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仁養 | Inya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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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소재지 | 중구 강희로 118 (시청동) | ||||
하위행정구역 | 26구 | ||||
면적 | 1'945.8km² | ||||
인구 | 11'650'801명[1] | ||||
인구밀도 | 5'987.8명/km² | ||||
GDP | $1조 510억 (2023) | ||||
1인당 GDP | $90'232 (2023) | ||||
시장 | 발전당 강성훈 | ||||
상징 | 시화 | 개나리 | |||
시목 | 소나무 | ||||
시조 | 까치 | ||||
시가 | 세계로인양 | ||||
지역번호 | 02 | ||||
ITIA 도시 코드 | INY |
개요
Breathing Inyang. 살아숨쉬는 인양.
인별국의 수도이자, 최대도시.
인별국을 가장 대표하는 도시이자, 가장 중요성 가치가 높은 도시이기도 한다. 강양주 중앙부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으론 강유도 강평시, 복주시, 송안시, 동쪽으론 청주도 대진시, 남선시, 황명시, 청곡시[2], 서진시, 송산시, 남쪽으론 대송도 하곡시, 주정시, 서쪽으론 만포광역시와 접한다.
역사
고대
약 기원전 150여년전경의 고대 별국에서, 3양지역[3]중에 남양으로 설치가 되었었다.[4]
중세
과거, 중세 인별국에서부터 지금까지, 약 600여년간 수도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인양도성 내 지역(강희구, 중구, 내종구 일부)만이 인양부였고, 그외 지역은 인양을 지켜주는 지역으로써 존재해 있었다.
근대
개항이후, 인별국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그에따라 인양시의 인구가 급격하게 불어나게 되었다.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1880년대 철도가 처음 부설된 시기부터 이미 인구 30만명을 돌파[5], 1900년엔 빠른속도로 증가하여, 1917년에 50만명 돌파, 1940년 이전에 이미 100만명을 돌파해버렸다.
현대
이후, 현대에 접어들면서, 인양시는 특별자유시로 승격하며 흥학시, 공양시 지역을 차례로 편입해 나아갔고, 특별시로 개칭된 이후로도, 마곡시, 정덕군, 임덕군, 개화군, 원백시 등의 주변 위성지역들을 인양특별시로 편입하여, 현재와 같은 거대한 메트로폴리스가 완성되었다.[6]
1970년대, 조명호 정부에 들어서서, 강희구, 중구로는 포화된 이 상업지역 확장 및 신도심 건설 정책이 시행되면서, 개화구 일대가 대거 개발이 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개화신시가지는 인별국에서 가장 큰 계획도시지역이자, 유동인구가 활발하고, 고층마천루가 줄지어 서있는 풍경을 띄게 됨으로써, 인별국 고도성장을 보여준 대표지역이 되었다.
지명어원
인양시의 뜻을 한자로 풀이해보면, 仁(어질 인), 養(기를 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로부터 '어진 사람을 기르는 곳'이란 의미로 지어져, 오래전부터 상당히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연환경
전반적으로 드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고, 남쪽 지역으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산부산이 위치해 있으나, 지형이 험난한 곳은 딱히 없는 편이다.
인구
1901년 372,125명 | |||||
1902년 375,901명 | |||||
1903년 379,981명 | |||||
1904년 383,924명 | |||||
1905년 390,101명 | |||||
1906년 397,687명 | |||||
1907년 410,058명 | |||||
1908년 411,497명 | |||||
1909년 415,609명 | |||||
1910년 417,729명 | |||||
1911년 420,245명 | |||||
1912년 427,905명 | |||||
1913년 451,192명 | |||||
1914년 463,332명 | |||||
1915년 470,991명 | |||||
1916년 490,145명 | |||||
1917년 501,237명 | |||||
1918년 515,814명 | |||||
1919년 529,989명 | |||||
1920년 533,171명 | |||||
1921년 550,017명 | |||||
1922년 592,279명 | |||||
1923년 601,711명 | |||||
1924년 620,103명 | |||||
1925년 631,670명 | |||||
1926년 633,892명 | |||||
1927년 659,911명 | |||||
1928년 670,453명 | |||||
1929년 677,256명 | |||||
1930년 681,092명 | |||||
청주도 공양군 공양읍, 이선읍[7] -> 인양특별자유부 내종구 편입 강유도 원백부 북백리읍 남부 -> 인양특별자유부 화도구 편입 대송도 혜림군 조암면 -> 인양특별자유부 은갈구 설치 및 편입 | |||||
1931년 779,384명 | |||||
1932년 757,321명 | |||||
1933년 782,114명 | |||||
1934년 801,317명 | |||||
1935년 850,134명 | |||||
1936년 875,511명 | |||||
1937년 948,635명 | |||||
1938년 1,103,696명 | |||||
1939년 1,063,271명 | |||||
2025년 1월 11,650,801명 | |||||
인구는 2024년 1월 기준, 약 1'165만명이 현재 인양특별시 내에 거주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경제규모를 보유하고 있어, 상주인구는 대략 1'700만명으로 집계된다.
국내에서 인양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단일 도시지역으론, 만산광역시 인데, 만산인구를 2배로 늘린다 하여도 인양시 인구에 미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인구가 많다.[8]
교통
지하철
인양특별시 지하철 노선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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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 지하철은 인양메트로[9]와 인양지하철도[10] 두 기업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 강희로와 개화신시가지를 중심으로 지하철 노선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양이며, 무려 "15호선"까지 존재한다(!)
직결또한 활발하여, 대부분 노선들이 주변 도시외곽이나 밖으로 나가는 전철과 직결운행을 하며, 넓은 평야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굉장히 먼 지역까지 운행하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11]
운행은 운행사가 바뀌는 지점에서 각 회사 소속 기관사가 교대를 실시함으로써 바뀐다. 보통, 이렇게 운행사가 달라지는 역에서는 열차가 최대 2분가량정도 길게 정차하는 모습도 볼수 있다. 관제 또한 관할 회사에 따라서 바뀐다.
경전철
인양시엔 많은 수의 철도노선이 다니지만, 인구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 시내버스 등의 도로교통수단이 감당하지 못하는 수요를 견뎌야 하는 구간들이 있다. 인양시에선,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경전철이란 대안을 내놓아, 지하철이 닿지 않는 구간을 경전철로 해소 하고 있다. 모든 노선이 지하철과 환승 연계가 된다.
전철
인양시 지역을 한바퀴 도는 전철 노선인 인양순환선을 중심으로, 국철을 제외한 모든 전철노선이 시종착하게 되어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양순환선의 주요역들의 규모가 어마무시하게 큰 편이며, 인별국의 직결운행의 개념도 이때문에 생겨났다. 그래서 인양 지하철과 활발하게 직결운행하기에, 의외로 도심 깊숙히까지 연계가 잘되어있는 편이다.
주로, 인양시 외곽과 주변위성도시지역 연계교통수단으로 자리잡아있어, 많은 수요를 분담하고 있다. 노선별로 요금이 천차만별이며, 서로 환승이 되지 않는 노선들도 일부 있으니 주의해서 타도록 하자.
고속철도
인양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속철도 정차역을 보유하고 있다.[12] 이중, 가장 메인이 되는 역은 인양역으로, 국가의 수도 답게, 가장 고속철도 이용객이 많은 역이기도 한다.
버스
인양시에서 운영되는 시내버스는 간선, 지선, 순환, 급행, 광역, 심야, 마을 이렇게 6가지로 나뉜다.
중심도로인 강희로부터해서, 많은 메인간선도로에 버스중앙차로가 설치되어있어, 대부분의 버스들은 그 길로 다닌다.
차량대차를 좀 특이하게 하는데, 한 날짜에 맞춰 수십대의 버스를 한꺼번에 대차 시킨다는 점(!)과 새로 출시한 버스차량을 6개월 뒤에 뽑는다는 것이다.
행정구역
현재 26개의 구를 도시 내에 두고 있다. 주변 위성도시들을 흡수해서 만들어진 인양시라 그런지, 각 구별로 성격이 강한 편[13]이며, 지역별로 특색이 잘 드러나있다.
인양에는 주요도심이 총 3곳으로 나뉜 다핵도시이며, 인양 강희로 원도심[14], 개화신시가지, 화도로 꼽힌다. 부도심지역으로는 조포구, 원백구, 흥학구, 공양구, 마곡구, 천정구, 장포원구, 혜림구 이렇게 총 7군데로, 주변지역까지 흡수해서 만들어진 거대한 광역권이 한 도시로 묶인만큼 도심과 부도심 갯수가 많은 편이다.
메트로폴리스
인양시는 앞서 서술했듯이, 주변의 여러 위성도시를 흡수하여 거대한 몸집에 이르게 되었다. 즉, 인양 주변 광역권을 전부 흡수해 인양특별시 하나로 만들어낸 셈.[15]
해외에서도 이를 인지하여, 인양시를 영문표기할 때, 'Great of Inyang'으로 표기하는 사례가 많다.
위상
수도로서의 인양
인양특별시를 품 안에 끼고 있는 강양주와는 떼어낼 수 없는 필연적인 관계이다. 강양주내에 위치한 도 3개가 전부 인양시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으며, 강양주의 교통 및 인구분포도 인양시를 중심으로 퍼져있기에, 인양시가 강양주로부터 분리되었더라도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 있다. 특히, 강양주 만포광역시가 이토록 성장하게된 배경도 인양시의 위성도시 격으로 성장하였던 것이 가장 컸다.
친환경 도시정책
인별국의 모든 도시들중, 가장 활발하게 친환경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이 5등급인 차량은 전면 인양시 진입이 불가하며, 4등급 차량도 일부 규제에 나서고 있다.[16] 또한, 시내버스에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소/전기버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1인당 탄소배츨도 상당히 하위권에 속한다. 또한 2017년, 국제적으로 인양 기후 협정을 체결, 전세계적으로 2015년부터 꾸준히 도시청결도를 10위권 내로 유지시키는 등, 친환경과 청결한 이미지를 계속해서 축적해오고 있다.
각주
- ↑ 2024년 1월 기준
- ↑ 경계상으로는 접하나, 산으로 가로 막혀있어서 오로지 두 지역만을 오가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 ↑ 북양, 중양, 남양으로, 각각 현재 지역으로는 각각 사이쿄부, 신혜진시, 인양특별시가 되었다.
- ↑ 그러나, 현재 우리가 아는 인양시 중심지역보단, 현 인양특별시 가련구 위치, 즉, 낙양강 이남에 위치한것으로 전해진다.
- ↑ 참고로, 당시 인양시는 중구, 강희구, 내종구 일부만이었기에, 인구밀도는 타 지역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 ↑ 그 결과, 인양시 면적이 거의 2'000km²(!)에 달할정도로 거대하게 되었다.
- ↑ 이때, 공양군은 폐지가 되고, 나머지 지역은 청주도 흥학부와 대진부로 쪼개져서 편입이 되었다.
- ↑ 물론, 인양시의 면적이 무지막지하게 넓음을 감안하고 봐야된다.
- ↑ 1호선, 2호선, 3호선, 4호선, 8호선, 10호선, 12호선, 15호선
- ↑ 5호선, 6호선, 7호선, 9호선, 11호선, 13호선, 14호선
- ↑ 심지어 일부노선은 수도권 밖 송안주나 금안주 지역까지 닿기도 한다.
- ↑ 인양역, 천정역, 이선역, 개화역, 장포원역, 마곡역 총 6개나 된다.
- ↑ 특히, 인양시 남부에 위치해있던 구 흥학시에 설치된 구(흥서구, 가련구, 암안구, 낙양구, 은성구)들이 더욱 도드라지는 편이다.
- ↑ 중구, 강희구
- ↑ 인별국의 광역시들도 이와같이 광역권을 흡수하여 광역시 1개 = 광역권 1개로 묶인다.
- ↑ 2022년 이후로 디젤시내버스도 진입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