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문서는 칼루국 세계관 프로젝트 문서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세계관입니다.
주의. 이 문서는 제작에 참여 중인 멤버(사용자:Zwjatopx,사용자:Japanmania2)만 편집할 수 있습니다.
비 허가 수정 시 반달로 간주하여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차 에르난데즈 전쟁

오른스트 전투 당시 폐허가 된 건물.
날짜2032년 3월 2일 ~ 2034년 12월 24일
장소에르난데즈 섬 전체, 대한민국 전라남도 남해
결과 한국군의 패배, 남부 주둔 한국군 철수, 거문도 조약 체결.
교전국

스페인 (동음이의) 스페인

포르투갈 포르투갈
대한민국 대한민국
지휘관

유진 마르코 초이
에르난데즈 주지사

세오타크 엘로 리
에르난데즈 국방국 장관

펠리페 7세
스페인 국왕

호세 압스부르고
스페인 육군 원수

타이란놀 카스투야
스페인 해군 원수

곤살로 압스부르고
에르난데즈 주둔군 총사령관

훌리오 스테파노
에르난데즈 파견 사단 A군 사령관

샤비 토레스
에르난데즈 파견 사단 B군 사령관

페르난도 보르본
에르난데즈 파견 사단 C군 사령관

미겔 고야
에르난데즈 파견 연합 해군 총사령관

안토니우 데보시
포르투갈 대통령

메르반 코스카
에르난데즈 주둔군 총사령관

루카스 마르또
스페인&포르투갈 연합 공군 지휘 사령관

카에타누 밀로시
에르난데즈 파견 사단 D군 사령관

이반느 코리부시
에르난데즈 파견 사단 E군 사령관

김이연
대한민국 대통령

이종성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정채준
대한민국 해군 참모총장

채병수
대한민국 국무총리

박수희
제11공수특전여단장

박수염
제3보병사단장

마진천
제12보병사단장

유헌기
제25보병사단장

강횡수
제31보병사단장

이만주
제11기동사단장

정중표
제8기동사단장

설중도
제1함대 사령관

범세준
제3함대 사령관

소건위
공군작전사령부 사령관

강구정
해병대 제1사단장
병력

에르난데즈 수호군
에르난데즈 민병대
에르난데즈 경찰
A군
B군
C군
스페인 해군
연합 공군
D군
E군
포르투갈 해군

연합 공군

제11공수특전여단
제3보병사단
제12보병사단
제25보병사단
제31보병사단
제11기동사단
제8기동사단
제1함대
제3함대
공군

해병대 제1사단
피해 규모

2만 8천명
4만 2천명

2만 9천명
10만 1천명

개요

1차 에르난데즈 전쟁은, 대한민국과 스페인 사이의 에르난데즈(진도) 영유권을 찾기 위해 일어났던 전쟁으로 2년 10개월 동안 진행되었던 전쟁이다. 대한민국은 이 전쟁에서 패배하였으며 앞으로 2131년까지 영유권 주장을 사실상 포기하게 된다.

배경

진도(에르난데즈)는 1898년 미서전쟁에서 패배하여 쿠바필리핀을 빼앗긴 스페인이 대한제국으로 부터 구입한 땅이였다. 진도(에르난데즈)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렇게 자연스러히 스페인어를 익히게 되었고, 스페인인들의 이주 또한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러 1910년 대한제국이 한일병합으로 멸망했을 때도 진도만은 스페인 영토로 규정되어 합병되지 않았다. 한편 조선총독부에서 토지 조사 사업을 시작하면 서 부터, 본토에 있는 민중들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독립운동가들 또한 진도로 많이 건너갔었는데. 인세진[1]등 독립운동의 주요 인사들이 많이 활동하였다. 그렇기에 이것이 눈엣가시였던 조선총독부는 1917년 에르난데즈 주 정부에게 부탁하였으나. 돌아온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에르난데즈는 평화의 장소다. 누굴 잡아가려는건 용납할수없다._ 호세 루옹(에르난데즈 8대 주지사)

이와 같은 대답에 조선총독부는 골치가 아플 수 밖에 없었고, 태평양 전쟁 당시에도 나치 독일의 동맹국 스페인 소속인 탓에 함부로 건드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1919년 1.24 광복 이후 독립한 대한민국 정부와 에르난데즈 주 정부는 항상 대립할 때가 많았다.

발발 전

2032년 2월경, 김이연은 2선의 끝을 준비하던 상태였다. 그는 2선의 끝을 맞이하기 전 에르난데즈에 대한 합병을 목표로 대한민국 남부 주둔군이라는 제31보병사단 소속 기지를 건설하였는데, 에르난데즈 주 정부의 심기는 무척 불편하였다. 에르난데즈의 입장으로선 북부에 대한민국이라는 위험한 잠재적 적이 아예 자신들을 합병하려고 마음을 먹은 거나 다름없다는 뜻이였기 때문이다.

2월 19일, 김이연은 에르난데즈에 대한 합병을 국군 인사들과 논의하며, 전쟁 계획을 하고 있었다. 김이연의 이 같은 합병 정책은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었다. 에르난데즈는 에조 공화국이나 일본 공화국을 견제하기 좋은 지역이기도 하며, 동시에 칼루로 가는 항구로도 우수한 지역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스페인의 동아시아로서의 세력 확장이 우려되는 와중이었으므로,[2] 진도를 합병해야 한다는 여론 또한 커지기도 하였고, 본인 또한 뜻이 그러하였다, 결과적으로 3월 2일을 D-day로 한 채 대한민국의 준비는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군부 내에서도 이 전쟁에 의심을 가지는 장성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제25보병사단의 유헌기 소장은 자신의 희고록인 [제25보병사단장, 유헌기]에서 이렇게 희고하였다.

이 작전의 승산성은 난 의심하고 있었다. 초반과 중반에 승승장구한다고 해도, 후반에 갑작스럽게 역전당하면 그 뒷감당을 누가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이연 대통령의 야심은 충분히 이해가 가긴 하였지만, 나까지 거기에 휘말리게 된 건 뭔가 억울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앞날은 장담할 수 없지만, 이 전쟁의 결과가 김이연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줄 거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난 이 전쟁이 패배로 끝나면 이 군복을 벗을 거라 장담했었다... 그리고 결국 난 군복을 벗었다._ (제25보병사단장, 유헌기)

3월 1일, 모든 준비를 맞춘 김이연 정부는, 제3보병사단, 제12보병사단, 제25보병사단, 제11기동사단, 제8기동사단 등을 남부 주둔군 기지로 내려보내었고, 3월 2일 새벽 3시 진도대교 코앞에 도착한다.. 그리고 새벽 3시 5분경 진도대교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게 되는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는 에르난데즈 주 정부에 선전포고를 날렸다.

왜 유엔과 국제정세가 막지 못하였나?

한 마디로 말하자면 유엔은 이미 제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로 붕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29년부터 시작된 여러 국제사회의 유엔 탈퇴 선언[3] 나라 가릴 것 없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시작된 시대가 바로 신제국주의 시대(2029~2200)다.

개전이 일어난 2032년 3월 2일만 해도 유엔에서 탈퇴한 국가가 89국이나 되었고(...) 유엔은 사실상 1차 세계대전때의 국제연맹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무능력해진 상태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2030년 7월 1일 대한민국 폭주의 방지턱 역할을 할수있던 미국에서 미국 분열 사태가 일어나면서, 아메리카 연합국, 동부 아메리카 합중국,캘리포니아 공화국으로 나누어졌고, 초강대국의 붕괴에 세계정세가 흔들리는 와중, 결국 캐나다의 초강대국화가 일어났다. 캐나다는 대한민국 김이연 정부의 폭주에 거의 무관심할 정도였기에, 아메리카에서는 그다지 희망을 보기 힘든 상태였다.

유럽의 경우, 2022년부터 프랑스,독일 ,영국 ,스웨덴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이 유럽의 대표 강대국으로 군림한 상태에서 국제사회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여러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대한민국 김이연 정부의 폭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러시아는 2026년에 벌어진 2차 러시아 내전으로, 통합 러시아당공산당의 오랜 내전 끝에 통합 러시아당이 승리하긴 했지만. 국력의 소진을 피할 수 없었던 탓에, 군사력이 많이 떨어졌으며, 동시에 꽉 잡고 있던, 알렉산드르 루카셴카 정권의 벨라루스가 민주화되면서 떨어졌고, 2차 러시아 내전 와중에, 강대국이 된 우크라이나크림 반도를 다시 꿀꺽해버렸고, 잠가라 밸브 조차도 2021년 모든 유럽이 셰일 가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에서의 영향력은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인데다가, 그나마 남아있는 아시아 영향권도 대한민국 김이연 정부의 폭주로 인해, 잃어버릴 위기해 쳐있는 상태다. 그러나 앞서 말한 러시아의 국력 소진으로 인해, 러시아는 대한민국과 붙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참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의 중화민국과, 에조 공화국 일본 공화국이 그나마 대한민국에 대한 견제를 논의하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이도 결국 제한적인 논의로, 대한민국에 대한 굽신굽신이 이만저만도 아닌 상태다.

즉 이와 같이 현재 대한민국 김이연 정부에 대한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국제사회는 없어져 버린 탓에, 1차 에르난데즈 전쟁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개

진도대교 전투

진도대교 전투
1차 에르난데즈 전쟁의 일부의 일부

전투가 벌어지기 2년 전인 2030년 3월 4일쯤 촬영된, 진도대교의 사진
날짜2032년 3월 2일 ~ 2034년 3월 3일
장소진주시, 진도대교
결과 에르난데즈 수호군의 패배, 남부 주둔 한국군, 에르난데즈 내부로 진입 시작
교전국
에르난데즈 대한민국 대한민국
지휘관

우곽 호세 윤
진도대교 경비사령관

체온심 미겔 리
에르난데즈 4수호사단장

헤촐 요하니스 민
에르난데즈 19수호공수여단장

박수염
제3보병사단장

마진천
제12보병사단장

김칠연
민방위 16사단장[4]

성조일
제5공중기동비행단장
병력

진도대교 경비대
4수호사단

19수호공수여단

제3보병사단
제12보병사단
민방위16사단

제5공중기동비행단
피해 규모
347명[5] 46명
[6]


에르난데즈 주 정부의 비상

오른스트 전투
1차 에르난데즈 전쟁의 일부의 일부

종전 이후 1년뒤인 2035년 3월 9일에 찍힌 오른스트 전투 당시 총탄 흔적이 남아있는 폐건물의 벽
날짜2032년 3월 5일 ~ 2034년 3월 23일
장소에르난데즈, 메지드구, 오른스트시
결과 에르난데즈 수호군의 패배, 주요 도시인 오른스트시를 빼앗겨 경제 네트워크의 혼란이 일어남, 패배 후 퇴각작전인 수르톤 퇴각전 발생, 스페인 & 포르투갈, 참전 결심,
교전국
에르난데즈 대한민국
지휘관

쿠체르 곤살로 정
오른스트시 방위사령관

체온중 고야 리
에르난데즈 7수호사단장

즁퀴 프란시스코 오
에르난데즈 32수호사단장

징처르 블랑카 김
에르난데즈 9수호사단장

웅처르 엔리케 박
에르난데즈 17수호사단장

처르중 파블로 강
에르난데즈 제1무장경찰 사령관

나월 호안 김
에르난데즈 제11수호공중비행단장

박수염
제3보병사단장

유헌기
제25보병사단장

김칠연
민방위 16사단장

성조일
제5공중기동비행단장

정중표
제8기동사단장

민규완
제1공수여단장

이치일
민방위 39사단장
병력

7수호사단
32수호사단
9수호사단
17수호사단
제1무장경찰대

제11수호공중비행단

제3보병사단
제25보병사단
민방위16사단
제5공중기동비행단
제8기동사단
제1공수여단

민방위39사단
피해 규모

사망 2304명

부상 930명/포로 1849명

사망 970명

부상 1490명

오른스트 전투와 수르톤 퇴각전

한국 정부와 에르난데즈의 1차 협상

결렬된 협상과 위르텐 전차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참전

한편... 남해에서는...

제 1차 체르농 공세

C군 포위전

남해에서의 격돌

주도권 변동, 르메스트 전투

제 2차 체르농 공세

대한민국 최후의 도박, 뉘르반 철수작전

김이연 내각의 혼란

한국 정부와 에르난데즈의 2차 협상

종전

외전: 칼루 영해에 침범해버린 해군

결과

에르난데즈

민간인 피해

스페인&포르투갈

대한민국

기타

  1. 1890~1972 대한민국 임시정부 에르난데즈 지부를 담당하였던 독립운동가였으며. 광복 이후 서재필 정부때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 일본 내전때부터 고베시를 일시적으로 4년간 점령하였으며, 중화민국에게 원저우와 타이저우의 할양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물론 결과는 중화민국의 거절.
  3. 정확히는 2029년 2월 7일, 미국의 탈퇴 선언이 기폭제가 되었다.
  4. 김이연 대통령의 막내 동생이다.
  5. 200명 사망/147명 부상 및 포로.
  6. 24명 부상/24명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