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가장 고귀한 연방)


미엔지모제 가입국
연방 의회에 대표된 국가들의 가장 고귀한 연방
Najszlachetniejsza federacja krajów reprezentowana w parlament federalny (폴란드어)
Kilniausia federacija šalių atstovaujamų federaliniame parlamente (리투아니아어)
국기 국장
wiara, prawo, ludzie (폴란드어)
įsitikinimas, įstatymai, žmonės (리투아니아어)
믿음, 법률, 국민
상징
국가 기뻐하자, 아 어머니 같은 조국 폴란드여 [1]
국조
흰꼬리수리
국화
팬지꽃
국수
백마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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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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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방 설립 1569년
  • 데울리노 조약 1618년
  • 대홍수 1648년
  •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1733년
  • 1차 분할 1772년
  • 2차 분할 1793년
  • 1854년 폴란드 혁명 1854년 3월 ~ 11월
  • 대타협 1854년 11월 11일
  • 제1차 세계대전 1914년 7월 28일 ~ 1918년 11월 11일
  • 제2차 세계대전 1939년 9월 1일 ~ 1945년 9월 2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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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바르샤바
최대 도시
바르샤바
면적
565,340㎢
내수면 비율
3.1%
구성국
폴란드 왕국, 리투아니아 대공국, 루테니아 공국
접경국
북독일 연방,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방공화국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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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44,780,237명
밀도
79명/km2
민족 구성
폴란드-리투아니아인 87.2%, 우크라이나인 7.6%, 벨라루스인 2.0%, 러시아인 1.2%, 독일인 1.0%, 기타 1.0%
출산율
1.79명
평균 수명
75.32세
기대 수명
75.32세
공용어
폴란드어, 리투아니아어, 라틴어 (명목상)
국민어
폴란드어, 리투아니아어, 우크라이나어
지역어
독일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러시아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키릴 문자
종교
국교
없음
분포
가톨릭 90.3%, 정교회 9.1%, 개신교 0.5%, 기타 0.1%
군대
왕립 연방 국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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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 주
621개 시, 198개 현
35,643개 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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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연방국가, 공화제, 대륙법계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3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원수 (국왕)
피요르트 2세
정부
요인
연방 총리
도날트 투스크
연방 제1부총리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연방 제2부총리
기타나스 나우세다
원로원 의장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세임 의장
잉그리다 시모니테
여당
폴란드-리투아니아 기독교민주당
신임과 보완
자유당, 녹색당
원내 야당
폴란드-리투아니아 사회당, 급진당, 좌파당, 우크라이나 인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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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
GDP
(PPP)
전체 GDP
$1조 7,810억
1인당 GDP
$39,772
GDP
(명목)
전체 GDP
$1조 7,052억
1인당 GDP
$38,079
무역
수입
$367.2억
수출
$346.7억
외환 보유고
$712억
신용 등급
무디스 A2
S&P A-
Fitch A-
화폐
공식 화폐
연방 즈워티
ISO 4217
PLZ, zł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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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1 (연방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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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1950년 수교
UN 가입
1945년 (창립 회원국)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안제타워 18 - 19층(718-2) 영사관
ccTLD
.pl
국가 코드
616, POL, PL[1]
전화 코드
+48

 1 개요 1 개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Rzeczpospolita Obojga Narodów, Abiejų Tautų Respublika[2]) 혹은 정식명칭 연방 의회에 대표된 국가들의 가장 고귀한 연방[3][4]은 동유럽에 위치해 있는 연방제 왕국이다.
1569년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루블린 합병이후 러시아를 위협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대홍수 이후로 쇠퇴하였고 이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삼국에게 분할되어 멸망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독일어권과 러시아의 불화를 이용하여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하여 프랑스, 영국과 함께 유럽의 삼대 강국으로 부상하였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임 국왕은 피요르트 2세이며 총리는 도날트 투스크이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인 바르샤바
연방의 제2 도시이자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수도인 빌뉴스

 2 국가 상징 2 국가 상징

 2.1 국명 2.1 국명

정식명칭은 연방 의회에 대표된 국가들의 가장 고귀한 연방[3][4]으로 이 국호는 1867년 대타협과 함께 변경된 국호이며 이전의 국호는 두 민족의 공화국 (Rzeczpospolita Obojga Narodów, Abiejų Tautų Respublika)이였으나 대타협으로 리투아니아인들과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의 권리를 대거 확충시키며 국명을 바꾸었다. 또한 폴란드어 국명의 Rzeczpospolita (제치포스폴리타)라는 단어는 폴란드 민족국가를 상징하는 명칭이였기에 현재는 연방구성국인 폴란드 공화국에서만 쓰인다. 일반적으로 많이들 쓰이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라는 명칭은 사실 정식 국호였던 적이 없으며 영어 국호인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를 한국어로 번역 할 때 커먼웰스를 연방으로 번역하며 생긴 오류이다.

 2.2 국기 2.2 국기

연방기
Flaga Federalna
Federalinė Vėliava
지위 공식 국기
채택일 1906년 6월 21일
근거 법령 연방 헌법 제3조 1항
비율 3:2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기는 연방기로 1906년 6월 21일에 제정되었다. 빨강-하양-빨강의 가로 삼색기로 중앙에는 중형 국장이 위치해 있다. 하얀색은 환희를, 빨간색은 독립을 상징한다. 한편 각 구성국들의 경우에도 각각의 국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폴란드 왕국은 하양-빨강 가로 이색기에 독수리 문양,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붉은 바탕에 비티스[5], 루테니아의 경우에는 청색 바탕에 노란 사자와 삼지창, 머스킷을 든 코사크 등이 배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2.3 국장 2.3 국장

왕실문장
Herb Królewski
Karališkasis Herbas
지위 공식 국장
채택일 1906년 6월 21일
근거 법령 연방 헌법 제3조 3항
사용처
  • 국가기관
  • 국가문서
  • 여권
  • 훈장
  • 해외공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장는 왕실문장으로 1906년 6월 21일에 공식적으로 제정되었다. 1906년 이전에는 국왕이 바뀜에 따라 왕실문장도 바뀌었으나 이후에는 현재의 국장을 공식 국장으로 제정하였다.

 2.4 국가 2.4 국가

기뻐하자, 아 어머니 같은 조국 폴란드여
Raduj się, matko Polsko
Džiaukis, motina Lenkija

지위 공식 국가
채택일 1906년 6월 21일
근거 법령 연방 헌법 제3조 2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가는 '기뻐하자, 아 어머니 같은 조국 폴란드여'로 1906년 6월 21일에 공식적으로 제정되었다. 원래는 성 스타니슬라오를 기리는 찬송가이자 추모가였으나 이후 연방의 관습상 국가로 널리 불렸고 1906년에는 정식국가로 제정되었다.

 3 역사 3 역사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역사
Historia Polsko-Litewska
Lenkijos-Lietuvos istori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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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폴란드 리투아니아 루테니아
고대 켈트족 발트족 슬라브족
게르만족
슬라브족 키예프 루스
중세 폴란드 영지 리투아니아 대공국 갈리치아-불히니아
폴란드 왕국
근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근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현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주요 민족: 슬라브족, 발트족,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3.1 연방의 성립과 발전 3.1 연방의 성립과 발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성립은 1386년 튜튼 기사단의 위협을 분쇄하기 위해 폴란드 왕국의 여왕과 리투아니아 대공국 대공의 결혼으로 이루어진 동군연합이 그 시초이다. 동군연합 형성이후 리투아니아 내에서는 폴란드의 영향력이 차츰차츰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16세기에 들어서 리투아니아는 루스 차르국에 맞서 리보니아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이 당시 리투아니아는 전쟁으로 인해 물자가 고갈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했으나 폴란드 측은 양국이 아직 단일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지원에 반대했고 지원에 대한 조건으로 양국의 합병을 요구했다. 리투아니아 측에서는 반발했으나 결국 1569년 루블린 조약으로 양국은 합병되기에 이른다.

연방 성립 이후 지그문트 2세의 아들인 피요르트 1세가 왕위를 이었다. 그의 치세동안 연방은 제1차 전성기를 맞게 된다. 군사 개혁을 통해 농민병인 피에호타 비브라니에츠카라 불리는 사실상의 상비군을 창설하였으며 코사크 또한 비정규군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 당시 윙드 후사르라 불리는 정예기병이 창설되어 연방과 동유럽의 들판을 지배하였다. 연방을 탈퇴하려던 단치히를 복속시키고 러시아의 리보니아 (현재의 발트 연방)을 침공하여 러시아의 주요도시인 프스코프까지 점령, 리보니아를 영토로 편입하였다. 스웨덴과의 전쟁을 겪으며 일시적으로 국가가 혼란스럽기도 하였으나 이후 다시 회복하여 러시아아의 모스크바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이후 오스만 튀르크와의 전쟁을 통해 남쪽의 영역을 드네스트르 강으로 확장했고 튀르크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몰다비아 공국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해야 했으며 여러 장수들이 죽어 군사력의 약화를 야기해왔다. 이후 스웨덴과의 결혼문제로 붉어진 스웨덴 왕위계승 전쟁에서 윙드 후사르가 패하고 결국 스웨덴의 왕위계승을 포기하자 연방의 위신과 국력은 점차 추락하기 시작한다.

 3.2 침체와 쇠퇴 3.2 침체와 쇠퇴

1632년 브와디스와프 4세가 새로 연방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연방의 위신과 국력을 회복하기위해 노력하였는데 군대를 개혁하여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지휘관을 사로잡고 배상금을 얻었으며 오스만 제국을 압박해 크림과 카자크에 대한 지배권을 보장받았다. 심지어 그는 루마니아 일대를 오스만과 공동으로 지배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스웨덴을 압박하여 이전 전쟁에 잃었던 영토 중 일부를 되찾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서 흔히들 대홍수라고 불리는 대규모 코사크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당시 코사크들은 연방의 국왕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있었으나 자신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던 폴란드인 지주들에게는 큰 불만을 품고 있었고 결국 보흐단 흐멜니츠키의 주도로 이런 대형사태로 번지게 된것이였다. 이 사태로 충격을 받은 브와디스와프 4세는 결국 사망하였고 대규모 피해를 입은 연방은 즈바라즈에서 휴전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하지만 조약에 불만을 품었던 보흐단 흐멜니츠키와 코사크들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다시한번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국왕이였던 얀 2세는 어떻게든 반란을 수습해보려 애썼으나 러시아와 코사크, 스웨덴의 협공으로 연방의 군대는 붕괴되어 버렸고 일부 슐라흐타 (귀족)들은 리투아니아를 분할하려는 시도까지 하는 등 국가 막장 테크를 타기 시작한다. 심지어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까지 독립을 목적으로 이 전쟁에 참전하며 일말의 희망까지 사라져가던 참이였다. 결국 스웨덴에게 바르샤바까지 털려 얀 2세가 망명을 가는 상황에서 농민들의 봉기와 편을 갈아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과 타타르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국체를 수호하는 지경에 이른다.

전후 연방은 동우크라이나 일대를 러시아에세 할양하고 발트의 지배권을 포기했으며 프로이센의 독립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후 얀 3세 올브라흐트의 주도로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잠시동안 부흥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그의 사후 후임 왕들의 뻘짓(...)과 수차례의 전쟁으로 연방은 재기 불능수준의 만신창이가 되고만다. 한편 1733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여 이미 죽어가던 연방에는 사실상의 사망선고가 내려졌고 이는 이후 분할의 서막이 되고 말았다.

 3.3 분할과 암흑기 3.3 분할과 암흑기

1763년 아우구스트 3세 사후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스타니스와프 2세가 러시아의 지지를 받아 연방의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스타니스와프 2세는 러시아의 사실상 보호국으로 전락한 연방을 개혁하고 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켜세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이게도 연방내 반러파를 자극하였고 러시아도 이에 대해 반감을 품게된다. 한편 동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져만 가는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과의 마찰이 우려되자 프로이센측은 평화를 재의하였는데 이 평화 조약에는 오스트리아-러시아 양국의 오스만 진출을 막는 사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반대를 무마하고자 희생양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였다. 1771년 바르샤바에서 봉기가 발생하자 삼국군은 진압을 빌미로 무단으로 국경을 넘었으며 봉기진압 후 1772년에는 삼국군이 동시에 국경을 넘어 연방을 분할하기에 이른다. (제1차 폴란드 분할)

제1차 폴란드 분할 이후 스타니스와프 2세는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고 정치개혁에 착수하여 5월 3일 헌법이라 불리는 새 헌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전의 개혁과 마찬가지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연방내 친러파들의 반란을 기회삼아 연방을 침공하였다. 개혁이 못마땅했던 프로이센은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2차분할을 러시아에 제시했고 결국 러시아의 압박으로 연방은 프로이센과 러시아에 남은 영토의 상당수를 할양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제2차 폴란드 분할)

제2차 분할이후 연방에 남은것은 4백만의 인구와 두 나라의 완충지대가 되어버린 21만 5천 km2의 영토, 꼭두각시 정부와 러시아의 감시 뿐이였다. 다행히도 당시 오스트리아-프로이센과 러시아의 대립, 프랑스 혁명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유럽의 상황으로 인해 제3차 분할과 국가 붕괴는 면할 수 있었으나 사실상 사망선고가 내려진 상태였다. 나폴레옹 전쟁당시에는 프랑스에 협력하여 이전의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시도또한 하였으나 결과는 완전 실패, 오히려 빈 체제가 들어서며 연방은 사실상의 완충국이자 러시아의 괴뢰정부로 존재하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3.4 1854년 혁명과 대타협 3.4 1854년 혁명과 대타협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의 종전이후 이전 연방의 국왕이였던 루드비히 2세가 러시아에 의해 강제퇴위 당하고 아우구스트 4세가 연방의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하였으나 연방내의 혼란은 더욱더 심해져만 갔다. 비록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빈체제가 성립되었으나 나폴레옹이 뿌리고간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씨앗은 이미 유럽 전체에 깊게 뿌리박혀 버렸으며 1830년에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 반동 전제군주였던 샤를 10세가 실각하자 연방 내에서도 러시아, 프로이센과 빈체제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민족주의적 목소리가 차츰 차츰 나오기 시작한다.

결국 1848년 혁명의 물결을 타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역시도 크나큰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휘말리게 된다. 대략 2월 말부터 변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알음알음 나오기 시작하더니 3월 초순부터는 바르샤바, 빌뉴스, 크라쿠프등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크라쿠프에서는 행정권이 무너졌고 리투아니아에서는 군대가 혁명에 가담하였으며 리투아니아-러시아 접경지대의 일부 코사크들도 봉기하였다. 정부는 대도시에서의 통제권을 잃었으며 리투아니아 빌뉴스 일대에서는 리투아니아 민족을 상징하는 바티스(추격자)가 세겨진 구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깃발이 시청과 광장에 휘날렸다.

연방 정부는 이를 타계하기 위해 1848년 4월 1일에 루블린에서 각 지역의 혁명 지도자들과 유력자들을 모아서 회의를 열게 된다.(루블린 국민대표회의) 국민대표회의에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쏟아져 나왔는데 귀족공화제 같은 반동적 의견부터 지방분권을 주장하는 온건파와 심하게는 연방의 완전한 해체를 주장하는 급진파까지 여러 의견이 충돌했다. 그러나 아직 연방내 분위기는 상당히 보수적이였고 주변국들의 시선이 연방으로 향해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압박으로 보수파가 정권을 유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연방내 자유주의자들과 계몽주의자들을 자극했고 이는 1854년 혁명의 불씨역할을 하게된다.

1854년 크림전쟁이 발발하며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신성동맹이 붕괴되자 러시아의 지원을 받던 연방내의 보수파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던 연방내 자유주의자들은 또다른 혁명을 준비하니 그것이 바로 1854년 폴란드 혁명이다. 전국적으로 번진 혁명의 불길은 이미 정부의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았으며 이번에는 지난 48년 혁명과는 달리 독립파들이 전면에 나서자 연방 해체의 위기감을 느낀 연방정부는 재2차 국민대표회의를 열었다. 독립파들과의 설전과 타협끝에 결국 정부는 국명의 변경과 완전한 입헌군주제의 도입, 폴란드, 리투아니아 양국으로 구성된[6] 현대적 연방국가로의 체제전환등을 골자로 한 일명 대타협을 발표하게 된다.

 3.5 양차 세계대전과 부활 3.5 양차 세계대전과 부활

한편 대타협 이후 유럽의 정세는 복잡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강대국 이였던 프랑스, 영국이 저물어가고 신흥 강대국인 독일제국이 떠오르면서 유럽의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신흥 독일제국이 떠오르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프랑스가 앙숙이였던 영국과 동맹을 맺었고 이에 폴란드가 가담하면서 3국 협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당시 연방은 대타협으로 길고 길었던 암흑기를 끝마치고 군 현대화와 경제성장을 통해 큰 성장을 이루어냈다. 원래 같으면 러시아가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하고 이미 러시아 제국군이 국경을 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지만 독일을 영향력이 커져가고 자신들도 러일전쟁으로 기력을 소진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묵인하였다.

이렇게 유럽의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세르비아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암살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연방은 러시아와 함께 협상국에 가담하여 유럽 동부전선에서 독일 - 오스트리아 동맹군과 맞서 싸웠다. 물론 발칸반도가 동맹국에 완전히 점령당하고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나며 위기가 닥치기도 하였으나 미국이 참전하면서 결국 독일이 항복하자 연방은 당당하게 승전국으로써 베르사유 조약을 조인 할 수 있었다. 연방은 기존에 소실했던 서부와 남부지역을 회복하였으며 혁명이 일어나 혼란에 빠졌던 러시아를 침공하여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동부 영토를 상당수 수복하고 우크라이나, 발트, 벨라루스를 독립시켜 완충국으로 삼았다.

그렇게 연방은 잠시동안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GDP는 계속해서 올랐고 전국적인 산업화와 독일에서 받은 배상금으로 경제 성장률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이런 잠시동안의 호황은 1929년 비롯된 검은 목요일 사태와 그로 인해 일어난 대공황으로 인해 완전히 박살나게 된다. 연방의 경제는 악화일로를 달렸으며 정치혼란이 극대화 되어 1930년 총선거에서 극단주의 정당인 폴란드 민족국가당과 리투아니아 국가파시스트당이[7] 대약진을 하며 기존 사회당과 기독교 연합[8]의 양당제가 흔들릴 지경에 이르자 일부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부의 정치개입으로 인해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원수가 총리로 집권하는 등[9] 막장의 막장을 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던 와중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연방을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초기 연방은 정치 혼란으로 인하여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였고 순식간에 북부는 비스와 강 일대, 남부는 크라쿠프 지역까지 밀리게 된다. 동맹이였던 헝가리 또한 순식간에 관광당하고 남부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불가리아-독일-루마니아 추축군에 의해 점령당하며 키예프와 북서부 일대만 간신히 유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당시 나치 점령하 폴란드에서는 수많은 학살들이 자행되었다. 점령지 내의 수많은 폴란드인들과 유대인들을 비롯한 여러 소수민족들과 정치적 반대파, 인권운동가와 성소수자들이 학살당했으며 특히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고작 5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오시비엥침[10]에서는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절멸수용소가 운영되어 대략 11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연방은 포기하지 않았고 원내 5개 정당이 연합하여[11] 거국내각을 구성하여 전국에 총동원령을 선포후 총력전을 선언하며 나치에 맞서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기 시작한다. 한명이 죽으면 두명이, 두명이 죽으면 네명이 총을 잡고 깃발을 들었으며 점령지에서는 여러 저항조직[12]이 결성되어 나치에 맞섰다. 그러나 전황은 점점 불리해져 41년에는 크라쿠프가 함락되고 바르샤바에는 포탄이 떨어지는 등 패색이 짙어져 갔다. 그렇게 연방의 멸망의 목전에 닥쳤다고 생각했던 그때 한줄기의 빛이 연방과 그 동맹국들에게 내려왔는데 그것은 바로 독소전쟁이였다.

당시 히틀러는 연방과 연방의 동맹국들이 전쟁 발발 초기에 완전히 밀려버리면서 곧 연방이 항복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41년 5월경에 바르샤바 코앞까지 독일군이 진격하자 이런 추측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곧 소련을 향했다. 히틀러는 그들의 레벤스라움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거쳐 소련을 침공했다. 당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소련은 금세 스탈린그라드 (현 볼고그라드)까지 밀렸으나 그 이름도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하며 승기를 잡았고 이후 연방-소련-서방 연합국의 협공에 나치는 점점 뒤로, 뒤로 후퇴를 이어갔다. 결국 독일은 패망했으며 연방은 승전국으로써 당당히 일어날 수 있었다.

 3.6 냉전과 현대 3.6 냉전과 현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후 세계에는 냉전의 기류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소련은 발칸 일대를 점령하여 베오그라드 조약기구를 만들었고 미국은 나토를 만들어 자본주의 제1세계와 공산주의 제2세계의 대립이 심화되던 시기였는데 예나 지금이나 반러감정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정부는 나토에 가담하였고 연방의 동맹국인 발트,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또한 나토에 가입시키는데에 일조했다. 당시 연방은 대대적인 군비 확장을 통해 동유럽의 패권국으로 자리매김 하였으며 프랑스와 협력하여 미국에 얽매이지 만은 않는 외교 정책을 표방하였다. 이 당시 핵무기 개발 시도도 있었으나 미소 양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한편 1968년 68혁명으로 보수적이였던 연방 내에서도 진보적인 분위기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고 1970년대 초반을 전후로 해서 미소 양국간의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자 연방 정부내에서도 기존의 냉전적 반공주의 노선에 대한 회의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는 냉전 후반부에 들어서며 약해졌으나 이후 다시 해빙기가 도래하자 연방은 본격적으로 사회, 문화적인 개방의 시기, 일명 '대개방'의 시대를 겪게 된다. 대개방 시기 이후 반공법이 폐지되는 등의 여러 진보적 조치가 이어지며 연방은 한층 더 진보적인 시대로 나아가게 되었다. 냉전 종식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경제가 성장해 왔으나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해 큰 타격을 입게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는 다시 성장률이 반등하며 프랑스,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실명부한 유럽의 강대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4 행정구역 4 행정구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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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국
폴란드 왕국 리투아니아 대공국 루테니아 공국
바르샤바주 비아위스토크주 키엘체주 크라쿠프주
루블린주 르부프주 우치주 노보그루데크주
폴레시아주 포모제주 포즈난주 스타니스와프주
타르노폴주 말라제치나주 볼린스키에주 지토미에주
빌뉴스주 바르미아마주리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주
지도 번호 주도 번호 주도
1 바르샤바주 바르샤바 10 포모제주 그단스크
2 비아위스토크주 비아위스토크 11 포즈난주 포즈난
3 키엘체주 키엘체 12 스타니스와프주 스타니스와프
4 크라쿠프주 크라쿠프 13 타르노폴주 타르노폴
5 루블린주 루블린 14 말라제치나주 말라제치나
6 르부프주 르부프 15 볼린스키에주 루츠크
7 우치주 우치 16 지토미에주 지토미에
8 노보그루데크주 노보그루데크 17 빌뉴스주 빌뉴스
9 폴레시아주 브제시치 18 바르미아마주리주 크롤레비에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3개의 구성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구성국들은 다시 22개의 주로 나뉘어진다.

구성국은 연방을 구성하는 가장 높은 단위로 폴란드, 리투아니아, 루테니아 3개가 있으며 각국의 군주는 연방의 국왕이 당연직으로 겸직한다.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연방 출범 당시부터 원년맴버였으며 루테니아의 경우에는 1854년 혁명과 대타협 이후 루테니아인(우크라이나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설립되었다. 각국은 자치총리와 자치의회를 가지며 각자의 국기와 국가를 비롯한 상징물을 가진다.

주는 연방을 구성하는 두번째로 높은 단위로 현재 총 18개의 주가 존재한다. 각 주는 주의회와 주총리를 선출하며 이들 또한 자신들의 상징물을 재정 할 권리와 이외의 법안을 자체적으로 재정 할 권리를 가진다. 주 아래에는 현과 시가 존재하고 그 아래에는 군이 존재한다.


각 구성국 별 주

  • 폴란드 왕국
    • 바르샤바주
    • 키엘체주
    • 크라쿠프주
    • 루블린주
    • 르부프주
    • 우치주
    • 포모제주
    • 포즈난주
    • 바르미아마주리주
  • 리투아니아 대공국
    • 빌뉴스주
    • 비아위스토크주
    • 노보그루데크주
    • 폴레시아주
    • 말라제치나주
  • 루테니아 공국
    • 스타니스와프주
    • 타르노폴주
    • 볼린스키에주
    • 지토미에주

 5 정치 5 정치

 5.1 국왕 5.1 국왕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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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국왕 혹은 정식 명칭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및 모든 연방 소속 영토의 국왕'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군주로 연방의 국가원수이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왕은 960년 폴란드 영지의 공작이 그 기원이며 이 당시에는 현재의 야기예우워 왕조가 아니라 피아스트 왕조에서 공작이 배출되었다. 이후 1025년 폴란드 영지가 영지에서 폴란드 왕국으로 승격되자 폴란드 공작 또한 폴란드 국왕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1386년 리투아니아의 요가일라 대공이 튜튼 기사단의 침입을 막기 위해 브와디스와프 2세라는 이름으로 폴란드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하고 야기예우워 왕조를 개창하며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동군 연합체제가 시작되게 된다. 1569년 지그문트 2세 치세때 루블린 합병으로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합병되자 공식적으로 양국은 하나가 되게되었고 지그문트 2세부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왕으로 대우한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입헌군주제 국가로 연방의 국왕은 연방의 국가원수이다. 국왕은 연방의 국가원수이기 때문에 명목상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의회 해산권과 연방군 통수권, 연방 총리에 대한 임명권과 해임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외에도 연방 의회가 의결한 법률에 대한 재가권과 거부권, 불기소권, 사면권, 선전포고권 등이 있고 모든 훈장과 작위또한 국가원수인 국왕의 이름으로 수여되며 모든 법률또한 국왕의 이름으로 선포되기 때문에 연방법에 한해서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1854년 폴란드 혁명 이전에는 연방이 전제군주제 국가였기 때문에 이러한 권한이 실제로 사용되었으나 혁명과 대타협, 입헌군주제 헌법 도입 이후에는 이러한 권한들은 대부분 연방의 행정수반인 총리에게 사실상 넘어간 상태이다.

현재 연방 국왕과 왕실에 대한 연방 국민들의 지지는 거의 80%를 상회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연방 국민들은 왕당파이다. 그러나 68년 혁명이후 폴란드 공화당을 비롯한 여러 공화주의-좌익 정당들이 창당되었으나 대부분 7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단명하였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정당들도 80년대 초반 후반부 냉전 시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한 반소-반공-반좌파 열풍과 자금난으로 해체된 이후에는 좌파당의 일부가 공화주의를 지지할 뿐 실질적으로 공화주의를 매인으로 내걸고 있는 단체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설령 있다고 한들 중앙정계에 미치는 영향 또한 사실상 없기 때문에 왕정이 폐지 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5.2 행정부 5.2 행정부

 5.2.1 총리 5.2.1 총리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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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히 3세
초대
아가톤 길러
지그문트 3세
초대 제2~3대 제4대 제5대
아가톤 길러 스테판 보브로프스키 지그문트 시에라코프스키 드루스키 로무알트 트라우굿
브와디스와프 5세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로무알트 트라우굿 요나스 바사나비추스 볼레스와프 로만 드루스키 브와디스와프 니에골레프스키
제9대 제10대 제11대
프란시삭 바후셰비치 지그문트 밀코프스키 볼레스와프 프루스
카지미에시 5세
제12대 제13대 제14~16대 제17대
도나타스 말리나우스카스 가브리엘 나루토비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요나스 스밀게비치우스
제18대 제19대 제20~21대 제22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가브와디스와프 라츠키에비츠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루드비히 4세
제23대 제24~25대 제26대 제27대
볼레스와프 비에루트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페트라스 클리마스 미콜라스 비르지슈카
제28대 제29대 제30~31대 제32대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에드바르트 기에레크 브로니스와프 게레메크 스타니스와프 마체크
제33대 제34~35대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레흐 바웬사
피요르트 1세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레흐 바웬사 게디미나스 키르킬라스 레흐 카친스키 잉그리다 시모니테
제40~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로베르트 비에드론 지알기르다스 부트케비추스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도날트 투스크

연방 총리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행정수반으로 입헌군주제-의원내각제 국가인 연방의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이다.

연방 총리는 하원인 서민원에서 선출되며 주로 서민원내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가 된다. 그러나 서민원 의원의 1/2 이상이 동의해야 총리로 임명 될 수 있기에 연정 등으로 과반 이상을 차지한다면 다수당의 총재가 아니더라도 총리가 될 수 있다. 이론상 총재가 아닌 다른 의원이 총리가 되는 것도 가능하지만 한 당의 총재라는 것부터가 이미 당의 실권자이자 집권 세력의 수장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총재가 아닌 다른 의원이 총재가 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연방 총리는 실질적인 연방의 국가 지도자인 만큼 여러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장관의 임명권 및 해임권, 내각회의 주재권, 서민원에 대한 의회해산권, 법률에 개한 제출권 및 거부권, 사실상의 군통수권 등이 있다. 물론 연방은 입헌준주제 국가이기 때문에 의회해산의 경우에는 명목상 연방 국왕의 재가를 받아 이루어지며 군 통수권의 경우에도 명목상 연방의 국가원수인 연방 국왕의 동의를 얻어 사용된다.

연방 총리의 임기는 무제한이며 이론적으로는 영구집권 또한 가능하나 일종의 불문율로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총리 이후의 총리들은 아무리 인기가 많더라도 최대 4선까지만 하는것이 보통이며 전후 인기가 많았던 고무우카 총리나 레흐 바웬사 총리도 각각 4선과 3선까지만 하고 스스로 퇴임하였고 로베르트 비에드론 총리같은 경우에도 재선까지만 하고 3선을 포기하였다.

 5.2.2 내각 5.2.2 내각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내각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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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총리
도날트 투스크
연방 제1부총리 연방 제2부총리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기타나스 나우세다
과학고등교육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국토건설부 장관 교육부 장관
레나 콜라르스카-보빈스카 토마스 시에모니악 마리아 와시악 유르기타 시우그즈디니에네
교통개발부 장관 내무부 장관 노동사회가족부 장관 농업농촌개발부 장관
마리우스 스쿠오디스 테레사 피오트로프스카 모니카 나비키에네 마렉 사위키
문화국가유산부 법무부 보건부 외무부
말고르자타 오밀라노프스카 세자리 그라바르지크 아루나스 덜키스 가브리엘리우스 란즈베르기스
에너지자원부 정보통신기술부 재무부 창업기술부
다이니우스 크레이비스 안제이 할리키 안제이 체르빈스키 아우슈리네 아르모나이테
체육관광부 투자개발부 환경부 해양경제부
말고르자타 오밀라노프스카 야누시 피에초친스키 시모나스 젠트빌라스 스와보미르 노박

내각은 연방의 행정부로 연방 총리가 의회의 동의를 얻어 각부의 장관들과 차관들을 임명하여 성립된다.

내각제 국가이기 때문에 각부의 장관, 차관들은 연방의회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하원인 서민원 의원이 장관, 차관이 된다. 물론 이는 법적으로 지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론상 귀족원 의원이 장관이 될 수도 있으나 실질적으로 귀족원 의원은 명예직으로 대우받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경우 서민원 의원이 임명된다.

총리에 의해 의회가 해산되는 경우에는 내각의 구성원들 또한 연방 의회 의원인 만큼 내각 또한 총사퇴하며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5.3 입법부 5.3 입법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회의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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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날트 투스크 내각
(2020.09.16 - )
여당

폴란드-리투아니아 기독교민주당
83석 · 313석
신임과 보완

자유당
8석 · 22석

녹색당
13석 · 14석
야당

폴란드-리투아니아 사회당
90석 · 304석

급진당
10석 · 10석

좌파당
6석 · 7석

우크라이나 인민당
4석 · 5석
무소속 7석 · 5석
재적 220석 · 680석
공석 0석
좌측은 귀족원(상원) 의석 수, 우측은 서민원(하원) 의석 수

연방의회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입법부로 상원인 귀족원과 하원인 서민원으로 구성되어있다.

본래 연방에는 귀족 의회인 세임이 존재하였으나 점차 부패하였고 이후 연방몰락의 단초가 되었으며 국왕을 반쯤 무시한 채로 독단적인 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1854년 혁명 이후 귀족들의 권한이 크게 약화되고 공화주의자들과 분리주의자들을 비롯한 급진주의자(자유주의자)들이 부상하자 민중의 기세에 눌린 기득권층은 이대로 가다가는 프랑스 꼴이 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고 결국 영국을 모델로 삼아 입헌군주제 헌법을 제정하고 새로운 의회를 개설하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연방 의회이다. 초기에는 양원의 권한이 비슷했고 귀족원과 서민원의 의석은 3:2정도의 비율이였으나 점차 시대가 변하면서 귀족원의 의석과 권한은 크게 줄었으며 반대급부로 서민원의 의석과 권한은 늘어 현재는 영국과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상원인 귀족원은 일반 귀족 및 성직 귀족 만이 의원이 될 수 있으며 사실상의 명예직으로 이전에는 서민원이 결의한 법에 대한 거부권과 총리 선출 동의권등 실질적인 권한들이 많았으나 이후 점차 권한이 줄어 들어 현재는 형식상의 동의권과 심사권 만이 존재 할 뿐이다. 가톨릭 성직 귀족 (세습) 10명, 정교회 성직 귀족 (세습) 10명, 일반 세습 귀족 50명, 일대귀족 150명으로 구성된다. 또한 귀족원 의원직은 임명직이자 종신직으로 전원 국왕에 의해 임명되고[13] 작위를 포기하거나 (세습 귀족), 중도에 사퇴하지 않는 이상 (성직 귀족) 영구히 의원직을 가진다.

하원인 서민원은 귀족 및 성직자, 그리고 강력범죄자를 재외한 모두가 의원이 될 수 있으며 영국의 서민원과 권한이 비슷하다. 현재 총 680석의 의석이 있으며 512석의 지역구 의석과 148석의 비례대표 의석으로 구성된다. 주요 권한으로는 법안 발의권과 국가 예산에 대한 심의권, 총리에 대한 선출권과 내각 구성원 선출에 대한 동의권 등이 있으며 내각에 대한 불신임권 또한 존재한다.

 6 경제 6 경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영국과 프랑스에 이은 유럽 제3 규모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현재에는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의 경제를 지탱하는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 연방의 주력 산업은 타 유럽국가와 같이 농업이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산업혁명아 시작되자 연방은 조금 늦게 공업화, 산업혁명에 뛰어들었으며 중국과 동남아가 부상하기 이전까지는 유럽에서 비교적 저렴한 노동력을 앞세우며 여러 공장을 유치했고 그덕분에 제조업이 크게 성장 할 수 있었다. 또한 1차 세계대전 이후 늘어난 영토와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기존의 경공업 위주의 경제 체제에서 점차 중공업 위주의 사회로 탈바꿈하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공업 중심의 국가가 되었으며 냉전 이후에는 서비스업이 떠오르고 있다.

현재 연방의 주류 산업은 타 유럽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IT산업과 서비스업이며 제조산업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경제를 주름잡는 기업들의 60% 정도는 중공업 회사며 최근에는 셰일가스 개발이 시작되면서 쇠퇴하던 제조업이 다시 부흥할 기미가 보이고 있다. IT산업과 서비스업의 경우에는 근소한 차이로 중공업을 앞서고 있으나 연방의 본격적인 IT산업 육성이 타 유럽 국가들 보다는 조금 느렸던 탓에 주목할 만한 IT기업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7 사회 7 사회

기본적으로 공산주의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는 점과 국민의 90% 이상이 독실한 가톨릭 교도인[14] 사실상의 가톨릭 국가라는 점 때문에 매우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68혁명의 물결을 타고 대대적으로 사회 개방이 실시되었으며 냉전 종식 이후 일명 '대개방'의 바람이 연방에 불어닥치면서 이전에 비하면 상당히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교회와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 인구가 거의 100%에 이르는 자타공인 '십자군 국가'이기 때문에 프랑스, 북독일, 바이에른, 스웨덴등 타 유럽국가들에 비해서는 동성애와 마약이 불법인 등 보수적이다.

 7.1 교육 7.1 교육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교육은 각각 초등교육-고등교육-대학과정으로 나뉘며 2017년 개헌 이후 모든 교육은 무상으로 지원된다. 초등교육은 7살부터 15살 까지 이루어지며 대한민국의 초등-중등교육에 해당한다 또한 한국의 초등교육과 마찬가지로 의무이다. 고등교육은 일반고 4년, 기술학교 5년으로 분류된다. 대학교육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4년제 대학과 3년제 대학이 존재하며 주요 대학교로는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왕립 바르샤바 대학교, 빌뉴스 대학교, 르부프-루테니아 대학교 등이 있다.

 7.2 종교 7.2 종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예전부터 알아주는 독실한 가톨릭 국가였으며 현재 인구의 90.3%가 가톨릭 교도로 이는 바티칸(100.0%)에 이어서 전세계에서 2번째로 가톨릭 신자가 많은 국가이다. 또한 점차 세속화가 진행되며 종교인구가 바닥을 찍고 법적으로 가톨릭 교인으로 등록되어 있어도 미사등에 나가지 않는 냉담자의 비율이 높은 타 유럽 국가들과 달리 가톨릭 교인의 97% 가량이 열정적인 신자로 분류 될 정도로 독실한 국가이다.[15] 또한 가톨릭은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으며 주요 양당중 하나인 기독교 민주당도 창당 초반에는 가톨릭 보수주의를 내세우던 사회보수주의 정당이였으며 사회당과 좌파당같은 좌익 정당또한 가톨릭과 적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냉전 이후 점차 세속화가 진행되어 현재에는 가톨릭이 정치나 문화 전반에 간섭하는 일은 거의 없다.

또한 루테니아 지방을 중심으로 정교회의 세가 강한데 주로 연방 동부의 루테니아인들이 믿고 있으며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벨라루스 지역에서도 신자가 일부 존재한다. 최근에는 정교회 교도의 인구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는 연방의 주류 민족인 폴란드-리투아니아인들의 출산율이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에 그런것이다. 개신교의 경우에는 '침략자 독일의 종교'라는 이미지가 일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존재하나 현재는 그다지 터부시되지는 않는다, 주로 구 동프로이센(바르미아마주리주) 일대의 독일계 소수민족들이 믿는다.

 8 외교 8 외교

 8.1 대한민국-연방 관계 8.1 대한민국-연방 관계

대한민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1953년에 공식적으로 수교관계를 맺었다. 연방은 1945년 해방 이후 유엔에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하였으며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당시 자신들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넉넉하지 못한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7번째로 많은 인원인 3,256명의 육 · 해군 병력을 파견하였다. 전쟁 이후 연방은 한국에 당시 기준 10만 달러 가량의 경제 원조를 제공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밀가루와 식량등을 원조해 주었다. 한국의 경제발전 이후 양국은 경제, 문화적인 협력을 늘려가가고 있으며 양국 관계는 우호적이다.

 8.2 미국-연방 관계 8.2 미국-연방 관계

20세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양국은 별다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으나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우방국가로 자리잡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국이 랜드리스를 통해 3,000대 이상의 전차와 5,700여정 가량의 소총과 탄약을 재공하면서 미국과 연방은 서로에 대한 최우방국이 되었다. 냉전시기에는 소비에트 연방과 대적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장소라는 점에서 미군이 주둔하였으며 현재 미국은 연방이 최우방국으로 지정한 유일한 비 유럽 국가이다.

 8.3 우크라이나-연방 관계 8.3 우크라이나-연방 관계

현대 우크라이나의 조상격인 키예프 공국과 그 후신인 루테니아 왕국은 중세 폴란드 왕국과 많은 전쟁을 벌였으며 이후 연방의 복속되었으나 연방의 폴란드인 지주들의 가혹하고 불합리적인 처사에 반발한 우크라니아 코사크들의 반란은(대홍수) 결과적으로 연방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갔고 이후 연방을 대신하여 러시아가 우크라니아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의 도움으로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양국관의 관계는 급격히 호전되어 현재에는 서로를 최우방국으로써 대우하고 있다.

 8.4 벨라루스-연방 관계 8.4 벨라루스-연방 관계

벨라루스는 오래 전 폴로츠크 공국 시절부터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우호적이였으며 이후 리투아니아와 연방에 차례차례 합병되었을 때도 별 반감이 없었던 지역인 만큼 이전부터 양국은 꽤나 우호적인 국가였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벨라루스는 연방에 영토의 일부분을 할양하고 독립하였으며 현재 연방과 벨라루스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8.5 발트-연방 관계 8.5 발트-연방 관계

현재 발트에 위치해 있었던 독일계 국가인 리보니아는 한때 연방을 위협하는 주요 국가중 하나였으며 당연하게도 연방과 리보니아 간의 관계는 최악이였다. 그러나 리보니아 일대가 연방의 세력권 안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적대보다는 우호적인 방향으로 양국 관계가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러시아 제국의 붕괴 이후 연방에 의해 독립한 현재의 발트는 연방의 최우방국 중 하나이다.

 8.6 러시아-연방 관계 8.6 러시아-연방 관계

좋지 못한 편으로 이전에 제정 러시아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와 함께 연방을 분할하고 연방의 개혁을 방해하였으며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민족운동을 탄압하였다. 이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연방은 내전에 개입하여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를 독립시켰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자 연방과 미엔지모제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최전선이 되었다. 현재에도 연방과 러시아의 관계는 매우 나쁜편이며 2018년에는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러시아 자유민주당 총재가 연방을 "러시아의 영원한 속국"이라고 칭하여 양국관계가 냉각되었다.

 8.7 프랑스-연방 관계 8.7 프랑스-연방 관계

프랑스와 연방은 건국 이후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연방 분할 이후에도 프랑스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야기예우워 왕가를 재대로 대우해주는 몇 안되는 국가였고 나폴레옹 시기에는 우크라니아 일대를 연방에 할양해 주기도 하는 등[16] 유럽에서 미엔지모제 회원국들과 비슷한 수준의 친연방 국가였다. 세계대전 당시에도 양국은 군사협정을 체결하였으며 현재 양국은 매우 우호적이다.

 8.8 독일-연방 관계 8.8 독일-연방 관계

역사적으로 현재 북독일에 기원이 되는 프로이센은 연방과 좋지 못한 관계에 놓여 있었으며 연방의 분할과 세계대전을 거치며 양국관계가 크게 악화되었으나 냉전시기 빌리 브란트 총리의 '브란트의 무릎꿇기'와 철저한 반성으로 현재는 우호적인 관계이다.

남독일과 연방은 북독일에 대항하는 의미로 군사적인 동맹을 맺은 전례가 있으며 전후에도 북독일보다는 양국간의 앙금도 적었다. 현재에도 양국은 무난무난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9 각주 9 각주

  1.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국가 코드, 도메인의 POL과 PL은 폴란드가 아닌 폴란드 - 리투이니아의 약칭인 폴리투 (Polithu)의 약자다
  2. 폴란드어, 리투아니아어 : 두 민족의 공화국
  3. 3.0 3.1 폴란드어 : Najszlachetniejsza federacja krajów reprezentowana w parlament federalny
  4. 4.0 4.1 리투아니아어 : Kilniausia federacija šalių atstovaujamų federaliniame parlamente
  5. 리투아니아어로 '추격자'라는 뜻
  6. 양국은 각각 총리를 선출하지만 명목상 양국의 국가원수는 연방국왕임
  7. 공산당은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을 전후하여 연방정부의 탄압으로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8. 폴란드 기독민주인민당-리투아니아 기독사회당의 선거연합(현 기민당)
  9. 이와 별게로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에 대한 평판은 연방내에서 상당히 좋은 편이며 당시에도 나름 민주적인 선거로 집권하기도 했다.
  10. 독일어로 아우슈비츠
  11. 폴란드 기독민주인민당-리투아니아 기독사회당(현 기민당), 사회당, 자유당, 급진당, 우크라이나 민족전선(현 인민당)
  12. 폴란드-리투아니아 해방전선, 우크라이나 인민해방연맹, 민주해방동맹 등
  13. 단 세습귀족과 성직귀족에 경우에는 의원직을 세습 한 뒤 형식상의 허가를 받는다.
  14. 사실 이것도 현대에 들어서 연방의 주류 민족인 폴란드-리투아니아인들의 출산율이 줄고 세속화가 진행되어 줄어든거다!
  15. 오죽하면 구글 등에 polish churches map 등을 검색하면 교회로 전국토가 빽빽하게 매워져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16. 이 덕분에 현재 폴란드 왕국에서 국가로 쓰이는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에는 가사에 '보나파르트가 우리에게 승리의 방법을 보여주었도다'라고 니폴레옹을 칭송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