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 전쟁
韓國獨立戰爭 | Korean War of Independence
날짜
1914년 3월 18일 ~ 1919년 4월 11일
장소
한반도
원인
일본제국의 한국에 대한 불평등조약 강요
결과
한국의 독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참전국
한국독립당 일본 제국
지휘관
이승만
김구
김좌진
이동녕
김춘식
박금태
최홍식
김용만
야마나시 한조
사이코 마코토
아베 노부유키
병력
20만 명 40만 명
피해 규모
3488명 전사 90,000명 전사
52,000명 포로
민간인 10만명 이상 사망


개요

한국 독립 전쟁은 1914년부터 1919년까지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이자 저항운동으로, 대한제국이란 나라가 일본 제국의 괴뢰국이자 보호국으로 떨어질 위기 상황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의 발단

1914년 2월, 일본 제국은 대한제국 정부에게 '한일 우호 조약'을 강요한다. 이 조약은 쉽게 말하자면 대한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로, 전국적으로 반대 목소리가 일었으나 일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던 내각은 결국 조약을 승인한다. 사실 갑신혁명 이후 일본이 지금껏 한국을 도와줬던 것은 절대로 선의가 아니었다. 한국을 근대화시켜주는 척 하면서 슬슬 일본의 영향 아래 들게 하여 최종적으로는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으나 기대와는 다르게 한국이 진짜로 근대화에 성공하여 일본과 거의 비등할 정도의 역량을 가지게 되자 불안감이 일어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한국을 일본의 영향 하에 두겠다는 심정이었다. 대한제국 지도부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혁명과 집권을 도와줬던 일본을 무시하기 힘들었기에 이런 조약이 체결되었던 것이다.

전쟁의 경과

조약의 체결

2월 19일, 전국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조약은 체결되고야 만다. 대한제국 내각보다도 상위 조직인 통감부와 일본군이 들어와 한국을 통치하기 시작하고, 이에 국민들은 스스로 의병이 되어 일본군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3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의병들이 주축이 된 봉기가 일어나고, 이에 일본군이 강경 대응을 하면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공화파 세력들의 결집

대한제국에서는 이전부터 황제와 정부에 불만을 가지고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세력이 있었다.이들은 조약 이전에는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고, 딱히 단결하지도 못한 채 자기들끼리 놀던 소규모 정치집단에 불과했으나, 이 전쟁을 계기로 봉기세력의 선두에 서면서 슬슬 명성이 알려져 전국적으로 세가 키워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공화파 청년세력들이 뭉쳐 만들어진 당이 바로 한국독립당으로, 김구, 이승만, 안창호, 이동녕, 김규식 등이 주축이 되었다.

장기전으로의 변모

애당초 의병 세력은 당대 아시아 최강의 군대인 일본군을 전면전으로서는 절대로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점차 의병세력들은 게릴라식 전투방식을 채택하게 되는데, 마침 한반도 자체가 산지가 많다는 점도 있었기에 이 전술은 효과적이었고, 그렇게 몇달이면 끝날거라던 전쟁이 몇년째 질질 끌어지게 되었다.이는 일본에게 있어서 엄청난 피로였으며, 당시 일본 제국 내에서도 이 조약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기에 점차 전쟁을 끝내라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어 결국 일본 정부에서도 휴전을 검토하게 되고, 한국 의병군은 이를 노려 더욱더 일본군에 피해를 강요한다.

결국 일본 측은 한반도에서 발을 떼도록 결정하게 되고, 이에 한국독립당이 대표로 나서 일본과 협상을 한다.

결과

협상의 결과로, 일본군은 한반도에서 즉각 철수하며, 제국 정부에 대해 그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이 난다.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한 한국독립당은 서울로 진군하기 시작하고, 사실상 존재 의의를 상실한 제정은 전의를 상실하고 한국독립군이 서울에 입성하자마자 백기를 올려 항복을 선언한다.

이후

서울에 입성한 한국독립당은 정부를 꾸려 나간다. 이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