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모토 마사키
朝本正姬
조선의 제18대 내각 총리
재임기간
2012년 5월 23일 ~ 2017년 6월 1일
부총리
김원선동
정당
사회민주당 (친중파)
전임: 권등영길(제17대)
후임: 강촌회찬(제19대)
사회민주당 조선지부 총서기
재임기간
2009년 6월 4일 ~ 2016년 4월 31일
전임: 권등영길(제15대)
후임: 류시민(제16대)
신상 정보
본명
이정희(李正姬)
국적
일본합중국
출생일
1969년 12월 22일
출생지
일본 성남현 관악정
거주지
일본 합북부 15구
정당
사회민주당
-> 일본인민당
종교
무교

조본정희(일본어: 朝本正姬 아사모토 마사키[*]), 조선어 이정희(한국어: 李正姬)는 일본합중국의 사회주의 정치인이자 인권변호사, 그리고 조선의 제 18대 내각총리였으며 현재 일본인민당의 부서기이다. 사회민주당의 대표적인 친중파였으며, 현재는 후남명국(대만)에서 활동중이다.

정치 경력

사회민주당 조선지부 총서기

권등영길 전 총리가 고령으로 정계은퇴의 뜻을 시사하자 2009년 사민당 조선지부 서기장 직을 두고 여러 후보가 대립하였다. 사민당 우파이자 온건 친일파였던 청송상정(일본어: 淸松相奵)과 조본정희의 경쟁 끝에 친중, 반일 민족주의를 앞세운 조본정희가 전체 득표의 52.56%를 받아 당서기로 당선되었다. 사민당에서의 비주류였던 민족해방파(영어: National Liberation, NL)가 당선된것은 굉장한 이변이었으며 사민당 일본지부에서도 우려를 표방했다. 반면 반일감정이 심한 류구와 사합린 사민당 지부에서는 축하의 메세지를 전했다. 조본정희의 대표 당선으로 사민당에서는 이처럼 큰 분열이 있었으며 사민당 내 우파가 조선민족주의에 반대하며 국민사회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제18대 조선 내각총리

조본정희는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함에 따라 5월 23일부터 공식적으로 총리 업무를 시작하였다.

일본인민당 부서기

2016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대패하고 단독과반선을 상실하자, 조본정희는 책임을 지고 서기장직을 사퇴하였다. 몇달 후 당내 경선에서 조본정희와 대립했던 강촌회찬이 압도적으로 승리하 조선지부 서기장으로 취임하자 조본정희는 사실상 당내에서 활동을 중지하였다. 조본정희는 2017년 3월 5일 류시민과 강촌회찬을 부르주아지들의 파수꾼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인민당 후남명지부에 입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8년 당내 경선에서 조본정희는 19.53%를 득표해 당내 서열 4위인 부서기가 되었다. 2019년 후남명 제정의회 선거에서 조본정희는 합북 15구에서 출마해 50.33%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평가

비판

친중 반일적 행보

조본정희가 내각총리로 재직하면서 종주국이었던 일본과의 마찰이 극심하였고, 이는 일본합중국의 정치적 근간인 연방국가제를 흔들어놓았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때문에 일본과 조선의 갈등이 격화되어 일본 정부 당국이 조선을 합중국 가맹국에서 제외할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하였다. 정치 전문가들은 일본제국과 조선의 경제적, 정치적 위신이 비슷해지면서 일어난 조선 정치계의 반란이라고도 평가한다. 조본정희의 외교관은 심지어 중국계가 많은 후남명국에서까지도 비판받았는데, 이는 조본정희가 중국 공산당을 옹호하는 발언들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본정희는 중공에서의 인권 유린을 옹호하는듯한 발언을 하기도 하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북경 출신 난민이 많이 거주하는 인천현과 북방의 양강현과 중강현에서는 조본정희의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매일같이 열렸고 이는 2016년 총선에서 신정당이 북부 선거구에서 압승을 거두는데 발판을 마련하였다.

사민당 내부에서의 갈등

조본정희는 당내 중도파인 강촌회찬과, 당내 우파인 류시민과 크게 갈등하였다. 주로 외교방안에서 충돌하였지만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에서도 크게 충돌했다. 사회자유주의를 표방한 류시민은 조본정희를 사회주의자의 탈을 쓴 수구반동이나 다름 없다고 비판하였다. 실제 조본정희의 여성정책과 LGBT 정책은 신정당의 정책보다도 더욱 우파적이라는 평가가 있었으며, 대중문화에 대한 탄압도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경제적 문제로써는 조본정희는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했는데 이것은 포퓰리즘이라는 이유로 우파 뿐 아니라 사민당 내부에서까지 비판받았다. 결국 조본정희와 당내 중도파, 우파와의 갈등은 2016년 총선 이후 조본정희가 거의 쫓겨나듯 조선 정계를 떠나 남명정계에 정착하게 된 이유를 제공했다. 조본정희가 2017년 사민당을 탈당하고 인민당에 입당하자 대부분의 사민당원이 왜 이제서야 탈당했냐며 비난할정도로 신정당에서보다 사민당에서의 비판이 더 강했던 정치인이었다.

실패한 경제정책

조본정희는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했는데 너무 시대를 벗어난 포퓰리즘적 평가라는 평가가 많다. 조본정희의 복지정책 대부분은 황해와 일본해의 유전 개발에 근간을 뒀는데 2015년 독일에서의 셰일가스 혁명으로 인해 사실상 석유 시추사업은 파산하였고 조선의 경제적 상황도 크게 나빠졌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조본정희는 재정적자를 매우려고 긴축정책을 실행했으나 이 역시 사민당 내부에서 크게 비판받았다. 뿐만 아니라 조본정희가 사회주의에 대해서 완전한 이해를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혹이 가고있다. 류시민, 강촌회찬과의 당내 토론에서 사회주의 경제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얼버무려 설명하자 강촌회찬은 이러니까 사회민주당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은것이라고 조본정희를 크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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