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의원

일본 국회
중의원
衆議院 | House of Representatives
개원 1890년 11월 29일
중의원 의장 센쥬 츠나데 (소년, 시마네 1구, 9선)
중의원 부의장 이츠카 코토리 (과학, 도쿄 4구, 5선)
사무총장
중의원 의원 정원 480석 중 재적 480인
주소 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초1초메 7-1
최근 선거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차기 선거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개요

중의원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 국회에서 하원을 부르는 말이다. 상원인 참의원과 함께 일본의 국회를 구성한다.

원내 구성

일본국 국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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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쿠고 내각
(2023 - )
연립여당

소년동맹
 71석 180석 

과학당
 87석 146석 

아이돌총연합
 21석 35석 
야당

제로당
 22석 66석 

극동결사
 21석 29석 

메카무스메 통합단
 17석 23석 

열풍당
 9석 1석 
재적 248석 · 480석
좌측은 참의원 의석 수, 우측은 중의원 의석 수

현재 원내 여당은 소년동맹, 과학당, 아이돌총연합이다.

상세

자격

선거권과 피선거권 모두 11세 이상의 일본 국민에게 있다.

현행 일본 국회의 모태인 일본민회는 1720년 창설되었다. 당시 의원직은 세습되었지만 총원이 599명으로 정해져 있어 600명을 넘어갈 경우 민회 내에서 퇴출투표를 실시했다. 가문을 퇴출하는 제도였기 때문에 힘이 약한 지방 가문들이 주로 퇴출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이 등원할 때는 그 퇴출된 가문도 투표권이 있었기 때문에 퇴출된 가문에 박하게 대하지 않는 전통이 있었다. 또 일본총독이라는 행정부의 장도 의원 뿐만아니라 귀족전체의 투표로 당선시켰기 때문에 전체 귀족들의 민심을 읽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시기였기 때문에 딱히 의원을 맡을 수 있는 나이에 하한이 없었다.

그러나 1780년대 후반부터 1790년대 내내 이어진 작황불안과 기근으로 귀족정 체제에 대한 민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또한 18세기 중반 사무라이 중심의 방위체제에서 일반농민들을 징집하여 상비군으로 운용하는 전열보병 개념이 등장하면서 이미 사무라이 귀족정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었기도 했다. 결국 카스미가오카 노구치제1차 일청전쟁이후 1804년 제국의회를 창설함으로써 현재 일본 국회와 같은 양원체제가 들어서게 되었다. 구 민회는 귀족회의라는 이름으로 개편되어 상원이 되었고, 새로 평민회의라는 하원이 생겼다.

평민회의는 1804년 개원 당시 연간 국세를 10엔 이상 납부한 이력이 있는 25세 이상의 남성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졌다. 이후 1888년 도쿄에서 일어난 폭동을 계기로 1890년 귀족회의가 귀족원으로, 평민회의가 중의원으로 바뀌었다. 귀족원은 회기를 이어갔지만, 중의원은 회기를 이어가지 않아 1890년에 치러진 총선을 1회 중원선으로 규정한다. 어찌되었든 이때 국세를 연간 한 번이라도 납부한 25세 이상의 남성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확대되었다. 1925년 보통선거법이 개정되어 25세 이상의 모든 남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으며, 1946년 선거법 개정으로 20세 이상의 모든 성인에게 선거권이, 25세 이상의 모든 성인에게 피선거권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1984년 총선을 앞두고 나카소네 내각과 자민당의 지지율이 크게 흔들리자 선거권 11세, 피선거권 13세라는 당시에 꽤나 비판받은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 때 유입된 투표권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인기투표성향이 짙고, 부모님이나 선생님, 연예인 등이 지지하는 후보에 그대로 표를 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우민화 정책이 아니냐는 일본사회당의 비판이 많았다. 또 10대 국회의원이 탄생한다고 하면 도대체 정치나 국정에 대해 무엇을 알겠느냐는 비판도 거셌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카소네 내각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마음에 들지 않던 구조나 제도를 손볼수도 있는 기회라는 식으로 선전했다. 내각의 선전에 탐탁치는 않지만 데즈카 오사무나 미야자키 하야오 등 여러 예술인들이 처음 조직된 열풍당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신세대 정치인들의 국회 입성을 이뤄내는 초석이 되는 선거법 개정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여러 비판이 많았지만 1992년 열풍당-사회당 연정의 아테나 내각과 1996년 열풍당 단독집권인 나구모 내각의 안정적인 국정운영 이후 10~20대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상승했고, 국내에 한해서 현재는 크게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사실 일본이라는 국가가 거대하면서도 효율적인 관료제를 운용하던 나라였기 때문에 정치인이 몇 심지어 어린이로 바뀐다고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신세대의 정치권과 관료들 간에 마찰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며 관료층도 세대가 바뀌고 몇번의 인사개편을 통해 정치권과 대립하거나 전통을 고수하지 않고 신세대 정치인들의 정책이라던지 추상적 구상을 구현하는데 힘쓰고 있다. 이후 마가츠가미 내각에서 2015년 9월 선거법이 개정되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11세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11세로 통일한 2015년 선거법 개정은 정치 참여의 폭을 넓힌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한편, 여전히 '정치적 판단 능력'과 '책임감'을 논거로 연령 상향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일부 존재한다. 특히 2020년대 들어 10대 유권자층을 겨냥한 정당들의 선거 전략이 과도한 포퓰리즘으로 흐른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감성 마케팅이나 연예인 연계 캠페인 등이 도를 넘는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선거권 연령을 되돌리자는 주장이 주류이진 않지만, 일부 정치평론가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치의 유아화' 우려가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잦은 해산으로 인해 선거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차라리 임기 4년을 꽉 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도 존재하긴 한다.

임기

임기는 4년이다. 그러나 총리중의원 해산을 시행하면 즉시 임기가 종료되고 해산일로부터 20일 이내에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시행된다. 중의원 의원이 임기를 꽉 채웠던 경우는 1992년의 신세대 쇼크 이후 지금까지 12번이나 치러진 선거 중에서 단 2번 밖에 없었다. 1951년 도쿄선언부터 신세대 쇼크 직전까지 41년간 14번의 선거 중 7번이 임기만료였던 것을 생각하면 임기 4년을 채우기가 꽤 어려워졌음을 알 수 있다. 신세대 정치로 와서 해산이 잦아진 이유에는 다당제 구도를 꼽는다. 이케다의 유산 시기에는 자민당과 사회당이 권력을 양분했기 때문에 비교적 정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지만, 권력이 분점되어있는 신세대 정치에서는 보통 연립으로 정권을 잡기 때문에 내각을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정수 및 선출 방법

권한

표결

중의원 해산

개요

절차

역대 선거

위원회

의원 목록

홋카이도

홋카이도 비례권역은 홋카이도 지역을 관할하는 비례선거구로 지역구의원 12명, 비례대표 8명을 선출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