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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만 시대 ===
== 역사 ==
오스만 제국이 있기 전 오스만 베이국 시절의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고, 오스만 제국으로 다시태어난 오스만은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레반트, 메카와 메디나로 대표되는 아라비아반도와 이슬람 세계, 알렉산드리아로 대표되는 맘루크를 무너뜨리고 북아프리카를 차지하는 등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본문|만주 민주 공화국/역사}}
만주 민주 공화국의 역사는 만주라는 지역에 존재하였던 모든 국가를 계승한다는 '''속지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만주라는 국가의 정체성은 [[만주족]]이 세웠던 금나라, 더욱 나아가 중원과 중국 전체를 점령하였던 [[청나라]]를 계승하여 세워진 [[만주 임시정부 (만민공)]]을 계승하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오족조화(五族調和)'''사상에 따라서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근대까지 만주의 주인이었던 [[만주족]]의 땅이 만주라는 인식은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다.


오스만은 발칸의 정교회 국가들과 유럽을 계속해 점령하였다. 오스만의 시작으로 아드리아노폴리스를 넘어 베오그라드를 점령, 발칸의 내륙까지 진출하며 로도스 섬에서는 해적을 일삼는 성 요한 기사단을 격퇴시키고 동지중해를 거머쥐었으며 모하치 전투를 통해 헝가리 평원 반이상을 얻었다.
실제로 전근대 이전에는 만주라는 분리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청나라가 만주 민족주의를 최대한 기반으로 삼아 제국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결국 파멸을 맞이하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강북에서 만주로 이주해오는 많은 만주족들로 인해 민족주의에 감명받은 지도자들은 만주 임시정부를 통해 사실상의 만주 민족국가를 다시 세우려 하였고 이로 인해 만주라는 분리된 개념으로서 역사의식이 생기는 기초가 되었다.
===고대===
산융(山戎), 동호(東胡), 숙신(肅愼), 예맥(濊貊), 한(漢) 이란 만주지역에 정주하던 다섯개의 주된 민족집단이 있었다. 이들중 현대 만주의 영토에 있어서 확실히 만주에 정주했다고 여겨지는 민족은 중부의 예맥(濊貊), 동부의 숙신(肅愼), 서부의 동호(東胡)이다.


쉴레이만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인 빈까지 일년 반이나 포위하였고 비록 격퇴되었으나 서유럽 깊숙히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중 동호는 기원전 8세기 즈음 부터 중국의 역사에 등장한다. 동호는 수렵채집을 주된 생활 양식으로 삼는 이들로 요서 인근에서 거주한 이들로 중국의 역사 서술 특징상 몽골 일대 동쪽에 있어 동호라 불렀으므로 좁게는 퉁구스계나 만주 토속계통, 더욱 넓게는 시베리아 까지도 동호라고 볼 수 있다. 동호에서 실질적으로 중심이 되어 중국의 역사에 등장하는 집단은 중국의 제나라(齊)에게 멸망당하였다. 이들은 이후 선비족(鮮卑)이란 이름으로 다시금 역사에서 만주 일대에 거주하는 이들로 등장한다. 이들은 향후 [[몽골]]의 조상이 되어 몽골을 세우고 [[동몽골 자치주]]의 조상이 된다.


프레베자 해전은 기독교의 유서깊은 지중해 세력을 격파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성동맹인 베네치아와 스페인, 제노바와 몰타 기사단, 교황령이 연합군을 구성해 대항했으나 이오니아 해의 프레베자에서 오스만은 포로를 3천여명, 10척 침몰과 3척 방화 38척을 나포하며 오스만은 단 한척도 지 않으며 대승을 거두었고  시로스(Syros) 아이기나(Aegina), 로스(Ios), 파로스(Paros), 티노스(Tinos), 카르파토스(Karpathos), 카소스(Kasos), 낙소스(Naxos)와 같은 많은수의 에게 해(Aegean Sea)와 이오니아의 섬들을 손에 넣으며 그리스 반도와 그리스 지역을, 더 넘어 동지중해를 온전히 손에 넣었다.
숙신은 동쪽에 사는 이들이었다. 주나라()때 처음 등장하는데, 이들 또한 정주보단 반수렵-농업 생활을 한것으로 추정된다. 정주하는 곳은 여름에는 나무 위, 겨울에는 동굴이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다. 더불어 이들이 농업을 한 증거로는 쌀로 밥을 지어먹었고, 돼지를 기른 점에서 이들이 농업을 하였다고 볼 수 있고, 이들은 현재의 [[러시아]]의 극동관구에 속하는 연해주 지역에서 거주하였다. 이들은 이후 [[고조선]]에게 멸망당한다. 하지만 숙신은 주된 민족으로, 현대 [[만주족]]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역사에서 큰 폭을 차지한다. 이들은 향후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이 되고, 금나라()를 세우고 [[청나라|청나라()]]를 세우며 만주족의 조상이 된다.


쉴레이만이 죽은 후 베네치아령이던 키프로스를 점령했는데, 이를 위협과 도전, 합스부르크와의 전쟁명분이 되며 신성동맹은 다시금 결성되었고 스페인, 베네치아, 제노바, 사보이아, 몰타, 토스카나, 시칠리아, 나폴리, 성 라자루스 기사단, 우르비노와 교황령은 이오니아 해의 파트라스만에서 오스만은 전투를 벌였다.
예맥은 만주의 중부나 [[한반도|조선반도]]의 북부에 거주하던 이들로, 이들은 남쪽의 조선반도에서 살던 이들과 동화되어 향후 [[한민족|조선족]]이 된다. 이들은 만주 일대에 고대국가 [[고조선]]을 세웠고 꽤나 오랜 역사동안 만주의 패자로서 오랜 역사를 지니며 자취를 남겼다. 현재의 조선족의 직계조상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대체로 조선족의 조상으로 여겨지며 학자에 따라선 사실상 고조선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향후 [[고조선]]과 [[부여]], [[고려]]와 [[조선]]을 세우고 현대의 [[대한제국]]의 조상이 된다.


이때 오스만은 총 256척을을 투입헤 230척을 잃었는데 137척을 기독교 세력이 나포해 이를 함대에 넣어 오히려 전 주인이던 오스만을 향해 포를 돌렸고 30척은 모두 방화되었기 때문이다.
===중세===
 
===근대===
비록 패배했으나 그들의 위세는 여전하였고, 오스만의 함대는 다시 재건되며 북아프리카의 튀니스를 얻고 슬로베니아와 아드리아해 연안을 제외한 전 발칸을 휘하에 넣었다.
===현대===
 
1699년에 헝가리를 잃고 오스트리아가 합병하는 등 유럽국가들의 영토회복이 시작됨과 동시에 아랍인이나 그리스인 등의 피지배 민족의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1830년에는 그리스가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였고, 그리스는 정교회 신앙을 복고함과 동시에 민족으로서 다시 자부심을 가지고 수호자를 자처하며 아직 이교도의 손에 부쳐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를 후원하며 지지하였다.
 
술탄 압뒬메지트 1세 시기에 탄지마트 개혁이 일어났으나 2세의 의해 이는 폐지되며 이슬람을 재패한 대제국은 회복의 기세가 꺽였고 1853년 크림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서방의 이해관계로 인해 겨우 승리하였으나, 내륙이었던 캅카스에선 밀리고, 전쟁 승리는 군비확충과 국력소비라는 결과를 낳았으며 결과적으로 러시아를 혼자선 상대할 수 없다는 결과였다.
 
이에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서방에게 지지를 얻을 필요를 절감하며 개혁을 통해 비무슬림의 권리를 인정하겠다 하며 제2차 탄지마트를 시작하고 서양의 법과 제도 등을 도입하며 가장 대표적 조치로는 이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박해는 예전보다는 덜해졌고, 총대주교청이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에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개혁은 막대한 차관, 그리고 개혁개방을 필요로 했고 제국은 경제적으로 공황까지 일어나며 파산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며 러시아군이 수도 콘스탄티니예의 서쪽인 산스테파노까지 행군해도 된다 인정하며 발칸의 슬라브 민족은 독립과 영토확장이 이루어졌으며 불가르는 두나야부터 에게해까지 확대되고 흑해부터 오흐리드 호를 러시아의 손에 부치게 되었다.
 
압뒬메지트는 비상사태를 선표하며 미흐마트 헌법을 폐지하였고 개혁주의자들등의 좌익세력을 숙청 및 유배, 좌천하며 피의 숙청을 하다가 1908년에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청년 튀르크 당에 의해 폐위, 메흐마트 5세가 왕권을 잡으며 미흐마트 헌법을 부활하였으나 ‘모든 민족의 평등’이 ‘터키인으로 한정한 평등’으로 바뀌고 결국 제1차 발칸전쟁의 계기가 되며 알바니아인은 독립을 선포하였다.
 
=== 1차 세계대전 ===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불가리아 왕국·오스만 제국·루마니아 왕국으로 구성된 동맹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동맹으로서 협상국(대영제국·프랑스 식민제국·러시아 제국)은 이에 맞섰다.
 
처음 시작은 사라예보에서 울린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단체 흑수단의 청년 가브릴로 프란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저격하며 시작되었다.
 
이는 비록 명분에 지나지 않았고, 실제로는 오랫동안 쌓여온 역사와 당대의 터질듯 말듯한 폭탄과 같음 국제정세 때문 등 여러 이유가 혼재했다.
 
=== 위대한 이상의 실현 ===
=== 콘스탄티노폴리스 협정 ===
=== 아테네 협정 ===
=== 아뉘포탁스 독트린 ===
=== 제2차 세계대전 ===
=== 마셜플랜 ===
=== 제3차 발칸전쟁 ===
=== 현재 ===

2022년 6월 2일 (목) 18:42 기준 최신판

역사

만주 민주 공화국의 역사는 만주라는 지역에 존재하였던 모든 국가를 계승한다는 속지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만주라는 국가의 정체성은 만주족이 세웠던 금나라, 더욱 나아가 중원과 중국 전체를 점령하였던 청나라를 계승하여 세워진 만주 임시정부 (만민공)을 계승하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오족조화(五族調和)사상에 따라서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근대까지 만주의 주인이었던 만주족의 땅이 만주라는 인식은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다.

실제로 전근대 이전에는 만주라는 분리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청나라가 만주 민족주의를 최대한 기반으로 삼아 제국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결국 파멸을 맞이하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강북에서 만주로 이주해오는 많은 만주족들로 인해 민족주의에 감명받은 지도자들은 만주 임시정부를 통해 사실상의 만주 민족국가를 다시 세우려 하였고 이로 인해 만주라는 분리된 개념으로서 역사의식이 생기는 기초가 되었다.

고대

산융(山戎), 동호(東胡), 숙신(肅愼), 예맥(濊貊), 한(漢) 이란 만주지역에 정주하던 다섯개의 주된 민족집단이 있었다. 이들중 현대 만주의 영토에 있어서 확실히 만주에 정주했다고 여겨지는 민족은 중부의 예맥(濊貊), 동부의 숙신(肅愼), 서부의 동호(東胡)이다.

이중 동호는 기원전 8세기 즈음 부터 중국의 역사에 등장한다. 동호는 수렵채집을 주된 생활 양식으로 삼는 이들로 요서 인근에서 거주한 이들로 중국의 역사 서술 특징상 몽골 일대 동쪽에 있어 동호라 불렀으므로 좁게는 퉁구스계나 만주 토속계통, 더욱 넓게는 시베리아 까지도 동호라고 볼 수 있다. 동호에서 실질적으로 중심이 되어 중국의 역사에 등장하는 집단은 중국의 제나라(齊)에게 멸망당하였다. 이들은 이후 선비족(鮮卑)이란 이름으로 다시금 역사에서 만주 일대에 거주하는 이들로 등장한다. 이들은 향후 몽골의 조상이 되어 몽골을 세우고 동몽골 자치주의 조상이 된다.

숙신은 동쪽에 사는 이들이었다. 주나라(周)때 처음 등장하는데, 이들 또한 정주보단 반수렵-농업 생활을 한것으로 추정된다. 정주하는 곳은 여름에는 나무 위, 겨울에는 동굴이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다. 더불어 이들이 농업을 한 증거로는 쌀로 밥을 지어먹었고, 돼지를 기른 점에서 이들이 농업을 하였다고 볼 수 있고, 이들은 현재의 러시아의 극동관구에 속하는 연해주 지역에서 거주하였다. 이들은 이후 고조선에게 멸망당한다. 하지만 숙신은 주된 민족으로, 현대 만주족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역사에서 큰 폭을 차지한다. 이들은 향후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이 되고, 금나라(金)를 세우고 청나라(靑)를 세우며 만주족의 조상이 된다.

예맥은 만주의 중부나 조선반도의 북부에 거주하던 이들로, 이들은 남쪽의 조선반도에서 살던 이들과 동화되어 향후 조선족이 된다. 이들은 만주 일대에 고대국가 고조선을 세웠고 꽤나 오랜 역사동안 만주의 패자로서 오랜 역사를 지니며 자취를 남겼다. 현재의 조선족의 직계조상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대체로 조선족의 조상으로 여겨지며 학자에 따라선 사실상 고조선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향후 고조선부여, 고려조선을 세우고 현대의 대한제국의 조상이 된다.

중세

근대

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