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문사
大韓朝鮮國 益聞社 |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설립일 1797년 12월 2일 (조선 익문사)
1892년 1월 21일 (대한제국 익문사)
1929년 3월 2일 (대한조선국 익문사)
전신 대한제국 익문사 (제국익문사)
원장 박성원
차장 윤주현 제1차장
박건태 제2차장
김선희 제3차장
최지헌 기획조정실장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상급 기관 대한조선국 내각총리대신
원훈 국가, 국민, 폐하를 위한 소리 없는 헌신
링크


개요

대한조선국의 국가정보기관으로, 속칭 회사(Company)이다.

전신인 조선 익문사 ~ 대한제국 익문사 시절부터 국왕 → 황제 직속 기관으로서 총리[1]가 지시하는 일만 하고 보고하면 되는 기관이므로 다른 정부 부처와 협의할 필요도 없고 국무회의 출석 의무도 없다. 다만, 비상사태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출석하지만 의결권은 없다.

약칭은 정부조직 영어명칭에 관한 규칙(시행 소흥 13년.08.01)에 의거한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NIS)이다.

익문사 소속의 3급 이상 공무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에 해당한다.

여러모로 미국 중앙정보국과 비교된다.

역사

현재의 익문사는 1797년 갓 즉위한 정조가 서구 국가의 정세와 동향을 알고자 국왕 직속 기관으로 설립한 초기 익문사에 기반을 둔다. 익문사 요원들은 일본, 중국의 항구 등지에 파견되어 그곳에서 서구 국가의 정보를 입수한 뒤 정조에게 보고하였고, 정조는 이를 참고하여 근대화 정책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당시 익문사의 역할은 정보기관의 역할이라 볼 순 없었고, 단순히 국왕이 익문사의 보고를 국정에 참고하는 수준이었다. 익문사가 정보기관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대한제국 시기였는데, 고종은 익문사를 대일 첩보 활동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1. 대한조선국이 건국되고,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면서 익문사의 상급 기관은 궁내부에서 총리대신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