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대외 전쟁 · 정벌
|
|
시대
|
전쟁·정벌
|
교전 세력
|
조선
|
대마도 정벌 (제2차, 제3차) 1396, 1419
|
왜구
|
4군 6진 개척 1433 ~ 1437
|
여진족
|
모련위 정벌 1461
|
여진족
|
정건주위(세조) 1467
|
여진족
|
정건주위(성종) 1479
|
여진족
|
정니마군 1491
|
여진족
|
정서북로구 1492
|
여진족
|
삼포왜란 1510
|
왜구
|
사량진 왜변 1544
|
왜구
|
을묘왜변 1555
|
왜구
|
니탕개의 난 1583
|
여진족
|
녹둔도 전투 1587 ~ 1588
|
여진족
|
임진왜란 1592 ~ 1597
|
일본 (도요토미 정권)
|
정유재란 1597 ~ 1598
|
일본 (도요토미 정권)
|
사르후 전투 1619
|
후금
|
정묘호란 1627
|
후금
|
병자호란 1637
|
청나라
|
나선정벌 1652 ~ 1658
|
루스 차르국
|
경자양요 1720
|
프랑스 왕국
|
기유양요 1729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
광무 대한제국
|
한청전쟁 1891 ~ 1892
|
청나라
|
의화단의 난 1900 ~ 1901
|
의화단 청나라
|
독도 위기 1904
|
일본 제국
|
제1차 세계 대전 1914 ~ 1917
|
러시아 제국 일본 제국
|
융희 대한제국 ~ 대한조선국
|
봉오동 전투 1920
|
러시아 적군
|
청산리 전투 1921
|
러시아 적군
|
태화 대한조선국
|
만주사변 1937
|
중화민국
|
천북 전투 1938
|
만주군벌연합
|
하얼빈 전투 1940
|
만주군벌연합
|
제2차 세계 대전 1942 ~ 1945
|
일본 제국 남중화국
|
한중 국경 분쟁 1954
|
중화인민공화국
|
건양 대한조선국
|
베트남 전쟁 1964 ~ 1973
|
북베트남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
걸프 전쟁 1990 ~ 1991
|
후세인 정권 이라크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 ~ 2022
|
탈레반
|
이라크 전쟁 2003 ~ 2017
|
후세인 정권 이라크 알 카에다
|
소흥 대한조선국
|
아덴만 여명 작전 2011
|
소말리아 해적
|
대 IS 군사 개입 2014 ~ 2017
|
ISIL
|
7.8 신의주 사태 2023
|
중화인민공화국
|
제3차 세계 대전 2026 ~ 2029
|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연방
|
|
의화단의 난 義和團의 亂 Yihetuan Movement | Boxer Rebellion
|
|
기간
|
1899년 11월 2일 ~ 1901년 9월 7일
|
장소
|
청나라 화북지방, 만주
|
결과
|
9개국 연합군의 승리
- 신축조약(베이징 의정서) 체결
- 총리아문 폐지, 열강의 압력으로 외무부 신설
- 제1차 세계 대전 아시아 전선의 배경 제공
- 청나라 몰락 가속화
|
교전국
|
청나라
의화단
|
대영제국
프랑스 공화국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미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
대한제국
일본 제국
|
지휘관
|
광서제
서태후
육현
영록
유록†
등복상
섭사성
송경
마옥곤
단군왕
마기
마복흥
마복상
이병형†
|
에드워드 시모어 경
클라우드 맥도날드
알프레드 가젤리
앙리 니콜라 프레이
로베르 니벨
니콜라이 리네비치
알렉세이 쿠로팟킨
예브게니 알렉세예프
파울 폰 렌넨캄프
알프레트 폰 발더제
애드너 채피
에머슨 H. 리스컴
빈센초 가리오니
홍기섭
이범윤
후쿠시마 야스마사
야마구치 모토미
위안스카이
이홍장
쉬잉쭝
장지동
유곤일
|
병력
|
의화단 및 관군: 의화단 100,000 – 300,000명 관군 70,000명 동복상의 감군(甘軍, 회족 출신 군인) 10,000명 포함
|
열강 9국: 58,255명 100,000명의 러시아군 만주 점유
|
피해 규모
|
의화군 및 관군: 대부분의 의화군과 20,000여명의 청나라군
|
열강 9국: 군인 2,500명 외국인 526명 중국인 기독교 신자 수 천명
|
개요
扶淸滅洋 (부청멸양: 청을 도와 서양놈을 멸하자.)
당시 의화단의 구호
의화단의 난은 1899년 ~ 1901년 약 3년에 걸쳐 청나라와 의화단(義和團)이 반외세, 반제국주의, 반기독교를 내걸고 서구 열강 9개국 연합군과 벌인 국제전쟁이다. 국제정세를 오판한 중국인들이 사실상 당시 전세계를 상대로 싸운 무모한 전쟁이었다. 결국 의화단의 난은 1901년 신축조약을 통해 외국 군대가 중국에 주둔하게 허가하는 빌미를 제공하였으며 수도 베이징까지 유린당하며 끝났다.
영미권에서는 Boxer Rebellion이라고 칭하는데, 의화단들이 반란 과정에서 무술을 사용한 모습이 권투 선수와 같다고 하여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중화권(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홍콩 등)에서는 반외세적 성격에 초점을 두어 "의화단 운동"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현 조선은 현행 교과서, 모의고사, 수능특강 등에서 모두 "의화단의 난"이라고 표기한다. 좀 구식 표현으로는 의화단사변(義和團事變)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