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니스파 자나코바

인별인민공화국 초대 주석
코니스파 자나코바
잔고바[1] | Conispi Zanacova
100%
본명 김장대 (金匠大, 장인 匠 큰 大)
출생 1850년 2월 27일
인별왕국 인양부
국적 인별왕국 -> 인별인민공화국
사망 1939년 6월 30일 (향년 89세)
인별인민공화국 수도공화국 대용시
임기 인별 인민당 주석
1908년 2월 13일 - 1917년 2월 13일
인별인민공화국 주석
1915년 2월 26일 - 1923년 8월 6일
인별인민군 총사령관
1915년 2월 26일 - 1939년 6월 30일
인별 인민당 제2주석
1923년 8월 6일 - 1939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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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요

인별왕국, 인별인민공화국의 정치인. 1908년 인별국 사회주의파들과 인별 인민당을 창당한 인물이며, 인별 인민당 주석, 인별인민공화국 주석, 인별 인민당 제2주석을 역임했다.

2.생애

2.1.정계진출과 사회주의 입문

1900년 50세의 늦은 나이에 정계에 진출했다. 정계진출 후 사회주의에 관심을 보이며 사회주의파에 들어갔고, 1908년 2월 13일 사회주의 정당인 인별 인민당을 창당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65세였고, 그는 스스로 초대 주석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2.2.인별사회주의내전과 권력장악

인별 인민당 창당 후, 인별왕국의 여러 정치파들과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된 갈등에 당원들과 이 일을 돌파할 해결책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당내에서 급진반란파[2]가 반란을 주장하며 자나코바에게 제안했다.

자나코바는 이 제안이 당시 제일 많은 지지를 받고 있고, 급진반란파가 당원의 대부분이었기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1915년 2월 26일 반란을 일으켜 대송도 대부분을 점령한 후 인별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리고 스스로 주석의 자리에 올랐고, 인별인민군의 총사령관 자리까지 올랐다. 이후 1917년까지 당 주석직을 같이 역임했다.

인별인민공화국 주석 임기 도중인 1923년 8월 6일 급진공산파의 쿠데타가 일어나 권력을 잡고있던 대부분의 급진사회파가 몰락하였다. 자나코바 역시 급진공산파의 공격을 받고 살해당할 뻔했지만 급진공산파는 그의 공을 인정해 인별 인민당 제2주석으로 좌천시키는데에 그쳤다.

2.3.제2주석 임기

급진공산파에 의해 제2주석으로 좌천된 그는 자신의 직무에 충실히 따랐다. 그의 정치적 위치는 제2주석으로 떨어졌지만 군사적 위치는 총사령관으로 여전히 높은 자리였기에 그는 언젠가 집권하고 있던 급진공산파를 끌어내리기 위해 이를 갈았다.

이후 1931년 11월 7일 당내 급진사회파와 함께 군을 이끌고 급진공산파를 공격해 급진공산파를 몰락시키는데 성공했고, 이후 자신이 임명하는대로 인별인민공화국의 주석이 정해졌다.

이후 당의 제2주석보단 군 총사령관의 역할에 집중했고, 그가 총사령관이었던 시절 인별인민군은 강성했다.

2.4.사망

1939년 6월 30일, 전쟁 도중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89세. 그가 사망한 후 인민군은 급격히 흔들렸고, 1939년 12월 7일 인별인민공화국이 패망, 12월 8일 인별 인민당이 해체되었다.

현재 그의 묘지는 대용산 인근 작은 고개에 있다.

3.각주

  1. 인별국 이름. 인별인민어를 인별국어로 고쳐 쓴 이름이라 본명과는 다르다.
  2. 급진공산파. 이후 1923년 당 내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1931년 급진사회파에 의해 몰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