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마천루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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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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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시자 이제용 황제
설립 년도 2360
법왕 김한결
계통 아브라함 계통
소재지 전주

제국 국교회는 호남과 호서 지역에서[1] 주로 신앙되는 종교로, 신성 복음 연합의 국교이다.

역사

설립배경

사변 이후 전라도 지역은 개신교가 약간 우세하긴 했지만 여러 종교들이 있었고 느슨한 무역 연합 체제는 어느 종교도 다른 지역의 종교에 억압을 가하기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의 평화와 다양성이 어느정도 보장되었다.

그러나 김제회의 이후 반 김제 연합이 승리함으로서 김제국왕이 지지 기반으로 삼았던 증산도 계열의 종교는 전부 탄압당하였다. 김벽원과 증산도의 교령이 주고받은 밀서가 발견되며 처형된 이후 증산도의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많은 신도들이 죽었고 진압 과정에서 성지가 파괴되어 절과 교회가 들어섰다. 진압된 이후 증산도에 대한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또한 연합 왕국이 세워진 이후 2대 황제 이문호는 중앙집권화를 위한 반발을 무찌르기 위해 비교적 우세한 개신교를 선택하였다. 그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가 되었고 목사들을 이용하여 연합을 주무르고자 하였다

그러자 연합의 수도였다는 특권의식이 있던 원불교도들이은 반발하여. 이문호의 즉위 3년차에 원불교도들은 조직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이를 무마하려던 김무홍의 가문을 몰살하고 원불교 종법사 청산 임효신을 국왕으로 옹립한 후 익산원국의 건설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이들도 진압당하였고 그 이후 교세가 줄어들어 연합의 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로 나뉘어지게 된다.

그리고 3대 황제 이제용이 즉위하자 그는 철저히 자신의 권위를 위해 종교를 이용하였고 자신의 지배를 거부한 천주교 세력을 배척하여 제국을 개신교가 장악하도록 유도한다. 천주교 세력은 붕괴되어 제국과 제국의 틈바구니인 광주로 이동하였다.

마침내 개신교는 연합의 국교가 되었으나 황제는 단순한 단일 종교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개신교를 재조직하려 시도한다.


제국 국교회의 설립

재조직 시도에 앞서 황제는 차근차근 비대해진 개신교의 치부와 약점을 파악해 두었고 마침내 준비가 다 되었다고 판단하자 주요 성직자들을 전주로 불러 전주 공의회를 선포했다.

마침내 성직자들이 오자 황제는 포섭해둔 성직자들과 파악해둔 약점으로 그들을 쥐락펴락 하는데 성공했고 마침내 개신교 세력을 한데 묶어 제국 국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 제국국교회에 소속되길 거부한 이들과 민중들을 혹세무민하며 헌금을 착취한 목사들은 관용없이 솎아내어 처형 혹은 추방형을 내렸고 이 때 한무리의 목사들이 연변으로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설립 이후

개신교가 제국 국교회로 재조직된 이후 밥값을 하는데 성공한다. 단순한 신앙생활뿐 아니라 행정적, 정보적 이득을 크게 얻을 수 있었고 이는 3대 황제가 죽을때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3대 황제의 죽음 이후 박중현이 즉위하고 효과적인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어느정도 세속적인 권력을 지고 있던 국교회도 급속히 타락하기 시작한다. 이는 2418년 혁명에 어느정도 지분을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부패와 타락이었다.

~현재

2418년 혁명은 국교회를 반쯤 박살냈지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였다. 2423년 암살과 음모 그리고 혼란속에서 국교회의 수장이 된 자는 33살의 김한결 주교였다. 제국군, 혁명군, 귀족들이 다 박살난 상태에서 그가 딴 마음을 먹었으면 신성 복음 연합은 신정국가가 됐거나 어쩌먼 그가 새 왕조를 열었을 수도 있지만 그는 충성스럽게 무너져가는 제국을 지키려 시도했다.

그는 신성 기사단을 전주로 보내 왕권을 어느정도 회복시켰으며 국교회를 원 상태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20년간 계속했다. 그로인해 국교회는 부패와 타락에서 어느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고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서 최악의 상황을 막는데에는 성공했다.

  1. 실질적으로는 신성 복음 연합 내부에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