000명 정도가 거주해 왔다고 한다.
  4. 대부분은 도교 선교사와 사제들이었다.
  5.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율포 왕정 내 보수파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당시 율포왕이 소율도에 친히 암행하여 보니 그의 성품이 섬 전체를 다스릴만 하여 그에게 특별히 벼슬을 하사하였다. -<율포족기록보존문서 제 7325호>
  6. 옛 비타-투마쿠 항구도시와 공운주형 공덕비 주변 지역
  7. 현재 추세대로라면 2025년이 되기 전에 10만 명 선이 붕괴될 것으로 보인다.
  8. 밀산, 개령, 셰이드, 알리시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