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H. W. Bush Administration | |||||||||||||||
1989년 1월 20일 ~ 1993년 1월 20일 | |||||||||||||||
출범 이전 | 이후 | ||||||||||||||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 빌 클린턴 행정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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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지 H. W. 부시 행정부는 1981년 1월 20일 제40대 대통령 조지 H. W. 부시의 취임과 함께 시작하여 1989년 1월 20일까지 존재했었다. 텍사스 출신의 공화당 의원이자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두 차례 부통령을 지낸 부시는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후 대통령에 취임했다. 부시 행정부는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빌 클린턴에게 아슬아슬한 패배 후 끝났다. 부시는 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의 아버지다.
부시 행정부는 냉전의 종식과 새로운 미소관계의 정립으로 대표된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부시는 헬무트 콜 서독 총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고르바쵸프의 망설임을 극복시켜 독일 통일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또 부당하게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맞선 국제연합군을 이끌었으며, 파나마의 독재자를 타도하기 위한 군사적 결정도 지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서명해 미국, 캐나다, 멕시코로 구성된 3국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었다.
국내 문제에서 부시는 레이건 행정부 아래에서 1980년 이래 3배로 늘어난 대규모 연방정부 재정적자에 직면했다. 부시는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공약을 철폐하고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가 제안한 증세와 축소 예산안에 동의했다.
걸프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한 여파로 부시가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부시는 클린턴에게 패배했다. 패배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66%의 지지율로 퇴임했고 2018년 사망할 때까지 대중의 인기를 유지했다. 역사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부시는 대체로 평균 이상의 대통령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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