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당 (jdr):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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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신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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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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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창당된 [[조선민주공화국]]의 진보정당이다. 현존하는 조선민주공화국 정당들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제1공화국이 수립된 1950년부터 민주화가 이루어진 1976년까지 26년간 집권한 정당이다. 현재는 원내 3석을 가진 진보 제3야당이다.  
1948년 창당된 [[조선민주공화국]]의 진보정당이다. 현존하는 조선민주공화국 정당들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제1공화국이 수립된 1950년부터 민주화가 이루어진 1976년까지 26년간 집권한 정당이다. 현재는 원내 3석을 가져 [[새로운 세상]]과 함께 원내 3당이다.
 
=역사=
=역사=
==독립과 신탁통치, 민주사회당의 창당==
==독립과 신탁통치, 민주사회당의 창당==
건국 직후 창당되어 여운형, 유진산 대통령을 배출한 주요정당이었다. 제1공화국 당시 정당정치제도가 확립되지 않았음에도 항상 1/3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며 확고한 여당 역할을 하였고, 조선민주공화국의 사회민주주의 기반 정치제도 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 조선민주공화국의 경제제도인 사회주의 기반 시장경제 및 자유사회주의 또한 민주사회당 통치 시기에 확립되었다.
==마오주의 조선공산당 창당, 1당독재의 시작==
==마오주의 조선공산당 창당, 1당독재의 시작==
1960년대 후반, 중국 내 마오쩌둥의 복권 및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였던 당시 중공의 정책은 조선민주공화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압박으로 유진산 대통령의 임기 중 민주사회당의 당명이 조선공산당으로 바뀌었고, 개헌을 통해 평의회 형태로 구성된 정치조직을 갖춘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된다. 1기 정당평의회 및 전인민국가회의(내각) 조직은 중국 출신 인물로 교체되었으며 유진산 대통령 재임 당시 외무부 차관을 지낸 저우젠런 대표가 평의회 의장을 맡으며 국가원수가 되었다.
이후 보수당과 통일당이 강제해산 되고 사실상의 유일한 합법정당으로 기능하게 된 조선공산당은 1당독재를 펼치게 된다. 1971년 평의회 대표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개정헌법이 통과되었고 저우젠런 평의회 의장이 단독후보로 나와 100%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민주화와 몰락, 진보정당으로의 민주사회당 재창당==
==민주화와 몰락, 진보정당으로의 민주사회당 재창당==
1976년, 나주시에서 "중국의 속국화"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시위가 일어났고,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1969년 광주-나주 혁명]]이 일어났다. 1977년 저우젠런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권력에서 물러났으며 개헌을 통해 직선제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제3공화국이 출범했다. 조선공산당의 당명 또한 민주사회당으로 복귀했으며 당 조직은 다시 호남 출신 진보주의자로 교체되었다. 권위주의 독재정당에서 사회주의 진보정당으로 복귀한 민주사회당은 독재의 책임으로 [[제5대 조선민주공화국 대통령선거|다음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았고, 민주당과 통일당을 계승하여 창당된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jdr)|김대중]] 총재가 94%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후 집권정당으로서의 위상은 잃었으나, 초기 민주사회당의 성격을 회복하였고 현재는 꾸준히 총선마다 의석을 확보하는 진보정당으로 기능하고 있다.
= 정치적 성향 =
상술하였듯 민주사회당의 정치적 성격은 1, 2, 3공화국마다 변화하였다. 해당 문단에서는 현재 제3공화국에서의 민주사회당의 정치적 성향을 설명한다. '''요약하자면 대한민국의 분당 이전 정의당과 유사하다.'''
== 사회민주주의==
당의 가장 기초적인 정치경제적 성향이자 조선민주공화국의 국가적 정치 체제이기도 하다. 사유재산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불평등과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복지, 재분배, 사회정책을 실현하고 있다.
== 남북 평화적 연합통일론 ==
조선민주공화국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한반도 통일론에 있어서는 통일지향적이다. 남한과 북한 모두와의 통일은 장기적으로 필수적이라고 주장함과 동시에, 평화적 협상을 통한 상호체제 존중 및 유럽연합과 같은 시스템의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 지지기반 =
== 전남 동남권 ==
과거부터 여수시, 순천시, 광양시는 민주사회당의 정치적 기원이었다. 당의 지지도와 국내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기는 하지만 주기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지역구 의석을 확보한다. 민주사회당 지도부도 해당 지역 출신이 주를 이룬다.
== 소수자, 노동계 ==
진보정당답게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의 지지가 굳건하다. 전남 동남권에서 민주사회당 지지율이 높은 이유 또한 산업단지 덕분.
== 60세 이상 노년층 ==
제1공화국과 독재정권을 모두 거친 60대 이상의 노인층에서 민주사회당의 지지가 두드러진다. 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당의 성격이 완전히 변화한 것과 동시에 제1공화국 당시 집권당을 계승한 것이 원인.
= 조직 =
= 출신인물 =
== 민주사회당 ==
=== 제1공화국 ===
* 여운형: 초대, 2대 대통령
* 유진산: 3대 대통령
=== 제3공화국 ===
* 김선동: 민주사회당 現 대표, 민주평의회 의원
* 박형대: 민주평의회 의원 (여수)
* 오미화: 민주평의회 의원 (비례대표)
* 민점기: 前 전라남도지사
== 조선공산당 출신 ==
* 저우젠런: 4대 대통령

2024년 8월 22일 (목) 15:40 기준 최신판


조선민주공화국 민주평의회
원내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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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의회
(2022년 6월 12일 ~ 현재)
여당

10석
연립여당

2석
야당

48석

3석

3석
무소속 1석
재적 67석
조선민주공화국의 좌익 정당
조선공산당 민주사회당 현재
무소속
(조선공산당 탈당파 개별 합류)
민주사회당
Democratic Social Party
슬로건 역사의 힘, 민중의 힘
창당일 1948년 9월 19일 (민주사회당)
당명변경 1964년 5월 12일 (조선공산당)
1977년 3월 13일 (민주사회당)
통합한 정당 남조선로동당 (개별합류)
대표 김선동
원내대표 김선동
사무총장 응우옌 구와아악
대변인 최원상 / 응우옌 똥뿌직쌈[1]
이념 사회민주주의
다문화지향
연방제 통일
스펙트럼 좌파 ~ 중도좌파[2]
민주평의회 의원 3석 / 62석 (4.8%)
광역자치단체장 0석 / 7석 (0.0%)
기초자치단체장 6석 / 44석 (13.6%)
당색 주황색(#F26522)
당원수 21,124명 (2024년 1월)
당가 자주민주평등평화 민주사회 건설의 노래

개요

1948년 창당된 조선민주공화국의 진보정당이다. 현존하는 조선민주공화국 정당들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제1공화국이 수립된 1950년부터 민주화가 이루어진 1976년까지 26년간 집권한 정당이다. 현재는 원내 3석을 가져 새로운 세상과 함께 원내 3당이다.

역사

독립과 신탁통치, 민주사회당의 창당

건국 직후 창당되어 여운형, 유진산 대통령을 배출한 주요정당이었다. 제1공화국 당시 정당정치제도가 확립되지 않았음에도 항상 1/3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며 확고한 여당 역할을 하였고, 조선민주공화국의 사회민주주의 기반 정치제도 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 조선민주공화국의 경제제도인 사회주의 기반 시장경제 및 자유사회주의 또한 민주사회당 통치 시기에 확립되었다.

마오주의 조선공산당 창당, 1당독재의 시작

1960년대 후반, 중국 내 마오쩌둥의 복권 및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였던 당시 중공의 정책은 조선민주공화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압박으로 유진산 대통령의 임기 중 민주사회당의 당명이 조선공산당으로 바뀌었고, 개헌을 통해 평의회 형태로 구성된 정치조직을 갖춘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된다. 1기 정당평의회 및 전인민국가회의(내각) 조직은 중국 출신 인물로 교체되었으며 유진산 대통령 재임 당시 외무부 차관을 지낸 저우젠런 대표가 평의회 의장을 맡으며 국가원수가 되었다. 이후 보수당과 통일당이 강제해산 되고 사실상의 유일한 합법정당으로 기능하게 된 조선공산당은 1당독재를 펼치게 된다. 1971년 평의회 대표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개정헌법이 통과되었고 저우젠런 평의회 의장이 단독후보로 나와 100%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민주화와 몰락, 진보정당으로의 민주사회당 재창당

1976년, 나주시에서 "중국의 속국화"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시위가 일어났고,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1969년 광주-나주 혁명이 일어났다. 1977년 저우젠런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권력에서 물러났으며 개헌을 통해 직선제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제3공화국이 출범했다. 조선공산당의 당명 또한 민주사회당으로 복귀했으며 당 조직은 다시 호남 출신 진보주의자로 교체되었다. 권위주의 독재정당에서 사회주의 진보정당으로 복귀한 민주사회당은 독재의 책임으로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았고, 민주당과 통일당을 계승하여 창당된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총재가 94%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후 집권정당으로서의 위상은 잃었으나, 초기 민주사회당의 성격을 회복하였고 현재는 꾸준히 총선마다 의석을 확보하는 진보정당으로 기능하고 있다.

정치적 성향

상술하였듯 민주사회당의 정치적 성격은 1, 2, 3공화국마다 변화하였다. 해당 문단에서는 현재 제3공화국에서의 민주사회당의 정치적 성향을 설명한다. 요약하자면 대한민국의 분당 이전 정의당과 유사하다.

사회민주주의

당의 가장 기초적인 정치경제적 성향이자 조선민주공화국의 국가적 정치 체제이기도 하다. 사유재산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불평등과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복지, 재분배, 사회정책을 실현하고 있다.

남북 평화적 연합통일론

조선민주공화국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한반도 통일론에 있어서는 통일지향적이다. 남한과 북한 모두와의 통일은 장기적으로 필수적이라고 주장함과 동시에, 평화적 협상을 통한 상호체제 존중 및 유럽연합과 같은 시스템의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지지기반

전남 동남권

과거부터 여수시, 순천시, 광양시는 민주사회당의 정치적 기원이었다. 당의 지지도와 국내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기는 하지만 주기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지역구 의석을 확보한다. 민주사회당 지도부도 해당 지역 출신이 주를 이룬다.

소수자, 노동계

진보정당답게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의 지지가 굳건하다. 전남 동남권에서 민주사회당 지지율이 높은 이유 또한 산업단지 덕분.

60세 이상 노년층

제1공화국과 독재정권을 모두 거친 60대 이상의 노인층에서 민주사회당의 지지가 두드러진다. 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당의 성격이 완전히 변화한 것과 동시에 제1공화국 당시 집권당을 계승한 것이 원인.

조직

출신인물

민주사회당

제1공화국

  • 여운형: 초대, 2대 대통령
  • 유진산: 3대 대통령

제3공화국

  • 김선동: 민주사회당 現 대표, 민주평의회 의원
  • 박형대: 민주평의회 의원 (여수)
  • 오미화: 민주평의회 의원 (비례대표)
  • 민점기: 前 전라남도지사

조선공산당 출신

  • 저우젠런: 4대 대통령
  1. 국제대변인
  2. 1976년 제3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의 개입이 줄어들며 극좌 성향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