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前 대용 비터즈 선수, 賢 대용 비터즈 코치인 최주환의 선수시절 경력을 정리한 문서.
아마추어 시절
대용고등학교에서 에이스 내야수로 여러 경기들을 재패할 정도로 강력한 타격력과 높은 수비능력을 보이며 거포+수비천재로 소문났다.
대용 비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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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3 최주환 1992~2013 |
자신의 야구인생을 바친 대용 비터즈 시절.
1992~1995년
1992년 5월 15일, 박상철의 대타로 나온 데뷔 첫 타석 안타를 때리는 모습.
1992년 5월 15일 경기에서 박상철의 대타로 나와 첫 타석부터 안타를 때리며 기대를 모았지만 이후 또다른 기대 중 하나던 수비에서 크게 약한 모습을 보이며 곧바로 말소됬다.
이후 8월 20일 경기에서 1군에 다시 등록되어 박상철의 대타로 다시 나왔으나 삼진을 당하고 말소됬다.
이후 한동안 1군에서 보이지 않다가 1993년 이상진 당시 감독의 부름을 받아 지명타자로 1군에 나오기 시작했다. 수비에서의 문제를 보고 결정한 듯 하다. 1993년엔 47경기 27안타 2홈런을 기록했다.
1994년부턴 거의 선발로 나오며 지명타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였다. 특히 1995년엔 100경기 67안타 5홈런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보였다.
1996년
IBO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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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인별시리즈 5차전, 빠져나가는 타구를 잡아 미래 그리핀즈의 역전을 막아내는 호수비
1996년 이상진 감독이 다시 수비의 기회를 주며 개막전에 지명타자가 아닌 야수로 출전했는데, 자신의 주 포지션이던 3루수가 아닌 2루수로 출전했다. 주 포지션인 3루수가 아닌 2루수로 출전한 터라 우려가 있었지만 예상과 다르게 고교시절 수비를 보여주며 개막전을 마무리했다. 이후 줄곧 주전 2루수로 출전하며 1번 타순에 자주 배치됬다.
6월 13일 자신의 데뷔 첫 만루홈런을 때렸다.
이후 후반기에는 7개의 홈런을 더 때리며 거포 2루수라는 타이틀을 썼다. 1996년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129경기 타율 0.301 129안타 7홈런. 인별시리즈 엔트리에도 등록되며 여러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고, 데뷔 4년차에 우승반지를 끼게 되었다.
1997~1999년
1996년 큰 활약을 했던 최주환은 1997년 시즌에도 큰 기대를 모았으나 96시즌의 모습은 어디가고 부진하기 시작했다.
1997년 81경기 57안타 2홈런을 기록했고, 1998년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2군으로 내려갔다.
1999년 다시 지명타자로 기용됬으나 대타로 가끔 나올까말까 수준이었고, 16경기 나와 단 4안타를 쳤다. 그렇게 다시 잊혀지게 되나 싶었으나...
2000년
![]() 대용 버니즈 우승선수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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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O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수상자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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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이 8:5로 지던 인별시리즈 5차전, 극적인 역전 만루홈런을 때린 후 환호하는 모습
2000년 팀이 대용 버니즈로 새롭게 출범하고, 걱정과 함께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싹 사라졌다. 3루수로 선발출장한 최주환은 개막전 5타수 5안타 1홈런이라는 엄청난 행보를 보이며 팬들의 기대를 다시 한번 모으게 됬다.
최주환은 그 기대에 보답하듯 치기만 하면 안타와 홈런을 쏘아올리며 5번타자까지 올라왔다.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138경기 출장 173안타 26홈런. 인별시리즈에선 주전 3루수로 출장해 첫 만루홈런을 기록하는 등 정규시즌과 다를바없는 활약을 펼치고 2번째 우승반지를 끼게 됬다.
2001년
IBO MVP 수상자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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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O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수상자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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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 그리고 자신의 4번타자 계보의 시작
2001년 시즌 시작 전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여전한 타격을 보여주었다.
2001년 개막전에서 4번타자로 출장했다. 5타수 5안타를 때려내며 4번타자로서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계속 선발 4번타자로 출장하며 전반기에만 무려 27홈런을 쏘아올렸다.
2001년 올스타 베스트12에 선정되며 데뷔 9년 만에 올스타전에 출장했다.
후반기에도 4번타자로 출장하여 10홈런을 추가로 쏘아올렸다. 특히 후반기에만 2번의 그랜드슬램을 기록했다. 그러나 수비 도중에 부상을 당하며 8월말부터 나오지 못하다 9월 중순 지명타자로 나온 이후 다시 3루수로 복귀했다.
페넌트레이스 기록은 144경기 출장 181안타 37홈런.
포스트시즌에서도 4번타자로 기용되며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시즌 후, 2001시즌 4번타자로 쭉 기용되며 기존 4번타자였던 이경언의 후계자로 기대를 모았다.
2002년
2002년 인별시리즈 4차전, 준우승이 무색해진 순간 만회 솔로포를 치는 모습
2연속 우승의 영광을 안고,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후 2002시즌 캡틴이 되고, 4번타자로 출장했다.
2002시즌에도 맹활약하며 상위권으로 올려놓는데에 성공했고, 줄곧 유지시키는데에 기여했다.
6월 15일 자신의 첫 싸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이는 IBO 역대 2번째 기록이다.
2002년 연속으로 올스타 베스트12에 선정됬다. 홈런레이스에서 5개의 홈런을 쳐 우승했다.
페넌트레이스 최종성적은 141경기 163안타 32홈런. 팀도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인별시리즈까지 갔지만 당시 페넌트레이스 우승팀이자 인별시리즈 8전 8승 무패였던 서모릴 피닉스에 5전 1승 4패로 막혀 준우승에 그쳤다.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 대용 버니즈 우승반지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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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이박 콰르테의 활약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후계 3루수로 기대받던 정익현이 홈런을 치고 최주환과 함께 기뻐하는 모습.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시즌.
2012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된 내야수 정익현이 최주환의 후계 3루수로 기대를 모으며 자주 기용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주환은 나의 후계 3루수가 등장했다는 것은 팀의 미래에 더욱 도움된다 며 이를 받아들였다.
정익현이 3루수로 기용되며 경기에 나오지 못하다, 6월부터 지명타자로 기용되기 시작하며 정익현과 함께 경기를 뛰기 시작했다.
유격수였던 김지니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자 유격수로 출장하기 시작했다.
최주환의 마지막 시즌, 팀은 인별시리즈까지 진출했으나 순양 트윈스에 3승을 가져갔으나 이후 전패하며 준우승에 그쳤고, 감독이었던 황태영은 경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