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 중화인민공화국 관계

개요

한국서중국 간의 관계를 정리한 문서

역사

동아시아 전쟁 이전

한국은 전통적으로 중화민국만을 중국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했기에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이후로도 중공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게다가 중공이 통일전쟁에서 북한의 편을 들어 참전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 악화됐다. 하지만 중국 인민지원군 지휘부가 미 공군의 융단폭격에 전멸하면서 중공은 전쟁에서 서둘러 발을 빼려고 했고 양국은 중난하이 밀약을 맺었다. 이후에도 압록강 수풍 수력발전소 공동운영협약을 맺고 1960년대 말에는 한국 측에서 소련과 대립하며 중공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양국 관계가 개선되는 듯 하였으나...

동아시아 전쟁 이후

이는 이승만의 속임수였다. 1970년, 한국, 동중국, 소련, 인도가 손을 잡고 미국의 비호 아래 중공을 침공하면서 양국의 관계는 전쟁 후에도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1990년대 초, 서중국의 자오쯔양 주석과 한국의 김대중 총통은 양국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비슷한 공감대를 공유하는 동중국의 후야오방 총통과 일본의 무라야마 수상이 합류하면서 동북아 4국 지도자는 '동아시아 평화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직후 서울과 충칭에 각각 서중국 대표부와 한국 대표부가 설치되었다. 이러한 평화 무드는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08년 서중국 주석으로 시진핑이 취임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시진핑의 팽창주의적 정책은 티베트, 오르도스, 몽골, 홍콩 등 인근 국가들에 불안감을 안겨주었고 동아시아에서의 한국의 지역패권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과 서중국은 상대를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고있다.

하지만 양국이 완전히 척을 진 것은 아니다.  서중국에서 희토류를 수입하는 한국으로서는 서중국에 완전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기 힘들다. 서중국 또한 동중국과 한국을 떼어놓기 위해 한국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은 삼가고있다.

협력

양국간의 사이는 안 좋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상당한 협력을 하고있다. 서중국은 세계 최대의 희토류 매장국, 생산국, 수출국이기 때문에 한국은 상당량의 희토류를 서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있다. 서중국 또한 한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다.

1995년부터 양국을 오가는 민항기 정기선이 취역했다. 최초의 노선은 김포-충칭 노선이었다.

기타

  • 한국은 충칭에 대표부를, 광저우, 시안, 우한에에 대표부 출장소를 두고있으며, 서중국은은 서울에 대표부를, 대구, 평양, 심양에 대표부 파견소를 두고있다.
  • 서중국 외교부 아태국 부국장이 한국에 "소국이 대국을 거역해서 되겠는가"라고 말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