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ARSAW FICTIONAL PROJECT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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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랄로베츠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크랄로베츠주의 주도에 대한 내용은 크랄로베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크랄로베츠주
Královecký kraj
 
주기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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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국가 체코
주도 크랄로베츠
하위 행정구역 6개 시
시간대 UTC+1(중앙유럽 시간대)
UTC+2(일광절약 시간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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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슬라브족의 북부 이동 10세기 ~ 11세기
   동프로이센 반란 1919년 6월 18일
   체코슬로바키아에 편입 1919년 11월 11일
   크랄로베츠 반환 1968년 8월 26일
   크랄로베츠 체코인 공화국 독립 1991년 8월 21일
   크랄로베츠 조약 1994년 9월 1일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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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15,100km²
인구 전체 1,198,769명(2022년)
인구 밀도 79.4명/km²(2022년)
민족 체코인 58.6%
러시아인 31.1%
우크라이나인 3.4%
벨라루스인 2.1%
독일인 1.0%
리투아니아인 0.5%
기타 3.3%
공용어 체코어(제1공용어)
기타 언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독일어, 리투아니아어, 히브리어 등
종교 비율 무종교 45.3%
기독교 32.4%
   로마 가톨릭교회 15.9%
   개신교 11.9%
   정교회 3.6%
   기타 기독교 1.0%
비종교적 영성 16.2%
기타 종교 6.1%
출산율 1.65명(2022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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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테사르 녜메크 시민민주당
주의회 시민민주당 14석
ANO 2011 12석
시장과 무소속 8석
해적당 6석
TOP 09 2석
사회민주당 1석
보헤미아 모라바 공산당 1석
녹색당 1석
원로원 시민민주당 · TOP 09 2석[1]
ForRegion 2석[2]
기독교민주연합 1석[3]
시장과 무소속 1석[4]
대의원 시민민주당 9석
TOP 09 5석
ANO 2011 5석
시장과 무소속 4석
해적당 4석
기독교민주연합 3석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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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43억 3,203만$(2019년)
1인당 4,153$(2019년)

개요

크랄로베츠주(Královecký kraj)는 발트해 동남부 연안에 위치한 체코의 주이다. 2022년 기준으로 인구는 119만 명으로, 주도는 크랄로베츠이다.

크랄로베츠는 본토 다음으로 체코 맥주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로,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국경과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월경지로도 불리지만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연결하는 경유지 역할을 한다. 이 곳에서 구 쾨니히스베르크의 건물들과 유적들을 볼 수 있다.

한 때 이 지역은 동프로이센(Ostpreußen)이라 불렀고, 도시로서의 크랄로베츠는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라 불렸으나, 혁명을 거쳐 체코슬로바키아에 편입되었다. 2차 대전 이후에도 독일로부터 이 지역을 할양받아 재편입시켰지만 1968년 소련의 침공으로 빼앗기며 1991년까지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로 불렸다. 그러다 1991년 8월 21일 크랄로베츠 체코인 공화국(Republika Češi Královec)으로 독립한 뒤 1994년 9월 1일 크랄로베츠 조약으로 다시 체코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다.

역사

907년 대모라바 왕국의 몰락으로 마자르인들의 박해를 피해 체코인들이 북부 지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프루센족이 살고 있던 크랄로베츠에 정착되었고, 13세기 튜턴 기사단의 등장으로 독일인들이 대거 이주해 체코인을 포함한 발트계 민족의 독일화가 진행되었다. 이후 이 지역은 프로이센 왕국과 후대 국가인 독일 제국으로까지 이어졌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해체를 지켜본 체코인들이 1919년 6월 18일 혁명을 일으키며 독립을 쟁취했다.

혁명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1919년 11월 11일 크랄로베츠와 합병 조약에 서명했고, 이 지역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가 되었으나 1938년 체결된 뮌헨 협정으로 나치 독일이 장악하기에 이른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크랄로베츠도 다시 본국으로 되돌아왔으나 1948년 5월 소련이 이 곳에 러시아인을 이주시키라는 명령을 내렸고, 자국군을 배치시켜 내정 간섭을 실시했다. 이는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까지 계속되었으며, 1962년 완전히 철수했다.

1968년이 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에 민주화 운동이 발생한 뒤로 알렉산데르 둡체크의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이 지역에서 자치권과 자유 제한 폐지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일명 맥주선이라고 하는 폴란드 횡단 정책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8년 8월 21일 바르샤바 조약군의 침공을 받았으며 이후 이 지역은 8월 26일 소련에 완전히 넘어가 1991년까지 칼리닌그라드로 불리게 되었다.

칼리닌그라드 시절 체코인들이 세운 맥주 공장들은 전부 파괴되었으며, 체코인 상당수가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또 러시아인을 의무적으로 교육시키라는 정책 또한 시행됨으로써 체코어를 배울 수 없었다. 결국 체코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1991년 8월 18일 반소 운동이 시작되었고, 이후 8월 21일 크랄로베츠 체코인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1994년 9월 1일, 옐친 대통령이 이 지역의 주권을 포기한다고 선언, 같은 날 크랄로베츠 조약이 체결되며 다시 체코의 일부가 되었다.

2021년 6월 체코가 속해 있는 비셰그라드 그룹 4개국과 유럽 연합 회원국의 과반수 찬성을 통해 2038년까지 유럽산 맥주 수출을 강화할 목적으로 '비어트레이드' 계획에 착수했고, 크랄로베츠에서는 2021년 8월부터 제2무역선 개발에 들어갔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군이 크랄로베츠의 맥주 공장을 파괴하자 러시아산 맥주의 수입을 전면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러시아와 중앙유럽 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인문 환경 및 지리

크랄로베츠의 면적은 약 15,100km²로, 중앙보헤미아주의 면적(11,015km²)보다 4,085km² 넓다. 전체 인구는 2022년 기준 1,198,769명으로 3번째로 많은 지역이다.

크랄로베츠의 주민의 절반 이상은 체코인이며, 그 다음으로 러시아인이 인구 수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동프로이센 시절 체코인 다음으로 많은 인구 비율을 차지했던 독일인은 고작 1% 남짓에 불과하다. 1918년 편입 당시 체코인의 비율은 약 6~70%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율이 줄어들며 오늘날 5~60%를 유지하고 있는 정도이다. 반면 동프로이센 시절에는 독일인이 가장 많았고, 칼리닌그라드 시절에는 러시아 이주민들이 모여들면서 체코인 다음으로 많았다.

2022년 현재 종교별로 무종교가 45.3%, 기독교가 32.3%를 차지한다. 그 중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는 15.9%로 높은 반면 개신교와 정교회는 모두 합쳐도 천주교의 비율에 거의 근접한다. 16.2%는 비종교적 영성(Spiritual but not religious)에 가까우며 유대교, 이슬람교를 포함한 기타 종교는 6.1%가 믿고 있다.

체코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거주 민족에 따라 러시아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가 사용된다.

정치

크랄로베츠는 맥주 산업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워낙 도시 지역이 많아 특정 정당의 지지세가 높다. 크랄로베츠의 면적이 중앙보헤미아 지역보다 넓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마다 특정 정당의 득표율이 40% 후반 ~ 50% 초반이기 때문에 정당 여론과 자국의 현 상황, 그리고 정치인의 행보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체코슬로바키아에 편입된 직후 크랄로베츠는 인민당 혹은 국민사회당의 지지가 강한 지역이었다. 시간이 지나 맥주 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사회민주당을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사회민주당과 인민당의 경합지로 발전했으나 뮌헨 협정 이후부터는 나치 독일의 장악으로 끝이 난다. 나치당 치하에서는 체코인의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었으며, 투표를 한다고 해도 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수색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나치가 물러난 후 1948년부터는 인민전선이라 부르는 친공산당 정당 연합체가 장악하였고, 1968년에는 크랄로베츠에 자치권이 이루어졌으나 칼리닌그라드로 넘어오면서 좌절되었다. 그 후로도 칼리닌그라드는 1991년까지 소련 공산당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다.

1991년 크랄로베츠 체코인 공화국이 독립될 당시 실시된 첫 선거에서는 보수 성향의 인민당,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 그리고 사회민주당이 의회를 점유한 것으로 나타났고 공산당을 포함한 반민주적인 정당과 반정부 성향의 지하 조직이 금지되었다. 크랄로베츠 조약 이후 2년 뒤 치러진 1996년 총선에서는 조약의 성과로 시민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했다가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사회민주당의 우세 지역, 2008년 총선부터는 다시 시민민주당의 우세 지역이 되었다.

2013년 총선을 앞두고 ANO 2011이 약진하기 시작하면서 선거 결과에서 14석을 얻으며 대약진을 이루어냈고, 2017년에서도 제1당을 유지했다. 2021년 총선에서는 반정부 운동과 비어트레이드 계획이 긍정적 영향을 받아 시민민주당의 우세 지역으로 변했고, 선거 결과 ODS-TOP 09-KDU-ČSL 선거연합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그렇다고 좌파 세력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라, 2022년 상원 선거에서 유일하게 보헤미아 모라바 공산당, 녹색당이 1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관광

크랄로베츠에는 쾨니히스베르크 시절의 유적들과 유물을 볼 수 있는데, 쾨니히스베르크 시청, 쾨니히스베르크 성당, 호박 박물관, 크랄로베츠 증권거래소, 쾨니히스토르가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알려져 있다.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의 동상과 리투아니아와 접하는 쿠로니아 모래톱 공원도 크랄로베츠에 위치해 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경유할 수 있는 지역으로서, 2007년 가입 이후 솅겐 조약의 영향을 받는다. 폴란드의 그단스크나 리투아니아에서 정기 국제 버스를 이용하여 입국할 수 있지만 코루나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전을 필수로 하고 있다. 여행 가이드를 포함한 인프라 시설도 잘 구축되어 있으며,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건너기 문제로 유명한 다리도 건너볼 수 있다.

경제

크랄로베츠는 석탄, 석유, 호박이 많이 발굴되는 지역 중 하나이며, 발트해와 맞닿아 있는 해양지다 보니 수산업과 어류 가공업이 발달되어 있고, 조선소와 무역선이 해안에 위치해 있다. 전 세계 매장량의 80%를 차지하는 호박은 과거에도 수백 톤이 채집될 정도로 꽤 많았으며, 체코 본토 뿐만 아니라 크랄로베츠에 가보면 금은방마다 호박으로 만든 목걸이나 장식품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크랄로베츠에서는 맥주로 유명하기 때문에 맥주를 파는 상점과 함께 수 많은 맥주 공장이 들어서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에 편입된 이후 1931년 최초의 맥주 공장이 들어섰으며, 이후 1945년을 기점으로 맥주 공장이 8곳으로 늘어났다. 크랄로베츠에도 밀과 보리 등 각종 곡물이 재배되며 이를 통해 맥주 생산량이 늘어났고 맥주를 판매하는 상점도 1968년 기준 약 56곳으로 늘었다. 둡체크 시기에서는 폴란드를 경유하여 '맥주선' 계획을 추진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칼리닌그라드 시절에는 체코인들이 만든 맥주 공장이 파괴되거나 직원 대다수가 해고되면서 생산량이 줄었으며 인기에도 큰 타격을 받았다. 대신 러시아 맥주나 보드카를 판매해야 했고, 노동 착취도 이 시기에 벌어졌다. 당연히 체코인들에게는 러시아 맥주와 보드카엔 맞지 않았으며 1994년 이후에는 다시 체코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체코가 솅겐 조약에 가입하면서 폴란드를 횡단할 수 있게 하는 프라하-크랄로베츠 라인이 들어섰으며, 체코 본토와 크랄로베츠 간의 물자 운송이 활발해졌다. 폴란드, 헝가리를 비롯한 중앙유럽제 제품들은 크랄로베츠에 활발히 수출된 반면 체코제 제품들은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헝가리, 우크라이나에 수출되었다. 2021년에는 체코 정부가 '비어트레이드'라는 유럽산 맥주 수출 계획에 착수하면서 8월부터 제2무역선 개발에 들어갔다.

군사 및 외교

현재 크랄로베츠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군(나토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반서방 진영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 중 하나이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 곳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물자 운반을 진행시키고 있다.

1999년부터 체코가 나토에 가입한 뒤부터는 크랄로베츠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나, 2014년 돈바스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를 경계하기 위해 이 지역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크랄로베츠에서 첫 정상회담이 열렸으며 이후 나토의 차기 본부 지역으로 유력시되었지만 취소된 바 있다. 2018년 나토는 크랄로베츠에 군사력 강화를 목적으로 전술형 탄도 미사일을 배치하기로 결정했는데, ATACMS를 장착한 M270 MLRS가 배치될 것으로 확인되었다.

과거 크랄로베츠는 동프로이센 시절만 해도 두 번의 전투가 벌어진 적이 있다. 1914년의 동프로이센 전투는 초반에 러시아가 우세했으나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이 승기를 잡음으로써 러시아가 밀리게 되었고, 1945년에 일어난 동프로이센 공세는 소련군이 체코인 파르티잔과 손잡고 독일을 몰아냈다.

각주

< 각주 보기 >
  1. 시민민주당, TOP 09 각각 1석
  2. ANO 2011, 무소속 각각 1석
  3. 기독교민주연합 1석
  4. 시장과 무소속 1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