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펼치기 · 접기 ] |
| |||||||||||||||||||||||||||||||||||||||||||||||||||||||
[ 펼치기 · 접기 ]
|
| ||||||
시청소재지 | 으뜸로 12 (금릉동) | |||||
---|---|---|---|---|---|---|
광역자치단체 | 충청북도 | |||||
하위 행정구역 | 1읍 12면 12동 | |||||
면적 | 983.48km² | |||||
인구 | 207,496명 | |||||
인구밀도 | 211.05명/km² | |||||
GDP | $79억 | |||||
1인당 GDP | $38,447 | |||||
시장 | 개혁신당 이법민 | |||||
시의회 | ||||||
민주당 | 11석 | |||||
개혁신당 | 8석 | |||||
도의원 | 민주당 4석 | |||||
국회의원 | 민주당 이한석 | |||||
상징 | ||||||
시화 | 국화 | |||||
시목 | 사과나무 | |||||
시조 | 원앙 | |||||
지역번호 | 043,042 | |||||
ISO 3166-2 | KR-43 |
개요
충청북도의 시. 청주에 이은 충청북도 제2의 도시다. 충청도의 "충"이 바로 충주시에서 따왔다. 동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 남쪽으로는 충청북도 괴산군, 경상북도 문경시, 서로는 충청북도 음성군, 북쪽으로는 경기도 여주시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귀래면과 부론면)에 접한다. 충청도 전체 기초자치단체 중 면적 1위 이며, 음성군과 진천군을 합친 것보다도 넓으며 홍천군과 함께 백두대간과 수도권에 모두 경계를 접하고 있을 정도로 넓다.
상징
시가 "충주가 좋아"
“ 1절
탄금대에 흐르는 역사의 향기 속에
미래로 달려가는 충주의 숨결
활기찬 거리마다 꿈과 사랑 넘치고
풍요로운 삶터에는 기쁨이 있네
2절
계명산 맑은바람 충주호의 밝은달
청풍명월 푸른정신 넉넉한 마음
어른은 봄이되고 젊은이는 새롭게
다함께 부른다오 사랑의 노래
3절
서리밭에 피어난 국화꽃을 보거든
충주사람 만난듯이 반겨주세요
사과나무 가로수에 황금가을 별처럼
따사로운 가슴마다 꿈이 큰다오
후렴
언제든지 오세요 고향같은곳
누구든지 만나면 형제 된다오
충주가 좋아 오늘도 충주산다오
충주가 좋아 내일도 충주살래요
충주가 좋아 충주가 좋아 충주 산다오”
충주시가로 사용중인 곡이며, 충주맨 유튜브 아웃트로에서 전주부분이 나온다.
충주시 시민의 노래
마찬가지로 충주맨 유튜브 인트로에서 전주부분이 나온다.
충주시청
역사
3세기 중반경 금릉동에 위치했던, 천안, 홍성 등과 같은 전형적인 마한 거수국이 번영하였다. 그러나 백제가 천안 용원리 세력을 제외한 청당동 목지국 본류 세력 및 홍성 세력 등 충청에 소재한 모든 목지국 잔여 세력을 강제로 해체하던 4세기 중반 비류왕 재위기에 백제의 직접 지배령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칠금·금릉동 문서 참조. 이후 기원후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정복하며 개로왕을 패사시킨 뒤 남하하여 충주 일대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된 고구려는 충주를 우벌(于伐)성 이라고 불렀다. 이 시기의 흔적이 바로 그 유명한 충주 고구려비로 현재에도 이를 비롯한 유물, 유적이 남아있다. 551년 신라 진흥왕이 이곳을 점령한 이후에는 신라에 속했고, 그때 국원이라는 의미가 큰 명칭을 붙이게 된다. 또한 562년 가야 반파국(대가야) 멸망 후 반파국의 지배층 유민들 상당수가 국원소경으로 이주되어 규모가 더더욱 커지게 되었다. 남북국시대에는 늘어난 5소경 중 하나인 국원소경이었고, 신라 경덕왕의 한화정책으로 중원경으로 고쳐졌다. 이러한 역사를 놓고 어떤 이들은 "충주는 한반도의 중원으로 충주를 차지한 나라가 전성기를 누렸다"는 발언으로 애향심을 고양하기도 한다. 국보 제6호인 중앙탑(정식 명칭은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이때 조성된 것으로 당시 이곳이 국토의 중앙임을 나타낸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 충주목이 되었다. 1254년에는 국원경(國原京)이 설치되어 일시적이나마 서경, 동경, 남경에 맞먹는 위상을 차지하였으나 곧 폐지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이 명칭은 유지되어 청주와 함께 충청도의 명칭을 이루었으나, 명종이 즉위한지 얼마 안 되어 터진 역모 사건 때문에 문정왕후에 의하여 반역향으로 찍혀 유신현으로 강등, 충청도란 이름도 한동안 충주 대신 홍주를 넣어 청홍도로 불렸다. 충주로 복구된 후에는 줄곧 충청감영이 있었으나 1602년 공주로 이전되었다. 구한말에는 충청북도청 소재지였다. 1906년 감곡면, 생극면, 삼성면, 대소면, 금왕면, 맹동면 지역이 음성군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1908년에 충청북도청 소재지 지위를 청주에게 내주었다. 1914년 소이면이 음성군으로 편입되었고 감물면, 율지면이 괴산군에 편입되었고, 덕산면이 제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31년 충주면이 충주읍으로 승격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되어 분리되면서, 나머지 충주군 지역은 충주의 남북국 시대 이름인 '중원경'에서 따와 '중원군(中原郡)'으로 개칭되었다. 1963년 괴산군 상모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었다. 1987년 제원군 한수면의 서운리 호운리 함암리 포탄리 명오리 사기리 6개 리가 중원군 동량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도농통합으로 중원군이 충주시와 통합되었고, 그 해 3월 주덕면이 주덕읍으로 승격되었다. 2005년 상모면이 수안보면으로, 2012년에는 이류면이 대소원면으로, 2014년 가금면이 중앙탑면으로 개칭되었다.
지리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 깊숙히 있으며 대체로 산지가 중심이고 시내가 월악산을 포함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기 때문에 일교차가 매우 심해 봄과 가을에는 아침에는 옷을 많이 껴입어도 춥지만 오후쯤 되면 입던 옷들을 벗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로 기온이 상승한다. 거기다 충주를 관통하는 남한강과 충주호, 탄금호, 호암지 등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인해 안개가 엄청 자주 낀다. 심할 때는 아침에 축구를 하는데 한쪽 골대에서 반대쪽 골대가 안보이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도 안보일 정도이다. 제천시만큼은 아니지만 내륙 한가운데+산악지대에 위치한 도시고 도시 규모도 작아 열섬 현상 같은건 없다보니 남한 내에서 겨울에 무척 추운 도시중 하나고], 대신 여름엔 일교차가 크고 낮에는 덥더라도 열섬이 없다는 특성 덕에 열대야 발생이 적어 쾌적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충북다운 기후를 띄고 있다. 일교차가 큰 기후의 영향으로, 지역 농특산물인 충주사과의 당도가 매우 높다. 중앙을 남북으로 흐르는 남한강과 그 지류인 달천유역에 침식분지가 발달되었고, 평야가 분포하고 있다. 남한강 본류 지역에는 하안단구 지형을 나타낸다. 19세기 이전에는 한강뱃길과 육로교통의 길목이어서 국원성, 중원경이라하는 충청도의 행정, 문화, 경제 중심이었으나, 20세기에 들어서는 충청북도청의 청주 이전과, 1905년 경부선 개통으로 인해 오랫동안 경기도 - 충청도 - 경상도를 오갔던 충주 - 문경으로 거치는 조령과 보은 - 상주로 거치는 화령으로 가는 교통로가 타격을 입었고, 국가개발축에서 비켜나가면서 충주는 한동안 도시발달이 정체되었다. 그러나 2004년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압도적인 도로 강세 지역으로 변화하는 한편 수도권과 경상도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었다. 이후 중부내륙선 KTX가 일부 개통했고 차후 서울, 거제로 연장을 앞두고 있으며 충북선 고속화도 완료되면, 조선시대 수운 교통 중심지 역할을 육로로서 되찾을 전망이다.
인구
교통
경제
전형적인 도농복합시의 경제를 가지고 있는데 충청북도 내 청주시를 제외한 나머지 기초자치단체와 더불어서 농업과 축산업과 관광지를 기반으로 한 요식, 숙박, 자영업자의 비중은 높은 편이다. 1985년에 충주 비료공장 자리에 새한미디어(현 코스모신소재)가 들어서면서 지역에서 제일 큰 제조업 기업이 되었다. 제조업 등의 산업기반은 취약한 편이고 관내 몇몇 대기업의 제조공장 이외에는 소규모 업체만이 난립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산업적인 기반이 약하고 소비 도시의 특성을 보이고 있기에 2000년대 넘어서 인구가 유출되고 있었다. 그러나 중부내륙고속도로와 평택제천고속도로 등의 교통접근성 개선 충주지식산업도시, 충주메가폴리스일반산업단지, 충주첨단산업단지 등의 개발로 어느 정도 공장의 건설은 이어지고 있으나 활발한 편은 아니다. 충주에 공장이 있는 주요 기업은 유한킴벌리, 동화약품, 롯데주류, 현대모비스, 현대성우메탈등이 있다. 2019년 5월 현대엘리베이터가 기존 충주 1-4일반산업단지에 인접해서 40,000여 평을 새로 확장하는 5일반산업단지에 본사 및 공장을 이전했다.
상권
금융
관광
조선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전사했고 그전에 먼 옛날 우륵이 가야금 타던 탄금대와 충주댐, 충주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장미산성, 충주산성이 유명하다. 이들 명소는 이 지역 초중고교생의 단골 소풍 장소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과장 좀 보태서 초중고교 당일치기 소풍은 전부 탄금대 아니면 중앙탑으로 가기도 했었으나 요즘에는 저학년이 아닌 이상 거의 가지 않는다. 다만 졸업사진을 찍기 위한 목적으로는 자주 사용된다. 보통 학교 차원에서 버스를 운행하지 않고 현지 집합시킨다. 주로 학생들은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충주댐으로도 소풍을 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봄철 벚꽃이 피는 시기 빼고는 달리 주변에 볼 것이 없다. 시간이 나는 사람이나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즈막재를 시작으로 충주댐과 충주호를 돌아보는 둘레길인 종댕이길을 걸어보는것도 좋다. 또한 국내 유일의 고구려비로 유명한 충주 고구려비 역시 시 차원에서 관광자원으로 개발 중이다. 과거에는 지방도 삼거리에 대충 보호벽만 둘러싸 놓았다가 현재는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비석을 보관하여 입장료 없이 전시하고 있으며, 주변 토지까지 매입해 부설도로를 신설해가면서 관광자원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거기에 국내 유일이란 점을 내세워 단양군의 온달산성, 온달동굴과 함께 고구려 관광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려 노력중이다. 수안보면에 있는 수안보온천과 앙성면에 있는 능암온천이 유명하다. 수안보온천은 한때는 온양, 도고, 부곡온천 등과 함께 관광지로서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지금은 워터파크, 스파 등의 개발로 휘청. 폐건물 항목에서 충주의 폐건물을 찾아보면 수안보에 많이 있는데, 수안보 개발 도중에 인기가 떨어지면서 엎어진 것이 대다수이다. 그래도 충주시에서 온천수를 중점 관리한다는 건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장점이다. 능암온천은 국내 유일의 천연탄산천. 이산화 탄소가 온천수에 녹아있어 혈액순환 등에 좋다고 선전한다. 처음 들어가면 탄산 때문에 약간 따끔한 느낌이 들지만 금방 적응된다. 근데 피부에 뭐가 난 채로 들어가진 말자. '상처에 소금 뿌리기'가 뭔지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 외에는 수안보면에 이글밸리 리조트(구 사조리조트) 스키장이 있었다. 시설은 차마 좋다고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충주권에서는 가깝기 때문에 사람이 오긴 왔으나, 2015년 영업중단 후 2019년 최종적으로 철거되었다. 여담으로, 이 리조트는 수안보 온천지구에서도 약간 떨어져있고, 주변에 스키장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만한 관광시설이 없어서 여름철에는 수련회장으로 활용되어 충주시내 중,고등학생들의 헬게이트가 되었으나 현재는 수련회나 소풍으로 이용되는 일이 전혀 없다. 수안보면에는 월악산국립공원이 있다. 충주호를 관람하는 충주호유람선도 타볼만하고 최근 탄금호 전기유람선도 생겨 탄금호와 탄금대교를 관람 할수있다.
관광자원
축제
충주에는 독특한 축제가 많다. 사과축제, 복숭아축제, 고구마축제 등 농특산물관련 축제와 우륵문화제, 충주세계무술축제, 호수축제 등이 있다. 충주세계무술축제는 유네스코가 공식후원하는 축제로 세계무술과 문화의만남이라는 주제로 40개국에서 참여하여 풍성한 볼거리를 보여준다. 예총에서 주관하는 우륵문화제의 경우 48회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륵이 가실왕의 명령을 받고 창작했다는 12악곡을 들을수 있다. 일부에서는 문화제 기간동안 우륵이라는 테마보다는 흥행을 위한 공연 위주로 구성되어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었다는 비평도 있다. 호수축제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풍부한 수자원을 가진 탄금호를 활용하여 수상관련 경기및 관광축제을 개최하는 것으로 시민과 관광객이 참여하는 레포츠 개념의 축제를 지향하고 있다. 축제기간 이외에 조정 대회 장소는 세계 조정선수권대회를 개최한 경험으로 전국단위 대회 등을 많이 유치해서 활용성은 높은 편.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 경기장소가 마땅한 곳이 없어서 전국체육대회의 경우에도 개최지가 타 지역이라도 조정종목만은 탄금호에서 하기도 한다. 1988 서울 올림픽 때 요트 종목 경기는 부산광역시에서 한 것과 마찬가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조정 경기도 이곳에서 했다. IOC가 도쿄 올림픽 때 조정 경기를 여기서 하고 대신 평창 올림픽 일부 종목을 일본에서 하자는 제안을 해 말이 많았다. 딱히 두 나라 모두 그 제안에 관심이 없었고 결국 당시 박근혜정부가 거절해 없던 일이 됐다. 2020년 5월 전국에서 AM라디오 방송이 제일 먼저 송출이 중단된 곳이다.
문화재
국보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 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 국보 제6호 (지정일 : 1962-12-20)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 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塔 ) 국보 제102호 (지정일 : 1962-12-20) * 서울 용산구 소재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 국보 제197호 (지정일 : 1979-05-22) 충주 고구려비 ( 忠州 高句麗碑 ) 국보 제205호 (지정일 : 1981-03-18) 보물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 忠州 億政寺址 大智國師塔碑 ) 보물 제16호 (지정일 : 1963-01-21)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 忠州 淨土寺址 法鏡大師塔碑 ) 보물 제17호 (지정일 : 1963-01-21)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 忠州 彌勒里 五層石塔 ) 보물 제 95호 (지정일 : 1963-01-21)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 忠州 彌勒里 石造如來立像 ) 보물 제 96호 (지정일 : 1963-01-21) 충주 철조여래좌상 ( 忠州 鐵造如來坐像 ) 보물 제 98호 (지정일 : 1963-01-2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 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塔碑 ) 보물 제359호 (지정일 : 1963-01-21) * 서울 용산구 소재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 忠州 丹湖寺 鐵造如來坐像 ) 보물 제512호 (지정일 : 1969-07-18)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앞 獅子 石燈 ) 보물 제656호 (지정일 : 1979-05-22)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碑 ) 보물 제658호 (지정일 : 1979-05-22) 선림보훈 ( 禪林寶訓 ) 보물 제700-2호 지정일 : 2017-10-31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 ( 忠州 鳳凰里 磨崖佛像群 ) 보물 제1401호 (지정일 : 2004-03-03)
교육
고등학교 진학에 중학교 내신을 반영한다. 즉 소위 비평준화 지역인 곳이다. 그래서 이 동네는 중학생 때부터 내신 관리의 헬게이트가 펼쳐진다. 그러나 2021학년도부터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가 시행된다. 기성세대들은 대체로 남학생은 충주고, 여학생은 충주여고를 높이 쳐준다. 특히 충주고는 1960년대 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에서 상위권에 드는 지방 고등학교 였으나 지금은 예전만한 위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그 외에는 시내 사립고, 특성화고가 존재한다. 또한 외국어고등학교가 있었다. 2010년까지 운영되다가 정부 정책의 변화로 외고의 메리트가 떨어져 2011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되어 운영되고 있다. 대학교로 한국교통대학교,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한국폴리텍대학 충주캠퍼스가 있다. 과거에는 극동대학교 충주캠퍼스가 한국교통대학교 인근에 위치해 있었으나 2009년 2월에 입학자원 감소로 인해서 폐교되었다.
생활문화
주거환경
충주시의 주거 형태는 과거에는 대부분 단독주택 집들의 주거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나 1980년 초반 교현동의 교현 주공아파트를 시작으로 용산주공 아파트도 건립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아파트 생활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게 된다. 그러다 1990년대 초중반에 연수동과 칠금동을 시작으로 충주시청의 금릉동 이전과 더불어 대규모 택지 개발이 시작되고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들어오게 되면서 충주 외곽 지역이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급속한 인구증가도 이루어지게 된다. 실제로 이 시기에 목행/용탄동 충주산업단지 조성과 공군 제19 전투 비행단의 창설로 인해 인구 유입이 많았던 시기였다. 2000년대 중반에는 연수 아이파크 아파트를 시작으로 충주에 신규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계룡 리슈빌과 힐스테이트를 시작으로 지금의 신연수동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대단위 프리미엄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고 충주시의 새로운 번화가가 생성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아파트와 더불어 신연수동 주변으로 원룸들이 많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2010년대에는 기업도시라고 불리는 지금의 중앙탑면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생기고 신축 아파트가 속속 많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후 호암지구에 신축 아파트들이 속속 계속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시의 인구는 20~21만을 왔다 갔다 하고 크게 인구 유입이 없는 편이지만, 희한하게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계속 생기고 있는 상태로 충주 시민들은 인구증가가 없는데 아파트가 계속 생기는 현상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거기에, 기업 도시쪽도 입찰은 영 시원치 않은 것인지, 비어 있는 곳이 많다고 하며, 대부분은 기업도시에 들어선 기업의 직원들이나 이주할 때, 같이 따라와 입찰하여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음식
남한강과 충주댐에서 잡히는 민물고기 요리도 좋고, 소태밤과 복숭아, 수안보 지역의 꿩요리도 알려져 있다. 제일 유명한 것은 역시 사과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 덕에 일교차가 커서 잘 자란다. 그래서 그런지 시가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산 지역에는 사과 과수원이 많이 있다. 정말 시골 지역이라면 어디에나 보인다. 시 차원에서도 고장의 특산물인 충주 사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사과를 활용한 요리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사과국수, 사과술 등 여러가지 개발되었지만, 딱히 사과 맛은 크게 안 난다고 한다. 그나마 사과비타민제는 괜찮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 충주 사과와 충주 밤이 등록되어 있다. 중앙탑사적공원 근처에는 메밀막국수와 메밀치킨을 주 메뉴로 한 식당이 많은데, 주말에는 대기표를 들고 수십 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식당도 있다. 막국수는 식당에 따라 다르지만 다른 지역 유명 메밀막국수와는 다르게 다소 쫄깃한 면발이다. 메밀치킨과 함께 시켜서 먹는 경우가 많고, 충주의 특산물인 사과를 활용한 소스를 개발하여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충주 자유시장, 무학시장 중간에 위치한 먹자골목순대집들도 6시 내고향등 여러 TV프로그램에 소개되고 나서는 찾는 외지인들이 많아졌다. 여기서는 시래기가 들어간 순대국밥과 순대를 팔고 있으며, 작지만 아주 매운 김치만두도 대표적으로 잘 팔리는 음식이다. 그리고 순대골목을 나와 바로 근처의 자유시장에는 백종원의 3대 천왕에 소개되었던 감자만두를 판매하는 여러 음식점들도 있다. 시내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은 적다. 롯데리아는 꽤 많으며[37] 맥도날드는 2011년에 교현동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건너편에 들어섰고, 2015년 4월 28일 연수동에 버거킹이 들어왔다. 연수점만 있다가 드디어 2022년 10월 31일에 호암동에도 신규 점포인 호암 FS점 생겼다. 한국교통대학교 대학로와 용산동,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해오름학사, 칠금동 부영아파트 앞에 맘스터치가 각각 하나씩 있다. 2016년에 연수동에 국돼리아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맘스터치가 입점하였으며 최근에는 신연수동 중심으로 프랜차이즈가 많이 생겨나는 편이다. 김밥 프랜차이즈 김선생, 한신포차, 와플대학 등 꽤 많은 프랜차이즈가 들어와있다. 호암지구의 개발로 큰 상권이 신연수동과 호암동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KFC가 없다. 과거에는 용산 주공 아파트 근처에 KFC가 있었으나 소리소문없이 폐업했다. 파파이스는 2000년대 초반까지 성서동 국민은행옆에 하나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이며 그 자리에는 맘스터치가 자리잡았다. 도미노피자가 충주 신연수동에 하나 있으며 최근에 중앙탑면 미진이지비아 아파트 상가 내에 기업도시점이 생겼다. 서브웨이도 과거에 없었다 최근에서야 호암지구의 스타벅스 호암점 옆 부지에 새로 매장이 생겨 2024년 4월 17일에 오픈하였다. 크리스피 크림 도넛은 연수동에 매장이 연수점 하나 있고 샌드위치 브랜드인 퀴즈노스도 연수동 스타빌딩에 입점했다.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인 라라코스트도 퀴즈노스와 같은 건물에 입점한 상태다. 공차는 연수동 아토몰, 성서동 차없는거리, 중앙탑면 충주기업도시에 있다. 스타벅스는 다섯 곳이 있다. 신연수동 충주연수점, 칠금동 롯데마트 맞은편 충주터미널점, 금릉동 충주시청DT점, MBC 정문 건너편에 생긴 호암DT점, 남산 근처 교현 DT점까지 도시 규모에 비해 많은편이다. 투썸플레이스도 네 곳 있다. 꽤 오래전부터 임광사거리에 위치해 있던 충주점, 신연수지구의 충주연수점, 호암지구의 충주호암점, 서충주신도시의 서충주신도시점이다. 시 외곽지역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시내 곳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외국인(주로 동남아시아)을 대상으로 하는 전용 식자재마트가 존재하며 공설 시장에는 외국어로 된 노래방 등도 보인다. 그 덕분에 외국인이 주방장을 맡아 본토의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베트남 식당 등의 숫자도 도시 규모에 비해 제법 많은 편이다.
문화시설
지방 소도시임에도 한때나마 4대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모두 보유한 곳이었다. 2011년까지 멀티플렉스 극장 하나 없이 충주 TTC 하나만 있다가 메가박스 충주점으로 전환했고, 이후 신관을 추가로 세워 운영하다가 2022년에 폐점하였다. 구관의 경우 시설이 매우 열악함에도 시내의 유일한 영화관인 탓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나 2018년 6월 연수동 아토몰 영화관 씨네Q가 8개관 1,200석 규모로 개점했다. 2019년 9월 달천동 해피몰 모다아울렛 건물에 롯데시네마가 입점하였다. 다만 규모가 작고 접근성이 나쁘고 관람료가 비싸다는 게 흠이다. 2021년 4월 새로지어진 교현동의 한스빌딩에 CGV 충주교현이 입점하였다. 그러나 씨네큐는 개점한지 4년이 지난 2022년 11월 30일부터 무기한 영업중단에 들어가더니 결국 폐점하고 2024년 3월 13일 메가박스 충주연수로 바뀌었다. 연수동에 씨네큐와 같은 상업시설이 들어오면서 성서동의 규모가 많이 축소되고 그 기능이 많이 약화되었다. 충주 시내 번화가라고 할 수 있었던 성서동 젊음의거리와 현대타운 지역을 상공에서 봤을 때 #자 모양으로 되어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작다. 1990년대만 해도 상권을 책임지던 성서동은 2000년대 후반에 연수동의 개발로 인하여 쇠퇴하는 추세이다. 현재의 현대타운은 대부분이 비어있고 있는 상가마저도 손님 없는 신발가게 같은 것 뿐이다. 과거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나오는 지하상가까지 있었다. 지금은 버려진 마네킹 같은 것이나 있고 기본적으로 텅 비어 있어서 저녁에 가면 꽤나 음산하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문화동 구 도심을 완전히 갈아엎지 않는 한은 성서동은 죽었다 깨어나도 여전히 낙후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최근들어 사이비나 이단 종교인들이 출몰하고 있으며, 신천지의 아지트도 3곳이나 자리하고 있다.영 좋지않다. 도서관은 시내에 2곳으로 시립도서관과 학생도서관이 있지만, 시립도서관은 유리궁전이라 여름이 되면 온실이 되어버리고 유리 천장에 그늘막을 쳐놔 조금이라도 햇빛을 막으려 한다. 학생도서관은 학생회관 부속건물로 매우 작다. 공연장으로는 문화회관과 호암예술관 두 곳 뿐인데, 얘들은 또 주차장이 좁다. 덕분에 큰 공연이 있으면 주변 교통은 혼잡해진다. 다만, 시에서 지원하여 운영하는 충주시립우륵국악단이 있고, 연주회도 자주 열어 그나마 이런 열악한 점이 덮여지지만, 그나마 여기도 2011년 채용 비리로 시망. 다행히 단원 물갈이를 통해 정상화되었다.막장일보직전 현재. 잘하는 점은 충주에서 열리는 모든 문화행사나 공연정보를 시에서 운영하는 카톡으로 시민들에게 보내주고 있다.카톡 백화점은 없다. 애시당초 20만 남짓한 인구로 백화점이 들어설 가능성은 극히 낮다. 백화점이 들어서려면 진주시처럼 적어도 자체 인구가 30만대 이상인 중도시 수준이거나 하다못해 여순광처럼 각 지자체별 인구는 좀 부족해도 도시권상으로는 꽤 많은 인구를 가진 경우여야 하는데 인접한 제천조차도 서로 남남이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이렇다 할 만한 도시권을 갖추지 못한 충주에게 백화점은 그림의 떡이나 다를 바 없다. 프랜차이즈 뷔페로는 신연수동에 있는 고메스퀘어 충주점이 유일하다. 예전에는 쿠우쿠우 충주점이 있었으나 폐점하고 그 자리에 새로 들어섰다.
유튜브
전국 지자체 중 구독자 수 1위, 동북아시아 지자체 중 구독자 1위, 평균 조회수 역시 몇십만은 나오는 압도적인 조회수로 지자체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여주는 유튜브이다. 현재 김선태 충주시청 홍보담당관실 유튜브 운영 전문관이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의 인기가 막강해서 일부 네티즌들은 충주시의 가장 유명한 것으로 유튜브를 꼽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