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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공화국 설립 전까지의 앙골라 성인들의 75%는 대학교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하지 않았다. 나머지 25% 역시 학생수에 비해 교직원의 숫자가 극단적으로 적었던 2년제 지역학원의 졸업자들이거나 상류층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의 자제들로, 사립대학교였던 루안다 대학교나 루방구 대학교 출신이었다. 이를 해소하고자 앙골라 중앙교육부는 전후 이촌향도를 하며 제조업 기반이 위치했던 거점도시들로 몰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간 대학교를 운영하며 노하우를 쌓았으며, 시험을 통하여 지적 능력을 인정받은 노동자들 일부를 교직에 임명하며 교육자들 양성을 시작했었다. 2공화국 설립 직전까지, 지자체별로 운영 주체가 나뉘었던 야간교육기관의 교직원은 앙골라를 통틀어 도합 2만명에 달했다. | 2공화국 설립 전까지의 앙골라 성인들의 75%는 대학교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하지 않았다. 나머지 25% 역시 학생수에 비해 교직원의 숫자가 극단적으로 적었던 2년제 지역학원의 졸업자들이거나 상류층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의 자제들로, 사립대학교였던 루안다 대학교나 루방구 대학교 출신이었다. 이를 해소하고자 앙골라 중앙교육부는 전후 이촌향도를 하며 제조업 기반이 위치했던 거점도시들로 몰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간 대학교를 운영하며 노하우를 쌓았으며, 시험을 통하여 지적 능력을 인정받은 노동자들 일부를 교직에 임명하며 교육자들 양성을 시작했었다. 2공화국 설립 직전까지, 지자체별로 운영 주체가 나뉘었던 야간교육기관의 교직원은 앙골라를 통틀어 도합 2만명에 달했다. | ||
1974년에 제정된 2공화국 헌법에는 교육의 권리를 명시하며 국가가 직접 이를 보장하기로 하였고, 이에 의거하여 2개의 국립 고등교육기관인 앙골라 연방대학교(AFU) 시스템과 앙골라 공과대학교(AIT) 시스템이 세워진다. 추후 앙골라의 경제적 발전과 인구증가가 매우 빨라지며 평균 교육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앙골라 국제대학교(AIU) 시스템과 와 앙골라 주립대학교(APU) 시스템을 추가로 설립하였다. | 1974년에 제정된 2공화국 헌법에는 교육의 권리를 명시하며 국가가 직접 이를 보장하기로 하였고, 이에 의거하여 2개의 국립 고등교육기관인 앙골라 연방대학교(AFU) 시스템과 앙골라 공과대학교(AIT) 시스템이 세워진다. 추후 앙골라의 경제적 발전과 인구증가가 매우 빨라지며 평균 교육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앙골라 국제대학교(AIU) 시스템과 와 앙골라 주립대학교(APU) 시스템을 추가로 설립하였다. | ||
시스템 운영의 많은 부분이 미합중국의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대학교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며 AFU는 UC에, APU는 CSU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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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부터 MIT를 따라한 듯한 모습인데, 사실 이 대학교의 근간은 MIT 출신인 페르난두 다 실바가 미리 설계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앙골라 내에 최초로 세운 대학인 ACIB를 제외하고도 앙골라 자치령 탄생 이후 루방구의 수출을 담당하는 항구도시 모사메드스에 모사메드스 공과대학교 (MTU)를 설립하여 과학기술 교육에도 관심을 보였다. 모사메드스 주변은 전부 사막이었고 이 덕분에 페르난두는 다양한 고위험 연구 인프라를 이곳에 설치한다. 이후 임시공화정 시절의 사빔비는 사립대학교인 모사메드스 대학의 인문학과 학도들에게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심어주는 MTU의 시스템에 주목하였고, 당시 MTU의 총장과 합의하여 국비로 MTU를 지원해주며 빈곤 장학생들을 입학시키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MTU 재단의 지분 70%를 앙골라 정부가 소유하게 되었다. 이후 앙골라는 2공화국 헌법에 공과대학교 설립을 명시하였고 1975년, MTU를 국립대학으로 지정하여 앙골라 최초의 국립 공과대학교가 탄생한다. 이후 MTU의 명칭을 AIT 모사메드스로 변경하여 AIT 최초의 캠퍼스가 된다. AIT 역시 80년대 고성장 시기에 앙골라 전역으로 캠퍼스를 넓혀나갔으며 앙골라 전역에 총 8개의 캠퍼스가 존재한다. | 명칭부터 MIT를 따라한 듯한 모습인데, 사실 이 대학교의 근간은 MIT 출신인 페르난두 다 실바가 미리 설계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앙골라 내에 최초로 세운 대학인 ACIB를 제외하고도 앙골라 자치령 탄생 이후 루방구의 수출을 담당하는 항구도시 모사메드스에 모사메드스 공과대학교 (MTU)를 설립하여 과학기술 교육에도 관심을 보였다. 모사메드스 주변은 전부 사막이었고 이 덕분에 페르난두는 다양한 고위험 연구 인프라를 이곳에 설치한다. 이후 임시공화정 시절의 사빔비는 사립대학교인 모사메드스 대학의 인문학과 학도들에게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심어주는 MTU의 시스템에 주목하였고, 당시 MTU의 총장과 합의하여 국비로 MTU를 지원해주며 빈곤 장학생들을 입학시키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MTU 재단의 지분 70%를 앙골라 정부가 소유하게 되었다. 이후 앙골라는 2공화국 헌법에 공과대학교 설립을 명시하였고 1975년, MTU를 국립대학으로 지정하여 앙골라 최초의 국립 공과대학교가 탄생한다. 이후 MTU의 명칭을 AIT 모사메드스로 변경하여 AIT 최초의 캠퍼스가 된다. AIT 역시 80년대 고성장 시기에 앙골라 전역으로 캠퍼스를 넓혀나갔으며 앙골라 전역에 총 8개의 캠퍼스가 존재한다. | ||
AIT 중 으뜸은 단연코 AIT 모사메드스로, 최초의 AIT이자 최대의 AIT (총 학생수 8만명)로 가장 높은 기술적 경험 축적도와 가장 발전된 연구시설들을 보유중이다. 모사메드스 다음 가는 전문성을 가진 학교는 바로 AIT 포르투암보임으로, 반도체의 도시답게 전기공학과와 반도체공학에서 모사메드스와 비등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성취도를 보인다. | AIT 중 으뜸은 단연코 AIT 모사메드스로, 최초의 AIT이자 최대의 AIT (총 학생수 8만명)로 가장 높은 기술적 경험 축적도와 가장 발전된 연구시설들을 보유중이다. 모사메드스는 MTU의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공학도들이 매우 높은 농도로 모이는 도시이며 앙골라 내 가장 많은 기술 스타트업들이 위치해있으며 AFU 모사메드스의 경영학과 순위가 앙골라 내 1위인 이유도 여기에서 온다. 모사메드스 다음 가는 전문성을 가진 학교는 바로 AIT 포르투암보임으로, 반도체의 도시답게 전기공학과와 반도체공학에서 모사메드스와 비등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성취도를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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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8일 (일) 06:0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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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ública de Ang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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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국장 | ||||||||||||||
힘은 합칠 때에 비로소 강해진다 Virtus UNITA Fortior | |||||||||||||||
상징 | |||||||||||||||
우리에게 승리가 있으라!(Há Vitória Para Nós) | |||||||||||||||
청황백기 | |||||||||||||||
카생뿔매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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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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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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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코드 | |||||||||||||||
ANG, AG, 024 | |||||||||||||||
ccTLD | |||||||||||||||
.AG .AO | |||||||||||||||
국제 전화 코드 | |||||||||||||||
+244 | |||||||||||||||
차량 통행 방향 | |||||||||||||||
오른쪽[12] |
개요
앙골라 공화국(영어: Republic of Angola, 포르투갈어: República de Angola)은 남아프리카에 위치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13개의 주(Províncias)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략 3억 5백만명의 인구가 거주중이며 이는 세계 4위의 규모이다. 1995년, 급속도로 상승한 앙골라의 경제력과 영향력으로 인하여 UN 안전보장이사회 영구 상임이사국으로 승격되면서 지역강국을 넘어선 강대국으로 분류되기에 이른다. 앙골라는 1차, 2차, 3차 산업 모든 분야에서 크게 발달한 명실상부 아프리카 최대이자 더 나아가 강대국인 중국, 소련, 일본을 추월한 세계 2위의 압도적인 경제력을 보유하여 '아프리카의 캘리포니아'라는 별칭을 가진 국가이다.
상징
국호
앙골라의 국호 16세기 앙골라 일대에 있던 은동고(Ndongo) 왕국의 국왕 칭호인 응골라(Ngola)에서 유래했다.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이를 지명으로 생각하고 붙인 것이다. 내전 이후 UNITA는 국호 제정 중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했어야 하였는데, 바로 '인민'을 위한 국가라는 점에서 '인민공화국'을 국호로 정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공화정을 표방하는 '공화국'으로 정할 것인가였다. 하지만 아무리 앙골라 최초의 독립을 얻어내었던 체제의 국호였음에도 MPLA의 부정선거로 UNITA와 내전을 벌여 패배한 국가였기에 '앙골라 인민공화국' 호칭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았고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를 통해 92%의 찬성으로 '앙골라 공화국'을 국명으로 확정하게 된다.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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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황백기(Bandeira AAB[13])는 앙골라의 국기이다. 인민공화국 시절 사용하던 마체테와 톱니바퀴 문양을 존치할지, 아니면 신국기를 새로 제작할 지에 관한 논의는 2공화국 출범 전부터 있어왔던 논의였고 결국 조나스 사빔비가 직접 제안한 도안을 수정한 이 국가가 공식적으로 2공화국 헌법에서 국기로 채택된다. 황색은 국부(國富)를, 청색은 국가의 긍정적인 미래를, 백색은 국가의 청렴도를 상징한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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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세계적 모더니즘 디자인 철학의 유행이 70년대 초반, 프루이트 이고의 실패로 크게 무너지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예술계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었음에도 대전쟁을 겪었던 앙골라의 예술계와 대통령 조나스 사빔비는 단순하고 기능중심적인 형태의 국장을 원하였다. 특히 내전기 체제선전 등으로 복잡해지고 '예술성' 이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상징을 MPLA가 적극적으로 사용했기에 이에 대한 반발심 역시 단순한 디자인에 대한 지식인들의 지지를 이끌었다. 결국 공모전을 통하여 AFU[14] 벵겔라에 재학중인 한 학생의 디자인이 최종적으로 선정되며 1976년, 앙골라의 국장은 구 앙골라 인민공화국의 국장에서 위의 것이 된다.
같은 반지름을 가졌다는 점에서 평등을 상징하는 원형 국장의 중심에는 앙골라를 상징하는 국조 '카생뿔매(Aquilla Africana)'가 자리잡고 있으며 하단에는 발전된 교육복지를 상징하는 앙골라 통합교과서, 상단에는 국민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대변하는 별이 위치한다. 바탕의 휜 줄이 쳐진 주황 배경은 떠오로는 태양과 시민들의 부(富)를 상징한다.
역사

지리
1,249,300km²라는 프랑스의 2배를 넘는 면적을 보유한 국가로 이는 세계 23위의 국토 크기이다. 원래 면적은 1,246,700km²이었으나 2,600km²가량을 항구개발을 위해 간척하여 면적이 조금 늘었다. 내수면 비율 역시 0%에 근접하는 수준이었으나 항구도시인 모사메드스에 우주기지를 설치하기 위하여 땅을 파고 폭파시킨 결과 30km²에 근접하는 수면 아래의 땅이 생겼다. 국경으로는 잠비아, 콩고민주공화국, 나미비아 공화국과 접하며 월경지인 카빈다를 통하여 콩고 공화국과도 접한다.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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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빈다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열대우림이 우거진 열대 기후로 분류되며 남부 내륙은 안정적인 온대기후를 보인다. 해안가 대부분의 지역은 건조한 사막•스텝 기후로 분류되며 이는 루안다•벵겔라-로비투•모사메드스 같은 항구도시 광역권에 농업 대신 제조업 기반이 들어서며 제조업이 성장하게 되는 데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적도에 가까움에도 우암부 같은 온대 내륙도시는 평균온도가 16°C 수준이고 7-8월에는 선선한 기후를 보이며 이는 우암부와 루방구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내륙 광역도시가 된 이유이다.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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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서저로 요약 가능한 지형이다. 전체적으로 해안 지역은 매우 평평하며 이는 기후와 함께 해안가에 대형 도시들이 남북으로 길게 확장할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내륙은 전체적으로 고원이며 특히 내륙 중부의 해발고도는 2000m가 넘어가여 이는 내륙의 기후가 온대기후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대도시 우암부는 해발고도가 콜로라도의 덴버와 비슷한 1600m, 루방구는 해발고도가 1800m이다.
생태
한창 자원-제조업을 활용한 압도적인 고도성장 중이었던 80년대에는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 파괴가 급증하며 사회적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이후 극도로 발전한 경제력에다 전쟁으로 지속된 오일쇼크로 중진국 함정을 쉽게 뜷어내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자 앙골라 정부는 본격적으로 국립공원을 전 국토에 설립하기 시작하며 무분별한 자원개발에 매우 강력한 규제를 내리게 된다. 생태적인 특징은 다른 중앙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열대 동식물들이 많이 분포해있다는 점으로 사자, 코끼리, 치타 등등 열대동물의 숫자가 엄청나다. 또한 남부 사막해안에는 맹그로브 숲까지 분포하며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의 생식이 분포한다.
인문환경

행정구역
![]() 앙골라의 행정구역 Províncias de Angol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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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적 공용어
- ↑ 1987년 앙골라 통계청에서 앙골라의 부족사회는 끝났음을 암시하며 부족 인종 집계를 중단하였다.
- ↑ 앙골라-백인 혼혈
- ↑ 미국 국적을 보유한 아프리카인
- ↑ 독일보다 살짝 높은 수준
- ↑ 2015년 당선
- ↑ 앙골라 완전독립 민족동맹당(UNITA) 후신
- ↑ 앙골라 해방인민운동당(MPLA) 후신
- ↑ 1위는 명목 GDP가 $28조인 미합중국
- ↑ 1위는 PPP GDP가 28조인 미합중국
- ↑ 트리스탕다쿠냐 해외속지
- ↑ 트리스탕다쿠냐의 통행방향은 영국으로부터의 매입 직후에는 왼쪽이었으나 이후 법안 개정을 통하여 오른쪽으로 변경된다.
- ↑ Azul, Amarelo, Branco
- ↑ 앙골라 연방대학교
- ↑ 2000년 철수