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중 하나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관리자. 문서를 고치려면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용자 환경 설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이메일 주소 인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틀:광성군의 해체된 부대}} {{디자이너 정부 기관 정보 |너비 = 380px |틀 색 = #305c1f |글씨 색 = #ffffff |테두리 색 = #305c1f |범례 너비 = 30% |범례 배경 색 = #305c1f |범례 글씨 색 = #ffffff |기관명 = 국군기무부대 |원어명 = 國軍機務部隊<br>Defense Security Unit |문장 = 국군보안부대.png |문장 크기 = 360px |문장 설명 = 구 보안부대의 기 |사진 = 광성기무부대.png |사진 크기 = 360px |사진 설명 = 기무부대의 기 |표어 = 조국과 자유는 우리의 생명, 정보는 국력이다 |약칭 = 기무부 |설립일 = 1950년 9월 9일 , 1961년 3월 2일 ( 재편 ) |설립 근거 = 구 국방보안법 제1조 |전신 = |해산일 = 1965년 6월 18일 |후신 = [[광성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광성 국방첩보부|국방첩보부]] |소재지 = [[광성공화국]] [[광산구]] 윤로동 |직원 = |예산 = |기관장 = 정희철 , 나종필 , 천상호 |기관장 이름 = 기무부대장 |상급기관 = [[광성연방공화국]] [[광성연방공화국 국방부|국방부]] |산하기관 = 정보수사부, 특수무장대 }} ==개요== [[틀:광성연방공화국 4대 정보기관|광성의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와 국방첩보부의 시초가 되는 군내 첩보부대로, 50년대 실질적 국내외 정보기관으로서 공포에 떨게하였다. ==창설== 1950년 김핀천 정권 초기, 군내 안정화를 위하여 창설되었지만, 당시 [[광성공화국|광성]]내 실질적인 정보기관이 없어 국내외 방첩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희철]]은 당시 육군 중령으로 군내 정보시설에서 활동했었는데, [[광성 사회주의 전보 사건]]과 관련된 이들을 잡아내는 뛰어난 활약을 보이자, 창설과 함께 보안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정희철]]의 보안부대는 국내외의 실질적인 정보기관으로서 매우 많은 첩보활동을 벌였지만, 이 과정에서 벌어진 월권과 부정부패로 인하여 광성을 공포에 떨게하였다.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압박수사와 고문수사의 폐해는 후신 기관인 [[광성 국방첩보부|국방첩보부]]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하였다. ==해체== [[정희철]]의 월권 행각은 끝날줄 몰랐다. 하지만 1961년 3월 2일 김핀수 내각이 들어서자, 적폐청산을 위하여 [[국군기무부대]]로 해편되고 [[정희철]]은 그동안의 부패행각과 살인교사등의 혐의를 떠앉고 법의 심판을 받게된다.<ref>정희철은 사형선고를 받게되고, 끝내 1962년 1월 3일 추운 겨울날, 교수형에 쳐해 사망한다</ref> ==기무부대장==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Large (원본 보기) 틀:Resize (원본 보기) 틀:광성군의 해체된 부대 (원본 보기) 틀:디자이너 정부 기관 정보 (원본 보기) 국군기무부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