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부대


광성군의 해체된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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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기무부대
國軍機務部隊
Defense Security Unit

구 보안부대의 기

기무부대의 기
표어
조국과 자유는 우리의 생명, 정보는 국력이다
약칭
기무부
설립일
1950년 9월 9일 , 1961년 3월 2일 ( 재편 )
설립 근거
구 국방보안법 제1조
해산일
1965년 6월 18일
후신
중앙정보부,국방첩보부
소재지
광성공화국 광산구 윤로동
기무부대장
정희철 , 나종필 , 천상호
상급기관
광성연방공화국 국방부
산하기관
정보수사부, 특수무장대


개요

광성의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와 국방첩보부의 시초가 되는 군내 첩보부대로, 50년대 실질적 국내외 정보기관으로서 공포에 떨게하였다.

창설

1950년 김핀천 정권 초기, 군내 안정화를 위하여 창설되었지만, 당시 광성내 실질적인 정보기관이 없어 국내외 방첩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희철은 당시 육군 중령으로 군내 정보시설에서 활동했었는데, 광성 사회주의 전보 사건과 관련된 이들을 잡아내는 뛰어난 활약을 보이자, 창설과 함께 보안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정희철의 보안부대는 국내외의 실질적인 정보기관으로서 매우 많은 첩보활동을 벌였지만, 이 과정에서 벌어진 월권과 부정부패로 인하여 광성을 공포에 떨게하였다.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압박수사와 고문수사의 폐해는 후신 기관인 국방첩보부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하였다.

해체

정희철의 월권 행각은 끝날줄 몰랐다. 하지만 1961년 3월 2일 김핀수 내각이 들어서자, 적폐청산을 위하여 국군기무부대로 해편되고 정희철은 그동안의 부패행각과 살인교사등의 혐의를 떠앉고 법의 심판을 받게된다.[1]

기무부대장

  1. 정희철은 사형선고를 받게되고, 끝내 1962년 1월 3일 추운 겨울날, 교수형에 쳐해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