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
愛新覺羅 皇太極
파일:홍타이지.jpg
홍타이지의 어진.
출생 1592년 11월 28일
사망 1643년 9월 21일
국적 해영국 해영국
청나라
별칭 요동대섭무대군(搖動大涉撫袋君)
숭덕제(崇德帝)
직업 무장 혹은 정치인

홍타이지(중국어: 愛新覺羅 皇太極)는 청나라의 건립자이자 초대 황제이다.[1] 누르하치의 8번째 아들로서 후계자로 인정받아 요동대섭무대군(搖動大攝撫袋君) 직책을 세습 받았다.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홍타이지가 후계자로 인정받은 것은 당시의 유목민족 문화의 문제뿐만이 아닌 그의 어머니가 만주 최고의 명문가였던 애호부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누르하치는 개인의 역량으로 여진족을 통합하는데 나섰지만, 집안이 크게 대단하지는 않았기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애호부의 명성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기에 후처로 애호부 집안의 여성을 맞이한다. 이에 반발했던 누르하치의 장남, 아이신기오로 추연(愛新覺羅 褚英)은 사사건건 누르하치의 행동에 트집을 잡았으나, 오히려 이것이 본인에게 역으로 작용되어 유폐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홍타이지가 어머니의 후광으로 후계자 자리에 오른 것은 맞으나, 그의 개인적인 역량이 절대로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다. 누르하치를 대신하여 내몽골 지역을 평정하여 원(元)의 옥새를 얻었고 1636년, 북경(北京)에서 청(靑)나라의 건립을 대대적으로 선포하였다. 홍타이지의 몽골 평정은 이후 청나라의 황제들이 몽골의 칸(Khan) 직책을 대대로 세습하는데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몽골 평정 이후 홍타이지는 원나라의 뒤를 잇는다 하여 칭제하였으며, 만주 지역의 통치권을 만주 조정에게 이양하여 조선의 배후를 확실히 차단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또한, 반간계를 이용하여 숭정제원숭환을 죽이는데 노력했고 신해관 외곽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한창 명나라 원정에 나서던 도중 51세의 나이로 병사하고 만다.

평가

아버지와 아들과는 달리 특출나게 무언가 했다는 모습은 가려져 보이지 않으나, 무리하게 만주 지역을 흡수하지 않고 만주 조정에게 통치권을 이양한다든지 해영국의 군주를 황제인 자신과 동급으로 여기도록 조치를 취하는 등 해영국과의 관계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외에도 이러한 그의 조치덕분에 아들 시기에 중원 북부를 장악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등 명군으로서의 자질을 보였다.

각주

  1. 실질적인 건국 시조는 누르하치가 맞으나, 누르하치는 1626년에 영원성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숨을 거두면서 본인 생전에 황위에 오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