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철수작전 (푸른 오얏꽃2)


포항 철수작전
한일전쟁의 일부
철수 직후, 폭파되는 포항 부두를 관측하는 HKMS 광정호
기간 1942년 12월 15일 ~ 12월 26일
장소 대한조선국 경상북도 포항시
결과 연합군의 포항 철수 성공
교전국
대한조선국 일본 제국
지휘관
송요찬
이종찬
김백일
고즈키 요시오
이하라 준지로
 나카무라 고타로


개요




한일전쟁 중인 1942년 12월 15일부터 12월 26일까지 포항에서 대한조선국 국군 제3군단 그리고 피난민 10만여명이 철수한 작전이다. 한일전쟁 초기, 절망적인 전황에서 조선군의 탈출 작전. 일본군의 대구 점령 여파로 전선이 완전 붕괴될 위기에 봉착해 있던 대한조선국에게 항전의지를 되살리고 사기를 크게 올렸으며, 향후 1943년의 용진 작전의 단초를 제공했다.

배경


실제 포항 철수 당시를 기록한 영상

1942년 5월, 부산 상륙 이후 대구를 앞둔 일본군에게 대한조선국 제2군이 영천에서 괴멸적인 대패를 당하자 11월 30일 전선에서 일본군과 대치 중인 포항 주둔 3군단 예하 제21보병사단에게 영덕-청송-군위 지역으로 후퇴해 전선을 새로 만들라는 것을 명령했다. 그와중에 제21보병사단이 포항시 봉계리 일대에서 일본군 제48사단의 포위에 걸려 제21보병사단 전체가 일본군에게 포위섬멸당한다는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고 최종적으로 조선군은 12월 8일 포항 철수 명령을 내렸다. 12월 15일 대한조선국 제21보병사단을 시작으로 제3군단 전 병력이 포항으로 집결, 해상을 통해 울진으로 철수를 시작했다. 이것이 포항 철수의 전초전이었다.

육로로 철수하지 못하고 해로로 철수해야 했던 이유는 철수 당시 포항과 경북 북부 일대를 제외한 영남 전역이 일본군 수중에 넘어간 상태였으며 12월 9일에 일본군이 영덕까지 점령하면서 퇴로가 끊겼기 때문이다. 즉, 배로 철수하는 것 빼고는 경상남도 등지에 위치한 병력과 피난민이 북쪽으로 올라갈 방법은 없었다. 따라서 조선국 원수부는 해상 철수가 이루어지는 포항 부두를 중심으로 '가'구역부터 '마'구역까지 방어선을 설정하고, 동해에 위치한 조선 해군의 함포 사격의 도움을 받으며 조선군과 피난민은 철수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